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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0) - 강점제3시기

by 허정도 2013. 12. 2.

마산도시변화와 관련한 두 기사입니다.

14. 1936년 7월 28일 매일신보 4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약진 마산부의 인구 3만5천을 돌파, 6개월간 1천여 인 증(增)」입니다.

내용은 1936년 상반기 6개월간 마산부의 인구가 1천여 명 증가하여 정체되었던 마산이 연말까지 총인구 3만5천 명을 돌파하겠다는 내용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마산부의 희망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입니다.

기사 아래의 표는 조선총독부가 정식으로 발표한 강점제3시기(1930-1945) 마산의 인구입니다. 1944년과 1945년 인구는 '마산개항백년사' 등 다른 자료에서 뽑았습니다. 신문기사는 공식통계자료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15. 1938년 11월 6일 동아일보 4면 기사입니다.

기사 제목은 「隣接한 數百住民이 馬山府編入陳情 今後推移가 注目處」이며,

내용은 그 당시까지 마산부에 속하지 않았던 산호리, 교방리, 회원리 등의 주민들이 마산부에 편입을 요구하는 여론에 대한 것입니다. 마산부가 아니어서 불편한 것으로 화재시 문제·도로개수·위생·의료·문화 문제 등을 들고 있습니다.

이런 여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지역을 포함한 인근 지역들이 1942년 9월 30일자로 총독부령 제242호에 의해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마산부에 편입되었고 이로써 마산부는 공식인구가 위의 표처럼 급증합니다.

이 때 편입된 곳은 마산에 인접한 창원군 내서면의 교방리․회원리․산호리․석전리․양덕리 등 5개리와 창원면 봉암리․구산면 가포리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지금 마산에 있는 동(洞)들입니다.

이와 같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산부 관할구역의 면적은 29㎢로 늘어났는데 이 규모는 1914년 4월에 결정된 마산부의 행정구역이었던 약 10㎢에 비해 약 3배로 늘어난 규모였습니다. 이 때 정해진 경계는 1964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