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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1 – 아사히카와(旭川), 다이세쓰산(大雪山)

by 운무허정도 2019. 6. 17.

6월 1일로 10년을 맞은 학봉산악회의 회원들이 10년 된 기념으로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열 명의 회원 중 아홉 명이 함께했다. 명칭은 거창하게 ‘산악회’라 붙였지만 매주 토요일 오전에 만나 무학산 둘레 길을 걷는 소박한 모임이다.

참가자 : 김용운, 김재현, 김흥수, 서익진(글쓴 이), 신삼호, 신성기, 임학만, 정규식, 허정도 9명

일시 : 2019. 4. 25(목) – 4. 28(일) / 3박 4일

 

2019. 4. 25 (목, 첫째 날) - 흐리다가 맑음

한 팀은 새벽 6시, 다른 팀은 새벽 6시 반부터 서둘렀다. 두 대의 승용차로 나누어 공항으로 간다.

우리 팀은 김재현 회원이 네 사람이나 픽업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고맙기 짝이 없다.

차를 장기주차장과 민영주차장, 어디다 주차할 것이냐로 옥신각신 하다가 공항 앞 가장 가까운 민영 ‘현대주차장’에 주차한다.

주차장에서 제공한 셔틀 봉고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다른 팀을 만나 모두들 무사 도착을 확인하고, 자동 체크인 기기로 좌석을 배정받은 후 트렁크들을 화물로 부친다.

신삼호 총무가 일본과 한국에서 사용할 공동경비로 1인당 내기로 한 엔화 1만 엔(한화 10만 원으로 대신 납부 가능)과 한화 5만 원씩을 거둔다.

아침식사 할 짬들이 없었고, 저가항공사는 기내식 안 준다 하니 국제공항청사 1층에 있는 부산어묵집에서 어묵으로 때우다. 내가 추천했는데 다들 별로 음식에 감동하는 눈치가 아니다. 내가 원체 어묵을 좋아하다 보니... 허허.

9시 30분,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해 11시 30분경 삿포로의 신치토세(新千歲) 공항에 무사히 착륙한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비행기 탈 때마다 이착륙에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나도 나이 좀 먹었나보다.

짐 찾아 나와서 로비에서 좀 기다리니 우리의 명 가이드 정창훈 씨 등장. 몇 년 전 야쿠시마 단체산행 때도 우리 일행 가이드 했던 양반이다. 그때의 인연으로 이번에도 여행일정 전반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사이에 이 양반, 여행사 직원에서 사장이 됐다나. 작은 일본 전문여행사를 차렸고, 중요 고객에겐 직접 가이드 역할도 한다고. 솔직히 회사를 혼자 하는지 다른 직원은 있는지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10인승인가? 자리가 꽉 찼으니 10인승으로 짐작한다. 초 미니버스를 타고 아사히카와(旭川) 시를 향해 출발한다.

가이드는 점심시간이니 근처에서 먼저 점심부터 먹자고 한다. 공항 구역을 벗어나 얼마 안 가서 대형마트 건물 안에 있는 회전스시 집에서 식사를 한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반주가 왜 여행만 오면 생각나는지 알 수 없다.

생맥주와 청주로 반주를 곁들이는데, 청주 이름이 국사무쌍(國士無雙). 이름에 반한 허정도 원로대원, 한 병 사가야겠다고 하더니 귀국할 때 공항에서 살짝 국사무쌍 1병을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 샀지?

가이드상, 점심 먹었으니 맛있는 커피 맛보게 해준다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으로 데리고 간다. 100엔짜리 자판기 커피인데 그런대로 괜찮다는 중평이다.

 

 

커피 마시며 세븐일레븐이라는 상호가 일본이 원산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물박사 ‘네이버’씨에게 물어보니 1927년 미국에서 오전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문 여는 세계 최초의 편의점으로 출발했고, 나중에 일본에 진출해 미국보다 더 큰 대박을 터뜨려 2005년에 일본 자회사가 미국 본사를 합병했다는 역사를 알려준다.

롯데를 앞세워 한국 편의점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일본에서만큼 쪽을 쓰지는 못한다고. 다른 나라들에서와는 달리 한국 시장에서 맥도날드가 롯데리아에 맥을 못 추는 꼴과 같은 것인가.

한국 소매 유통시장의 특수성은 프랑스계 까르푸와 미국계 월마트 등 외국계 대형유통업체들의 한국 진출 실패 사례도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은 또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다시 아사히카와를 향해 출발한다.

