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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7.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1 – 아사히카와(旭川), 다이세쓰산(大雪山)

6월 1일로 10년을 맞은 학봉산악회의 회원들이 10년 된 기념으로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열 명의 회원 중 아홉 명이 함께했다. 명칭은 거창하게 ‘산악회’라 붙였지만 매주 토요일 오전에 만나 무학산 둘레 길을 걷는 소박한 모임이다.

참가자 : 김용운, 김재현, 김흥수, 서익진(글쓴 이), 신삼호, 신성기, 임학만, 정규식, 허정도 9명

일시 : 2019. 4. 25(목) – 4. 28(일) / 3박 4일

 

2019. 4. 25 (목, 첫째 날) - 흐리다가 맑음

한 팀은 새벽 6시, 다른 팀은 새벽 6시 반부터 서둘렀다. 두 대의 승용차로 나누어 공항으로 간다.

우리 팀은 김재현 회원이 네 사람이나 픽업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고맙기 짝이 없다.

차를 장기주차장과 민영주차장, 어디다 주차할 것이냐로 옥신각신 하다가 공항 앞 가장 가까운 민영 ‘현대주차장’에 주차한다.

주차장에서 제공한 셔틀 봉고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다른 팀을 만나 모두들 무사 도착을 확인하고, 자동 체크인 기기로 좌석을 배정받은 후 트렁크들을 화물로 부친다.

신삼호 총무가 일본과 한국에서 사용할 공동경비로 1인당 내기로 한 엔화 1만 엔(한화 10만 원으로 대신 납부 가능)과 한화 5만 원씩을 거둔다.

아침식사 할 짬들이 없었고, 저가항공사는 기내식 안 준다 하니 국제공항청사 1층에 있는 부산어묵집에서 어묵으로 때우다. 내가 추천했는데 다들 별로 음식에 감동하는 눈치가 아니다. 내가 원체 어묵을 좋아하다 보니... 허허.

9시 30분,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해 11시 30분경 삿포로의 신치토세(新千歲) 공항에 무사히 착륙한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비행기 탈 때마다 이착륙에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나도 나이 좀 먹었나보다.

짐 찾아 나와서 로비에서 좀 기다리니 우리의 명 가이드 정창훈 씨 등장. 몇 년 전 야쿠시마 단체산행 때도 우리 일행 가이드 했던 양반이다. 그때의 인연으로 이번에도 여행일정 전반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사이에 이 양반, 여행사 직원에서 사장이 됐다나. 작은 일본 전문여행사를 차렸고, 중요 고객에겐 직접 가이드 역할도 한다고. 솔직히 회사를 혼자 하는지 다른 직원은 있는지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10인승인가? 자리가 꽉 찼으니 10인승으로 짐작한다. 초 미니버스를 타고 아사히카와(旭川) 시를 향해 출발한다.

가이드는 점심시간이니 근처에서 먼저 점심부터 먹자고 한다. 공항 구역을 벗어나 얼마 안 가서 대형마트 건물 안에 있는 회전스시 집에서 식사를 한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반주가 왜 여행만 오면 생각나는지 알 수 없다.

생맥주와 청주로 반주를 곁들이는데, 청주 이름이 국사무쌍(國士無雙). 이름에 반한 허정도 원로대원, 한 병 사가야겠다고 하더니 귀국할 때 공항에서 살짝 국사무쌍 1병을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 샀지?

가이드상, 점심 먹었으니 맛있는 커피 맛보게 해준다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으로 데리고 간다. 100엔짜리 자판기 커피인데 그런대로 괜찮다는 중평이다.

 

 

커피 마시며 세븐일레븐이라는 상호가 일본이 원산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물박사 ‘네이버’씨에게 물어보니 1927년 미국에서 오전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문 여는 세계 최초의 편의점으로 출발했고, 나중에 일본에 진출해 미국보다 더 큰 대박을 터뜨려 2005년에 일본 자회사가 미국 본사를 합병했다는 역사를 알려준다.

롯데를 앞세워 한국 편의점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일본에서만큼 쪽을 쓰지는 못한다고. 다른 나라들에서와는 달리 한국 시장에서 맥도날드가 롯데리아에 맥을 못 추는 꼴과 같은 것인가.

한국 소매 유통시장의 특수성은 프랑스계 까르푸와 미국계 월마트 등 외국계 대형유통업체들의 한국 진출 실패 사례도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은 또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다시 아사히카와를 향해 출발한다.

삿포로 시 외곽을 어디론지 한참 가더니 드디어 고속도로로 진입. 좀 가다가 오른쪽 아사히카와 방향으로 진격한다. 북해도라 하면 눈덮힌 높은 산들로 즐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어진다. 도대체 산은 어디 있는 거야. 가이드 상, 좀 가면 나온다고. 하하.

목적지까지 2시간 넘게 달려야 하니 운전자 가이드 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일본의 지리와 문화는 물론 정치, 문학, 경제까지 박식하기 짝이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까지 얘기하길래 가이드의 대학 때 전공이 궁금해진다. 기회를 잡아 물어봤다. 짐작대로 국제경영학과 일본학을 했다고. 그리고 일본 여행업에 종사한 이후로 항상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직업에 대한 자세가 되었고, 명품 가이드를 아무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스나카와(砂川) 휴게소에서 휴식한다. 화장실 들르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고 다시 출발. 차 속에서 허 원로, 기행문 누가 작성할 거냐고 추궁하듯 묻는다.

일본서 짧지만 방문교수도 했고 이번 여행일정 조율도 맡았던 김재현 대원이 적합하다는 중론인데, 이 양반 할 수 없이 쓰기는 하겠지만 자기는 뼈만 작성할 테니 나보고 살을 붙이라며 나를 물고 들어간다.

나는 백산 산행기 담당자이지 해외 산행기 담당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경주 남산 산행기도 아직 완성 못했는데... 아, 뼈를 발라 살을 만드는 밤을 두 번이나 더 새워야 한다니.

10명 회원을 가진 산악회 아닌 산악회에 이미 회장, 보급대장, 백산대장, 해외원정대장, 산행기 담당이 있는데, 이번 원정에서 총무, 부총무, 부총무보까지 생겼다. 전 대원의 간부화가 멀지 않았다.

 

후카가와(深川) JC에서 빠져나와 아사히카와의 외국 수종 시범림(소설 ‘빙점’의 무대) 안에 있는 미우라 아이코(三浦綾子, 1922-1999) 기념문학관에 4시 반 경에 도착한다.

