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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합포 선정이유와 민중의 고통>

왜?
원 세조 쿠빌라이와 고려 충렬왕은 대일본 원정기지로 남도의 작은 포구 합포를 택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당시 이 도시가 가졌던 자연적 사회적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학계에서 정리된 내용은 대략 다음의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위치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합포가 해로(海路)상 일본과의 최단거리에 있는 항구입니다. 그리고 거제도와 쓰시마 사이를 지나는 쓰시마 난류를 타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쓰시마를 거쳐 일본 본토로 갈 수 있는 첩경(합포-거제도-대마도-이키-일본본토)이라는 점입니다.
해로 뿐 아니라 육로도 수도 개경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에 위치한 항구가 합포였습니다.


둘째는 항구시설입니다.
합포에는 이미 조창이었던 석두창이 설치되어 상대적으로 다른 포구보다 양호한 항구시설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조운선을 위한 정박시설, 내륙으로의 조세운반을 위한 교통로, 조운선의 건조와 수리를 위한 조선시설, 군량미 보관에 용이한 기존의 창고시설 등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석두창에서 인근 지역의 조세가 수납되고 있었기 때문에 군량의 확보도 유리했을 것입니다.

셋째는 포구의 조건입니다.
아래 그림처럼 합포는 리아스식 해안에 포구가 깊어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형세입니다.
거제도를 비롯한 모도․저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 때문에 외해의 풍랑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하였을 겁니다.

넷째는 기존의 군사시설 때문입니다.
통일신라 이후부터 동남도병마절도사영(東南道兵馬節度使營)이 설치된 이래 합포에는 계속 군사기지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위한 시설과 무기의 제조 및 보관 등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백성들의 고통-

이 네 가지 조건에 의해 합포가 대일본원정기지로 선택되었지만, 두 번에 걸친 전쟁준비로 겪은 마산인근의 백성들이 받았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벌준비에도 쉽게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조세도 타 지역민보다 가혹하게 부담하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정벌은 권력 확장을 꾀한 통치권자의 정치적 목적과 의도 이전에 백성들에게는 피할 수도 이겨낼 수도 없었던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수선사(오늘의 송광사) 승려 원감국사 충지(沖止)는 일본정벌로 고난을 당하고 있던 영남지방 민중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영남의 쓰러진 모습
말로 하려니 눈물이 앞서네
두 도에서는 군량을 바치고
세 산에서는 전함을 만드느라
세금은 백배나 늘었고
역역은 삼년에 걸쳐
징발은 성화같이 급하고
호령은 우레같이 전하네
····
처자식은 땅에 주저앉아 울고
부모는 하늘보고 울부짖네
저승과 이승은 다르건만
목숨 보전을 어찌 기약하랴
남은 사람은 노인과 어린이 뿐
억지로 살려니 얼마나 고달프랴
고을마다 반은 도망간 집이요
마을마다 모두 황폐한 토지로다

,,,, 전쟁 때 힘 없는 백성만 죽어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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