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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 05:3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5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8) "여기가 제2의 고향이지요" ------------------------- 이○○

1937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70-3

날짜 : 2015년 1월 9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옛날 동네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이 동네 사신 지도 오래되었지요?

= 나는 별 이야기거리가 없는데...

본 고향은 의령인데 거기서 면서기 하다가 막살하고 부산에 내려가 있다가 마산으로 왔어요. 내가 서른일곱 살 때 여기로 왔어요.

자유수출에 있는 일본 사람 회사인데 고모 아버지가 동업한다고 회사 차릴 때 왔거든요. 그러니까 사십년 전에 이리 왔지요.

- 예. 수출자유지역에 어느 회사였습니까?

= 마산강관이라고 파이프 만드는 회사였지요.

일본 회사인데 고모부가 사장을 잘 알아서 나를 넣어 줬어요. 거기서 근무하다가 거기서 정년퇴직 했어요. 육십두 살까지 있다가 퇴직했지요.

- 일본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셨네요.

= 그런데 일본말 하는 거는 대강은 알아들어요. 하라고 하면 못해요. 왜 그렇노 하면 일학년 때 해방이 되어 나니까 일본말도 어중간코 조선말도 어중칸고 그렇구만요.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잠깐잠깐 이야기 하면 무슨 소린지 알아 듣지만도 쭉 말을 하라고 하면 못합니다. 아메가 후로 데스네... 하면 비가 온다는 말이고... 하하.

- 지금도 그 회사가 있습니까?

= 매미 태풍 때 회사에 물이 들어서 철수를 하고 지금은 없습니다.

그 삼만삼백 볼트 전기가 지나가는 공장에 기계가 여러 수십 대 있는 거기가 소금물에 팍 담겨버렸으니까 하나도 못쓰는 거죠. 피해를 많이 입었을 겁니다.

거기다가 그동안 돈도 많이 벌었을 거고 하니까 철수한 거겠죠. 나는 그 일년 전에에 정년퇴직을 했어요.

그 뒤에 얘기 들으니까 남아 있던 직원들은 퇴직금으로 보상을 많이 받았던 갑더라고요. 그래 퇴직금 가지고 화물차 사가지고 운전하는 애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 그 당시에 직원은 어느 정도 됐습니까?

= 한 오십 명 정도 됐습니다. 나는 거기서 천장 크레인 타고 댕기면서 크레인을 몰았거든요.

그 일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물건에 기름칠을 해 놓으니까 미끄럽고 떨어뜨리면 밑에 있는 사람은 바로 즉사하니까요.

그동안에 내가 여남번 떨어뜨렸는데 사람이 없는 데라서 다행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게 된 것이 처음에 사무실 보다 이게 낫겠다 싶었거든요.

그래 일주일을 밤에 남아서 배웠습니다. 파이프에 기름을 발라져 있으니까 크레인으로 이동시키다가 균형을 잘못 잡으면 눈깜짝할 사이에 밑으로 쏟아져 버립니다.

 

천장 크레인(참고자료)

 

- 주로 어디에 사용되는 파이프입니까?

= 여러 군데입니다. 주로 배관용 파이프인데 욘부, 인치, 2인치, 전부 다 만들었어요. 또 스텐레스 파이프도 만들었어요.

- 그 크레인 운전이 상당히 뛰어난 감각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까?

= 그렇죠. 한참에 세 가지 네 가지를 움직여야 되거든요. 기차나 전동차 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거는 가고 서고 이러지만, 이거는 서고 가고 올리고 옆으로 가고 옆으로 보내면서 올리고... 여러가지를 한참에 다 해야 돼요. 내가 한 이십오 년 동안 사고를 안냈거든요.

그러니까 회사에서 나를 더 필요로 해서 더 있었던 겁니다. 오십오세가 정년인데 나는 칠년이나 더 연장해서 근무를 했어요.

- 완전히 배테랑 기술자였네요.

= 그래 내가 나올 때는 애들한테 많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내한테 배워가지고 삼화나 이런 큰 공장에 취직해 갔어요.