 

 

가이드 왈, 시간도 좀 남고 문화적인 것 좋아들 하실 것 같아 이곳으로 모셨다고. 나야 당근 만족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만족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한 시골마을의 산책로 입구에 위치한 이 문학관은 작은 2층 건물과 더 작은 단층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벽에 “이 문학관은 작가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세웠다”고 적혀 있다.

1층 벽면에 장식된 작가 연보에는 주요 연도마다 그 해의 중요 사건을 병기해 놓았다. 그의 작품들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나는 ‘빙점’이라는 소설을 알고는 있지만 읽었는지 여부는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으로 스토리의 뼈다귀는 알게 되었다. 웬 남자 사진이 걸려 있어 누굴까 했는데, 2층에 마침 모범부부 기획전을 하고 있어 살펴보니 남편이다. 몸이 불편한 작가의 구술을 받아 적는 등 외조를 많이 했고 금슬이 좋았기 때문이란다.

2층 반대쪽에는 자유도서관이라 이름 붙은 문 없는 작은 공간이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시해놓고 누구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국의 어느 문학관에서 이런 도서관을 본 적이 있나? 물론 1층 카운터에서는 작품은 물론 관련 소품들도 판매한다.

별관에는 작가의 생전 서재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표찰이 붙어 있어 작가의 앉은뱅이 탁자 앞에 앉아볼 수는 없고, 대신 마루에 걸터앉아 사진만 찍었다.

임 보급대장 건축전문가답게 별관 입구의 자동 닫힘 장치를 보고는 탄성을 발한다. 우리도 이런 거 도입하면 좋겠다면서.

 

5시 20분 경 다시 출발해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간다.

드디어 멀리 눈덮힌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댐이 나타나고 저수지를 따라 서서히 올라간다. 어디서 사진 찍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자말자 가이드 기사 즉시 차를 되돌린다. 전망이 좋은 곳을 지나쳤다는 것이다. 사진들 찍고 경관을 감상한 후 호텔로 직행하다.

 

 

6시 20분 목적지 호텔에 도착한다. 다이세츠잔(大雪山)의 아사히다케(旭岳, 2291미터) 중턱 1,050미터 높이에 있는 아사히다케 온천호텔이다.

정문 상단에 ‘bearmonte’라는 호텔명이 붙어 있다. 곰의 산이란 뜻인데 이 산에 곰이 많나? 주차장에 차들도 없고 로비도 한적해 영업 중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카운터 옆 좌측 공간에 페치카가 있고 주위에 소파들이 놓여 있다. 로비를 둘러보다 반가운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름 하여 ‘喫煙室’. 국립공원 내 호텔이어서인지 건물 내부에 ‘흡연실’을 만들어둔 것일까.

왜 일본은 끽연실이라 하고 우리는 흡연실일까. 끽연실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일본 따라 하기 싫어서...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도 ‘흡연실’이라 부른다.

점심 먹을 때 허 원로, 맨날 원로들끼리만 합방하기 싫다며 회장에게 방 배정 방식을 고민해 보라고 지시(?)했었다.

충직한 김 회장 작은 종이조각들에 숫자를 적어 접은 후 탁자 위에 놓고 선택들 하라 한다. 강제 조정권을 가진 조커까지 넣어서 재미를 한층 돋우었지만, 조커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실제로 행사 가능한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어쨌든 허 원로와 내가 같은 1번을 뽑았다... 허 원로 왈, 나 하고 같이 안 자려고 꾀를 냈는데... 내가 대꾸하길, 날 버리고 가는 사람 안 잡어... 다들 웃음보를 터뜨리고, 누군가 이를 두고 천생연분이라 한다.

어쨌든 사흘 밤을 같이 지냈다. 제비뽑아 갈라져도 조커들이 합쳐놓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게 원로들 대접한다는 핑계로 사실은 원로원 왕따 시킨 것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렇게 방을 배정한 후 짐들을 넣어놓고 호텔 부설 온천사우나를 한다.

노천탕이 있다고 가이드가 자랑해서 노천탕에 갔더니 바깥쪽 벽 위로 하늘이 길게 보일 뿐이다. 내가 들어가니 신씨 성을 가진 두 명의 회원이 뭔가 얘기하던 끝에 건물 층수 매기는 문제가 나오자 내가 개입한다.

건축에 문외한으로 도대체 경사지에 지은 건물의 층수 매기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했더니 일제 때부터 내려오는 건축법에 관련 규정이 있다고. 내가 그게 일반인으로서는 불편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으니 상식에 맞추어 법을 개정하는 게 맞지 않나 하고 쎄우니, 건축 전문가들 왈 규정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며 일축한다.

설명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결국 건축주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다. 다른 분야들도 아직 그렇지만 건축 분야에는 일본식 용어가 유독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마저 그렇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것도 행정 및 관행 편의주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양반들은 벨시리 문제되는 건 아니라는 식이다.

사우나를 마치고 식당 앞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정규식 전 회장대원이 게르마늄 목걸이 하나를 목욕탕 바닥에서 주웠는데 아무래도 내 것 같다고 묻는다. 나는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목욕탕 옷 바구니에 넣어두고 옷 입을 때 바닥에 떨어뜨린 것 같다.

몇 년 전 대마도에 교수연수회 갔다가 마눌님에게 아부하느라 비싼 값 주고 샀는데, 몇 번 착용해보더니 무겁고 불편하다며 사용을 안 한다. 차라리 팔찌가 나았나 싶었다. 값도 헐 쌌는데. 그냥 집안에 돌아다니는 게 아까워서 내가 착용하고 다닌 지가 근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무감각하다니...

다음날 아침에 보니 우리 김 회장도 나하고 같은 걸 하고 있네... 가이드 왈 정작 한국 관광객들에게 팔았던 일본 사람들은 잘 사지도 착용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호구 잡힌’ 기분이다.

호젓한 분위기 있는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두 서너 팀이 더 있다.

 

 

드디어 삿포로 맥주를 마신다. 바깥은 어둠 짙은 산속이고 주위에는 이 호텔만 덜렁 있어 올 데도 갈 데도 없다. 술 마시며 얘기꽃들 피우는데 식당에는 우리만 남아 있다. 내가 보니 종업원들 눈치가 빨리 안마치고 뭐 하냐는 것 같아 대충 마무리하고 방에 모여 한잔들 더 하기로 한다.

