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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2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1)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마산포 해안선 변화>

1920년대 마산포 해안의 변화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남성동 매립 후 항만의 선박이용 빈도가 높아지자 1924년 매립지역 해안에 길이 63.6m의 사석방파제가 건설된 것이며,

둘째는 1910년대 박간(迫間)의 매립 때 시공하지 않았던 동굴강이, 1927년 현재 대신증권에서 어시장으로 내려오는 도로와 매립지의 도로망이 연결되면서 부분적으로 매립되었던 겁니다. 다음 그림(푸른 원 내)처럼 말입니다.

셋째는 현 몽고장유의 전신인 야마다(山田)장유의 사주 산전신조(山田信助)가 시행한 오동동 매립입니다. 2012/05/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8) - 강점제2시기


『마산시사』 등 마산도시변화와 관련한 각종자료를 보면 박간(迫間)의 매립 이후 마산만 연안을 드나드는 선박의 이용이 편리해졌다고 합니다.

원마산 해안에서 처리한 물동량을 별도로 구분하여 정리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정확한 결과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선박의 이용이 편리해졌다는 사실은 남성동 해안을 이용하는 유통량도 점점 많아졌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원마산 해안이 마산 수산산업 및 종합유통의 중심적 기능을 확보했던 것 같습니다.

박간(迫間)의 매립이 비록 원마산의 금싸라기 토지였던 해안 일대를 피폐화시킨 악랄한 매립이긴 했지만 이 매립으로 조성된 새 항만은 규모와 기능 면에서 마산포에 또 다른 변화와 기회를 갖다준 대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에 비해 옛 모습 그대로 존속했던 오산선창과 어선창 쪽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박의 접안 사정이 나쁘고 육로로 연결되는 도로 사정도 나빠 선창의 사용빈도가 낮아졌을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부두로서의 기능이 쇠퇴해 갔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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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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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7)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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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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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06) - 강점제2시기
2012/04/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7) - 강점제2시기
2012/05/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8) - 강점제2시기
2012/05/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9) - 강점제2시기
2012/05/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0)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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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28 09:21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허정도 2012.05.29 18:31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 주십시오.

2012. 4. 2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06) - 강점제2시기

-강점 제2시기의 매립-

마산포에는 1910년대에 이미 일본인 박간의 매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마산만의 매립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해방 때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매립이 빈번했던 까닭은 마산 해안의 창탄지역이 일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저비용 고수익, 즉 손쉽게 큰돈을 쥘 수 있었던 투자의 방편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령 폐지로 1920년대 벽두에 시작된 국내 공업시설 확충 붐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1920년대(강점 제2시기) 매립착공은 많았지만 준공된 곳은 마산포 두 군데, 신마산 한 군데 모두 세 곳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마산부가 시행한 남성동 30번지 동굴강 일부 매립>

1920년대 첫번째 매립입니다. 전 동성동 사무소와 그 주변인 남성동 30-1번지의 동굴강 일부 105평이 마산부가 직영으로 시행하여 1927년 2월 27일에 준공된 매립입니다.

다른 자료에서는 대부분 100평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정부기록보존소의 문서에는 107평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105평이라 하는 것은 토지대장에 기재된 면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 매립에 대해서는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찾은「공유수면관계서류」의 「문서번호87-061, 필름번호87-058」를 참고하였으며 서류에는 아래와 같은 도면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고려시대 석두창이 있었던 나포(螺浦)로 추정되는 곳이며 동굴강이란 이름으로 조선시대 내내 마산포 어선들이 정박했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1910년대 일본인 박간(迫間)의 매립공사 때 제외되었다가 이 때 남아 있던 일부가 매립된 것입니다.

매립면적은 총 252평이었으며 측구가 35m이었고 암거(暗渠)도 약간 있었습니다.

매립의 목적은 ‘시가(市街)정리’였으며 이 매립으로 현재의 삼성생명 앞에서 대신증권으로 내려오는 직선도로가 박간의 매립지인 선창지역까지 연결되었습니다.