- 제자들을 많이 길렀네요? 하하. 그러면 임금도 좀 괜찮았겠습니다.

= 그때 연말 되면 오백만 원씩 가져 왔거든요. 한 이십 년 전에 연말 되면 연차 월차 보나스 합해서 한 오백만 원 넘게 가져왔으니까 요새 돈으로 치면 상당할 겁니다.

연말 말고 평소에는 한 이백만 원씩 가져왔어요. 그때 돈으로 이백만 원씩 가져왔으면 많이 가져왔지요.

우리 집 사람도 우리 회사 식당에서 밥을 해주고 이래가지고 전세로 있다가 돈을 모아서 이 집을 샀지요. 그때가 서른일곱 살 땐가 마흔 살 땐가 확실히 모르겠어요. 서류를 봐야 알지요.

원래 전세 얻을 때 이 밑에 교원동에다가 얻었어요. 집안 사람들이 있고 해서 여기로 왔어요. 여기 의령댁이라는 사람들 많아요.

- 처음 이 동네 오셨을 때 동네 풍경이 어땠습니까 주변에 집들이 다 들어차 있었습니까?

= 그때도 동네가 다 형성이 돼 있었는데 전부 기와집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빈집이 많아요. 개발 된다니까 사서 비워놓은 집이 많습니다.

이 안에 들어가면 쓰러져가는 기와집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여기가 일차로 개발이 될 줄 알았는데 벌써 몇년인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 그때 여기 오셨을 때 이 동네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 여기는 그냥 회원2동 둥구나무 있는 데라 했지요. 둥구나무 동네라 그랬어요. 누가 물으면 둥구나무 있는 데 산다 하고 그랬지요.

저 둥구나무도 나무가 썩어가지고 가운데에 시멘트를 발라서 메워놓은 겁니다.

- 이 동네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사시면서 동네에 큰일은 없었네요?

= 큰불도 안나고 별 그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가 밤으로 도둑놈이... 절도가 심했어요. 우리 농 하나 성한 게 없어요.

회사 나가고 사람 없으면 들어와서 저거 마음대로 뒤져가고... 텔레비는 안가져가도 사진기니 뭐 돈 될만한 거는 싹 다가져갔어요. 몇번이나 도둑들었어요. 도둑놈들이 우굴우굴하이 그랬어요.

- 그런데 이제는 근 사십 년을 사셨으니 제이의 고향 아닙니까?

= 이제는 여기가 제2의 고향이지요. 그때는 객지라서 정이 안들었어요.

매일 하는 게 밥 먹고 회사 가고... 육십두살까지 그 짓을 했으니 동네 사람들 하고도 안어울리고 이 동네 이야기도 못들어보고...

- 그럼 요즘은 어떻게 소일 하십니까?

= 저 앤지밭골 쪽에 경남대학 땅이 있거든요. 거기 한 천 평 되는 걸 개간 해가지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거기서 세월을 보내고 있지요.

겨울에만 여기 있지 아니면 계속 밭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가 산인데 그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는 겁니다. 내놔라 하면 언제든지 내주겠다고 하는 서약서를 경남대학에 써넣고...

- 그럼 주로 뭐를 재배하십니까?

= 뭐 필요한 거는 다하지요. 콩, 배추, 깨, 고추, 무시... 뭐 여러가지 심어요.

며느리 하고 딸이 이웃에 살거든요. 그래 갈라먹고 그러지 뭐. 내 나이가 있으니까 농사 짓는게 이제는 힘들지요. 전에 한 칠십대까지는 펄펄 했는데... 지금도 내가 일은 잘해요.

- 연배에 비해서 아주 건강해 보이십니다.

= 목욕탕 가면 젊은 사람들이 내보고 놀래는데요?

팔도 만져 보고 다리도 만져 보고 놀래는구만요. 젊은 사람들 다리나 같아요. 쭈글쭈글 안하고... 밭에서 일을 하니까 그런가 봅니다.