원수 같은 원로 두 사람이 자는 방에 다들 모여 술추렴을 더 한 후 일찍들(?) 자러갔다. 이렇게 일본 홋카이도에서의 첫날밤을 맞았다. 뒤편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눈빛을 느끼며...

이 대목에 뼈다귀를 추렸던 김 교수 원고에 대설(大雪)の 장(藏)이라 적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몰라 본인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나? 어허 이럴 수가. 자기가 써놓고도 모른다니... 호텔 건물 어딘가에 적혀 있던 글은 아닐까? 아무도 모른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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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3. 00:00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의 건립연대 오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 (월남동3가 11)에 소재한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에 대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정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에 있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

[개설]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로, 일제 강점기 중반인 1926년에 붉은 벽돌로 지었다. 일본 군대의 마산 진출은 1905년 5월 마산선(馬山線) 철도가 건설될 때 시작되었다. 1909년 12월에 대구 주둔 일본군 헌병 분견소가 신마산에 설립되었고, 3·1 운동 후인 1920년에 이르러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어 경찰이 치안을 맡도록 했다.

1921년에 지금의 마산 중부 경찰서 자리에 있던 헌병 분견대 건물을 증축해 마산 경찰서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 건물을 경찰에게 내어 주고 1926년에 지금 자리에 헌병 분견대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신축 시 대지가 넓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폭 축소되어 건물 주위로 한정되어 있다. 건물 인근에는 분견소장 관사(官舍)가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위치]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월남동 3가 11]에 있다. 남해 고속 도로 서마산 나들목으로 진입하여 마산회원구를 거쳐 국립 3·15 민주 묘지 방면으로 3·15대로[국도 2호선]를 따라 내려가다 3·15 의거 탑과 마산합포구청을 지나 경남 대학교 방면으로 약 13㎞ 정도 이동하면 도착한다.

[변천] 구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마산 지역 독립 운동가들이 잡혀와 고초를 겪었던 근대사의 질곡을 보여 주는 역사의 현장으로 일제의 탄압과 무단 통치를 상징한다. 1945년 광복 후 군 정보기관인 옛 보안 사령부[현 국군 기무 사령부]의 마산 파견대가 ‘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인사들을 사찰했던 곳이기도 했다. 1990년에 보안 사령부가 폐지되고 군 정보 요원들이 철수하면서 건물만 남게 되었으며, 그 후 기무사 출신 퇴역 군인들의 친목 단체인 ‘충호회 경남 지부’와 보훈 자녀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주변에는 상가가 밀집해 있고, 한 블록 뒤에는 저층 주택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택지 외곽에는 중고층 높이의 공동주택 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마산항 및 지금은 폐지된 된 마산항역이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9월 14일 등록 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벽돌 조적조 건물로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이고, 연면적은 175.21㎡이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 놓인 현관 출입 부를 중심으로 양측에 3개씩의 세로 창을 대칭으로 배치했다. 외벽에는 회흑색 벽돌을 사용하여 다섯 줄의 수평 띠를 둘렀는데, 이는 단조로운 벽면을 분할하여 수평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붉은 벽돌의 물성과 세로로 긴 창은 일제의 통치 보조 기관이었던 헌병대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요소이나 벽면에 넣은 여러 줄의 수평 띠는 이를 다소 완화하는 어휘로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는 가운데 복도를 둔 중복도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며, 현재의 출입부 우측편의 사무장실 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관 출입부와 창의 위쪽의 인방은 평아치에 가까운 약한 곡률의 아치 형태로 만들었으며, 창 하부의 흰색의 창대는 외벽 밖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다. 아치형 창 상인방의 중앙에는 사다리 모양의 흰색 석재를 끼워 넣어 창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벽돌로 이루어진 외벽은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를 번갈아 가며 쌓는 영식 쌓기 방식으로 시공한 것이다.

지붕은 단정한 형태의 우진각 지붕으로,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 기와를 덮었다. 정면 현관 출입 부 상부에는 본래 작은 삼각형의 박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철거되었다. 지면에서 4단의 계단을 올라온 지점에 1층 바닥이 있으며, 그 하부는 지하층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건물 우측면의 대지가 좌측보다 낮아 지하층의 우측면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현황] 2008년에 지붕을 해체하여 수리한 후 최근 건물의 원형 복원을 위한 수리를 했다. 보수 전 건물의 창은 본래 목제 오르내리창이었으나 미서기창으로 바뀌었다. 고증과 외벽에 남아 있는 흔적을 고려할 때 건물의 우측면에는 지하층으로 통하는 복도각과 원형창이 시설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일제가 마산에 헌병을 파견하여 치안을 확보함과 동시에 독립 운동가를 탄압했던 역사적인 건물이다. 일제의 강권 무력 통치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당시 외래 건축의 영향을 받아건축된 서양식 건축이라는데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다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등록문화재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1926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잔악한 일본의 대명사였던 헌병대가 민중을 억압하고 독립투사들에게 가혹 행위를 자행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벽면 전체에 돌림띠를 둘러 장식하고 수직의 긴 창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등 관공서 건축물로서의 권위적인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마산헌병 분견대는 1905년 일식의원 건물을 빌어 사용하다가 1909년 12월 2일, 관할이 대구로 옮겨지면서 현 소재지로 이관하여 사무를 개시하였다. 현재의 벽돌조 건물은 1926년에 신축되었으며, 당시 근무인원은 8명이었다고 한다.

 

위와 같이 두 공식 기록에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으로 확정하고 있다.

이 포스팅은 그에 대한 글이다.

 

필자가 아는 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가장 먼저 추정한 이는 한상술 씨다.

한상술 씨는 2000년 「마산의 근대건축에 관한 연구」라는 경남대학교 석사논문 54쪽에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이라고 밝혔다. 

한 씨가 이 논문에서 각주를 달아 근거로 제시한 문헌은 일본인 스와 시로우(諏方史郞, 추방사랑)가 쓴 『마산항지』(1926년) 155쪽이었다.

한 씨가 인용한 『마산항지』 155쪽 '마산헌병분견소' 항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간략한 번역문도 함께 올린다.

