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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3 – 비에이(美瑛), 삿포로(札幌)

by 운무허정도 2019. 7. 1.

4. 27 (토, 셋째 날) - 흐리다가 삿포로 도착 후 맑음

 

숙소에서 조식을 먹은 후 9시 출발을 위해 탑승 준비들 한다.

게스트하우스 리좀과 무관하지 않은 나는 펜션 주인장 부부와 함께 건물 입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같은 숙박업자로서...

떠나는 차 안에서 김 구청장 숙소 파트너였던 김 교수 왈, 자는 데 보니까 정말 몸이 안 좋다는 걸 알았단다. 어젯밤에 너무 닦달한 게 좀 후회스럽다. 그런데도 그동안 전혀 내색을 안 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이드는 어젯밤에 주인장이 놀랬다 한다. 경험상 한국인 단체손님 왔으니 오늘밤 잠 설칠 각오했다는데, 조용한데다가(노래 소리가 잘 안 들렸나보다) 11시도 안 되어 취침하다니 다른 한국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그동안 안 좋은 이미지 개선했다면 좋은 일이지...

먼저 간 곳은 ‘시라히게노다키(しらひげの瀧, 흰수염폭포)’와 ‘시로가네하시(白金橋)’다.

 

 

용암이 흘러 생긴 작은 개천이라 한다. 작은 개천이 넓은 개천과 만나는 곳에 폭포가 생겼는데 절벽 위에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절벽 수직면의 군데군데서 흘러나온다. 가까이 갈 수는 없고 백금교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폭포 바로 위에 집들이 들어서 있어 위험해 보였지만 전혀 아니라며 그 때문에 오히려 인기가 많다고 가이드 설명한다.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아오이이케(靑い池)’를 구경한다.

 

 

둑을 따라 산책길이 나 있다. 이 연못은 혹시 용암이 또 흐르면 막을 목적으로 인공으로 조성되었다. 나무들을 그냥 두고 둑을 쌓아 나무들이 물에 잠겼다.

신기하긴 하지만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김기덕 영화의 무대, 청송 주산지의 운치와는 비교가 안 된다. 물 색깔이 파랗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색깔조차 이름값을 못하는 것 같다. 이 호수가 무언가에 나와서 유명해졌다는데... 무엇인지 잊어먹었다.

 

일본의 유명한 풍경사진 작가 마에다신조(前田眞三)의 기념관, 타쿠신칸(拓眞館)으로 이동한다.

 

 

마에다는 가장 일본다운 경치를 찾아서 전국을 쏘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했고, 비에이의 구릉지대를 사철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한다. 구릉지의 낮밤, 노을, 석양, 계절 등 다양한 순간들이 포착되어 있다.

누군가 사진은 기다림의 작업이라 했던가. 같은 곳에서 같은 전경을 찍어도 사진은 다를 수 있다. 작가의 인내와 수고로움을 짐작할만하다.

척진관을 나와 바로 옆에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 속 오솔길을 따라 프로므나드(산책)한다.

사진들 찍기 바쁘다.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나무 숲길 끝은 언덕 위 도로로 이어진다. 밑에서 보면 병풍처럼 둘러선 언덕 위에 올라서니 신천지가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 멀리 눈 덮인 연봉들이 보이고 그 중 어딘가가 이틀 전 주봉 턱 밑까지 가보았던 대설산이 있겠지.

나는 사진 찍느라 뒤쳐졌는데, 마에다의 사진작품에 혹했는지 구릉지의 절경에 반했는지 이미 사진작가회를 결성했단다. 나도 무조건 회원이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10월에 전시회 개최까지 결정하고, 전시장으로 갤러리 리좀 예약까지 부탁한다. 진도를 한 번에 다 나가니 현실감이 없다.

 

언덕길에서 내려와 자작나무 숲길을 다시 돌아간다.

