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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도시이야기

대박가능성인가? 지속가능성인가?

by 허정도 2009. 12. 2.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상상력의 부족 뿐이다’ 며 기염을 토했던 셰이크 모하메드 총리의 두바이가 휘청거린다.
‘세계 최대 인공 섬’ ‘사막 위의 기적’ ‘세계 8대 불가사의’ 라는 수식어로 세계인들의 발길을 모았던 도시였다.

이 21세기 최고의 도시에 세 얻을 사람이 없어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임대 중(Now Leasing)’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는 보도가 나오자 세계가 경악했다.
그 뿐 아니다.
도심의 밤 풍경이 황량하다고, 다섯 채 중 세 채는 불이 꺼졌다고 전했다.
우리 돈으로 75억 짜리 호화 아파트가 45억에도 팔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급기야 채무상환을 6개월 간 유예해 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다면서, 제2의 금융위기가 두바이에서 시작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보도까지 나왔다.

돌이켜 보자.
두바이는 이미 작년 세계금융위기 때 가장 크게 가장 먼저 휘청거렸다.
부동산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졌고 각종 개발 프로젝트들이 그 때부터 멈칫멈칫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는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있는 게 돈 뿐인 것처럼 보였던 두바이는 과연 무사할까?
굴삭기와 불도저로 사막에서 뉴욕을 건설하려했던 셰이크 모하메드 총리의 꿈은 결국 꿈으로 끝나는 것일까?
그는 선왕의 승계자였고 엘리트였고 국제자본에 영향력을 가진 세계적인 갑부였다. 거대개발회사 소유주이기도 하다.
의회도 없고 선출직 공직자도 없는 UAE에서 셰이크 총리는 오직 자본의 힘만으로 자신의 야망을 세상에 드러내려 두바이를 그렸다.

셰이크 총리가 꿈꾸는 두바이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자본과 노동력이 끊임없이 유입되어야 한다.
공급이 끊어지면 도시는 정지되고, 정지되면 내려앉는 태생적인 구조를 안고 있다.
지금까지 일구어낸 두바이의 성공은, 초대형 부동산 프로젝트에 외부 자본을 투자시켜 개발이익을 뽑아내고 이를 다시 새 프로젝트에 쏟아 붓는 식으로 덩치를 키워가며 이루어낸 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IMF사태 이전 한국의 아파트건설업자가 기업을 키워나가던 시스템과 닮은 게 많다.
투자가 중지되니 곧 종말이 찾아 온 것이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대박도시 두바이>

‘꿈의 도시, 상상력이 만든 도시, 21세기 오아시스’ 라는 찬사를 받았던 두바이였지만 이미 이 도시의 몰락을 예견한 이도 있었다.
대표적인 이가 도시전문가 김진애 씨다.
도시적 관점이라 경제문제와는 출발이 다르지만 이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주장에는 귀를 기우릴만 하다.

그는 두바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야자수 뿌리에서 찾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로수인 야자수 뿌리가 박힌 모래 속에 거미줄 같이 설치된 수도관작업을 하는 한 인부를 보면서 이 도시가 과연 먼 미래까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두바이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이 소비되는 현실을 직시하며 던졌던 질문이었다.

이 질문 속에 '사막의 뉴욕' 두바이문제의 핵심이 들어 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건물들이 많다.
‘7성급호텔, 162층 세계최고의 마천루, 인공 섬 팜 아일랜드’
두바이가 자랑하는 기적 같은 성과들이 많지만 그것은 껍데기거나 포장지에 불과했다.
이 도시의 본질은 야자수뿌리가 박힌 모래 속에 있었다.

언론의 두바이사태 보도를 접하며 생각했다.
왜 우리는 두바이를 그토록 찬양했을까?
그 많은 정치가와 행정가, 기업가, 설교자들이 앞다투어 두바이를 찬양했다.
꿈을 가진 인간이 성공한다고, 두바이를 보라고, 두바이를 닮자고, 셰이크에게 배우자고. . . . .
왜 우리는 두바이를 그토록 찬양했을까?
개발, 성장, 건설, 지난 세월 이 나라를 끌어온 이 단어들에 대한 신앙 때문 아니었을까.
마치 주술과 같은 이 단어들에 대한 긍정과 확신이 우리 의식 속에 고착된 결과 아니었을까?

<오래 꿈꾸어 왔던 이상도시 쿠리티바>

쿠리티바 역시 두바이처럼 ‘꿈의 도시’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시’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어 왔던 이상적인 도시’라는 의미에서 얻은 애칭이 ‘꿈의 도시’였다.

그들은 도시개발의 중심에 ‘사람’을 두었다.
물적 존재인 도시구조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시민들이 ‘존경받으며 살고 있다’는 마음이 들도록 노력했고 실제로 이루어 냈다.





쿠리티바 도시개발의 대표적 골격은 세 가지였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 시스템 강화 / 검소함과 저비용 세 가지에 힘을 모았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은 저소득층의 소득증대와 환경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 유명한 사례다.

대중교통 시스템 강화는 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쿠리티바에서 배워 도입한 ‘시내버스 중앙차선제’가 유명하다. 맥주 캔을 연상시키는 원통형 버스정류장과 굴절버스도 쿠리티바의 대표적 브랜드이다.

검소함과 저비용은 재활용한 건물과 저비용으로 처리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각로를 짓기 전에 쓰레기를 줄였고, 토목사업과 조경공사에 투자하는 대신 도시 곳곳에 습지호수와 자연도랑을 만들어 홍수를 방지함과 동시에 시민들이 즐겨 찾는 녹지도 얻었다.

이런 노력을 인정, 세계는 이 도시를 ‘가장 현명한 도시’ ‘가장 존경받는 시민’ 이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셰이크 모하메드 총리>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


<대박인가, 지속인가>

역사 속에 두바이와 비슷한 꿈을 꾼 곳은 이미 있었다.
바벨탑을 쌓았던 바벨로니아와 지금은 고비와 타클라마칸의 모래에 덮혀 버린 5세기 고대국가 누란(楼蘭, Loulan)이 그렇다.

어떤 도시를 택할까?
두바이도 모델이 되고 쿠리티바도 모델이 된다.
모든 도시가 그렇듯 두 도시도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하지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당신들의 개발이 지속 가능한지.
우리가 지구의 마지막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묻는 질문이다.

쿠리티바의 레르네르 시장은 ‘시민의 도시’를 꿈꾸었고, 두바이의 셰이크 총리는 ‘달러의 도시’를 꿈꾸었다.
쿠리티바 사람들은 ‘존경받는 시민’이란 존칭을 얻었고, 두바이 사람들은 ‘소외받는 시민’인 듯 아무도 관심 받지 못한다. 그 곳에는 오직 셰이크 총리만 있을 뿐이다.

쿠리티바의 지속가능성인가?
두바이의 대박가능성인가?
우리의 도시는 무슨 가능성을 꿈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