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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마산포에서 제일 번화했던 곳은?>

1910년 경 마산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은 어디일까요?

복원도에 나타나는 1,157필지를 각각 그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해 각 토지를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결과를 그림으로 나타내 당시 도시상황을 확인하였습니다.

토지과세가격과 비교하여 토지등급으로 지가(地價)를 분류해도 오류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음 그림은 남성동(당시 元町) 1번지의 사정토지대장입니다.
노란색 원 안에 등급이라는 표기가 되어있는데 등급이 몇 차례 바뀐 흔적이 있습니다.




복원도의 땅 1,157필지는
최저 17등급에서 최고 77등급까지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모두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그림으로 나타내 보았습니다.
 색깔이 짙을수록 비싼 땅, 번화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마산창을 중심으로 서굴강과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남성동 해안 일대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의 남성동 파출소 아랫길(전 중소기업은행 앞 도로)이 가장 요지(要地)였는데 이 도로변에 1920년 마산 최초의 한국인 회사 「원동상사」가 창업하여 20년대 말 사옥을 신축하였습니다.

중심상권은 중국인 땅이 많았던 부림동과 창동의 경계가 되는 현 경남은행 부림동 지점 앞길로 이어져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창동 네거리의 동서방향 도로변도 지가가 높았습니다.

이러한 중심상권의 영향으로 창동․수성동․부림동․중성동으로 상권이 확산되어 있었지만, 마산포의 동쪽지역인 동성동 일대는 토지등급이 낮아 당시에는 주거지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지난 주에 포스팅한 일본인토지소유상황도와 비교해보면 일본인의 마산포 토지매입 현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비교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그림을 올리겠습니다.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어선창 일대 좁은 지역의 소규모 고가(高價)대지들은 한국인의 소유로 남아있었습니다만 요지(要地) 대부분은 일본인 소유였습니다.

지가가 높은 51등급 이상의 많은 땅들을 비롯해, 특히 71등급 이상의 초고가 대지의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였습니다.

한일병합은 1910년 되었지만, 그 시기에 이미 마산포는 이만큼 일본인들에게 먹혀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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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성호, 창신, 근대식 학교가 서다>

마산 최초로 근대식 학교가 섰습니다. 
창원군에 있던 소학교가 마산으로 이전하면서 개설한 공립소학교로, 현재의 성호초등학교입니다. 1901년 4월에 개교하였으며 한국인들이 다녔습니다.

마산공립소학교는 1904년에 지방 유지들의 성금 2,000여원으로 교사(校舍)를 지었고 1911년 마산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습니다.
아쉽게도 1904년에 지은 교사의 사진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1927년에 벽돌조 2층으로 지은 교사입니다.



일본인을 위한 최초의 정식 교육기관은 마산심상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입니다.

1902년 11월 조계지 내 남쪽 끝 해안의 한옥을 한 채 빌려 일본불교 정토종 개교사(開敎師) 삼우전지문사(三隅田持門師)가 마산포일본인소학교를 세웠는데 1904년 6월 마산심상소학교가 설립되자 합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06년 9월 마산거류민단의 단립(團立)「마산심상고등소학교」로 바뀌었고 1908년 2월 지금의 월영초등학교 자리에 교사를 지어 준공했습니다.
마산심상고등소학교의 고등과가 후에 마산중학교(현 마산고등학교)가 됩니다.
아래 사진이 1908년에 건축한 마산심상소학교입니다.



이 두 학교 외에 1906년 5월, 마산포 성호리 교회당(현 문창교회)에 독서숙이 설치되었는데 이것이 사립 창신학교의 전신입니다.

「창신」이라는 이름은 1908년 9월부터 사용하였지만 사립학교령에 의해 정규학교의 인가을 받은 것은 1909년 8월 19일이었으며 남녀공학이었습니다.

창신중고등학교가 2008년 9월에 개교100주년 행사를 가진 것은 창신이라는 교명을 사용한 날을 창신학교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원조와 마산 및 부산․통영․의령․함안 등지의 유지들의 도움으로 같은 해 상남동에 양옥을 짓고 낙성식을 가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개교 후부터 1912년 5월까지 창신학교 초등과 교사로 사용했던 마산포 교회 예배당 건물이며 그 아래는 창신학교 설립인가서입니다.



이런 공식적인 교육기관 외에 원마산(마산포) 주민 스스로 교육기관을 만들었습니다.
1907년 7월 10일 개교한「마산노동야학」이 그것입니다.
노동야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1920년대였는데 마산은 아주 빨랐습니다. 「마산노동야학」은 전국 최초였습니다.

나중에 마산 최초의 주식회사인 '원동상사'의 대표가 되는 민족자본가 옥기환 등이 설립한 이 학교는 남성동 69번지에 있는 창고를 수리하여 1년 과정으로 한국어․일어․산술․한문 등을 무료로 가르쳤습니다.

노동야학의 학생들은 주로 선창 어물상의 고용원이거나 공장노동자․농민․도시빈민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교사의 대다수는 창신학교의 교사와 마산의 청년지식인 및 보통학교 졸업생들이었는데, 무보수였고 교육방침은 억압받는 민중의 각성과 계몽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신학교 다음으로 설립한 사립학교는 성지학교입니다. 현 성지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으로 1910년 10월 24일 외서면 완월리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개항과 함께 일본의 불교도 마산에 들어왔습니다.
1902년 정토종 포교소가 설치되었고 이어서 서본원사 출장소(1903년 3월), 진언종 풍산파 마산포교소(1908년 8월), 일련종(1909년 3월), 조동종 포교소(1909년 8월), 천리교 마산포교소(1910년 4월) 등의 일본 사찰이 섰습니다.
이들은 일본인을 상대로 포교활동을 하면서 마산의 불교신도들에게도 포교활동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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