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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2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9) - 강점제2시기

85회부터 시작된 1920년대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강점 제2시기인 1920년대는 한국이 일제의 상품시장 및 원료공급지, 특히 식량공급지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었던 산업수탈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기만적인 소위 문화정치가 표방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산미증식계획이 강행되었고 회사령이 철폐되었습니다.

1920년대의 마산인구는 1920년에 16,165명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성장의 폭이 조금씩 많아져 1930년에는 25,810명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은 1920년 당시 4,172명이던 것이 1930년에는 5,559명이 되어 1920년에 비해 133.2%로 늘어났지만 한국인들은 같은 시기에 169.0%로서 일본인의 증가율에 비해 약간 높았습니다. 

조선회사령 폐지로 마산의 민족자본가들도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일본인 역시 기업을 앞세워 원마산으로 많이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요인이 되어 1920년대 중반 이후 마산은 원마산의 도로건설과 마산만 해안 전역에 매립공사가 시작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원마산 지역의 매립은 박간(迫間)의 매립 때 매립되지 않고 남아있던 동굴강의 일부가 1927년 매립되었고, 1929년에는 오동동일대 해변 1,700여 평이 매립되어 대규모 매립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신마산에도 현재의 경남은행 신마산 지점 건너편 일대 총 10,500여 평이 매립되었고 중앙마산의 해면(현 신포동)도 대규모 매립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20년대 중반부터 마산은 매립이라는 도시의 대변화가 시작되었으며 이 변화는 해방 때까지 지속됨으로써 도시구조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합방기 이전에 이미 장군천까지 도로가 개설되었지만 건물은 많이 들어서지 않았지만 1920년대 후반에는 철근콘크리트조의 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건물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건물의 용도는 산업시설과 교육시설 등이 많았습니다. 상수도는 1930년에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1920년대의 특이한 변화는 20년대 중반 이후 신마산과 원마산의 중간 지점인 장군천과 몽고정 사이의 중앙마산에 공공지역을 위주의 새로운 영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철도용지였던 이곳을 불하하여 가용지로 만들었던 중앙마산의 형성은 마산을 두 지역으로 분절하고 있었던 기현상을 해소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도시가 연담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마산 서쪽 모퉁이에 집중해있던 관공서들이 도시의 중심부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은 중앙동2가와 3가에 대규모 도로계획을 입안하여 1927년 총독부의 허가를 얻음으로서 착수되었는데, 허가를 득한 후 이곳을 마산부가 불하를 받아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원마산은 현재의 추산동과 상남동․교방동 즉 현재의 북마산 쪽으로 범역이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마산 범역 확산의 중요한 이유는 마산과 진주를 연결하는 철도 경남선이 개통된 것과 구마산 역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가 교통과 유통의 중심기능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마산의 상황은 시구개정사업이란 명분까지 갖추어 보다 많은 도로가 개설되었는데 이 과정에 중앙정부의 재정지원까지 있었습니다.

1910년에 이미 개설되어 있던 창동과 남성동 지역의 도로망이 이 때 중성동․오동동․동성동으로 많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도로망 확산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920년 기준으로 원마산에서의 일본인 소유 토지는 전체의 35.0%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1930년에는 38.8%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의 토지소유는 1920년 62.5%이던 것이 1930년에는 55.2%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변화는 개인소유의 대지만으로 산정한 결과입니다.

기업과 단체가 사실상 일본인들의 소유였기 때문에 이를 합하면 실제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율은 이보다 훨씬 높아집니다.

이런 토지소유율의 변화를 통해 일본인의 원마산 토지 지배는 강점기가 진행될수록 심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일병합 10년이 지난 1920년대,,,,  해안 매립과 중앙마산 개발로 마산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다음은 1930년 마산지도입니다.

1920년, 1910년, 1899년 개항 당시의  지도와 함께 올리니 비교해보기 바랍니니다. <<<

 

<1930년>

<1920년>

<1910년>

<1899년 개항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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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2차 게재' 중 '강점 제2시기(1920년부터 1930년까지)'가 끝났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처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1차 ; 고대부터 개항(1899년)까지

2차 ; 개항이후부터 해방(1945년)까지

3차 ;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미 완료한 '1차 게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시대 이전 ------ 9회

조선시대----------- 4회

개항기------------- 12회

합계--------------- 25회 완료

 

'2차 게재'는 다음처럼 구성하기로 했으며 세 번째 순서를 마쳤습니다.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총 32회 (26회부터 57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1920년)----------총 27회 (58회부터 84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총 35회 (85회부터 119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계획입니다.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도약 및 전성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 본 연재는 마산도시를 연구하면서 확보한 자료를 공유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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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마산을 바꾼 '시구개정사업'>

1920년대 마산의 도시 변화는 회사령 폐지로 시작된 산업 변화와 중앙마산의 형성 및 매립, 그리고 시구개정 사업으로 인한 원마산의 도로망 확산과 경남선 철도 개설 등이 큰 흐름입니다.

