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20. 7. 13. 07:04

학봉산악회 진주 비봉산 산행 1

2020년 6월 6일∼7일(금∼토, 1박2일)

참가회원  : 김재현·서익진·정규식·신삼호·손상락(글쓴 이)·임학만·신성기·허정도

 

학봉산악회는 창립 11주년을 기념하는 100산 탐방 프로그램 일환으로 민족과 이 땅을 위해 육신을 기꺼이 바친 선조님들의 그 고귀한 정신을 다시한번 되뇌이게 하는 호국의 달 유월을 맞아 66일 현충일()7일의 양일에 걸쳐 12일로 진주로 갔다.

이 땅의 균형발전을 위해 한양에서 날아와 경남의 보배로운 땅 진주를 굽이쳐 흐르는 남강과 영천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진주 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견학에 이은 비봉산 둘레길 산행을 기획했다.

이번 특별 산행프로그램은 땅(자연)을 무대로 인간을 위해 한정된 땅의 최유효이용을 고민하고, 이 나라 이 사회 구성의 시작인 가족의 둥지(보금자리·주택)를 땅 위에 새겨놓는 시대사적 사명을 다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특별전을 하고 있는 Map視 地圖展(2019.12.3∼2020.12.31) 견학을 곁들인 일정으로 엮었다.

1일차 6월 6일 금요일 오후 3시, 학봉산악회 국내 100산 탐방의 출발 터미널인 마산 문화예술의 상징 3.15아트센터 주차장에서 접선한 우리 일행은 청년팀과 원로팀으로 나누어 2대의 차량에 분승하여(김재현 회원은 부산에서 개별 이동) 진주 혁신도시 토지주택박물관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 10분후 긴급 타전의 제1호 사건이 발생했다.

현대 문명인이 잠시라도 정보를 접하지 못하면 원시인이 된 듯하거나 나만의 정보가 타인에게 노출될까 코로나19보다 공포스러운 불안증으로 몰고 가는 현대인의 무서운 족쇄 핸드폰을 데리러 다시 집으로 간다는 긴급타전이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으로부터 11주년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다.

우리 일행은 국토남단의 동서동맥 남해고속도로를 50여분 달려 4시경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에 도착하여 국민기업 LH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LH 토지주택박물관 地圖展(Map視)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우리 일행은 학예사로부터 선조들이 땅을 그리고 땅을 바꾸고 땅을 설계한 지도에 대해 시간적 흐름을 관통하는 해설을 들으며 아무것도 없었던 그 시대에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의 시대에 이 나라 이 땅의 모습을 한 장의 종이 위에 표현하기 위한 그 집념과 선조들의 지혜를 머리와 가슴에 새기면서 의미있는 지도 시간여행을 했다.

“사람은 터전을 만들고 터전은 삶을 만든다”는 땅의 중요성과 땅이 행복에 이르는 삶의 자양분임을 생각게 하는 글귀가 뇌리에 지도처럼 새겨지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박물관의 地圖展에 관한 전시를 통해 이 땅에 대한 시간여행을 1시간여에 걸쳐 마치고 LH 회의실에서 잠시 환담을 했다.

 

 

박물관 관람으로 열심히 공부한 탓일까 지난해 느꼈던 그 음식맛의 여운이 남아서 일까 마음은 이미 그 식당에 가 있는듯하다, 환담으로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 때 “제2호 사건”이 발생했다. 학봉산악회에 인문학적 자양분을 주는 회원께서 뭔가를 잊어 버렸다는 사건을 접수했다.

그건 바로 여행을 떠날 때 멋쟁이들이 항상 챙기는 선글라스를 어딘가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했던 장소에 긴급 타전을 하니 분실물의 소재가 파악되어 사건은 간단하게 마무리되었다.

우리 일행은 봉고를 타고 남강변과 시내를 잠시 달려 뇌리를 떠나지 않는 1년 전 음식맛을 느껴 “다음에 꼭 한번더 와야지”하며 식당문을 나섰던 그 식당에 6시 반경에 도착했다.

배꼽시계는 8시나 된듯한데 아직 해가 둥천에 있는 듯 어둠이 내리지 않았다.