 

馬山憲兵分遣所

本町四丁目に在り、明治三十八年中晉州より派遣せられ、現都橋畔にて水上医院なる建物を借充し、其その後管轄は大邱に移り遂ついに馬山憲兵分隊となり現建物は此この時、建築せられしものにて分遣所の建物として比較的広大なるは夫それ之こか為ためなり、幾干もなくして分隊は鎭海に移り建物は分遣所に於て其の儘そのまま之これを使用し別室に郷軍馬山分会事務所を借設せり、本町五丁目角に分遣所長官舎の新築あり、現時の所長は曺長片桐文三氏なり。

마산헌병분견소

본정 4정목(현 월남동 3가)에 있다. 1905년 진주에서 파견되어, 현 중앙동 다리 근처 수상의원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였다. 그 후 관할이 대구로 이관되어 마산헌병분대가 된 현 건물은 그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분견소 건물로서는 비교적 광대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얼마 후 분대는 진해로 옮겨가고 건물은 분견소에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별실에 향군마산분회사무소가 임대 사용하고, 본정 5정목 모퉁이에 분견소장 관사를 신축하였다. 현재 소장은 상사(曺長) 가다키리 분조(片桐文三. 편동문삼) 씨다.

 

그런데 내용을 아무리 봐도 이 글에서는 건물의 건립연도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무슨 연유인지 한 씨는 이 부분을 인용하며 1926년으로 확정하였다.

한상술 씨가 논문에서 밝힌 건립연도 1926년은 이후 여러 후속연구에서 인용되었다.

필자의 글에서도 별다른 확인 없이 그대로 인용하였다. 필자 뿐 아니라 이런 저런 문헌 여러 곳에서 인용되었고, 강의 자료로도 활용되었다.

이 글 첫머리에서 소개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과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등록문화재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에 대한 설명문에서도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으로 소개하고 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두 공식기록의 건립연도 역시 한상술 씨의 논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최근 이 건물의 건립연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도시 건축의 역사를 탐구하고 있는 신삼호 건축사가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12년이라고 했다.

 

신삼호 건축사가 제시한 자료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지도를 소개하며 이 건물의 건립연도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1) ‘조선주차군경리부’에서 1914년 발간한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에 의하면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명치45년 즉 1912년 건립되었다.

이 문건의 ‘마산헌병분대청사 및 부속건물’ 항목을 보면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1912년 2월에 기공하여 같은 해 7월에 준공하였다'고 적혀 있다.

축척 1/300 ‘마산헌병분대배치도’까지 첨부(아래 그림)되어 있고, 아래에서 보듯이 도면 내용도 실재하는 건물과 동일하고 정확하다.

 

<배치도>
<평면도>
<정면도>

 

2) 1913년 마산부가 발간한 『마산부세일람』의 '마산헌병분대' 편에도 이와 관련한 기록이 있다.

'1909년(명치42년) 12월 2일 마산 본정 3정목(현 월남동 3가)에 대구헌병분대분견소로서 설치되어 1910년 7월에 편재개정의 결과 마산분대로 개칭되어 김해, 웅천, 진해, 진동, 배둔역, 고성, 장목포의 7분견소를 관할하고 있으며 지금의 청사는 1912년(명치45년) 7월에 낙성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1916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1/10,000 지도 「마산」 에서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 지도를 확대(아래 그림)해 보면 '헌병분견소'라고 표기된 건물이 정확히 그려져 있다. 위치도 정확하고 건물의 배치형태도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의 ‘마산헌병분대청사및부속건물’에 첨부된 축척 1/300 ‘마산헌병분대배치도’의 도면과 동일하다.

 

 

이 세 자료, 즉 1914년 조선주차군경리부에서 발간한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 기록과 1913년 마산부가 발간한 『마산부세일람』의 내용, 그리고 1916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 「마산」 등이 이 건물 건립연도가 1912년임을 말하고 있다.

도 「마산」은 1912년이라고 확정 짓기보다는 1916년 이전에 지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적어도 건립연도가 1926년은 아님은 확실히 보여준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등록문화제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의 건립연도는 1926년이 아니라 1912년로 추정된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자료만으로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건립연도는 재고되어야 하고 이에 대해 다시 정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 지위를 보장 받는 '등록문화재 제198호'의 건립연도에 대한 문제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사과드린다.

논문에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한 것은 온전히 제 잘못이다. 잘못된 글을 읽은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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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1. 00:00

무등산 산행기-3

무등산 산행기-3

 

장불재를 내려다보며 하산하다.

장불재는 무학산 서마지기보다 훨씬 더 평평하고 너르다. 마산 같으면 만날재 같은 역할을 했다. 한쪽에는 방송중계탑들이 모여 있다.

 

하산길은 일방적인 내리막이 아니다. 중봉으로 가는 넓고 평평한 임도를 마다하고 북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광주천 발원지 표말이 나온다. 정말 소소한 웅덩이, 물은 있지만 마실 수는 없다.

좀 더 내려가니 갈림길이다. 등산객들 대다수는 바로 직진 하산길을 가는데 우리는 중봉 방향 쪽 오솔길로 들어선다.

 

 

능선들의 중간을 가로질러 가다보니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한다. 그러나 정말 이 코스로 잘 왔다.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만드는 데 산 위의 주상절리와 함께 중요한 요인이 된 엄청난 규모의 너덜을 두 개나 건넜다.

앞서 가는 일행들이 일렬로 너덜강(경상도식 이름)을 건너는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서 본 저승의 어느 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무슨 고찰의 터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가다보니 작은 갈림길이 나온다. 먼저 도착한 허 원로, 한 등산객에게서 막걸리를 얻어 마시고 있다.

혼자 마시기 미안한지 권하는 잔을 모두들 마다하다. 산행 중에서는 술 안 마시는 게 좋다고 말한 게 당신인 것 같은데...

산악회 이름을 영자(영혼이 자유로운,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산악회로 바꾸자는 실없는 얘기도 하며, 무등산이 멋지다며 칭찬도 하며, 한참을 왔나보다 하는데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씩씩하게 큰 길을 따라 얼마 안가서 좌측으로 상당히 가파르게 꺾이는 곳에 멀리 무등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사각정이 하나 있다.

잠깐 휴식을 취한 정자의 이름은 만치정(晩峙亭; 나뭇꾼들이 저녁 무렵 풀피리 불며 쉬어가는 언덕을 의미하며 늦재의 한자식 표현).

 

 

 

이제 다들 다리가 좀 아픈지 뒷걸음으로 내려온다. 희한하게도 뒷걸음질 치면 모인 다리가 좀 풀어지는 듯안 느낌이 든다. 나만 그런가? (그 며칠 후 신문에서 뒷걸음치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기사를 봤다.)

