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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1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마산 최초의 근대 건축>

개항 당시 각국거류지에는 러·일 영사관 건물 외에 러시아와 일본 민간인의 건물 몇 채만 있었을 뿐, 일본인 대부분은 한인거주지인 마산포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9년에 건축한 러시아 영사관 건물입니다.
마산이사청과 함께 지은 마산 최초의 2층 건물로 조계지 언덕에 걸터 앉은 모습이 위용 당당합니다. 경남대 평생교육원(구 창원군청) 옆에 있었습니다.


 

조계지 내에서 경제활동을 했던 러시아인들은 조계지내의 대지주이면서 무역업과 러시아군함에 대한 잡화용달업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함석이나 기와로 된 주택을 직접 지어 살았습니다.
1900년 연말 현재 조계지 내 러시아인 건물은 모두 6동이었으며 그 중 한 채는 건평 80평으로 호텔업을 목적으로 건축 중이었는데 조계지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위치는 조계지 남단 해변의 전망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현 경남대학교 정문 앞 광장 부근으로 추정됩니다.

경술국치 전인 이 시기에 식민 지배를 위한 법원 등 관아와 교육시설․금융시설을 비롯하여 요정․상점 등의 상업용 시설들이 일본에 의해 들어섰으며 이 외에 서양선교사들에 의해서 종교시설과 교육시설들도 지어졌습니다.
건물의 양식은 대부분 의양풍(서양식과 유사한 형식) 혹은 일본식의 단층 건물이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대표적인 관아건물로 1908년에 지어 마산이사청으로 사용됩니다. 목조2층으로 지금의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구 창원군청) 자리에 있었습니다.
1899년 지은 일본영사관 건물을 헐고 지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 건축한 부산법원 마산출장소 건물입니다.
목조2층 양식으로 마산시청 앞에 있는 현 마산법원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음은 개항기(1899년-1910년) 마산의 근대건축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상술의 논문자료입니다.
 

 

No

건 물 명

현 위 치

건축연대

有無

구조 및 규모

양식

면적

비고

1

일본영사관

대내동

1899

목조2층

르네상스풍

 

1906년 마산이사청

2

러시아영사관

대내동

1899

목조2층

식민지양식

 

현 월포초등교 내

3

마산우편국

월남동4가

1902

목조1층

의양풍

42평

1930.2.24중앙동이전

4

마산포교회

성호동

1903

벽돌조1층

개량한식

 

문창교회전신

5

심상고등소학교

장군동3가

1904

목조1층

의양풍

384평

일본인학교, 후 이전

6

마산공립소학교

 

1904

 

 

 

1901開校,성호초등교

7

마산병원

중앙동철도용지

1905

목조1층

의양풍

75평

도립병원전신

8

마산 역사(驛舍)

중앙동철도용지

1905

목조1층

일식

 

 

9

제일은행출장소

월남동3가

1907

벽돌조1층

의양풍

 

 

10

서전(西田)주조장

홍문동

1907

 

 

112평

마산最古酒造場

11

마산이사청

대내동

1908

목조2층

의양풍

 

1914년 마산부청

12

망월루

두월동1가

1908

목조3층

일식

96평

여관, 요정

13

심상고등소학교

중앙동

1908

양풍 平家

 

612평

이전하여 신축

14

창신학교

상남동87번지

1909

목조1층

의양풍

56평

호주선교사(신교)

15

마산신사(神社)

문화동

1909

 

 

 

 

16

마산헌병분대

월남동3가

1909

 

 

 

현건물은1926년신축

17

육군중포병대대

월영동

1909

기와

 

 

여러 채가 있었음

18

환서좌(丸西座)

신마산

1909

목조2층

 

 

5-600명 수용

19

마산 세관

월남동4가

1910

목조1층

의양풍

 

 

20

지방법원마산지청

중앙동4가

1910

목조2층

양식

 

 

21

성지학교

완월동206번지

1910

벽돌조1층

양식

 

프랑스선교사(구교)

22

부산감옥마산분감

장군동

1910

 

 

 

 


여기서 소개한 건물들은 그 시기를 대표할만한 것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외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전 글에서 밝힌 대로 보험회사․목재상․정미소․양조장등의 공업시설과 마산청과물 시장 등의 유통시설, 여러 개의 유곽과 30여 개소의 여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이 시기에 매우 다양한 시설물이 들어서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표의 세번 째에 적힌 마산우편국(1902) 사진입니다. 의양풍으로 목조1층이었습니다.


