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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도시이야기

‘유후인’ - 상상력이 만든 유토피아

by 허정도 2010. 1. 28.


모든 도시는 나름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항만, 산악, 내륙 등 자연조건뿐 아니라 교육, 문화, 역사 등 사회적 조건도 도시마다 다르다.
도시의 고유한 특성은 그 도시의 성격을 규정짓고 발전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도시개발 흐름을 보면 이처럼 도시의 고유한 특성에 기초한 창발적 개발 보다는 외부의 힘에 의존하려는 사례가 많다.
국가보조금이나 거대한 외래자본의 유입 혹은 정부의 공공사업을 유치하여 그 파급효과를 통해 관련 산업의 성장은 물론 소득이나 고용을 높인다는 계획을 말한다. 이른바 외래형 개발방식이다.
그 자체가 비판 받을 일은 아니지만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식의 개발만 꿈꾸니 문제라는 말이다.

내생적 개발방식은 외래형 개발방식의 상대적 개념이다.

그 도시의 자연적 사회적 조건 중 타 도시에 비해 경쟁력이 있거나 우위에 있는 자원을 활용하여 발전 동력을 찾는 방식이다.
한 방에 뭔가를 해보려는 외래형 개발방식에 비해 규모가 작을 수 있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세계경제 아래서 다소 유토피아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지방도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널리 선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실제 성공을 거둔 도시들도 많다.

내생적 발전으로 성공한 사례 중 대표적인 곳이 일본의 유후인이다. 어떤 이는 유후인을 일러 큐슈의 보물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자그마한 시골마을 유후인의 성공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크다.
온천마을이기 때문에 마산 양촌이나 창원 북면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후인의 한 여관 정원>

1960년대까지 매우 낙후된 지역이었던 유후인은, 일본인들이 평생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최고의 휴양지로 변했다.
그 변화에는 대도시로 나갔다가 낙후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젊은이와 그들을 믿었던 주민들의 결단과 내생적 개발철학이 깔려있었다.

60년대 일본관광산업은 대부분 자연경관이나 문화유산이 대상이었고 밤 시간은 남성위주의 유흥뿐이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유후인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다섯 가지 성공요건을 만들어 승부를 걸었다.

첫째, 자연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조용히 즐기면서 쉴 수 있는 관광지로 만들었다.
마을 복판을 지나가는 개천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논을 비롯한 산과 호수 등 자연환경을 주요관광자원으로 삼았다. 건물도 2층 이하의 전통양식으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했다.

둘째, 안전한 관광지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0년 일본야쿠자 조직 실력자의 출소를 축하하기 위한 잔치를 유후인에서 개최하려고 했다. 하도 큰 조직이라 돈 맛을 좀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하지만 유후인에서는 당일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철시운동으로 야쿠자의 잔치를 거부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일본 전역에 알려지면서 유후인에서는 젊은 여자 혼자서 머물러도 아무 탈이 없다는 안전한 관광지로 부각되었다.

셋째, 생각이 깃든 경관을 조성하여 관광객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는 마을로 만들었다.
나무로 담장을 만들고 집집마다 아름다운 꽃을 가꾸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잔잔한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넷째, 관광수입이 지역주민 모두에게 환원되도록 했다.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소득 대부분이 대기업이나 다국적기업의 이익으로 연결되는데 비해 유후인만의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온천여관의 규모를 키우지 못하게 하여 지역민 누구나 여관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름다운 논이 있기에 유후인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 관광업으로 올린 수익의 일부는 주변에서 논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다섯째, 유후인만의 관점에서 옛 전통을 살려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은 무엇인지, 무엇으로 승부해야 이길 수 있는지 고민했다. 대도시 따라하기만 하면 아무리 해도 도쿄나 벳부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그들만의 철학이었다.

이 다섯 가지 비전으로 시골의 조그맣고 낙후된 농촌마을이 일본 최고의 휴양지가 되었다.

그 날도 온 마을에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흘러나온 소문을 확인해볼 요량으로 이곳저곳 샅샅이 살폈다.
대단한 비경도, 위대한 문화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편안하고 맛갈스러운 느낌의 자그마한 관광지였다.
하지만 달랐다.
우리처럼 불쑥불쑥 대형 건물들이 경관 배런스를 깨고 있지도 않았고 가게와 식당의 분위기와 내용도 우리네 온천과는 확연히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람, 자연, 시설, 상품, 음식까지 모두 조화로웠다.

그들은 농촌이라는 특성을 살려 주변의 자연환경을 살렸고, 공장제품이 아닌 자연식품으로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엇다.

요리의 원료도 그곳 농민들이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와 곡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건강한 생활을 원하는 일본 관광객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예술적 분위기의 온천거리와 특색 있는 기념품가게는 물론, 전통공방과 미술관까지 갖추었는데 수준이 상당했다. 어떤 이는 '일본관광지 중 최고' 라 자랑하기도 했다.

온천이 딸린 여관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그곳 농민들이 직접 만든 잼이나 김치, 목제품 등을 팔고있었다.
가게와 식당은 한 품목만 취급하는 전문점이 많았다.
모양도 색깔도 똑 같은 공장제 기념품을 파는 가게, 똑 같은 메뉴로 손님을 받는 우리의 식당과는 차이가 많았다.

인구가 만 명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마을에 연간 37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상상력이 만든 유토피아'  유후인은 그런 곳이었다.

멀리 갈 것 없다. 북면온천과 양촌온천을 보자.

온천욕 후 먹을 음식이 닭백숙과 두부에 막걸리 정도뿐이다.
가족들과 호젓이 걸을 길도 없다.
체험거리도 구경거리도, 그곳에 가야만 살 수 있는 선물거리도 없다.
그저 목욕 후 백숙 먹고 후다닥 돌아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온천지역 내에서는 1박2일 일정잡기도 어려운 시설수준이다.
낯 뜨거운 러브호텔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알아야 한다.
온천과 백숙만으로는 경쟁력을 높일 수도,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다는 것을.

                        <유후인의 가게거리(위)와 노천온천탕(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