삿포로 시 외곽을 어디론지 한참 가더니 드디어 고속도로로 진입. 좀 가다가 오른쪽 아사히카와 방향으로 진격한다. 북해도라 하면 눈덮힌 높은 산들로 즐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어진다. 도대체 산은 어디 있는 거야. 가이드 상, 좀 가면 나온다고. 하하.

목적지까지 2시간 넘게 달려야 하니 운전자 가이드 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일본의 지리와 문화는 물론 정치, 문학, 경제까지 박식하기 짝이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까지 얘기하길래 가이드의 대학 때 전공이 궁금해진다. 기회를 잡아 물어봤다. 짐작대로 국제경영학과 일본학을 했다고. 그리고 일본 여행업에 종사한 이후로 항상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직업에 대한 자세가 되었고, 명품 가이드를 아무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스나카와(砂川) 휴게소에서 휴식한다. 화장실 들르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고 다시 출발. 차 속에서 허 원로, 기행문 누가 작성할 거냐고 추궁하듯 묻는다.

일본서 짧지만 방문교수도 했고 이번 여행일정 조율도 맡았던 김재현 대원이 적합하다는 중론인데, 이 양반 할 수 없이 쓰기는 하겠지만 자기는 뼈만 작성할 테니 나보고 살을 붙이라며 나를 물고 들어간다.

나는 백산 산행기 담당자이지 해외 산행기 담당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경주 남산 산행기도 아직 완성 못했는데... 아, 뼈를 발라 살을 만드는 밤을 두 번이나 더 새워야 한다니.

10명 회원을 가진 산악회 아닌 산악회에 이미 회장, 보급대장, 백산대장, 해외원정대장, 산행기 담당이 있는데, 이번 원정에서 총무, 부총무, 부총무보까지 생겼다. 전 대원의 간부화가 멀지 않았다.

 

후카가와(深川) JC에서 빠져나와 아사히카와의 외국 수종 시범림(소설 ‘빙점’의 무대) 안에 있는 미우라 아이코(三浦綾子, 1922-1999) 기념문학관에 4시 반 경에 도착한다.

 

 

가이드 왈, 시간도 좀 남고 문화적인 것 좋아들 하실 것 같아 이곳으로 모셨다고. 나야 당근 만족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만족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한 시골마을의 산책로 입구에 위치한 이 문학관은 작은 2층 건물과 더 작은 단층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벽에 “이 문학관은 작가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세웠다”고 적혀 있다.

1층 벽면에 장식된 작가 연보에는 주요 연도마다 그 해의 중요 사건을 병기해 놓았다. 그의 작품들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나는 ‘빙점’이라는 소설을 알고는 있지만 읽었는지 여부는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으로 스토리의 뼈다귀는 알게 되었다. 웬 남자 사진이 걸려 있어 누굴까 했는데, 2층에 마침 모범부부 기획전을 하고 있어 살펴보니 남편이다. 몸이 불편한 작가의 구술을 받아 적는 등 외조를 많이 했고 금슬이 좋았기 때문이란다.

2층 반대쪽에는 자유도서관이라 이름 붙은 문 없는 작은 공간이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시해놓고 누구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국의 어느 문학관에서 이런 도서관을 본 적이 있나? 물론 1층 카운터에서는 작품은 물론 관련 소품들도 판매한다.

별관에는 작가의 생전 서재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표찰이 붙어 있어 작가의 앉은뱅이 탁자 앞에 앉아볼 수는 없고, 대신 마루에 걸터앉아 사진만 찍었다.

임 보급대장 건축전문가답게 별관 입구의 자동 닫힘 장치를 보고는 탄성을 발한다. 우리도 이런 거 도입하면 좋겠다면서.

 

5시 20분 경 다시 출발해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간다.

드디어 멀리 눈덮힌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댐이 나타나고 저수지를 따라 서서히 올라간다. 어디서 사진 찍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자말자 가이드 기사 즉시 차를 되돌린다. 전망이 좋은 곳을 지나쳤다는 것이다. 사진들 찍고 경관을 감상한 후 호텔로 직행하다.

 

 

6시 20분 목적지 호텔에 도착한다. 다이세츠잔(大雪山)의 아사히다케(旭岳, 2291미터) 중턱 1,050미터 높이에 있는 아사히다케 온천호텔이다.

