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사해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7) - 강점제1시기 오늘부터는 1910년대 마산포(원마산)의 변화에 대해 올리겠습니다. 이 시기 마산포에는 세 가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남성동 매립. 마산창의 철거. 그리고 근대식 도로개설입니다. 남성동 매립에 대해서는 이미 직전 '매립'부분 (2011/09/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6) - 강점제1시기)에서 포스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오늘은 마산창 철거, 다음 주는 근대식 도로개설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1913년, 마산창이 자리 잡고 있던 1,500여 평의 정사각형 땅에 격자형의 8m, 10m 도로가 뚫려 세 토막으로 잘리고 잘린 땅들은 수십 평 규모로 낱낱이 분할되었습니다. 그리고 1760년 개창한 이래 150여 년 동안 우리 지역에서 위계상 가장 높은 지위로 위풍당당했던 마산창 본당 유정당(惟正堂.. 2011. 9. 2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조용했던 마산포구에 조창이 생기자 조창에서 일을 보는 관원은 물론 인근 지역 관원들의 왕래까지 잦아지고 여각(旅閣), 객주(客主) 및 강경상인(江京商人)은 물론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해로와 육로의 접점이니만큼 시장으로서의 지정학적 조건도 좋았지만, 17-18세기 인구증가로 비농업인구가 급증하여 임노동자들이 도시에 집중하는 등 조선조 후기에 발생한 '봉건적 사회질서의 붕괴'가 마산포를 도시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마산창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민가도 들어섰습니다. 동성리·중성리·오산리·서성리·성산리·성호리, 지금도 대부분 동명으로 이름이 살아있는 6개리가 이 때 형성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마산 도시구조의 주심부(主心部)인 이들 6개리가 오늘날 마산이라는 도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처.. 2010.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