원효사 뒷문 쪽에 도착하니 지도가 그려진 팻말이 하나 있다. 다들 어디쯤인지 궁금해 지도를 바라보는데 현재위치 표시가 없다. 역시 허 원로, 지나가던 국립공원 차량 탑승자에게 불평 섞인 민원을 제기한다.

원효사 일주문을 통과하니 바로 주차장이다. 오늘 산행길은 약 12km. 아~ 장단지가 모여온다.

점심 겸 저녁, 이 역시 허 원로가 순대가 유명하다며 추천한 창평전통시장의 창평장터국밥’.

식당으로 가기 위해 무등산을 조금 내려오니 어제는 보지 못했던 계곡 초입에 마을이 나타나고 어젯밤(?)을 보냈던 단풍산장’의 큰 간판이 보인다.

좀 더 내려오니 무등산 수박 단지라는 대형 입간판도 다가선다. 사실 이번 등산 전까지는 무등산 하면 수박밖에 몰랐다. 수박을 팔았더라면 반드시 샀을 것이다.

삼거리에서 우측에 있다는 소쇄원도 무시하고 좌측 광주호를 끼고 '창평장터국밥'으로 GoGo.!

목적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등산이 광주 동쪽 끝에 있고 담양군과 경계를 이룬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창평장터국밥'집 사장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기 집 자랑을 한참 늘어놓고 우리가 앉은 방 벽에 그려진 풍악놀이 그림도 자랑한다. 하도 생동감이 있어 한 컷했다. 감상들 하시며 추억도 되새겨보시길 ...

이 글을 여기까지 써놓고 앞선 산행기를 고참원로 블로그에서 원로 시키는 대로 했더니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코치가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못 찾았을 것이다.

블로그의 마지막 산행기가 20161229일자 비슬산 산행기다. 100산을 근 2년이나 안 간 것인지 아니면 그 후로는 산행기를 안 쓴 것인지 헷갈린다.

몇 개 더 살펴보니 대개 사진 위주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에이, 미리 보았더라면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었냐?

 

다시 섬진강휴게소.

커피 한 잔씩 들며 쉬었다가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다들 좋았다는 감상 피력하며 다시 만날 기약을 하다. 고작 일주일 후 무학산 둘레길에서.

무등산(無等山), 내 맘대로 해석하길,

광주인들에겐 같은 등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산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등급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산이다. 나 같은 초보 등산객도 큰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무등등한 산이기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지만 올 기회가 없었던 산, 다시 올 기약을 하기도 어려운 산.

안녕!

 

[광주 무등산 산행 개요]

* 20181130~121: 12

* 참가자 : 허정도(원로, 해외원정대장), 서익진(가짜 원로, 백산 산행기 담당), 김재현(예비 회원), 정규식(전 회장), 신삼호(전 백산대장, 육대주추진단장), 손상락, 임학만(보급 및 백산대장), 신성기(신입회원)

* 불참자 : 김용운(회장), 김흥수

* 코스 : 창원마산 3.15아트센터 주차장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 광주서구 나주식육식당 단풍산장(일박) - 원효사 주차장 무등산 옛길 입구 중봉 위 능선 삼거리 서석대(정상) - 입석대 장불재 광주천 발원지 너덜강 만치정 원효사 주차장 장평장터국밥 섬진강휴게소 3.15아트센터 - 해산

 

 

,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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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4. 00:00

무등산 산행기-2

무등산 산행기 - 2

 

갑자기 울리는 알람 소리. 아침 6시다.

8시에 식당에서 바지락 죽 먹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기상이 6시람. 7시 기상해도 충분한데... 다들 나이 값 하느라 그런지 별 불평도 없이 일어난다.

바지락 죽 일인당 1만원. 그러나 그 환상적인 맛 덕분에 100산대장 어젯밤 받았던 비난을 상당히 회복했다.

 

 

주인장이 포장해준 닭 조리탕 남은 것을 받아들고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데 차오차오 개가 우리 옆에 어슬링거린다. 이름이 문수란다. 좀 위에 있는 원효사에서 키우다 사정이 안 되어 자기에게 그냥 주었단다.

문수와 함께 사진 찍으려고 앞에 앉혔는데 셔터 누르는 찰나 도망가 버려 실패했다. 그래 환생하신 문수보살께서 어찌 중생들과 같이 사진 찍으려 했으랴.

830 숙소 출발.

 

금방 원효사 앞 사설주차장(3천원/하루)에 주차하고 즉시 산행을 시작했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인 줄은 안내판 보고 이미 알았지만 산행로(팻말에는 옛길로 되어 있다) 입구에 수 명의 직원이 서서 감시하는 줄은 몰랐다.

입산자 자동 체크 장치도 있다. 어흐, 담배와 라이터 뺐길까봐 조바심이 들었는데, 조사는 하지 않는다.

막 오르막으로 들어서다가 물을 준비하지 않은 게 생각나 다시 내려와 가게에서 생수 작은 것 8개를 신삼호 대원이 구입해 나하고 4개씩 나누어 배낭에 넣었다. 다른 회원들 이미 올라가 버리고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안 올라가서 만난 제철유적지 푯말을 그냥 지나쳐 올라가니 김덕령 의병장 묘 푯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유심히 읽어본다. 그의 활약상과 무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에 관한 간단한 기록이다. 언제 어디서나 영웅을 시샘하는 자들은 있게 마련인가!

 

 

조금 더 올라가니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란 나무 팻말이 나온다. 나뭇꾼들의 땔감이나 숯 이동길이었다가 1960년대에 무등산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선 후부터 보급품 나르던 길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그냥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봉에서 오는 능선 길과 만나는 곳에 도착해보니 절반 이상은 올라온 것 같기도 하고, 화장실 겸 휴게소가 있어 보급대장이 나눠준 보급품을 먹으며 줄어든 에너지를 재충전하다. 보급대장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다시 출발해 얼마 지나니 갑자기 주상절리 형태의 암벽이 턱 하니 나타난다.

사진들 찍으며 야단법석 하는데 지난 가는 등산객 진짜 서석대는 좀 더 위에 있단다. 약간 머쓱해진다.

서석대(瑞石臺) 장관을 바라보는 전망대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주상절리는 보통 해안가에 있는데 산봉우리 주상절리대라 처음 본다. 국내 유일한 것인지 궁금하다.

 

 

좌측으로 난 길을 돌아서 올라가니 서석대 위쪽 뒤편에 무학산 서마지기 같은 펑퍼짐한 곳이 나오고 무등산 정상이 정면으로 마주보인다.