정문 상단에 ‘bearmonte’라는 호텔명이 붙어 있다. 곰의 산이란 뜻인데 이 산에 곰이 많나? 주차장에 차들도 없고 로비도 한적해 영업 중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카운터 옆 좌측 공간에 페치카가 있고 주위에 소파들이 놓여 있다. 로비를 둘러보다 반가운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름 하여 ‘喫煙室’. 국립공원 내 호텔이어서인지 건물 내부에 ‘흡연실’을 만들어둔 것일까.

왜 일본은 끽연실이라 하고 우리는 흡연실일까. 끽연실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일본 따라 하기 싫어서...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도 ‘흡연실’이라 부른다.

점심 먹을 때 허 원로, 맨날 원로들끼리만 합방하기 싫다며 회장에게 방 배정 방식을 고민해 보라고 지시(?)했었다.

충직한 김 회장 작은 종이조각들에 숫자를 적어 접은 후 탁자 위에 놓고 선택들 하라 한다. 강제 조정권을 가진 조커까지 넣어서 재미를 한층 돋우었지만, 조커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실제로 행사 가능한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어쨌든 허 원로와 내가 같은 1번을 뽑았다... 허 원로 왈, 나 하고 같이 안 자려고 꾀를 냈는데... 내가 대꾸하길, 날 버리고 가는 사람 안 잡어... 다들 웃음보를 터뜨리고, 누군가 이를 두고 천생연분이라 한다.

어쨌든 사흘 밤을 같이 지냈다. 제비뽑아 갈라져도 조커들이 합쳐놓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게 원로들 대접한다는 핑계로 사실은 원로원 왕따 시킨 것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렇게 방을 배정한 후 짐들을 넣어놓고 호텔 부설 온천사우나를 한다.

노천탕이 있다고 가이드가 자랑해서 노천탕에 갔더니 바깥쪽 벽 위로 하늘이 길게 보일 뿐이다. 내가 들어가니 신씨 성을 가진 두 명의 회원이 뭔가 얘기하던 끝에 건물 층수 매기는 문제가 나오자 내가 개입한다.

건축에 문외한으로 도대체 경사지에 지은 건물의 층수 매기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했더니 일제 때부터 내려오는 건축법에 관련 규정이 있다고. 내가 그게 일반인으로서는 불편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으니 상식에 맞추어 법을 개정하는 게 맞지 않나 하고 쎄우니, 건축 전문가들 왈 규정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며 일축한다.

설명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결국 건축주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다. 다른 분야들도 아직 그렇지만 건축 분야에는 일본식 용어가 유독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마저 그렇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것도 행정 및 관행 편의주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양반들은 벨시리 문제되는 건 아니라는 식이다.

사우나를 마치고 식당 앞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정규식 전 회장대원이 게르마늄 목걸이 하나를 목욕탕 바닥에서 주웠는데 아무래도 내 것 같다고 묻는다. 나는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목욕탕 옷 바구니에 넣어두고 옷 입을 때 바닥에 떨어뜨린 것 같다.

몇 년 전 대마도에 교수연수회 갔다가 마눌님에게 아부하느라 비싼 값 주고 샀는데, 몇 번 착용해보더니 무겁고 불편하다며 사용을 안 한다. 차라리 팔찌가 나았나 싶었다. 값도 헐 쌌는데. 그냥 집안에 돌아다니는 게 아까워서 내가 착용하고 다닌 지가 근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무감각하다니...

다음날 아침에 보니 우리 김 회장도 나하고 같은 걸 하고 있네... 가이드 왈 정작 한국 관광객들에게 팔았던 일본 사람들은 잘 사지도 착용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호구 잡힌’ 기분이다.

호젓한 분위기 있는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두 서너 팀이 더 있다.

 

 

드디어 삿포로 맥주를 마신다. 바깥은 어둠 짙은 산속이고 주위에는 이 호텔만 덜렁 있어 올 데도 갈 데도 없다. 술 마시며 얘기꽃들 피우는데 식당에는 우리만 남아 있다. 내가 보니 종업원들 눈치가 빨리 안마치고 뭐 하냐는 것 같아 대충 마무리하고 방에 모여 한잔들 더 하기로 한다.

원수 같은 원로 두 사람이 자는 방에 다들 모여 술추렴을 더 한 후 일찍들(?) 자러갔다. 이렇게 일본 홋카이도에서의 첫날밤을 맞았다. 뒤편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눈빛을 느끼며...

이 대목에 뼈다귀를 추렸던 김 교수 원고에 대설(大雪)の 장(藏)이라 적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몰라 본인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나? 어허 이럴 수가. 자기가 써놓고도 모른다니... 호텔 건물 어딘가에 적혀 있던 글은 아닐까? 아무도 모른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