- 지금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데 감회가 어떠십니까? 이 집이 다 헐릴 거 아닙니까?

= 내가 칠십아홉이거든요. 정축생이거든요. 이거 개발해도 내가 볼 때는 오년은 걸리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때 내가 팔십대엇살 되는데... 요새 백세라 하지만도 팔십댓 되면 맥 못춥니다.

나는 이것 해도 그렇고 안해도 그래요. 딴 사람이 하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거지요. 내 하고는 별 관계 없는 겁니다. 사람이 늙어면 죽는 거지 뭐 그걸 갖다가 애착을 가지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시 살면 오래 못살아요. 공기도 나쁘고 스트레스 받고 말이지요. 촌에서 짐승같이 사는 거 같으면 오래 살런가 모르지요.

나도 칠십아홉에 살만치 살았는데 뭐 애착을 가지겠나... 하면 하고 말면 말고 그렇지 뭐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옛날에 이 집을 사실 때 얼마에 주고 사셨습니까? 집이 몇평입니까?

= 이게 사십 평인데 한 이천만 원 줬지요. 그런데 안집을 샀어요. 안집이 차도 못 대고 가치없는 집이라고 그래요.

이 안에 있는 집들은 다 등급이 낮아요. 낮아도 보통 낮은 게 아니죠. 바깥에 칠팔백 할 거 같으면 여기는 이백도 안해요. 여기는 그만치 낮아요.

그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헐타고 덤벙 산 거죠. 하하. 차가 갈 수 있는 큰길 가에 있는 걸 사야 값이 있는데... 차소리도 안들리고 조용해서 옛날에는 안에 이런 데가 좋다고 했거든요.

- 그때는 이사할 때도 리어카에 담아 싣고 옮기고 그랬으니까요.

= 그렇죠. 그러니까 골목에 살 수 있었지요.

- 예.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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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5.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4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7) "허허벌판에 이룬 삶의 터전" ------------------------- 박○○

1947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72-22

날짜 : 2015년 1월 8일

장소 : 관룡사

 

- 반갑습니다. 예전 이 동네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 옛날에는 이 일대가 거의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지금 현동에 가면 국화밭 있죠? 거기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여기는 특별한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무학상가 있는 그 근방에 옛날 주택 부서진 데 있죠? 여러 집 있습니다. 거기는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그쪽에 국화밭이 형성되어 있다가 저쪽 현동으로 가버렸거든요.

 

국화밭(참고자료)

 

- 지금 무학상가 위쪽에 국화밭이 있었다는 거지요?

= 그쪽으로 있었고 주택도 쭉 있었어요.

- 다른 분 얘기 들으니까 미나리꽝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 그쪽에 좀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일대에는요 보존할 게 하나도 없어요. 전설이라든지 그런 것도 없어요.

이 밑에는 예를 들어서 2지구 같으면 정자나무가 있는데 그 유래가 있어가지고 보존할만한 게 되지만 이쪽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여기는 우리 서민 생활 있죠? 그대로 입니다.

- 예. 이 동네는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지요.

= 서민들 동네이기 때문에 건물 자체가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변한 게 있어야지요.

예전에는 앞에 이 도로도 없었거든요. 큰 도로 여기도 골목이었거든요. 이 위에 우리 지구에는 안들어가는데 교방초등학교 못가서 오른쪽 편 거기도 집이 몇 채밖에 없었거든요.

육일약국 하고 교방초등학교 중간에 거기는 옛날에 아무 것도 없었고 허허벌판인데 집 몇 채만 지어져 있었거든요. 이쪽 밑으로는 국화밭이 있었고...

- 그러니까 국화밭이 있고 할 때에는 70년대 이후이겠네요?

= 그렇겠네요. 그래 내가 공직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아는데 그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예를 들어 저 밑에 같으면 오백번지는 난민촌이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허허. 여기 우리 아파트는 옛날에 야산에 돌밭이었습니다.