현재 ‘너른마당’이라 부르는 곳으로 최근 통합창원시에서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다음은 이 매립지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❼번으로 표기한 곳이 이 매립지입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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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1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0) - 강점제1시기

<달라진 마산포 해안>

1910년대 마산포에는 해안선 변화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초의 대규모 매립공사가 이루어져 석축돌제 등만 조금 있었던 자연형의 해안에 凹형의 폭 약 300m에 이르는 석축 호안과 정박장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해안선이 당시 수심 약 2m 정도(당시 수심 기록된 지도로 확인)까지 바다 쪽으로 진출하면서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발전된 형태의 부두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공사가 완성되기 전에는 간석지역의 굴강에 선박을 정박하였을 경우, 간조(干潮) 때에는 수심이 낮아 선박의 이동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남성동 매립으로 오랜 세월 동안 원마산 해안을 지켜온 네 개의 선창과 두 개의 굴강 중 서굴강을 포함하여 서성선창과 백일세선창은 완전히 그 모습이 사라졌으며, 매립지에서 벗어나 있던 동굴강과 어선창․오산선창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동굴강은 위치상 매립에 포함될 부분이었지만 아래 그림처럼 매립 후 상당기간까지 존속하였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그림은 제가 복원한 1920년 도면인데 첫번째 지도와 똑 같습니다.

 




동굴강을 그대로 둔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매립이 필요 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매립 시 방파제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여(방파제는 1924년에 조성) 방파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동굴강의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마산포 한국사람들의 원성을 우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동굴강만은 1927년에 일부가 매립되고 1935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매립되어 사라집니다.

박간(迫間)의 매립으로 만들어진 원마산의 해안은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시행된 구항 매립 때까지 70여 년 동안 사용되면서 마산항의 중심부로 이용되었습니다.

凹형의 오목하게 파인 부분은 거제 통영 등 인근연안 여객선이 드나들던 유서 깊은 해안이었죠.

저도 청년시절 배낭메고 거제로 캠핑 갈 때 이 부두에서 배에 올랐습니다. 지금 농협 어시장 지점 자리입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2011/06/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제1시기
2011/06/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제1시기
2011/07/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2011/07/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6)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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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9)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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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2)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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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5)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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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마산포에서 제일 번화했던 곳은?>

1910년 경 마산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은 어디일까요?

복원도에 나타나는 1,157필지를 각각 그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해 각 토지를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결과를 그림으로 나타내 당시 도시상황을 확인하였습니다.

토지과세가격과 비교하여 토지등급으로 지가(地價)를 분류해도 오류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음 그림은 남성동(당시 元町) 1번지의 사정토지대장입니다.
노란색 원 안에 등급이라는 표기가 되어있는데 등급이 몇 차례 바뀐 흔적이 있습니다.




복원도의 땅 1,157필지는
최저 17등급에서 최고 77등급까지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모두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그림으로 나타내 보았습니다.
 색깔이 짙을수록 비싼 땅, 번화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마산창을 중심으로 서굴강과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남성동 해안 일대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의 남성동 파출소 아랫길(전 중소기업은행 앞 도로)이 가장 요지(要地)였는데 이 도로변에 1920년 마산 최초의 한국인 회사 「원동상사」가 창업하여 20년대 말 사옥을 신축하였습니다.

중심상권은 중국인 땅이 많았던 부림동과 창동의 경계가 되는 현 경남은행 부림동 지점 앞길로 이어져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창동 네거리의 동서방향 도로변도 지가가 높았습니다.

이러한 중심상권의 영향으로 창동․수성동․부림동․중성동으로 상권이 확산되어 있었지만, 마산포의 동쪽지역인 동성동 일대는 토지등급이 낮아 당시에는 주거지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지난 주에 포스팅한 일본인토지소유상황도와 비교해보면 일본인의 마산포 토지매입 현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비교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그림을 올리겠습니다.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어선창 일대 좁은 지역의 소규모 고가(高價)대지들은 한국인의 소유로 남아있었습니다만 요지(要地) 대부분은 일본인 소유였습니다.

지가가 높은 51등급 이상의 많은 땅들을 비롯해, 특히 71등급 이상의 초고가 대지의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였습니다.

