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안내』(1915)-5, 제6장 무역(貿易) 및 상업(商業)
오카 요이치(岡庸一) 저(著) / 마산상업회의소(馬山商業會議所) 대정 4년(1915) 10월 10일 발행
6. 무역(貿易) 및 상업(商業)
마산항의 무역은 개항 당초는 얼마 되지 않아 수출 399엔, 수입이 1,252엔이었는데 그 후 해마다 순조로이 발달해 10년째가 되는 1908년에는 수출이 250,717엔, 수입이 385,160엔이란 거액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진해만이 군항이 되고 나서는 마산항은 통상무역항에서 제외되어 부진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역액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아 수출입은 도리어 증가세에 있다.
아래에 개항 이래의 무역액을 적는다.
마산항 누년(累年) 수출입표(輸出入表) [단위: 엔]
| 연별 | 수이출(輸移出) | 수이입(輸移入) | 계 |
| 1899 | 399 | 1,252 | 1,651 |
| 1900 | 6,252 | 13,735 | 19,987 |
| 1901 | 19,731 | 45,615 | 65,346 |
| 1902 | 72,217 | 33,301 | 105,518 |
| 1903 | 87,472 | 29,262 | 116,734 |
| 1904 | 35,642 | 48,971 | 85,613 |
| 1905 | 37,673 | 106,169 | 143,842 |
| 1906 | 66,877 | 390,431 | 376,308 |
| 1907 | 337,451 | 835,719 | 1,173,170 |
| 1908 | 250,717 | 385,160 | 685,877 |
| 1909 | 142,636 | 355,835 | 498,471 |
| 1910 | 158,834 | 566,869 | 725,703 |
| 1911 | 121,806 | 1,002,922 | 1,124,728 |
| 1912 | 83,731 | 980,019 | 1,063,750 |
| 1913 | 68,511 | 834,876 | 903,387 |
| 1914 | 147,877 | 884,600 | 1,032,477 |
위의 표는 직접 당 항에서 내지 및 외국에 수이출, 혹은 내지 및 외국에서 수이입한 총액이다. 그 외에 연안(沿岸) 이출입(移出入) 금액을 알 필요가 있어서 아래에 적는다.

마산항 누년 연안 이출입표 [단위: 엔]
| 연별 | 이출고(移出高) | 이입고(移入高) | 계 |
| 1902 | 207,663 | 205,068 | 412,731 |
| 1903 | 194,961 | 156,338 | 351,299 |
| 1904 | 184,048 | 203,582 | 387,630 |
| 1905 | 122,137 | 226,943 | 349,080 |
| 1906 | 199,253 | 333,530 | 532,783 |
| 1907 | 76,947 | 55,844 | 132,791 |
| 1908 | 67,947 | 55,844 | 123,791 |
| 1909 | 228,491 | 164,504 | 392,995 |
| 1910 | 270,949 | 267,255 | 538,204 |
| 1911 | 195,544 | 313,624 | 509,168 |
| 1912 | 453,573 | 870,775 | 1,324,348 |
| 1913 | 703,868 | 612,087 | 1,315,955 |
| 1914 | 899,843 | 622,642 | 1,522,485 |
연안이출입 가운데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이출액이다. 이 총액 중 쌀과 콩이 주위(主位)를 점하고 또한 이출의 행선지는 부산항이라는 점이다.
원래 마산과 부산은 거의 친척 같은 관계를 지니며 마산 개항 당시부터 살고 무역업에 종사하는 자의 태반이 부산에서 전입해 오거나 부산의 지점 혹은 부산에 깊은 연유를 가진 자일 것이다.
무역의 주를 이루는 쌀과 콩류를 내지 혹은 외국에 수이출함에 있어서도 직접 하지 않고 거의 부산 상인의 손을 거쳐 수이출하고 있다.