1923년 9월 1일 동경과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지방에 대규모 지진, 즉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44초에 돌연히 동경과 요코하마 및 관동지방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가옥을 비롯한 지상시설물을 도괴(倒壞)시켰을 뿐 아니라 해일(海溢)과 3일간 계속된 대 화재로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사망91,344명 행방불명13,275명 부상51,074명 가옥전소38,090채 가옥반소517채 전궤(全潰)83,819채 반궤(半潰)91,233채 유실1,390채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동경의 피해가 가장 커서 全시의 44%가 소실되고 249만의 인구 중 158만 이상이 재난을 당했습니다.
특히 이 소란 중에 한국인이 난동을 부린다는 낭설이 돌아 무차별로 학살되는 비극까지 겪었습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은 일본 전역에 도시연구의 관심을 고양시켰습니다. 도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입니다.

예로써, 1924년 동경제국대학에 도시계획 강좌가 개설되고, 같은 해 일본정부 내 도시계획 실무자들로 구성된 도시연구회가 회지『도시공론(都市公論)』을 발간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동경시정조사회가 월간『도시문제』를, 대판시가『大대판』을 발행함으로써 도시계획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열기는 한반도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미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시행되고 있었습니다만 전국 각 도시는 물론 지방도읍들까지 시구개정사업에 대한 열기가 높아졌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런 분위기를 전하는 신문기사 중 마산관련기사를 소개합니다. 모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馬山市區改正 着着進行中(1926년 1월 24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馬山府를 大都市로 建設할 計劃 下에 數年 前부터 市區改定에 着手하야 公設市場 及 道路擴張 等에 注力하야 오는바 대정15년도(1926년)예산으로는 2만3천6백원(6천원은 道補助金) 공사비로 萬町(동성동) 新築 警官派出所前부터 午東洞 明太庫間 前까지 230間 거리의 창원군 내서면 산호리를 직통하는 6間 1등 도로공사를 착수할 터인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야 工事完成期는 대정16-17년(1927-1928년)도까지 연장되리라더라.

馬山市區改正 工事는 來年부터(1926년 6월 23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市區改正에 留意하고 每年 着着進行中인바 新舊馬山을 連結시켜 大都會馬山을 建設할 計劃 下에서 12萬圓의 工事費를 정하여 市區를 改正하기로 결정되었다는바 工事費 12만원 中 국고보조금이 4만5천원 지방비 보조금이 3만7천5백원 府費編入金 3만7천5백원이라는데 國庫補助金은 方在申請中이라하며 工事着手는 대정16년(1927년)도부터 할 豫定이라더라.

工事着着進行 舊馬山市區改正 (1926년 12월 2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朝鮮人多數가 住居하는 舊馬山市區改正이 不完全함을 有感으로 여겨오던 바 最近에 이르러 府 當局으로부터 舊馬山市區改正에 特히 活力하여 온다함은 旣報한바이거니와 馬山府 萬町前으로부터 午東洞 淸水精米所까지 距離6十間 廣 5間半 府外連結道路工事는 近近히 着手하야 15年度(1926년)末內로 竣工하기로하고 土地買收에 府當局에서는 勞力 中이라는바 工費 豫算이 6천원에 不過함으로 土地所有者의 特別한 同情을 希望한다더라.

이들은 모두 이미 1910년대에 시행된 1차 도로개설로 생겨난 원마산의 도로망을 더 확산시키자는 의미의 기사입니다.
신문의 내용을 보면 마산의 도시 규모를 키우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발행된 신문에서는 마산 외에도 경남지방에는 진주․밀양․진영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전국 각지의 소읍들까지 시구개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도시계획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마산도시변화연구과정에서 1920년대 중반기에 마산에서 시행된「구마산시구개정(舊馬山市區改正)」에 관한 자료 일부를 찾았습니다.
시구개정사업으로 시작된 마산의 도시변화는 나중에 별도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당시 마산의 시구개정사업 중 하나인 현 중앙동 일대의 도시계획도면입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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