한일병합은 1910년 되었지만, 그 시기에 이미 마산포는 이만큼 일본인들에게 먹혀있었던 겁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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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2011/04/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4)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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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1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마산포구의 두 굴강과 네 선창>

마산포가 조선시대 번성했던 포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옛 마산포의 해안선이 현재 도시 속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밝힌 적은 없었습니다. 시사(市史)를 비롯한 몇몇 자료에서 대충 언급했지만 추측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밝히는 마산포 해안선(海岸線)은 사정지적도(査正地籍圖)와 그 외의 여러 자료들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저는 정확(?)하다고 봅니다만 땅을 파보지 않아서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마산포에는 일찍이 두 개의 굴강과 네 개의 선창이 있었습니다.

동굴강과 서굴강으로 불렸던 두 굴강에 대해서는 1964년 『마산시사 사료집 제1집』의 「마산축항지」에서 김준이 그 용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습니다.

「서굴강(西掘江)은 인공(人工)으로 구축된 듯한 방축(防築)이며 여러 파도를 막고 범선(帆船)들이 정박하는 곳으로서 방축 위에는 수 백년된 포구가 무성해 있었으며 그 위치는 현 남성동 우체국 지점이 된다.

동굴강(東掘江) 역시 서굴강과 같은 부두로서 북선(北鮮)서 온 명태 배가 풍랑을 피하기 위해 정박한 곳이다」

복원도를 놓고 보겠습니다.


복원도에 나타난 굴강의 위치․규모․형태를 보아 마산창 앞에 있으면서 규모가 큰 서굴강은 마산창과 관련한 관용기능을 하던 인공 굴강이었고, 동굴강은 민간인들의 영업과 관련한 민용 기능을 담당했던 자연굴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민구분 사용은 조운제도가 폐지된 19세기 후반까지였습니다.

서굴강과 동굴강을 중심으로 직선거리 약 500m의 해안에 걸쳐 네 개의 선창이 있었습니다.
명칭은 서성선창․백일세선창․어선창․오산선창이었고 그 위치와 형태는 위 그림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백일세선창(百一稅船艙)이라는 특이한 명칭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백일세(百一稅)가 아니라 ‘백일세(百日稅)’라고 하면서 이를 2월에서 5월까지 백일(百日) 내에 세(稅)를 서울 선혜청에 수송하기 위한 선창이란 의미라고 해석하고 그렇기 때문에 백일세선창을 조창부두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는 일반적으로 백일세(百一稅)란 수입의 백분의 일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제도를 말한다면서, 예로써 군산항의 객주가 내장원에 백일세를 납부한 일이 있었다고 제시합니다.

여기서는 1907년 11월 1일 창원부윤 이기(李琦)가 일본인 홍청삼(弘淸三)의 매립과 관련해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보낸 보고 제3호에 첨부된 마산 해안도면에 ‘百一稅船艙’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百一稅라고 적었습니다.

우리나라간척사업과 제방공사의 효시로 고려 고종 35년(1248) 김방경(金方慶)에 의한 평안도의 위도(葦島) 간척사업을 듭니다만, 마산포 복원도를 보면 마산의 해안에도 석축호안(石築護岸)과 방파시설(防波施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아래 그림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해안 곳곳에 자연발생적 형태라기보다는 인위적인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될만한 흔적이 여러 군데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인 석축호안과 방파시설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근거는 더 있습니다.
이미 이 시기에 석축돌제(石築突堤)가 있었다는 기록과 『창원군지』등 여러 자료에서 고려시대 석두창(石頭倉)에는 조곡(漕穀) 천석을 싣는 조선(漕船) 여섯 척이, 조선시대 마산창에는 천석을 싣는 조선(漕船) 스무 척과 이 배들을 운행시킬 조군(漕軍) 구백육십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기록들이 그 가능성을 뒷받침해 줍니다.

물이 들어오면 바다가 되고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는 갯벌지(간석지역)는 다음 두 그림에서 해안선과 인접해 그려진 점선 부분까지였습니다.
해안에서 가장 근접한 수심선에 1/2m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동해 원산, 서해 강경과 더불어 조선 3대 포구였던 남해의 마산포 해안은 한일병합 1년 후인 1911년, 일본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이 착수한 매립공사에 의해 그 모습을 잃게됩니다.

동굴강 서굴강과 서성선창․백일세선창․어선창․오산선창은 바다를 떠나 육지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그림에서 본 당시 해안의 석축들은 지금도 마산도심 땅밑에서 잠들고 있겠죠.
우리나라에 조선시대 항구가 보존된 도시는 없다는데, 발굴해서 역사문화자원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요?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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