여관과 요정으로 사용되었던 망월루 사진입니다.
목조 3층 일본식 건물로 창원천변에 있었는데 사진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처럼 영업규모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한편, 일제는 1906년부터 부산․인천․성진과 함께 마산에도 항만 및 세관 설비공사에 착수하였습니다.
1908년에서 1910년까지 신마산 세관에 종래의 부두연장 84.5m에 돌제(突堤)의 연장 10m를 보강해서 등대를 설치하고 계단이 딸린 목조잔교를 설치했습니다.
다음 사진이 그 때 설치한 마산세관의 목조잔교입니다.


 

세관 구내에 목조 단충의 파상형(波狀形) 철판지붕으로 된 50평 규모 창고 1동을 건설했으며, 세관 주위에 철책을 두르고 세관지서장 관사(목조 23여 평) 1동도 이 시기에 신축하였습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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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3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 - 개항기

'진주가도' 알 수 있는 유일한 지도

<租界地現況圖* (조계지현황도*)>

1899년 / 창원감리 / / / 「창원보첩」감리보고 제7호 / 奎章閣

마산보다 2년 앞선 1897년에 개항한 목포와 진남포의 조계지에서 러시아가 영사관 부지를 턱 없이 넓게 차지하려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은 마산조계지에서 무려 60,000㎡나 되는 땅을 영사관 부지로 먼저 차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조계장정 제10관 제2조에 각 영사관 부지는 15,000㎡를 넘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를 무시하고 나섰던 겁니다.

일본의 이러한 위법적 의도를 간파한 창원감리가 이 사실을 외부대신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본 지도는 그 보고서에 첨부되었던 것입니다.

지도를 그린 목적은 일본의 영사관부지에 대한 야욕을 저지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보면 초기 마산각국공동조계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비록 축척도 없이 붓으로 그린 재래식 지도이지만 조계지내의 당시 모습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도면 중앙부에 일본영사관의 영역을 넓게 표시하고 있는데, 이 만큼의 토지를 차지하려 했다는 겁니다.

지도 설명을 위해 예목(例目)을 표기해 놓아서 구로(舊路)․신작로․표목․해관․천․인가 등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표목은 각국공동조계지가 결정되면서 박은 것이며, 조계지 내의 인가(人家)는 당시 월영리를 이룬 마을로 보입니다.
영국․일본․러시아 영사관 예정 부지가 영관기(英館基)․일영관기(日領館基)․노관기(露館基)로 표기되어있으며 서쪽에 월영대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도에는 바다로 내려오는 세 개의 하천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운데 창원천은 지금도 시내 중심을 흐르고 있지만 조계지의 경계점인 왼쪽 월영천(현 경남대 정문 부근)과 오른쪽 신월천(현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우측도로)은 복개되어 지금은 땅 속에서만 흐르고 있습니다.

지도 좌측에 칠원계(漆原界)라는 표시는 당시 자복포를 포함한 현재의 경남대 서쪽이 칠원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편 가운데 바다와 면해있는 기역자 부지는 세관(당시 해관)입니다.

해안 가까이 직선으로 신작로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개항 직후 이미 예정되었던 주도로의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신작로는 마산 최초로 개설된 근대식 도로인데 개설 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산의 주간선도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작로 좌측 끝부분이 경남대 앞 월영광장인데 그 곳이 그 때까지는 바다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시내 한복판인 월영대의 위치도 당시에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이었다는 사실까지 학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특히 본 도면에 의해 ‘진주가도’라 불리면서 창원-마산-진동(당시 진해)-진주로 연결되던 구도로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옛날 마산사람들이 진주방면으로 갈 때 이용했던 길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해안과 마을 사이를 지나는 꾸부렁한 저 길이 마산포를 진동지역을 거쳐 고성, 진주와 이어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 길을 오고갔던 마산포 사람들의 발자국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지도의 위치를 현재로 옮겨 보았습니다.
그림의 방향이 다릅니다만 비교하기는 쉬울 겁니다.
푸른색이 위 지도에 표기된 세 개의 하천이며 황색직선은 위 지도에 직선으로 반듯하게 난 신작로, 곧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마산시내의 간선도로입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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