가이드 상, 전시회 리플렛에 실을 작가 얼굴사진 찍어준다 해서 모두들 번갈아가며 자작나무 숲길을 배경으로 폼들을 잡는다. 벌써 사진작가 된 줄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사진 공유는 없다. 우리는 경쟁자인 것이다!

 

 

비에이 구릉지대를 이리저리 더 돌아다니다가 일명 파노라마 로드라는 길에 잠시 멈춰 구릉지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비에이역을 거쳐 비에이쵸(美瑛町)의 고마소바(ごまそば;검은깨 소바)점 쯔루키(鶴喜)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제 정든(?) 비에이죠를 떠날 시간이다.

구릉이여 아듀(A Dieu!=to God). 연중 가장 경관이 못하다는 4월이 이 정도 감동을 주는데 언제 다시 한 번 와서 비에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려나.

이동 중에 내가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일어도 우리처럼 한자 없이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만으로 전용이 가능하지 않나? 혹시 그런 움직임은 없냐고? 가이드 답변, 못 들어봤다면서 자기 생각엔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서가 아닌지... 그래선지 일본인들은 언어유희를 많이 즐긴다고. 언어 후진국이라나!

 

나카후라노(中富良野)에 있는 도미타(富田) 농장으로 간다.

주차장에 내리자말자 살짝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아무도 없어. 이크, 부리나케 뒤편 산 쪽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올라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건물 뒤편이 수상해서 가보니 라벤더 노상 밭도 있고 하우스도 있다.

일행은 하우스 안에서 라벤더 꽃들을 구경하고 있다. 누군가 실종되었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까. 버려진 느낌이 이럴까?

7~8월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라벤더 밭. 아,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흐드러진 라벤더 밭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이번 북해도 여행은 프랑스 유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계기가 적지 않다.

그다지 크지 않은 농장을 둘러보는데 라벤더를 넣은 빵 같은 것을 총무가 사먹자고 한다.

원로 두 사람 거절하고 커피나 한 잔 먹자 하니 총무 왈, 그건 공금 지출이 안 된다고 자른다. 할 수 없이 엔화가 없어 보급대장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는다. 그런데 회장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들어온다. 공금으로 샀단다. 항의를 받자 자기는 빵 대신이라고 강변한다.

그럼 빵 대신 커피는 왜 안 되는데? 회장님의 기호는 일반회원과 별도로 취급하는 건가? 총무님 회장에게 너무 아부하시는 건 아닌지요? 이것이 아이스크림 사건의 전말이다. 결국 이틀 뒤 해단식에서 회장은 아이스크림 값을 토해낸다.

회장은 억울하다고 했지만, ‘회장단 위에 원로원’(‘조물주 위에 건물주’의 패러디) 다시 한 번 절감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쯔기다시’라는 사실도. ‘원로원 외 기타 둥둥’.

원하는 것 있으면 구입하라며 가이드 상이 근처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을 들린다. 다들 뭔가 샀는지 모르겠지만 보급대장이 원했던 유리창 닦게는 결국 못 찾았다고. “글쎄요,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이 도시 외곽에 있는 후라노 와인공장으로 이동하다.

입구에서 바로 지하 와인저장소로 내려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연도별로 제작된 포도주병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샤토(Chateaux, 성)들에서 거대한 지하 저장소를 본 나는 시들하다. 이층에서 공짜 시음을 하고 바로 나오려고 하니 총무가 유료시식 안 할 거냐고 해서 안 한다고 답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허 원로 등과 함께 공기를 쇤다.

다른 사람들이 한참 있다 나오더니 하는 말 와인 5가지를 유료 시음했다며 왜 안 하셨냐 한다. 헛기침이 난다. 이 몸은 프랑스 본토 포도주를 충분히 마셔본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 게 눈에 들어오겠어.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이제 북해도의 마지막 밤을 보낼 삿포로를 향한 장도를 시작할 참이다.

두 시간 못 미쳐 도착할 예정이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가이드 운전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5월 1일부로 천황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된다.

