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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1. 00:00

그래,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았습니다.
‘써니’라는 코믹인생드라마입니다.
24년 전에 지은 집을 고치느라 요즈음 제가 좀 부산합니다만 시간을 내어 지난 일요일 아내와 함께 보았습니다.

시나리오가 괜찮았습니다.
40대 초반 여성들의 여고시절추억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랑이나 상처 등의 진부하거나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라 ‘써니’라는 여고생서클 출신들의 쾌활한 이야기였습니다.
‘고교생서클’하면 영화 ‘친구’가 떠올라 으레 남학생들의 폭력서클 이야기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써니’는 여학생들 이야기라 조금 색달랐습니다.


성공하였지만 사람사는 재미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인공 나미,
만년 꼴지 보험설계사 장미,
싸구려 술집 접대부 복희,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방문교사 금옥,
돈은 많지만 바람피우는 남편을 둔 진희,
독신으로 살다가 암으로 죽는 ‘써니’의 짱 춘화,
춘화의 장례식장에 딱 한 장면 나타나는 수지.

이렇게 일곱 여인들이 여고시절 조직한 준폭력서클(?) ‘써니’의 25년 후 이야기입니다.
‘써니’는 유명 DJ 이종환 씨가 MBC FM ‘밤의 디스크쇼’에서 이들 칠공주가 찬란하고 눈부시다고 지어준 이름입니다, 영화에서.

구성도 탄탄하고 진행도 빨라 시간가는 줄 몰랐고, 과거와 현재의 교차수법이 자연스러워 좋았습니다. 오버하는 부분도 짧게 있었지만 톡 쏘는 겨자 맛이라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십대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엄혹했지만 아름답게 남아있는 80년대의 기억을 되살리는 '향수'가 영화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눈에 익은 배경과 귀에 익은 노래가 오래되어 희미해진 추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압권은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라는 주인공의 말이었습니다. 정확한지 모르지만 두 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감독(강형철)이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 말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도 감독 의도에 걸려 지나간 인생을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일 저일 이경험 저경험 겪은 내 인생도 하나의 역사였습니다.
어디 나 뿐이겠습니까?
너나없이 숨 쉬는 이라면 역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영화 끝난 후 걸어 나오며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래,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그래서 내가 말했죠.
“그래, 당신도 역사가 있는 당신 인생의 주인공이지”

가정의 달이라는데 가족영화로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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