아직 식당은 한산하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재료가 나오면서 지난 해 한번 경험했던 터라 재료를 넣고 뒤집기를 여러번 하니 얼른 한입 하고 싶은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완성되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맛을 보는 서원로께서는 “음~~ 맛이 깊고 다르네..!”를 연발하며 젓가락질에 여념이 없다.

약주와 안주를 반복하던 사이 어느새 민생고는 해결되었다.

배가 부르고 약주 기운이 반쯤 오르니 논개의 충정과 진주의 보배 남강과 진주성 야경을 눈에 하고 싶어 지척의 거리에 있는 남강까지 봉고를 타고 자리를 옮겼다.

여덟 남자가 진주성의 반대편 남강변에 이르니 아직 어둠은 드리워지지 않고 진주성의 야경 불빛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뭇 남성들이 남강변에 서성이며 불빛이 들어오기를 한참 기다려 아름다운 진주성의 은은한 듯 화려한 듯 야경을 조망하며 칙칙한 잿빛건물로 오염된 눈을 세척하면서 길게 선적 경관요소로 디자인되어 있는 진주성 야경의 긴 선처럼, 남강변의 그 아름다움과 임진왜란 역사의 한 장소로서의 그 역사성이 길이길이 이어지기를 생각해보았노라.

이렇게 진주성 반대편의 남강변을 산책한 후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LH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배낭과 짐을 챙겨 오리새끼가 어미를 따라가듯 일행의 뒷모습을 보며 어둠과 가로등 불빛이 드리워진 가로수 그림자를 밟으며 터벅터벅 무거운 발길을 옮기며 아파트숲을 헤쳐 숙소에 도착했다.

사람은 경험을 해야 한다.

지난해보다는 숙소에서의 시간이 꽤 질서있게 시작되었다. 지난해에는 전통식(坐式)으로 마련되었으나, 이번에는 입식(立式)으로 환담의 자리가 정리되었다.

학봉산악회가 성숙되어 가는 것일까, 6월 6일 경건한 현충일의 탓일까, 산만한 산악회 조직에 인문학을 채워야 한다는 절절함이 우러나오는 내면적 현상일까.

이번에는 지난해의 숙소시간에서 등장헸던 아모르 파티의 이야기, 미스터트롯의 열창,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머니는 건넛마을 아저씨댁에 간 동요 이야기는 없었다.

깊은 야밤에 “손이 왜 이리 차노”라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없었다.

하지만 성숙되어 가는 것일까?

신삼호 회원께서 성경에 대한 이야기로 공학도의 학봉산악회에 인문학을 주입시키기 위한 자원봉사 특강으로 현충일의 밤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보냈다.<<<

Trackback 0 Comment 0
2019. 4. 29. 00:00

London and Quadrant / L & Q

"No one should be denied the opportunity to achieve their potential because of where they live."

“어느 누구도 그들이 사는 곳 때문에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거절당해서는 안된다.”

 

런던에 소재한 주거복지재단 L&Q(London and Quadrant)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을 알게 된 뒤 L&Q에 관심을 가졌다.  ‘임대주택 거주자와 같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천박함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했다.

생각 때문이었을까, 마침 가볼 기회가 생겨 직접 그곳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울림은 적지 않았다.

이 포스팅은 그때 L&Q에서 얻은 정보와 느낌을 간단히 정리한 글이다.

 

□ L&Q(London and Quadrant) 소개

ㅇ 1963년 10명의 전문가 그룹이 참여한 주택조합 결성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1974년 주택법(Housing Act)에 따라 주택공급 보조금을 지원받고 유사한 성격을 가진 단체들과의 통합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영국 최고의 주택조합이며 가장 성공한 소셜 비즈니스 단체 중 하나다. 직원 수는 2천 수백 명에 이른다.

ㅇ 재단은 2011년 주택건축과 단지 조성을 넘어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재단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각종 사회・경제적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ㅇ 재단의 목표는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할 집과 이웃을 만드는 것이다.

 

□ L&Q 주요 사업

ㅇ 런던과 영국 남동부 전역에 걸쳐 약 95,000채 25만 명의 주거를 지원하고 있다.

ㅇ 핵심사업은 사회임대주택 건설이다. 시세의 50% 미만 정도되는 낮은 임대료로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한다.