등산객인 시민은 더 이상 접근금지다. 군부대가 무등산 정상의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을 점령한 것이다.

푯말에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정상의 원래 모습과 비교해 보니 암석봉우리들을 통째로 파괴해 버렸다. 이러한 만행을 과연 1960년대 야만의 시대, 군부독재정권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저지를 수 있었을까? 전두환의 광주시민 학살도 그 연장선임을 알겠다.

서석대(1100m)라고 새겨진 비석 앞에서 학봉산악회 현수막을 앞세우고 단체증명사진을 찍다.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현수막이 주인공이다. 이 사진을 위해 여기까지 발을 절뚝이며 올라온 것이다.

 

 

 

서석대는 한자로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설판은 이 유식한 해석이 식자우환임을 금방 깨닫게 한다. 선돌의 한자식 표현(음 차용)으로 고대 선돌 숭배신앙의 중요한 표상이라는 거다. 반만 맞춘 것도 아니다. 전혀 맞추지 못했다.

! 상식(常識)의 허망함이여! 세인이여, 상식이 많다고 자랑하지 말지어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입석대(立石臺)도 마찬가지로 선돌의 한자식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역시 그러함이 곧 확인되었다.

사방이 확 트인 곳이라서 그런지 올라올 때는 없던 세찬 찬바람이 횡행한다.

이제 보급품을 소진시키고 하산할 시간이다.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백산대장 멋진 곳을 찾았다. 돌병풍으로 둘러싸여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돌병풍을 우측으로 돌아가니 아늑한 서향받이 조그마한 분지가 나타나고 중심부에 파헤쳐진 무덤(?)이 있다. 문외한이 봐도 명당자리인데... 국립공원 내 무덤의 이전 공고를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짐승이 그랬는지 파헤쳐진 이유를 모르겠다.

드디어 100산대장이 자기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반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남은 보급품을 끌러먹는데 여전히 온기를 간직한 닭도리탕이 남다른 맛을 준다.

 

 

산 정상에서 먹는 닭도리탕은 세상에서 역사상 우리가 처음일 것이고 향후 역사에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쾌거가 아닐까.

기대하지 못했던 커피까지 나눠주는 보급대장. 모두들 만족하며 선견력 있음을 맘속으로(?) 칭송하다. 언젠가 송덕비라도 세워줘야 하지 않을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본격적으로 하산한다. 곧 입석대를 만났다. 단체도 찍고 개인별로도 찍고.

 

 

입석대에 관찰사 등의 이름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실감난다.

전 세계 유명 관광지마다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하니, 낙서의 민족인지 기록의 민족인지 헷갈린다. 나도 어딘가 이름을 새겨 놓아야 할까봐? <<<

글,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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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25. 00:00

무등산 산행기-1

무등산 산행기 - 1

 

학봉산악회 전 100(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대장 신삼호 회원에게 몇 년 전부터 약속했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랜만에 가는 100산 등산이라 인자부터 산행기 꼭 쓰겠다고 덜컥 약속해삤다.

또 어기자니 면이 서지 않고... 잘 찍지도 않던 사진도 찍고 하니 허정도 고참원로 날리는 멘트, “우와 열심히 하네, 기대된다.”. 부담시럽게... 안 쓰모 안 될 이유가 또 생기뿌릿다.

 

20181130일 오후 2, 3.15아트센터 주차장에 8명의 선수 집결. 신삼호 회원과 임학만 회원의 승용차 2대에 내맘대로 정한 원로팀과 비원로팀으로 나눠 타고 출발.

원로팀 차 안의 화제는 단연 허정도 회원이 출발 전에 한 권씩 나눠준 따끈따끈한 최신작 도시의 얼굴들이다. 마침 경상대 출판부장 전화인지, 여러 곳에서 주문이 온다는 얘기를 훔쳐듣다.

대박 예감이 든 동승자들, “대박==이라며 벌써부터 한턱내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역시 반격의 대가, 이 위기 속에서도 받아친다. 한턱 약속 대신 서평을 써서 어디든지 올려라는 거다. 밥 한 그릇, 술 한 잔에 서평 하나, 어째 갑자기 엄청 밑지는 장사라는 느낌이 확 든다.

웃고 떠들다보니 벌써 휴식장소로 약속한 섬진강 휴게소. 커피 한 잔씩 들고 다시 출발.

서광주 인터체인지였던가를 돌아나오니 차창으로 흘러가는 나에겐 좀 생경한 빛고을 광주 거리다. 5.18의 비극을 잠깐 생각하게 하더니 곧 떠오른 추억의 얼굴 하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연천 신망리 6군단 직할 포병대대 알파소대에서 2년 정도 같이 군대생활을 했던 광주 출신의 한 친구다. 시도 쓰고 노래도 잘 하던 화가였다. 그는 사지반장, 나는 2.4종 창고지기. 둘이 죽이 맞아 야산 꼭대기 사지반 참호에서 시간을 죽이고 추운 겨울밤 페치카 불에다 라면을 반합에 끓여먹던 추억이 아스라하다.

제대 후 꼭 만나자고 했지만 40년이 다가도록 만나지 못했다. 그나 나나 생활에 쪼달렸던 것 같고, 그동안 마산과 광주는 얼마나 멀었던가? 남해고속도로가 뚫려 공간은 지척이 되었지만 심리적 거리는 그만큼 줄지는 않은 것 같다.

광주 서구 어느 이면도로의 나주식육식당.’ 허원로의 추천으로 100산대장이 일찌감치 5시에 예약을 했단다.

 

 

이 시간에도 손님이 있는 걸 보니 유명한 맛집인가?

소고기 생고기가 부위별로 두 접시. 꼭 육회 같다. 생고기와 육회의 차이를 두고 설왕설래하다가 여주인을 불러 물었다.

정답: 오늘 갓 도살한 고기는 그냥 먹는 생고기, 하루만 지나면 양념으로 버물러 먹는 육회.

 

여주인은 바깥주인이 직접 도살한 소만 사용하며 좆나게 맛있다는 걸쭉한 말발에 모두들 나자빠지다. 어원 놀이 끝에 경상도에서는 좆빠지게’->‘좆나, 전라도에서는 좆나게로 변했고, 최근 전국적으로 졸라로 전화되었다는 추정에 모두들 동의하다.

허 원로, ‘졸라의 어원이 숭하니 애들에게 알려줘 가급적 안 쓰게 해야 한다고, 원로다운 결론을 내렸다.