우리가 방문했던 대형마트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세일이 진행 중이었다. 공식행사 중 총리가 ‘천황 만세’를 부르는데 지난 번 연호 변경 때 이에 대해 위헌 소송이 제기되었고, 일본 헌재가 합헌으로 판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가다보니 고속도로 갓길에 승용차 두 대가 서 있고 경찰이 단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뒤에 선 차의 종류는 ‘토요타 크라운,’ 경찰차가 아니어서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이른바 ‘복면 패트롤카’라고 한다. 일종의 암행순찰로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갈 카메라가 위헌이라며 모두 제거했다 하지 않았나? 어느 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는 계속해서 삿포로시의 개척사 시대 이야기를 계속한다. 현재 인구는 200만 명, 대도시다. 평지인데다 마천루도 없어 도시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방향도 해가 없으면 짐작할 수 없다. 이런 곳에야말로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가르친 게 도시학자와 건축가들 아니었던가요?

첫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남성용 주간지 1권을 샀던 총무는 오늘 또 1권을 샀다. 두 잡지에서 여성들의 노출 정도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하나는 좀 노골적인 대중 잡지 같고, 다른 하나는 거의 포르노 잡지에 가깝다. 인물들 연락처까지 있다. 생각 있으면 전화하라는 신호인가. 무슨 생각? 몰라! 편의점이나 서점에서 대놓고 팔고 있으니 점잖은 한국 선비들, 어이없다.

한국인은 이보다 더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쾌락을 추구하며 ‘눈 감고 아웅’하는 데 비해 일본인은 뭐 굳이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닌가라는 논평에 다들 동의한다. 이웃사촌 간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이드는 이러한 일본인의 성 관념에 대해 지진이 빈발하는 재해국가 사람들의 특징은 아닐까, 즉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항상 즐기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철학박사는 일본 문화의 감각주의 성향도 여기서 기인한 건 아닐까라는 가설까지 세운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유명한 영화까지 거론된다. 다들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렇다고 염세주의까지는 아닌 것 같고. 섬나라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항상 대륙 경영을 호시탐탐 노리고 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과감하게 실행했던 침공의 역사를 감안하면 말이다.

어쨌든 일본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정말 쉬운 나라가 아니다. 일본과 일본인을 무작정 무시하는 태도와 일본 뒤만 따라가는 행태와 그래도 배울 건 많다고 보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일본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삿포로 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출구 근처 도로표지판에 백석(白石)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어! 우리의 사랑하는 백석 시인과 한자도 같네. 확인해보니 흰 돌이 많은 지방이란 장소명이다. 하지만 무등산 때처럼 단어의 뜻만으로 추리하는 것은 틀릴 확률이 높다는 경험을 한 바 있어 확신할 수는 없다. 혹시 백석이 일본 유학시절에 삿포로에 어떤 인연을 남겨놓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누가 알랴! 나중에 백석 연구자들에게 물어나 볼거나? 상상은 자유고 끝이 없다.

 

홋카이도청으로 직행한다.

 

 

북해도의 상징이라는 아카렌가(붉은 벽돌건물) 구 청사의 2층 전시장에서 북해도의 역사를 공부하다.

마침 사할린 관련 전시와 아이누족 등 소수민족 관련 전시도 하고 있다. 건물이 낡아 곧 보수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전시 내용과 가이드 설명을 통해 사할린 동포 문제의 원인이 망국과 분단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일제에 끌려온 노동자들은 일본 항복 후 이미 망해 없어진 조선의 국민으로 간주되었고, 당시 남북한 어느 곳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국민으로서 여권 발급을 해주지 않아 국제 미아로 방치되었다는 것. 자주국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일본 북해도의 국제적 현안은 러시아가 약속했으면서 아직 반환하지 않고 있는 북방 4개 섬을 돌려받는 것이다. 소수민족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는 내년 올림픽을 대비해 인권 중시국의 인상을 주기 위해서란다.

