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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6.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5 / 빈민은행 Bancuadra

 

이 글은 도시연구자 박용남 선생의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사는 곳 때문에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거절당해서는 안 된다.”

이 슬로건으로 하층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런던의 주거복지재단 L&Q(London and Quadrant)을 방문했을 때 가장 와 닿았던 사업이 ‘금융과 함께 만든 자활펀드’였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메데진에도 있다. 하지만 메데진의 경우는 시작이 런던 L&Q와는 좀 다르다.

'꽃과 미녀의 도시'라지만 메데진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늘 그렇듯 가난한 사람들은 고금리 이잣돈을 쓴다. 이 포스팅은 메데진 시 정부가 이 문제에 대응하는 한 사례이다. 

2017년 메데진 시 정부는 가난한 시민들이 조직범죄와 연관된 대출 사기꾼들에게 의존해 급한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응해 'Bancuadra(micro credit bank)'라 불리는 빈민 은행을 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경제플랫폼'이다.

 

 

사실상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콜롬비아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좋은 조건으로 일반은행에 대출을 받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은 결국 위험하고 고금리인줄 모르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대출사기꾼들에게 돈을 빌리게 만든다.

“gota gota(drop drop)”라고 불리는 이 대출사기꾼들은 무려 한 달 이자로 원금의 20%를 받기도 한다.

이런 현실은 도시 빈민들의 경제 상황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폭력에 빈민들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메데진 시 정부의 추계에 따르면 이런 불법 대출의 1년 총액이 무려 1억 2천 4백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다.

 

Bancuadra는 이런 불법 대출을 막기 위해 탄생되었다.

물론 대출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나이와 생활수준 등 일반적 조건 외에 메데진 만의 특이한 조건이 있다.

3개월 안에 부채 상환을 할 수 있는 시민그룹 및 중소기업가에게 제공하며, 여기서 말하는 그룹은 모두가 모두를 깊게 신뢰하는 5~19명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커뮤니티의 신뢰를 담보로 사용한다는 의미인데, 그것만으로도 매우 혁신적이다. 신뢰가 깊은 사람들끼리 서로 대출인과 보증인으로서의 관계를 만들어 도움을 주고 받는 구조다. 벤치마킹 해볼만한 시스템이다.

Bancuadra에서 제공하는 대출이 거액은 아니지만 급한 돈이 필요한 시민들에게 소중한 도움이 되고있다.

이자는 월 0.91%, 우리 일반은행보다는 높은 편이지만 콜롬비아 기준으로 보면 아주 낮은 이율이다.

Bancuadra는 미국의 블룸버그 자선재단이 2016년에 공모한 ‘시장 도전상(Mayors Challenge Prize)’에 선정되어 받은 1백만 달러의 상금을 종자돈으로 시작했다.

이 새로운 금융 공공서비스는 메데진 시 정부가 대출사기꾼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빈민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아직 실험단계인데 향후 성공 여부에 따라 확대될 계획이다.

걸음마 단계이지만 국내에도 소액신용대출은행이 몇 가지 가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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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22.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1 / 세계가 주목하다

-그들의 변화-

 

한 때 전 세계 마약 시장의 80%를 주물렀던 세기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milio Escobar Gaviria / 1949. 12. 1~1993. 12. 2).

그의 일대기는 최근에까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아직까지도 중남미는 물론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메데진(Medellin)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이자 세계 최대의 마약 카르텔 본거지였다. 이로 인한 마약 쟁탈전과 높은 범죄율은 시민들에게 고통과 두려움의 징표였다. 

도시문제도 심각했다. 공공의 통제를 벗어난 대책 없는 확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도시에 혁신적인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메데진(Medellin)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월 20일. 박용남 선생의 추천으로 이 낯선 도시를 찾았다.

오래 전(2002) 박용남 선생의 책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은 후 혼자 브라질 꾸리찌바에 간 적이 있다. 책에 실린 꿈 같은 내용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나와 박용남 선생과의 인연이다.