유사어로 허벌나게허벌은 뭘까? 아무도 몰라. 안주인 얘기로 근처에 옛날부터 도살장이 있었다 하던데, 나오면서 보니까 인접 거리에 식육식당 간판이 상당히 많고 용감하게도(?) ‘백정식육식당이라는 간판을 버젓이 내건 집도 있다.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내비아가씨 시키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서석동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김재현 교수 왈, ‘상스러운 돌이라고 해석하자 다들 군말 없다, ? 모르니까. 근처에 그런 방구가 있나보다 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실이 드러날 것임을 그때는 어찌 짐작이나 했으리.

숙소가 무등산 어딘가 산장이라는데, 무등산은 보이지도 않고 산자락을 올라가다 고개 비슷한 것을 넘어서더니 다시 내려간다. 무등산이 무학산보다 200미터 이상 더 높다는데, 아이고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곧 도착.

이름 하여 단풍산장’.

 

 

초겨울 단풍은 모두 지고 없는데 처음 보는 개 한 마리 반갑게 맞이한다.

차오차오 종으로 중국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인기 만점 견공이라나. 그러자 개님이 더욱 멋있어 보였고, 쓰다듬어주며 같이 좀 놀아주었다.

 

 

그런데 식당 집합 신호가 떨어진다. 이른 석식을 먹고 바로 달려왔는데 산장 식당에 닭조리탕을 예약해놓았다고... 모두들 구시렁거리면서도 100산대장이 하신 일을 어쩌겠는가... 막걸리를 안주삼아 겨우 몇 점씩 먹고는 대부분을 남겼다.

주인장이 내일 아침에 다시 데워줄테니 산에 올라가서 먹으라 한다. 으잉, 그런 생각은 꿈에도... , 여기에도 100산대장이 숨겨놓은 또 하나의 반전의 복선이 숨어 있을 줄이야.

금방 방으로 돌아와 각자 주무실 준비하고 거실에 모였다.

100산대장이 영원한 보급대장의 진가를 다시 발휘하다. 수출용 진로소주 큰 병 하나와 중국산 술 큰 병 하나를 꺼내놓는다.

 

 

소주, 맥주, 막걸리에 이은 술 파티 겸 회의 아닌 회의. 무엇보다 신입 김재현과 신성기의 정식 가입 여부를 논의하는데, 허 원로, 오늘 하는 것 보고 결정한다는 엄포를 놓자 학봉산악회 회원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려는 듯 다른 기존 회원들도 맞장구치며 분위기를 잡는다.

신성기 예비회원 눈치 빠르게도 원로들 주무실 방에 잽싸게 침구를 깔아놓고 오자 허원로 당장 합격 판정을 내린다. 속이 훤히 내다보인다. 그럼 김재현 예비회원은?

철학과 교수답게 소신과 강단이 있다. 회장, 100산대장, 해외원정대장, 육대주추진단장, 보급대장, 무슨 소린지 출발 때부터 해온 정신없는산악회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내년 시산제에서 무릎 꿇는 것 보고 결정한다는 판결에 내가 왜 무릎을 꿇어라는 얼굴이다. 모두들 산신에게 무릎 꿇고 절한다는 의민데...

나도 후명년 시산제까지 1년간 의무 산행하는 것 본 후에 결정하자고 공갈을 친다. 사람 놀려먹고 놀림감인 줄 알면서도 박자 맞춰주는 재미로 화기애매한학봉산악회.

해외 원정 산행안이 나와 논란 끝에 425일에 34일 북해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해외원정대장 허원로가 김재현 회원(?)에게 일정 짤 것을 지시하고 김 회원(?) 그렇게 하겠다 한다. 이거 도대체 앞뒤가 맞는 거여? 정신없는 산악회 맞는 거 아녀?

시간가는 줄도, 두 병의 독주가 비는 것도 몰랐다.

11시가 넘었나? 술이 떨어지자 회원인지 아닌지 애매한 김재현 예비회원, 술 더 없냐고 큰소리친다. 막 가자는 건가? 100산대장 잽싸게 식당에 가서 막걸리 3통을 더 가져온다.

이젠 김재현 썰 푸는 판이다. 허 원로는 습관대로 벌써 누워 가늘게 코를 골고 몇 사람도 자리에 누웠다.

내가 같은 직장 다녔다고 끝까지 김재현을 상대하고 다른 몇 사람도 같이 어울린다.

김재현 철학자 삼미(三味)’ 이론을 전개한다. 모임은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묘미가 있어야 한단다. 정말 괜찮은 이론이다. 다른 데서 써먹을 만하다. 막걸리도 떨어지고 파장이다.

김 교수를 방으로 끌고 들어와 눕히고 나도 옆에 누워 잠을 청한다. 조금 있다 부시럭 소리가 나더니 김 교수 일어나 여기가 어디야? 나 집에 갈거야라며 고함친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는 여기 집이야, 누워 자면 돼해도 여러 번 같은 고함을 치더니 진짜로 일어서서 몇 발짝 옮겨 거실로 나가더니 폭 고꾸라져 잔다. , 고작 서너 걸음 가더니 집에 다 온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철학자의 술 쿠세(?)는 정말 점잖다. 고함 몇 마디로 끝이다. 아침 기상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화장실 찾는 사건 있었다는 후일담은 나는 자느라 알지 못했다.)<<<

글,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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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3.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1. - 창원부 해동지도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 포스팅될 주제는 조선후기 창원지역의 고지도를 소개하고 해제하는 것입니다. 준비는 신삼호 건축사가 합니다.

 

(주)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이면서 경남건축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신삼호 건축사는 건축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중견 건축가입니다.

 

자료는 신 건축사가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접하게된 것들이며 분량은 약 20 회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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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리하는 목적은 조선후기 창원시 지역의 도시경관을 파악하는데 있다. 조사방법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군현지도의 분석과 해제이다.

 

 고지도에는 풍부한 지리정보와 인문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현재의 도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 흔적을 추적하는 것도 지역도시사에 큰 밑거름이 되리라 본다.

 

 지도는 고지도와 근대지도로 구분되는데, 이 중 고지도는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지도가 제작되기 이전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조선시대 고지도(古地圖) 제작유형은 조정에서 통치 차원의 목적으로 제작된 ‘군현지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창원시 지역에 해당하는 군현은 창원부, 웅천현, 진해현, 칠원현 4개 지역의 군현지도를 파악해야 현재의 창원시 지역의 경관을 파악할 수 있다.