우리 마산은 동쪽에 창원의 농촌을 지니며 그 배후에 낙동 연안 일대의 대농업지가 있으니 쌀과 콩의 산액도 경상남도 중에서 가장 금액이 큼은 주지된 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마산의 세력범위로 간주되는 각 농촌에서 생산하는 미곡은 쌀이 약 338,013석, 보리는 약 308,263석, 콩은 약 73,793석에 이른다. 이 중에서 쌀의 2할, 보리의 1할, 콩의 1할 반의 비율로 이출한다고 가정하면 쌀은 67,603석, 보리 30,826석, 콩 11,069석이 된다.
쌀과 보리 중에서 벼, 현미, 정미를 통산하여 평균 한 석 당 9엔 10전, 맥류는 대맥, 소맥을 통산하여 평균 한 석 당 4엔 80전, 두류는 대두, 소두를 통산하여 평균 한 석 당 8엔으로 계산하게 되면 그 연액(年額)이 쌀은 615,187엔, 보리는 147,965엔, 콩은 88,552엔 이를 합친 851,704엔을 수이출액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된다.
마산항에서 직접 수이출한 작년의 세관 통계액을 보면 쌀이 44,626엔, 콩이 6,416엔, 보리는 없음이란 통계를 나타내고 있다. 얼핏 봐도 이치에 맞지 않은 감이 있으며 이 나머지 80만 여엔 이상의 쌀과 콩은 어떻게 하여 어디로 빠져버렸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 답은 모두가 부산을 경유해서 내지 혹은 외국에 수이출된 것이다. 말을 바꿔서 얘기한다면 마산에서 수이출될 쌀과 콩이 부산무역의 쌀과 콩으로 탈바꿈되어 수이출된 것이다.
백만엔 가까운 마산의 쌀과 콩의 무역액이 부산의 무역액으로서 계상되었음에 불과하여 실제로는 그 수이출항을 변경한 것이다.
만약 전술한 바와 같이 마산과 부산의 관계가 없고, 한편으로 자금도 풍부해 외계의 구속에서 벗어나 독립독보의 길을 걸 수만 있다면, 부산으로 빠진 쌀과 콩은 마산항을 거쳐 직접 수이출되어 통계면에서 꽤나 막대한 것이 됨은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이 때문에 마산무역의 진상은 단순히 세관 통계만을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되며 연안이출입 및 육상의 이출입을 참조해야만 한다. 이 점을 증명하기 위해 1914년도의 당 지의 해륙(海陸) 양면의 수이출입표를 아래에 적는다.
1914년 마산부 해륙 수이출입표 [단위: 엔]
| 품명 | 수이출가액 | 수이입가액 | 합계 |
| 쌀 | 426,668 | 244,920 | 671,588 |
| 콩 | 128,465 | 22,080 | 150,545 |
| 보리 | 3,419 | 2,357 | 5,776 |
| 면화 | 1,539 | - | 1,539 |
| 담배 | 7,200 | 25,578 | 32,778 |
| 야채 | 1,981 | 109,477 | 111,458 |
| 과일 | 540 | 25,621 | 26,161 |
| 음식물 | 36,358 | 36,722 | 73,080 |
| 소금 | 151 | 250 | 401 |
| 설탕류 | 4,032 | 40,437 | 44,469 |
| 된장 | 180 | 40 | 220 |
| 간장 | 1,968 | 280 | 2,248 |
| 주류 | 35,094 | 14,807 | 49,901 |
| 맥주 | 9,595 | 15,628 | 25,223 |
| 얼음 | - | 3,471 | 3,472 |
| 밀가루 | 288 | 24,148 | 24,436 |
| 선어 | 491,542 | 101,060 | 592,602 |
| 건어, 염어 | 40,021 | 135,724 | 175,745 |
| 해조 | 143,913 | 145,925 | 289,838 |
| 비료 | 13,673 | 600 | 14,273 |
| 묘목 | 780 | 720 | 1,504 |
| 목피 | - | 120 | 120 |
| 우피 | 13,800 | 600 | 14,400 |
| 생우 | 480 | 1,200 | 2,000 |
| 말 | 600 | 16,000 | 16,600 |
| 타면(이불용) | 6,400 | 17,444 | 23,844 |