ㅇ 앞으로 10년간 10만채의 신규주택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며 단순한 주택서비스의 제공을 넘어 지역사회의 사회적 파트너로서 활동할 계획이다. 주요 업무는 공공주택 건설, 부동산 관리, 지역사회 투자 등이다.

ㅇ 2016년, 재단은 L&Q 가구에 대한 대규모 사회・경제 조사를 완료했다. 이 조사를 통해 그들의 어려움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조사 결과는 이후 L&Q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전략수립에 통계적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임대주택을 공급하였고 유사한 문제를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그들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듣고 싶어 L&Q 재단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두 분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임대주택의 사회적 지원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런던 동부의 웨스트햄 지역에 위치한 L&Q에 도착하자 Matt Bayliss(Head of Independent Lives)와 그의 동료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L&Q 사무실 전경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여서 마음이 바빴다.

나는 먼저 그에게서 그들이 하고 있는 사회임대주택 거주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나왔다.

특히 영국사회가 선진국가 중 계층 간 이동성이 가장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 점을 자각하고, L&Q 입주민들에 대한 대규모 사회・경제적 조사와 통계분석을 통해 실효성 있는 전략 수립과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한다고 했다. 이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L&Q 재단의 임대주택 거주자들은 평균에 비해 불우하거나 취약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다른 사회주택의 평균소득 보다 10% 이상 소득이 낮은 저임금 상태라고 했다. 평균 연령이 50세 이상이라고도 했다.

런던도 우리처럼 판매 및 임대를 위한 주택개발 유형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Q는 유형적인 유산뿐 아니라 사회적인 유산까지도 창출하여 역사상 유래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가장 가슴에 와 닿은 이야기는 금융 쪽과 함께 만든 자활펀드였다. 우리도 적용해볼만한 프로그램이지만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언젠가 실제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다.

 

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앞서 말한 것처럼 영국은 선진국 중 사회적 이동성이 가장 낮기 대문에 사회임대주택 거주자들은 일반에 비해 나쁜 사회적 결과를 가진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L&Q 재단은 입주민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집과 이웃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3가지 도전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 Independent Lives (독립적인 삶) ; 입주민들의 사회・경제적 회복을 위해 새로운 고용 방안 발굴, 기술훈련 투자, 재정 및 금융에 대한 컨설팅 등을 통한 지원 강화

・ Successful Places (성공적인 장소) ; 지역사회 편의시설 등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장소 형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

・ Social Responsibility (사회적 책임) ; L&Q 사업전반에 걸쳐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요소들을 도입하고 아울러 L&Q-학교 파트너십 프로그램 등을 통해 거주 학생과 젊은이들의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

 

재단의 3가지 도전 전략

 

이 외의 사업으로 창업, 사회적 기업, 사회단체를 위한 시설로 사무실, 회의공간, 교육 등 다양한 지원서비스도 제공한다고 했다.

2시간 정도 진행된 이야기 나눔에서 그들도 우리와 유사한 문제를 겪어 왔으며 입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동일한 현안과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의식은 유사했지만 그들의 주거복지 네트웍이 우리보다 훨씬 촘촘하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너무 짧은 시간이라 깊고 넓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문제를 우리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고 깊게 다룬다는 점은 명확했다. 시간은 짧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공급 확대라는 물량적 측면에서 벗어나 공공임대주택 입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연구와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도 절감했다. 이미 시작하였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시간을 넉넉히 내어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짧은 두 시간을 마무리했다. 

 

며칠 전 진주 가좌동 임대주택에서 대참사가 났다. 

방화살인범 안인득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참사였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주거복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 를 두고 설왕설레하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두 달전에 갔던 L&Q가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이런 사고가 있을텐데 그들은 어떻게 예방하고 있으며, 사고가 났을 때는 어떻게 조치할까? 

궁금하다.<<<

 

 

 

 

 

Trackback 0 Comment 0
2010. 4. 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마산인근을 ‘합포(合浦)’라 부르다>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년)에 행정체계를 주-군-현으로 정비하여 중앙집권을 강화한 9주5소경제(九州五小京制)로 재편했습니다.
지금의 경남지방에는 진주와 양산이 9주(州)에 포함된 도시입니다.
당시 진주는 뒷날 강주(康州)가 되는 청주(菁州)로, 양산은 뒷날 양주(良州)가 되는 삽량주(歃良州)라고 불렀습니다.
삽량주(지금의 양산)에는 12개 군이 속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굴자군(屈自郡)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굴자군(屈自郡)에는 칠토(柒土-칠원)․골포(骨浦-마산)․웅지(熊只-웅천)에 각각 현(縣)을 설치함으로써 마산지역은 골포현이 되었습니다.