 

 고지도 자료의 수집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고지도 원문 자료를 통해 군현지도를 조사하였다. 

 

 4개 군현이 모두 포함된 지도를 찾아본 결과는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유형

지도명

제작연대

제작기법

군현 지도

해동지도

1750년초

필사본/ 회화식

비변사지도

1745~60

필사본/ 방안식

여지도

1767년

필사본/ 회화식

조선지도

1750~68

필사본/ 방안식

지승(地乘)

1776년 이후

필사본/ 회화식

광여도

19세기 전반

필사본/ 회화식

 

 

고지도상의 창원부 지역은 구. 마산.창원지역 일대를 말하며, 1425년 창원도호부 제정이후 1895년 창원군으로 행정개편 될 때까지 약 450여 년간 존재한 지역이다.

 

 웅천현은 구. 진해시 지역일대이며, 진해현 지역은 진동, 진전, 진북면 일대 삼진지역일대이며, 칠원지역은 현재의 함안군 칠원면 일대와 구산면을 포함한 지역이다.

 구산면이 현재 창원시 지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칠원현 지도도 조사대상에 포함하였다.

 

연재순서는 제작연대순이며, 연재는 다음과 같이 할 계획이다.

 

1. 창원부 해동지도 및 地志

2. 웅천현 해동지도 및 地志

3. 진해현 해동지도 및 地志

4. 칠원현 해동지도 및 地志

5. 창원부 비변사지도, 웅천현 비변사지도

6. 진해현 비변사지도, 칠원현 비변사지도

7. 창원부 여지도 및 地志

8. 웅천현 여지도 및 地志

9. 진해현 여지도 및 地志

10. 칠원현 여지도 및 地志

11. 창원부 조선지도, 웅천현 조선지도

12. 진해현 조선지도, 칠원현 조선지도

13. 창원부 地乘지도 및 地志

14. 웅천현 地乘지도 및 地志

15. 진해현 地乘지도 및 地志

16. 칠원현 地乘지도 및 地志

17. 창원부 광여도 및 地志

18. 웅천현 광여도 및 地志

19. 진해현 광여도 및 地志

20. 칠원현 광여도 및 地志

 

 

창원부 해동지도(1750) 및 지지

 

- 창원부 해동지도 (古大44709-41)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지도이다.

- 지도개요 : 제작시기: 1750년 (영조 26), 규격: 47.0×30.5cm, 구성: 8책

 

 지도의 제작은 자연 지형지물인 산계, 수계를 회화식으로 표현하고, 인공요소인 건물은 행정의 중심지인 읍치를 크게 확대하고 나머지 주변지역은 소축척으로 표현하였다.

 

 건물은 읍성과 읍성내 관아건물을 강조하고, 읍성 주변에 향교와 역원, 사찰 등을 표현하였다.

 

 다음으로 마을의 역사를 상징하는 고적지를 소개하고 읍내 도로는 적색으로 표현하였으며, 인접 마을간 거리는 별도의 주기로 표현하였다.

 

 

 

 

 창원읍성(도계동 일대)을 중심으로 주변을 표기하였다.

 읍성의 배치는 북면쪽의 무릉산과 백월산, 구룡산, 천주산을 끼고 있으며 서측에는 두척산, 동측에는 전단산이 남측에는 반룡산이, 동남측에는 웅산과 장백산이 두척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읍성을 중심으로 읍성 아래측에 부내면, 동면, 서면, 남면, 북면 5개의 행정구역이 표기되어 있다

 읍성내에 ‘창원부’라고 적혀있으며 5개의 건물이 있다. 중앙에 사미당, 좌측에 회산루, 우측에 연정, 후편 좌측에 객사, 우측에 아사라고 기재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읍성 밖에 공공건물들이 표기되어 있다. 읍성 서측방향에 지금의 합성동 일대에 있었던 우병마절도사가 있었던 성을 구병영으로 표기하고, 성내에 향교가, 두척산 아래에 서원이, 두척선 뒤편에는 광산사가, 월영동 해안에 월영대가, 남성동 일대에 船所, 북측으로는 무령산 아래에 심암사가, 백월산 아래에는 남백사가 표기되어 있으며, 동측으로 전단산 아래에는 봉림사와 자여관이 있으며, 남측 웅산 아래에는 성주사가 표기되어 있다.

 

 주요 교통로는 적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나루터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밀양계에 면한 주문연진과 손진이 표기되어 있다.

 통신시설에 해당하는 봉수는 두척산 아래 성황봉과 저도 서측에 있는 여포봉이 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부내면, 동면, 서면, 남면, 북면

5

자연지리

산천

구룡산, 백월산, 무릉산, 천주산, 두척산, 반룡(산),

전단산, 웅산, 장백산, 저도

10

고개

굴현, 객현, 노현, 안민현, 두척현, 이리현

6

나루터

주문연진, 손진

2

인문지리

읍성

객사, 아사, 사미당, 회산루, 연정

5

교육

향교, 서원

2

사찰

영암사, 남백사, 봉림사, 성주사, 광산사

5

역원 등

자여역, 안민관, 여포봉, 성황봉, 강소

5

고적

구병영, 월영대, 내포향, 고운대

4

 

창원부 해동지도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방리

부1면, 부2면, 하1면, 하1면, 상1면, 상2면, 상3면, 동1면, 동2면, 동3면, 북1면, 북2면, 북3면, 서1면, 서2면, 서3면

16

호구

- 호구수 : 7,386호

- 인구 : 27,739명 (남자 11,632명, 여자 16,107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1,213명

- 監營屬 ; 285명

- 統營續 : 1,627명

- 右兵營屬 : 837명

- 左水營屬 : 9명 반

- 金海鎭屬 : 1,088명

= 합계 5,059명

봉수

 성황봉수, 여음포봉수

 

경제

元田沓

- 6,293結11負9束, 과전1,611결90부7속

 

案田沓

- 4,724속88부13속(案田1,691결79부6속, 案沓3,034결9부7소)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92석

- 各樣雜穀 : 3,420석

- 別餉米 : 1,104석

- 監營米 : 44석

- 監營自營 各樣雜穀 : 27,598석

- 統營米 : 1,551석

- 雜穀 : 2,477석

- 戰兵舡價 및 除留米 : 174석

- 諸置米 : 486석

- 各樣軍作 및 射木作米 : 174석

- 作租 : 151석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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