| 옥양목 | 32,750 | 105,071 | 105,071 |
| 목면 | 46,500 | 287,431 | 333,931 |
| 마포 | 990 | 1,250 | 2,240 |
| 방적사 | 142,296 | 152,026 | 294,322 |
| 의복, 부속품 | 560 | 24,353 | 24,913 |
| 종이류 | 3,543 | 19,220 | 22,767 |
| 문구류 | 2,104 | 10,607 | 12,811 |
| 염료 | 43,121 | 59,600 | 102,721 |
| 약재 | 90,513 | 78,535 | 169,048 |
| 시멘트 | 400 | 15,000 | 15,400 |
| 석회 | 216 | 845 | 1,061 |
| 성냥 | 280 | 1,914 | 2,195 |
| 석유 | 1,218 | 24,411 | 25,629 |
| 석탄 | 8,890 | 74,349 | 83,239 |
| 땔감 | 5,488 | 15,000 | 20,488 |
| 목탄 | 2,649 | 23,180 | 25,829 |
| 목재 | 7,748 | 58,886 | 66,634 |
| 대나무 | 144 | 500 | 644 |
| 연와 | 380 | 500 | 880 |
| 기와 | 6,683 | 7,300 | 13,983 |
| 폭발물 | - | 58,214 | 58,214 |
| 공사용품 | 5,570 | 38,000 | 43,570 |
| 토관 | 240 | 1,200 | 1,440 |
| 도자기 | 3,216 | 16,084 | 19,300 |
| 금속제품 | 23,842 | 30,436 | 54,278 |
| 철제 못 | - | 384 | 384 |
| 여러 기계류 | - | 19,514 | 19,514 |
| 냄비, 솥 | - | 1,429 | 1,429 |
| 금괴 | 360 | - | 360 |
| 도서류 | - | 1,275 | 1,275 |
| 서양우산 | - | 2,114 | 2,114 |
| 어구 | 5,477 | 31,998 | 37,475 |
| 신발류 | - | 7,682 | 7,682 |
| 가마니, 새끼, 자리 | 3,069 | 28,005 | 31,074 |
| 가구류 | 8,424 | 9,208 | 17,632 |
| 목제품 | - | 6,011 | 6,011 |
| 양초 | - | 120 | 120 |
| 군용품 | 55,000 | - | 55,000 |
| 슬리퍼 | - | 3,660 | 3,660 |
| 소포우편 | - | 120,726 | 120,726 |
| 잡품 | 208,855 | 569,348 | 778,203 |
| 계 | 2,046,568 | 2,782,357 | 4,828,925 |
이렇게 보니 세관 통계에 나타난 우리 수이출입 총액은 백만 엔 안팎에 불과해 곳곳의 무역액에 비하면 최하위에 있다고 하나, 실제로는 13개소의 개항(開港) 개시장(開市場) 중에서 7~8위를 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무역의 진상을 알려고 하는 자는 서술해 온 내용을 자세히 곱씹어 주시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가) 상업상태(商業狀態)
마산부의 상업은 두 개로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대내지인(對內地人) 상업이며 다른 하나는 대선인(對鮮人) 상업인 것이다. 소위 신마산 측은 주로 대내지인 상업이며 구마산 측은 대선인 상업으로 되어 있다.
세계적인 경제계의 불황은 이 지방에도 습래(襲來)하여 한때 조선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이곳도 진해 군항에 대한 열기가 가시고 지난날의 활황을 잃어버리긴 했으나 개항 이래 다져온 기반은 튼튼하며 쉽게는 동요하지 않았다.
불경기를 외치는 반면에 화려함을 버리고 실속을 챙기는 방침을 잡고 발전을 도모하는 태연자약한 자세는 일반인에게도 아직 여유가 충분히 남아 있음을 인정하게 한다. 신개지(新開地) 주민에게 자주 보이는, 일성일쇠(一盛一衰)에 내기 걸듯이 이리저리 강물 위의 나뭇잎을 좇아가는 듯한 투기적인 사람들은 거의 이 땅을 떠났다.
