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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과 진해만6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4절 건축 및 토목공사 제4절 건축 및 토목공사 가장 많이 주시되어 소문난 목적이 되어 있는 군항 경영상의 제공사비는 올해 할당분인 56만 엔 안에서 절반 이상은 재료구입비로 내지(일본 본토, 일본 본국)에 흡수되어 버리고 얼마 남았는지 모른다.시가지 건축은 올해 약 500채를 예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준공된 것은 백 채 안팎에 불과하다. 이것도 역시 청부인 이외의 직공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많다. 한 평당 30~40엔에서 70~80엔 쯤이 표준이라 보면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임시건축지부에서 착수하고 있는 공사는 아래와 같다.기공연도                 공사명칭                                                        도급인 성명 1910년도         .. 2024. 10. 7.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및 시가지 경영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관공서에서 민간에 빌려줌) 및 시가지 경영 진해 해군용지 대하에 관한 내규는 작년 8월 5일부로 시행되었다. 그 내는 진해 해군용지 내에 있는 경작지, 미간지(未墾地, 아직 일구지 못했거나 않은 땅) 및 택지 대하에 관해 이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경작지에 관해서는 경작지에 관해서는 제1조에서 이라는 취지를 정하고, 미간지에 관해서는 제17조에서 이라 정했다. 택지에 관해서는 제27조에 는 (남의 땅을 빌려 쓰는 사람)>이 아니라도 , 기타 에 으로 정했다. 시가지는 12만평이며 대규모 계획을 가지고 모범적인 시가지로 구획되어 형성되어 가고 있다. 폭이 20간(間, 1간은 1.818182미터로 20간은 약 36.36미터에 해당함), 15, 10간 등 큰 도로가 가로 세로 십.. 2024. 9. 30.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2절 현동의 발전 제2절 현동의 발전 현재의 현동은 시시각각 발전을 거듭하며 어제를 보고 오늘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오늘에 의거해 내일을 예상해야만 한다. 실제로 군항지 경영 800만 엔(圓) 10년 계획은 원래 갈대벌판이던 현동의 운명을 열성적으로 개척해보려는 이들에게 크게 주목받았다. 10월 초순의 조사에 따르면, 몰려오는 사람들은 남자 566명, 여자 346명, 합쳐서 812명, 호구 수는 289호에 이르렀으니 앞날의 성황도 예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주자 모두가 꼭 확실한 조사를 하고, 이윤 나는 계산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척이나 거대한 군항계획 소문에 홀려서 가벼이 전도유망함을 과대시하고, 정해진 목표 없이 한탕 해보려는 경거망동의 작자(作者, 여기서는 나 아닌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도 적지.. 2024. 9. 23.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절 군항지 개관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마산과 진해만』의 2장 ‘진해만’ 부분이다.  제1절 군항지 개관 동양 제일의 대군항인 진해만(진해만이라는 명칭이 진해군의 앞쪽 해역을 포함하여 웅천군 거제군·고성군으로 둘러싸인 넓은 해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략) 1. 우선 조선시대부터 '진해(군)'이라는 고유지명(행정지역명)이 현재의 진해로부터 조금 떨어진 서쪽에 있었던 점. 2. 당해 해역(현재의 '진해만‘을 말함)에 접해 있는 몇 개의 지역명 중에서, 특히 진해라는 지역명에 당시(러일전쟁 개전 전)의 일본군(정부)관계자들이 주목했던 점. 다케쿠니 도모야스, 2019, .. 2024. 9. 1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제1시기 1910년대 초, 마산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직업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그들의 직업을 보면 그들의 산업도 알 수 있는 것, 오늘은 당시 마산의 일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미 작년 10월 11일자 제27회 글(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에서 일본인 이주 초기인 1902년 마산의 일본인들 직업을 포스팅 한바 있습니다. 모두 46종류였으며 겸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8년의 세월이 흐른 1910년경에는 양상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업종도 169종으로 다양해 졌을 뿐만 아니라 종사자도 1,821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러일전쟁 이후 시작된 이주로 일본인의 숫자도 많아졌지만 식민지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했던 시대상황.. 2011. 6. 2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일본군이 이 땅에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직후였습니다만 일본 민간인이 공식적으로 서울에 들어온 것은 1884년에 착수한 그들의 공사관(公使館) 신축 때 들어 온 직공(職工) 70여명이 최초입니다. 그 전에는 비공식적으로 상인 약간 명이 잠주(潛住)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남산 밑에 일본인 거류구역이 설정된 1885년 후였습니다. 이로부터 10여 년 후인 1894년, 일본 정부는 한반도 지배를 위해서 일본인의 한국 이주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다음과 같이 입장을 정리합니다. 일본인으로 하여금 되도록 속히 한국 땅에 이식시키는 일, 이것은 참으로 영원한 계책이다. 한국 땅 이식 사업은 한반도를 개척하는 데 무엇보다도 장기적 대책이다. 한국 .. 201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