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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도시이야기

도시문화의 혁명, 빠이올 극장

by 허정도 2009. 6. 22.


꾸리찌바 이야기 3 (건축물1)

빠이올 극장


130여 년 전인 1874에 건설된 탄약창 건물을 1971년에 개조하여 만든 아름다운 원형극장이다. 도심 외곽지역에 있었지만 이 연극관의 개조는 시내에 있는 기념물의 보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꾸리찌바 도시문화혁명의 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풍스러운 외형도 눈을 끌었지만 이 건물을 비껴간 듯 계획된 사방의 도로를 보면서 막무가내로 직선을 그어대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케 했다. 마치 마산의 삼각지공원과 같이 도로 속의 섬처럼 생긴 삼각의 잔디 공간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외벽의 치장도 없었고 그 흔한 입구 캐노피조차 없었다. 관람을 마친 후 비가 오면 불편하지 않을까 라는 주장이 건물의 원형을 지킨다는 주장에 밀린 것 같다.

건물 관리인은 ‘공연은 3월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하면서 부탁도 하기 전에 구경하라면서 실내 등을 켜주었다.



내부의 바닥과 벽도 새로 시공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화장실과 복도는 추가로 만든 것이었으나 기존의 질감에 잘 어울렸으며 공간이용이 탁월하였다. 특히 관람석 뒤편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원형 철재 계단이었는데 내 한 몸도 겨우 오늘 수 있는 규모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필요한 통로로서의 기능을 잘하고 있었다.

무료 연주도 자주 있으며 유료일 때는 5리얄(한화 약 2,200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단순한 원형 건물인데 중앙부에 동심원 형태가 치솟아, 이단 원통형인 이 건물의 공간적 특성을 이용해 공연공간으로 개조한 건축적 제약에 따라 무대는 전형적인 아레나(Arena stage, 무대가 객석 속으로 돌출된 형)형이었다. 무대바닥은 원형으로 마루판만 깔려있었다.

객석은 가는 원형 철봉으로 엮은 후 검은 색 가죽을 씌워 만들었으며 좋은 가시선을 확보하기 위해 뒷자리로 갈수록 객석의 각을 심하게 치켜들었다. 공연자와 감상자가 서로 호흡을 느낄만한 크기와 형태를 가진 공간이었다. 중앙에 솟아 있는 원형 지붕의 벽 아치창의 유리에는 색이 칠해져 있어서 어두운 실내로 약하지만 형형한 빛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입구의 작은 로비에는 출연진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안내하는 민군의 말로는 우리나라의 나훈아 패티김 수준의 유명 연예인도 있다고 했다.


얼핏 남루해 보이는 빠이올 극장을 나오면서, 천 석이 넘는 고급 문화회관과 수백 석의 공연시설에만 관심가지는 행정가들과 예술인, 그리고 건축가인 자신의 못남이 부끄러웠다.

건축적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문화는 무엇인지, 진정한 건축가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생각게 했다. 충격이었다.



 오페라 데 아라메 극장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 중 하나이다. 외국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며 시가 개최하는 대부분의 문화 이벤트가 열린다. 이곳은 원래 폐광지역이었지만 시가 광물회사로부터 저가에 구입해 주변지역을 자연 상태로 복원함과 동시에 오페라 하우스를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건설했다.


                    

                    

 

자이메레르네르 시장이 직접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230톤의 철강을 이용해 80명의 기능공들이 60일 만에 건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객석 규모는 약 1,000석이다.

꾸리찌바의 도시행정 철학은 경제성, 신속성, 단순성이다. 아라메 극장은 이런 꾸리찌바 시의 행정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건물이었다.

쇠와 유리로만 지은 건물. 채석장으로 황폐해진 숲 속에 지은 건물. 채석으로 깊게 골이 페인 산 형상을 절묘하게 이용해 지은 건물. 경이로웠다. 
 











 

원형 파이프를 직선 혹은 곡선 가공하여 구조재로 사용하였는데 응력에 비해 부재의 사이즈가 모자랄 경우 큰 부재로 무겁게 처리한 것이 아니라 가는 파이프를 여러 가닥 이용함으로 투박함을 없앴다. 숲 속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의 외벽은 얇은 유리 한 장이었다. 숲 속에서 공연을 본다는 느낌을 극대화시킨 것이 설계자의 의도였다.


지붕은 폴리카보네이트(유리처럼 투명한 플라스틱의 얇은 판) 돔으로 되어 있어서 햇빛이 훤하게 통과하고 있었다. 잠시 건축적 의문을 가졌으나 비를 맞지 않는 야외극장이라고 생각하니 의문이 해소되었다.

 

무대의 규모는 적절하게 컸으나 기계장치를 갖춘 것 같지는 않았고 오케스트라 피트는 갖추어져 있었다.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일 터.


외부의 숲과 내부의 극장을 구획하는 유리판은 긴밀성도 없었다. 사계절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이곳에서 고급공연을 안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국내외의 유명 음악인도 공연을 했다고 하며 꾸리찌바 시민들도 즐겨 찾는다고 했다.

건물 옆 절벽의 암벽에는 이곳을 찾은 유명인사들의 방문 기념패가 부착되어 있었으며 맨 아래층에는 전시관이 있는데 시 홍보관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숲 속의 극장이라면 그저 건물로 접근할 때만 숲을 느끼지, 공연장 내에 들어서면 숲 속의 건물이든, 도시 한복판의 건물이든 동일한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아라메는 진정한 숲 속의 극장이었다. 다만 비를 맞지 않는, 소리가 흩어지지 않는 숲 속의 극장이었다. 숲과 하나가 되는 실내 공간 연출, 정말 그 절묘한 발상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극장 아라메는 그 자체로 좋은 관광지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라 공연도 없었는데 수많은 관광객을 만났다. 이 도시의 주요 관광자원이었다.

값비싼 대리석과 황동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극장이 나올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성과라 할만하다.





돌아오는 도중 생각에 빠졌다. 만약 이런 시도를 국내에서 했다면, 브리지의 바닥을 뚫어 놓으면 위험해서 되겠느냐, 실내 벽을 유리로 하면 음향이 어떻게 되느냐, 지붕에 빛이 들어오면 여름엔 더워서 못하고 보름밤에는 달빛도 들어올 것인데 어떻게 하느냐, 2층 복도 밑이 트였는데 밑에서 보면 여자 속옷이 훤히 보일 텐데 등등 얼마나 많은 불만과 반대에 부딪쳤을까, 지어지기나 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