남은 상인들은 다 같이 이 땅을 제2의 고향인 줄 알고 앞으로 계속 사업을 운영해가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니만큼 신용과 근면으로 나날을 참고 이겨내고 장래에 꼭 광명을 보겠다는 용기와 각오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마산의 상업상태는 대내지인, 대선인 공히 표면상 침정(沈靜)된 감은 있으나, 그 이면에서 일종의 엄숙한 권위와 희망을 품으며 장사에 매진하고 있으니 피상적인 식견을 가진 자들이 비관만 하는 그러한 상태가 아님을 필자는 단언하겠다.
나) 세력범위(勢力範圍)
마산의 상업세력 범위는 창원, 함안, 의령, 창녕 일대와 밀양, 김해, 거제, 고성, 용남, 진주, 사천의 일부라고 하겠다.
물론 상거래는 대구 방면 및 철도연선 이북인 경성까지 미치며 연해는 목포, 제주까지 미친다고 해도 정확한 세력범위는 앞에 서술한 지방일 것이다.
그리고 이 상업 범위는 경남 굴지의 농업지인 동시에 인구 밀집 지방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점을 숫자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 지방별 | 내지인 인구 | 조선인 인구 | 계 |
| 창원 | 7,175 | 117,842 | 125,017 |
| 함안 | 154 | 89,685 | 89,839 |
| 의령 | 175 | 64,673 | 64,848 |
| 창녕 | 362 | 78,211 | 78,573 |
| 김해 | 2,744 | 83,983 | 86,727 |
| 고성 | 746 | 67,752 | 68,498 |
| 용남 | 4,608 | 102,144 | 106.752 |
| 밀양 | 2,723 | 91,086 | 93,809 |
| 진주 | 2,249 | 102,322 | 104,571 |
| 사천 | 1,248 | 58,248 | 59,496 |
| 마산 | 5,263 | 11,750 | 17,013 |
| 계 | 27,447 | 867,696 | 895,143 |
그리고 이상의 인구에 의해 경작 생산되는 미곡류는 약 100만석 이상, 특용작물 441,569관(貫), 야채 443,856관이며 이것을 가액(價額)으로 환산하면 약 1,000만 엔 이상의 생산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 공업, 목축, 어업에 의해 생산되는 액수가 크다는 점에 짐작이 간다.
이렇게 풍부한 인구와 생산물을 가지는 지방을 세력범위로 하여 상업을 운영하며 발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또한 앞서 말한 사람과 물품이 우리 세력권은 아니지만 이미 네 지방 전부와 일곱 지방 일부를 장악했으니만큼 마산의 당업자(當業者)가 적절한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마산이 그 이익을 한 손에 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일만 봐도 마산의 앞날은 찬란하기만 하며 자랑할 만한 것이다.
다) 각지의 시장(市場) 및 거래금액[取引高]
| 부군 | 시장명 | 장날(음력) | 주된 상품명 | 1년 동안의 매상액(엔) |
| 마산부 | 구마산 | 5,10 | 목면,옥양목,성냥,미곡,어류,생우,철물,야채 | 126,000 |
| 함안군 | 칠원 | 3,8 | 목면,옥양목,어류,잡화 | 3,119 |
| 평림 | 1,6 | 목면, 옥양목,어류,잡화,연초,곡류,숯 | 19,028 | |
| 함안 | 3,8 | 동상(同上) | 72,000 | |
| 군북 | 4,9 | 동상 | 22,240 | |
| 창녕군 | 남지리 | 2,7 | 동상 | 5,040 |
| 영산 | 5,10 | 동상 | 82,500 | |
| 의령군 | 의령 | 3,8 | 동상 | 158,400 |
| 창녕군 | 창녕 | 3,8 | 동상 | 35,000 |
| 창원군 | 진동 | 4,9 | 동상 | 5,800 |
| 창원 | 2,7 | 동상 | 109,912 |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안내(馬山案內)> 부분이다. 1915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오카 요이치(岡庸一)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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