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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4 – 삿포로(札幌), 뒷풀이

by 운무허정도 2019. 7. 8.

4. 28 (일요일, 넷째 날) - 맑음

 

8시 반 출발을 앞둔 호텔 앞 주차장에서 간밤에 있었다는 지진 얘기가 한창이다.

허와 서, 두 원로는 웬 지진 얘기라며 금시초문이다. 가이드가 진짜 있었다고 확인해주면서 지진의 강도를 규모와 진도로 구분까지 해가며 설명해준다.

원로 두 사람만 곯아떨어져 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라 깨어났다! ... 나이만 먹는다고 아무나 원로가 되나요? 자연재해에도 무심할 정도로 도가 터야지, 원로원 가입기준이 하나 생긴 셈이다!

막 출발하자말자 누가 호텔방에 도수 있는 선글라스 놔두고 왔다고 한다. 도로로 나오자 말자 바로 차를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새로 ‘정규직’이 된 김 구청장이다. 어젯밤 기대치 않은 깜짝 승진의 감동과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게 정답일 듯.

이 에피소드는 학봉산악회 ‘정규(직)’ 회원의 위상을 웅변해준다. 향후 학봉의 정규회원 가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이 틀림 없으렸다!!!

가이드 기사가 호텔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큰 봉지 두 개를 들고 온다. 오늘 일정상 점심식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비행기 안에서 드시라고 도시락을 준비했단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가이드의 성심이 엿보인다. 내가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인가, 호호.

아파호텔 객실마다 일본 극우가 쓴 문고본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 그리고 호텔 방 뒷면 창문이 바깥이 안 보이도록 해놓은 것 등이 궁금해서 이동 중에 가이드한테 그 이유를 물어본다.

뒷 창문 바깥 안 보이게 해놓은 건 아마 노천탕 때문인 것 같고, 아파호텔 체인 사장 남편이 극우인사인데 자기가 쓴 책을 출판해 홍보용으로 비치해놓은 것 같다고. 일본에는 그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데, 언론의 자유라 금지할 수도 없고... 대개들 그냥 무시한다고.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는 타키노레이엔(瀧野靈園)의 묘지공원 두대불전(頭大仏殿)을 보러간다.

 

 

이 불전의 모습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으니 사진들 참조하시기 바란다. 며칠 전에 씨네아트 리좀에서 ‘안도 타다오’라는 다큐영화를 보았는데 이 묘지공원은 나오지 않아 의아했고, 베네통 그룹의 파브리카연구소를 그가 설계했음을 알게 되었다.

파브리카연구소는 전 세계에서 25세 미만의 젊은 창의인들을 모아 숙식하면서 무엇이든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일체의 지원을 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지식인 장기 레지던스라고나 할까.

공원 입구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모아이상과 33명의 보살상을 보러 간다.

모아이 상들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다르다. 말해 놓고 보니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아이상들이 날 쏙 빼닮았다는 중론이다.

생각난다. 주왕산 계곡을 내려오면서 암벽의 사람 옆 얼굴, 그것도 날 쏙 닮았다고들 했다. 그래 나는 인류의 표본이야, 갑자기 자긍심이 밀려온다...

허 원로가 나를 나와 가장 닮은 것으로 보이는 모아이상 옆에 세우고는 작품사진을 찍는다.

 

 

작품의 이름은 ‘비몽사몽’을 제치고 ‘반모반인’으로 정한다. 이거 공동작품으로 인정 안 하면 초상권 행사할거다. 가장 먼 쪽에 다른 모아이들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석상이 하나 있다.

내가 보니 임 보급대장과 닮았다. 그는 이 얘기를 듣자말자 가서 확인한다. 그도 허 원로의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웃는 바람에 대칭성이 사라졌다고... 나는 표정을 모아이처럼 잘 했다고 칭찬 듣고...

 

 

공항이 있는 남쪽 신치토세 방향으로 내려간다.

좋은 길을 두고 산길로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가는 이유는 일본서 가장 물이 맑다는 산정호수 시코츠코(支笏湖)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 호수를 두고 분화구인가 아닌가 논란이 일었고, 이렇게 큰 화산 분화구는 없다는 주장이다. 가이드 아니라고 확인해준다. 그럼 어떻게 해서 생긴 건가? 설명한 것 같은데 못 들었다.

 

드디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다.

좌석 예약이 안 되어 있고 가장 늦게 도착해 뿔뿔이 흩어져 앉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운데 자리들이 많다.

돈 더 주면 좋은 자리로 바꿔준다는 제안에 어안이 벙벙. 빈자리 있으면 처음부터 줄 것이지. 비상구 옆 좌석은 원래 가치가 낮은 자리인데 발 뻗을 여유가 있다고 가치가 상승했나보다. 어쨌든 고객 입장에서는 저가항공 이용자의 비애이고, 항공사 입장에서는 수익 극대화 방법의 일환이겠지, 이해하고 넘어간다.

가이드는 우리가 눈에 안보일 때까지 서 있다 가고, 비행기는 12시 55분 정각에 이륙한다.

신 대장의 양보로 허 원로와 나란히 앉은 나는 도시락 까먹고, 열심히 얘기도 하고, 호텔서 가져온 일본 극우가 쓴 소책자도 몇 페이지 읽고, 잠시 졸고 하다 보니 벌써 김해공항이다.

 

시간을 보니 15시 40분. 아, 3박4일은 좀 지친다. 그래도 2박3일은 짧고, 4박5일은 피곤할 것 같고. 해서 가장 적당한 일정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마땅한 식당이 떠오르지들 않나보다. 기내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앉았던 회원들 중에는 눈치가 보여 도시락을 못 먹은 사람도 있다. 누구는 아침도 못 먹었다네. 세상 불공평하다. 먹은 사람들 중에는 도시락 내용이 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일단 마산으로 가면서 의논해서 전화 연락하기로 하고 올 때처럼 두 팀으로 나뉘어 돌아간다.

우리 차에서는 허 원로 제안으로 생아구를 잘 한다는 다정식당으로 정했고, 통보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 저쪽 팀에서는 회장이 다정식당을 제안했다나. 누군가 말하길 우연의 일치이지만 허 원로와 김 회장이 처음으로 통했다며 앞으로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나. 하하 역시 쯔기다시 이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싶다.

 

17시에 마산의 '다정 생아구' 식당에 도착하다.

조금 이른 석식이지만 오늘은 제대로들 못 먹어서 괜찮다. 해단식도 해야 하고...

이번 산행 겸 여행에 대한 자평들도 있었다. 너무 학습 위주 여행이었다, 마지막 밤은 시내에서 지내야 했는데... 비용 절약 위해서는 패키지 이용도 검토해야. 패키지도 별도 가이드 둘 수 있다는 둥. 그래, 해외 갈 때는 공부도 좋지만 즐거움도 있어야지...

해외원정단장이 향후 해외원정지는 직권 결정한다고 선언한다.

검토 중인 후보지 중 인도네시아의 모 해변이 1순위란다. 부하 직원이 추천했다는데, 세계 제일의 석양과 노을을 볼 수 있단다. 어쨌든 알아서 하시고...

정신없는 산악회로 규정하는 바람에 무등산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했던 김 부총무, "회장은 뭐 인사만 하고 권한은 직책 맡은 사람이 가지고 있고, 정신없는 산악회 맞네."

하하, 정규직 되더니 인자 눈에 보이는 게 없제? 원로원 가입만 늦어질 껏이다! 김교쑤! [끝]<<<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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