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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번창기(1908) - 6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4 ■ 마산포 - 2 □ 월영동(月影洞) 신시의 서쪽부터 남쪽 일대를 포함하는 큰 마을이다. 그 일부는 일본의 전관지(專管地)이기 때문에 1908년(명치 41년) 7월 퇴거령으로 인해 서쪽의 산 위로 이전하게 되고 까치나루 고개(鵲峴)의 근위(近衛, 메이지 시대의 화족이자 정치인이었던 고노에 아쓰마로-近衛篤麿, 근위독마 1863~1904. 월영동과 자복포 사이의 언덕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언덕 아래에는 웅장한 중포병 영소(營所)가 건축될 것인지라 원래 일본인의 모습이 없었던 이 마을에 점점 일본 가옥이 건축 중에 있고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곳이다. □ 자복포(滋福浦) 깊은 산과 청송이 우거진 이곳은 물아일체의 경지를 자아내는 곳으로 월영동의 일부와 같이 일본 전관지였.. 2021. 9. 27.
마산번창기(1908) - 5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3 ■ 마산포 - 1 신시(新市)의 북쪽 약 2km 거리에 있는 본래의 마산이다.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일본 해군성 수로부가 간행한 조선의 해안, 항로, 도서 등의 지리정보를 망라한 수로지로 동일 명칭으로 1894년, 1899년, 1907년 세 차례 발행되었다)에는 마산포읍이라 적었지만 한인(韓人)들은 모두 다 마포(馬浦) 혹은 신마포(新馬浦)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인은 구마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왜 구마산이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날마다 번성해가는 본래 마산에 낡은 구(舊) 자를 붙이는 이유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각국 거류지를 신시라고 칭하는 것에 대하여 붙인 구 자일테지만. 각국거류지를 신시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에 새 시장을 연 데에서 기인한 이름이며 결코 본래의 마.. 2021. 9. 20.
마산번창기(1908) - 4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2 ■ 각국 거류지(各國 居留地) 월영동의 일부와 신월동 일부를 쪼개서 이루어진 해변의 신시가(新市街)이며 마산이사청 관내의 중심인 곳이다. 1898년(명치 31년) 2월 21일부 칙재(勅裁)로 개항되고 다음 해 1899년(명치 32년) 5월 1일에 거류지 구획이 정해졌다. 그 면적은 138,888평 남짓이며 이것을 A, B로 나누어 A는 일등지를 뜻하며 그것을 1호부터 47호까지 세분했다. B호는 이등지이며 1호부터 47호까지 세분되어 있다. 그 일등지 전부는 이미지상권 경매가 종료되고 현재로서는 러시아인 소유자 중 몇 개 구획이 빈터로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식 기와집이 즐비해 있다. 이등지는 17호 및 39호부터 45호까지 여덟 구획을 제외하고는 경매가 끝나.. 2021. 9. 13.
마산번창기(1908) - 3 - 제1장 마산의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1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밝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땅이 굳어진 것이다. 구라파의 어떤 이는 이 항만을 가리켜 태평양 해안으로서는 호주의 시드니 항, 북 아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 항에 다음가는 세계 세 번째 최우량의 산수(山水)라 하여 그 얼마나 군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러시아가 동양에서 얼어붙지 않는 항구로서 마산을 얻으려고 마산사건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짐작이 가듯이 얼마나 마산이 그 형세가 좋고 그 풍경 역시 보기 좋기는 누구나가 아는 바이다. 마산만은 부도수도(釜島水道)라 부르는 입구에서 9해리 거리를 두고 진해만에 붙어 있다. 진.. 2021.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