마산지역 현(縣)의 명칭인 ‘골포(骨浦)’는 포상팔국 중의 ‘골포국’에 이어 또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곧 '골포'는 기록에 남아있는 마산 최초의 국가명칭이자 행정구역명칭입니다.

스스로 몸을 굽힌다는 뜻을 가진 '굴자(屈自)'를 군명(名)으로 한 것과 포상팔국시대에 국명()이었던 '골포(骨浦)'를 행정체계 최하단위인 현명(縣)으로 사용한 것에 눈길이 갑니다.
혹시 전쟁에서 골포국을 굴복시킨 승리자 신라가 고의적으로 지은 이름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마산에는 2천 년이나 되는 ‘골포’가 아직도 살아남아
골포 라이온스클럽’ ‘골포 부동산’ ‘골포 갯마을식당’ ‘골포 스크린골프’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라 35대 경덕왕 16년(757년)에 전국행정구역을 새로 정비하였습니다.
이때의 군현개편은 군과 현의 명칭개정을 비롯하여 군현의 승격과 강등, 영속관계의 조정 등 행정질서의 개편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명을 한화(漢化)시켰습니다.

이 정비 때 지금의 진주지역인 청주(菁州)는 강주(康州)로, 지금의 양산지역인 삽량주(歃良州)는 양주(良州)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삽량주의 굴자군(屈自郡)은 양주의 의안군(義安郡)으로 바뀌었습니다.

의안은 창원시에 의안동이라는 동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몇 해 전 창원시가 동을 합치면서 인근 몇몇 동과 함께 의창동으로 변하면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의창동주민센터 의안민원센터’라는 이름으로 아직 연명은 하고 있었습니다.

굴자군이 의안군으로 바뀔 때 현의 명칭도 바뀌었습니다.
마산의 골포현(骨浦縣)은 합포현(合浦縣)으로,
칠원의 칠토현(柒土縣)은 칠제현(漆堤縣)으로,
웅천의 웅지현(熊只縣)은 웅신현(熊神縣)이 되었습니다.

이 때 탄생한 합포(合浦)라는 지명은 여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 실패 직후인 고려 충렬왕 8년(1282년)까지 마산지역의 행정구역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행정구역명이 바뀐 뒤에도 '합포'는 지명이나 포구의 명칭으로는 계속 사용되어 마치 '마산' 지명의 대명사와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합할 합(合)’자를 사용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대합조개 합(蛤)’자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합포라는 지명에 대해서,
아래 그림(1833년 제작된 고지도의 일부)처럼 마산의 산호천과 삼호천 그리고 창원의 창원천과 남천이 팔룡산을 가운데 두고 창원과 마산 양쪽에서 흘러내려 마산 앞바다에서 합쳐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양쪽의 큰물이 합쳐지는 곳, 그래서 이곳을 ‘합포(合浦)’라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이 합쳐진 합포가 아니면,
‘대합조개 합(蛤)’자의 합포(蛤浦)도 병용했다하니 마산 앞바다 갯벌에 대합조개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을까요?

하지만 보다 정확한 분석은 따로 있습니다.




동아대 김광철 교수에 의하면,
합포는 단순히 포구의 모양이나 물산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위 두 개의 그림에서 보는 중국 남부지역 광서장족자치구 연해지역에 있는 '합포'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중국의 '합포'는 대륙 최남단인 베트남 국경 부근, 곧 요즈음 한국사람들이 골프여행 많이 간다는 해남도와 가까운 곳에 있는 해안의 작은 도시입니다.
한대(漢代) 이래 지금까지 남아있으니 수천 년된 유서 깊은 지명입니다.

합포군은 후한시대 맹상(孟嘗)이라는 사람이 태수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면서 유명해졌답니다.
따라서 마산이 합포로 개칭된 것은 청렴한 수령이 다스리는 고장으로 인식되어 왔던 합포의 상징성을 고려한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는 겁니다.