그 인연으로 올 초봄에 남미 도시 중 도시재생을 테마로 가볼만한 도시를 묻자 박 선생은 망설임 없이 메데진(Medellin)를 추천해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포스팅한다.

마침 7월 12일 중남미 순방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데진 플라자메이어에서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 메데진 시장과 만나 '서울-메데진 간 우호협력 결연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메데진은 서울시의 우호도시가 되었다.

 

 

내 글에 앞서 세계가 평가한 메데진(Medellin)을 먼저 소개한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글들이다.

 

【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올해의 도시’(2013) 】

ㅇ 월스트리트 저널은 콜롬비아의 메데진(Medellin)이 도시랜드연구소 (Urban Land Institute)와 협력하여 개발한 글로벌 프로그램인 "올해의 도시 (City of the Year)"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경쟁의 우승자로 선정하였다.

ㅇ Aníbal Gaviria 시장 소감

“메데진은 20년 전의 매우 어두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고통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곳을 현재의 희망의 장소로 만들었고 이는 전 세계 여러 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메데진(Medellin)은 사회변화 프로그램, 도시개발사업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의 결합에서 단계별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성공의 핵심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해의 도시’ 선정을 통해 Medellin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펼쳐질 엄청난 도전의 결과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ㅇ Urban Land Institute 성명서

“지난 20년간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메데진(Medellin) 만큼 변화를 이루어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없었습니다. 메데진의 살인률은 1991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동안 80% 급락했습니다.

메데진은 취약한 언덕 지역에 공공 도서관, 공원 및 학교를 건설했으며 거기로 부터 상업 및 산업 센터까지 일련의 교통 연결을 구축했습니다.

메트로 케이블카 시스템과 급경사 언덕을 가로 지르는 에스컬레이터, 정류 시간 단축, 민간 투자 촉진, 사회적 형평성 및 환경적 지속 가능성 증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 도시행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2016) 】

“메데진은 무분별한 도시 확장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의 도시환경에서 지속가능한 변화와 혁신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ㅇ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메데진은 연간 수익의 약 30%를 공공 인프라 투자로 전환시키는 공공 소유 유틸리티 회사와 협력하여 자금을 창출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ㅇ 또한 Anibal Gaviria 시장과 지도자들은 소규모이지만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큰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 Circumvent Garden : 다중 운송모델을 통해 언덕과 도시를 연결함으로써 도시 확장을 통제하고 산사태 위험을 완화하는 한편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출하여 일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킴

- 구조적으로 건전한 것으로 밝혀진 비공식 무허가 주택 단지의 합법화

-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종전 활용도가 낮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및 문화 공연장 개발

- 기타 유아 교육 프로그램 등의 개발

ㅇ 심사위원장 Kishore Mahbubani 교수

“메데진(Medellin)은 통제되지 않은 도시 확장, 높은 범죄률 및 마약 쟁탈전 등의심각한 과제를 해결하고 과감한 리더십, 장기 계획 및 지속 가능한 사회 혁신을 통해 제한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과 경제를 개선했습니다.

지난 20 여년간 메데진(Medellin)이 직면했던 도전은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도시들이 겪고 있는 전 지구적 도전을 대표합니다.

오늘날의 급속한 도시화는 삶의 조건과 경제적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간 정착의 전경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 솔루션입니다.”

(참고로 2018년 ‘리콴유 세계도시상’은 서울시가 받았다)

 

 

> 위키백과에서는 메데진(Medellin)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콜롬비아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2,499,080명으로 콜롬비아 제2위의 도시이며 콜롬비아 서부,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이다. 해발고도 1500m의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위치한다.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금의 개발 기지로 건설되었고, 후에 커피 재배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콜롬비아 커피 재배 지역의 중심지로 많은 커피를 집산하고 있다. 콜롬비아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제철, 자동차, 플라스틱, 섬유, 식품(맥주)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수도 보고타 다음가는 콜롬비아 제2의 도시로, 아름다운 공원과 근대적인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과연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통해 마약으로 얼룩졌던 기존의 이미지를 떨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룩하였는지 몇 차례의 짧은 포스팅으로 소개한다.<<<

 

 

- webt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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