- 동네 옛날 이야기 들으러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만 여쭤 보겠습니다. 이 위를 앵지밭골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동네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회원동 말고 옛날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 있었습니까?

= 이 동네는 내가 알기로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서 석전동은 옛날에 봉오재라 했고 회성동을 살구지이라 했거든요.

- 옛날 교원동사무소가 어디 있었습니까?

= 자이아파트 있지요? 그 바로 뒤편에 있었습니다. 거기가 전부 조그만 주거지였지요.

그 동네는 난민촌 비슷했어요. 그 다음에 도랑 있지요? 도랑 옆에 거기도 전부 교원동이었어요.

- 그리고 여기 못산이라고 있었다고 하던데요?

= 이 다리 밑에 조그만 못이 있었다고 합디다. 옛날에 이 도로 밑이 못이었어요. 하천 이쪽에 간판집 그 밑이 못이었어요.

그래 조합에 김상열 이사 있죠? 거기 가서 물어보면 됩니다.

내가 공직생활을 했는데 교방동 교원동 일대를 훤히 압니다. 그래 김상열 씨 자기 집이 못산쌀집을 했어요.

- 앤지밭골에도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습니까?

= 조그만한 목장이 있고 사람도 살았습니다. 지금도 목장 있어요.

우리 신도가 거기서도 오기 때문에 압니다. 그런데 회원2동은 재개발 하는데 그런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뭐 보존한다는데 할 게 있어야지 내놓고 할 게 없습니다.

- 예. 그럼 못산이란 여기는 사람들이 좀 모여 살았습니까?

= 나는 그때는 모르죠. 태어나기도 전인데 거기가 못이라는 것만 들었죠.

- 이 밑에 598번지 일대에 공영주택 있지 않습니까? 그 일대에 옛날에 미나리꽝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 여기가 못이기 때문에 거기에 미나리꽝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교방초등학교 뒤쪽 있죠? 그 오른쪽에는 옛날에 자갈밭이었어요. 집 다섯 채 있었는데 길이 포장도 안되고 질퍽질퍽 하이 그랬어요.

- 여기 회원동이 옛날에 국화재배로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 예. 그래요. 여기 옛날에 시의원 했던 염 의원 집 앞이 전부다 국화밭이었어요.

국화밭 앞에 우리 집이었거든요. 허허허.

- 그럼 절 여기 지었을 때는 주변에 집이 많이 없었겠네요?

= 많이 있었죠. 옛날 집은 밑에 그대로 있어요. 밑에 가보시면 천막 덮고 부서진 집이 여러 채 있어요.

거기는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게 제일 오래된 집일 겁니다. 또 그 밑에 무학아파트 있죠? 거기도 제일 오래됐습니다.

- 예. 지나다보니까 물이 새고 그렇더라고요.

= 그것도 처음 짓고 나서는 잘 지었다고 막 그랬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다 주공아파트였거든요. 여기 주공아파트 선 자리 이 밑으로는 뭐 없었어요. 이름있는 그런 게 아무 것도 없어요.

2지구 같으면 오백번지 나래비집, 또 정자나무 그런 건 유명하지만 여긴 아무 것도 없는데요.

국화밭도 그전에는 미나리 하다가 국화 심은 겁니다. 미나리밭 하다가 국화 심고 그 다음에 집이 들어서고 그랬습니다.

- 여기 절은 원래부터 여기 있었습니까?

= 짓고는 바로 들어왔습니다. 여기 못이 있었다는 것도 우리 절에 나오던 나이 구십 넘은 사람들한테 들은 겁니다.

지금 여기 사람들은 모릅니다. 다 객지 사람들이거든요.

옛날에 내가 공직에 있을 때 이 동네 오면 신발 다 버리고 그랬어요.

왜 그런가 하면 비가 와서 땅이 질퍽질퍽 한데 신발에 흙이 붙어가지고 엉망이 되고 그랬거든요.

하하하. 여기가 그랬던 곳입니다. 그때 비하면 엄청나게 변했지요.

- 예.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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