곧 '골포'에서 '합포'로의 개칭은 지방관을 비롯한 관료의 선정과 민생의 안정을 바라는 국가 염원이었다는 설명입니다.

환주(還珠)가 합포의 별호로 사용된 것도 이런 상징화 작업이었다는 설명도 곁들여 하고 있습니다.
'구슬이 돌아왔다'는 뜻이 담긴 '환주(還珠)'는 곧 선정을 펼친 수령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합포’라는 명칭은 마산에 구청이 있을 당시 ‘합포구’로도 사용되었지만 ‘합포초등학교’ ‘합포여중’ ‘합포고등학교’ 등의 학교이름과 ‘합포만’ ‘합포문화동인회’ '합포만의 아침' ‘합포우체국’ ‘합포동’ 등 지금도 마산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마산시민에게는 아주 친숙한 지명입니다.

다른 이야기로 가겠습니다.

신라시대,
이미 마산에는 부산, 울산 등과 함께 항만이 있었습니다.
(사)한국건설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항만건설사/1978년』를 보면 고대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에서 항만으로 이용된 지역을 소개하면서 마산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불 때 당시의 항만건설은 공법상 원시적인 개발에 불과했지만 백제와 신라의 축항기술은 당시 아시아지역 최첨단이었다고 합니다.
일본기술자들이 와서 신라의 조선기술과 축항기술을 습득해 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의 축항기술은 천연의 자연조건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과 해상조건에서 오는 조수간만의 차이와 풍랑 등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방법이었습니다.
시설은 석축돌제식(石築突堤式), 석주잔교식(石柱棧橋式) 또는 목재를 이용한 잔교(棧橋) 등 이었습니다.

당시 선진공법으로 축조되었던 신라시대 항만은 지금 이 도시 어디쯤에 있었을까요?
그리고 신라시대 마산의 부두에서는 어떤 분들이 무슨 일을 했을까요? <<<


<이전 글>
2010/04/08 - 연재를 시작하면서 - 여는 글
2010/04/12 - 무학여고 뒷산에서 나온 붉은 항아리 (통일신라시대 이전) - 1



Trackback 0 Comment 3
  1. 이윤기 2010.04.19 10:02 address edit & del reply

    재미있게 읽고 공부 많이 하였습니다. ^^*

    • 허정도 2010.04.19 11:00 address edit & del

      고맙소.
      설명을 하려니 글이 조금 기네요.

  2. 후배유림 2010.04.21 14:51 address edit & del reply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선배님.
    다음 글 기다리면서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3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6) "사십 년을 살아온 제2의 고향" ------------------------- 조○○ 1940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2-2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선생님께서도 우체국에..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2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5) "서민들 사는 보통 동네에서의 조용한 기쁨" ------------------------- 최○○ 1936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1-5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1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김○○ 1940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16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조합사무실, 자택 - 반..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0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3) "삼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콩나물을 길렀다" ------------------------- 권○○ 1949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지하 수정식품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9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2) "동네 지킴이, 칠원쌀상회" ------------------------- 이○○ 1948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1층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지금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8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일러두기> 1) 주민 면담은 2015년 1월 중에 이뤄졌습니다. 2) 인터뷰이(interviewee)는 가급적 오래 거주하신 분들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3) 게재 순서는 편의상 인터뷰가 이뤄진 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7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2 3)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아래 사진)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1 1) 교방동 관해정(校坊洞觀海亭)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년~1620년)가 그의 제자들과 함..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3 ● 협동정미소 터 상남동 회산다리 건너 회원천변에 붙은 회원동 429-1번지. 현재 환금프라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2 ● 교원동 일대의 공장들 건설목공소(가구 제조), 교원동 117번지, 대표 김협환 광전사(전기공사업), 교원동 54번지, 대표 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2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5 ● 북마산중앙시장, 북마산청과시장 북마산중앙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37년 전인 1976년 11월이다. 이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1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0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3 ● 회원동 500번지 회원동 500번지 일대의 동네를 말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군 기마병의 마굿간과 창고가..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9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2 ● 배넘이 고개 [배드나무 고개, 배드난 고개] 회원동 골짜기에서 마재고개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세인들이 지금도 배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