그들의 존재를 원(原)주민이 아닌 ‘선(先)주민’으로 표현한 것은 뭔가 의도가 있어 보인다. 아이누족이 일본의 원주민이고 체격이 왜소하다고 왜놈이라고 비하해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지식이란다. 사진으로 보는 아이누족은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데다 잘 생겼다. 이 또한 식자우환이다!

삿포로 맥주 공장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훓어보고, 인접해 있는 비어가든에서 걸게 저녁식사를 한다.

 

 

‘쯔기다시’가 다시 등장한다. 게를 비롯한 안주가 나온 후 여러 가지 종류의 삿포로 맥주를 마시면서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다. 우예 된 일인지 고기가 너무 많이 나와 결국 마이 남긴다. 사람으로 가득 찬 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우리보다 걸게 먹고 마시는 팀은 없다.

인사말 하라는 허 원로의 지시에 김 회장 폭탄선언을 한다. 김 예비회원을 이 시간부로 ‘정규직’으로 발령한다는 것이다. 회장 직권이란다. 모두들 환영 및 축하 박수다. 원로들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분석해보자. 전날 밤 비정규직 논란으로 더 이상 구청장 출신의 전직 동료가 더 이상의 설움을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안타까운 동료애의 발로, 언제 ‘정규직’으로 받아줄지 모르고 계속 갖고 놀려고 드는 고집 센 원로들과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것은 회장임에도 쯔기다시로 처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자긍심의 발로, 그리고 다른 회원들은 비정규직 시절이 없었거나 짧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공평성의 원칙의 적용 등이 아니겠는가?

큼큼. 내가 생각해도 제대로 분석한 것 같은데... 회장의 단독 결정에 다들 환영하는 것을 보니 이제 원로원 전횡 시대는 끝이 나는가 보다. 아, 옛날이여. 이젠 ‘황제 천국’이 될까.

실컷 먹고 마신 후 나오면서 비어가든 건물 입구에서 단체기념사진 해프닝 발생. 안 찍겠다는 걸 사진사가 공짜라 해서 찍었더니 사진 인화는 공짜가 아니란다. 잘못 알아들은 건지 속은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인접한 쇼핑센터에서 자유시간, 별 일 없는 나는 김교수와 정교수와 함께 맥주 한 잔 더 한다. 좀 있다 허 원로가 창밖에 지나가는 걸 보고 잡아들인다. 무슨 얘기들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 난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를 향해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빛나는 시내를 지나간다. 가이드 하는 말, 삿포로 유흥도심은 중앙가로 남서쪽에 있는데 호텔로 가는 방향이라며 번화가를 한 바퀴 돌아준다.

어느 건물 3층인가 4층인가에서 손님 주문 받고 있는 듯 술집아가씨 두 명이 맨살의 엉덩이를 바깥 유리창 쪽으로 드러내고 서 있는 뒤태가 훤히 보인다. 이야, hot place 맞네! 그것만 제외하면 유흥가라 하지만 한국의 도시들만 못한 것 같고, 장기불황의 그늘도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번화가를 빠져나와 어디론지 외곽으로 계속 간다.

가이드 상 호텔에서 시내를 왕래하는 셔틀이 있지만 11시엔가 막차라면서 혹시 시내 나가신다면 올 때는 택시 타야 한다고... 말들은 안 했지만 상당수 회원들 불만이 이때부터 싹텄다는 사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날 밤인데 왜 호텔을 시내에 정하지 않았냐는 거지.

어딘지는 몰라도 시내에서 제법 남쪽인 것 같은데, 이름은 아파호텔이다. 멋지지는 않지만 대형호텔이다. 방 배정하고 사우나한 후 1235호실(3인실)에 모여 남은 술과 비어가든 나오면서 들렀던 쇼핑센터에서 사 온 치즈를 안주 삼아 한 잔들 한 후 조용히 자러들 간다.

속들이 부글부글 끓었을까. 아마 그래서 잠들을 깊이 들지 못했나보다. 새벽에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 다들 깼다고 하는 말이다. <<<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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