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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6.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

 

<이번 포스팅은 창원 의창구 대원동에 재건축 중인 '꿈에그린' 아파트 부지(아래 그림의 붉은 밑줄친 부지)에 존재했던 현대사원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들에 대한 내용이다. '마을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리했던 글이다.

 

 

목차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5. 마치는 글

 

 

1. 시작하는 글

19721017일 유신헌법 체제로 시작된 제4공화국은 공업입국을 위한 기계공업의 요람지로서 1970년대 중반부터 창원공업단지(이하 창원공단)를 개발하였다.

창원공단은 국제적인 규모의 기계류 공장을 집단화함으로써 기술집약적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관련 기계류 공장의 전문화와 계열화로 투자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계공업단지이다. 

당시 마산시에서 동북쪽으로 14km 떨어진 창원지역을 기계공업단지로 결정한 요인은 다음과 같다.

포항·울산·구미·부산·마산 등 다핵적 공업벨트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및 경전선과 진해선의 철도분기점이면서 마산항을 끼고 있어 물류이동이 유리하다.

표고 500800m의 구릉에 둘러싸인 1,500만평의 광활한 평지형 분지를 확보할 수 있다.

지반이 견고하여 중량물 공장 건설에 유리하다.

낙동강으로부터 송수가 가능하여 공업용수와 생활용수 확보가 유리하다.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 등 천연조건이 기계공업에 적합하다.

수림이 울창한 작은 구릉이 점재하고 있어서 경관이 아름답다.

 

이상과 같은 입지조건을 배경으로 시작된 창원공단에 건 제4공화국의 기대와 계획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국가의 기계공업을 이끌어갈 대규모 종합기계공업단지를 조성한다.

시험연구소 및 기술교육기관을 통해 우수한 기술자와 기능공을 양성하는 산업교육기지로 발전시킨다.

창원대로를 경계로 남서쪽에 공업단지를 건설하고 이와 조화시켜 창원대로 북동쪽에 새로운 산업도시(이하 창원신도시)를 건설한다.

 

이러한 기대 속에 세워진 창원신도시 건설의 기본방향은 건전한 도시기반의 구축, 쾌적한 환경 조성, 도시기능의 정비, 사회복지 및 후생의 증진, 교육문화 및 인력개발, 도시미관의 정비, 도시의 개발, 도시계획의 추진 등이었다. 이를 토대로 작성된 기본구상도가 아래 그림이다.

<1973년 대통령비서실 문서 속의 창원기계공업기지 기본구상도 / 출처 ; 대통령기록관>

 

추진 일정은 1975년을 기준연도로 하고 77년을 계획연도, 86년을 목표연도로 잡았다. 경기도 반월, 전남 여수와 함께 무에서 유를 만든 신도시로 우리나라 도시발달사의 획기적인 사례였다.

신도시의 개발계획은 3단계로 나누어 시행하기로 했다. 그 중 주거시설은 제1단계(7779)18,190호의 주택과 공공시설, 2단계(8082)61,520호의 주택과 공공시설, 3단계(8386)94,076호의 주택과 공공시설을 건설하도록 계획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의해 도시 곳곳에 택지를 개발하였는데 대원2구역이 자리한 두대지역이 최초로 개발된 주거단지였다 

창원공단과 신도시 건설조성 과정에는 토지수용과 이주민대책이라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보상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지역주민의 피해가 컸다.

불가피한 진통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창원공단과 신도시는 이들 원주민의 피해 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총규모 1,470만평에 달하는 전래의 전답·대지·임야·주택·생활시설·도로 등을 모조리 갈아엎은 뒤 공단과 신도시를 조성했기 때문에 토지매수와 지장물 철거, 그리고 대대적인 거주민 이동이 이루어 졌다.

외동·내동·남산동 일대 15개 마을이 걸쳐있던 주민은 용호동에, 적현단지 주민은 외동에, 삼동·완암·귀곡·안민단지 주민은 두대동에 각각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택지를 분배하였다.

원주민들에게는 조상의 뼈가 묻혀있는 곳이자 생활을 기탁해온 보금자리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떠나야했기 때문에 시대가 요청한 이향(移鄕)은 이주민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는 심각하였다.

 

<19789, 실향민들과 공무원 사이에 벌어진 몸싸움 / 2001년 창원의 옛모습 사진전>

 

택지를 분양 받았다고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축비가 없어 집을 짓지 못하고 땅을 되파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집을 짓다가도 돈이 모자라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제2의 이주민도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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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23. 10: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오늘부터 개항기 때 제작된 마산지도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도의 기본정보 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는 지도의 제목이며 제목 아래에 표기한 것이 지도의 기본 정보입니다. 표기 순서는「제작연도 / 제작자 / 발행처 / 축척 / 수록처 / 소장처」순입니다.
기록이 불가능한 부분은 해당 칸을 비워「/ /」로 표기하는데 지도제목이 동일한 경우에는 지도명칭 뒤에「*, **, ***」를 붙여 구분하겠습니다.


<馬山浦 及 附近, 마산포 및 부근>

1899년 / 上野亮 外 / 일본해군 / 1 : 49,054 / / 일본국회도서관


일제는 일찍부터 마산을 자신의 식민지 주요 거점으로 눈독 들여왔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산․부산 등과 마찬가지로 마산지역의 측량과 지도제작도 진작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도는 일제가 침략을 목적으로 한반도를 측량하기 시작한 직후 제작된 것입니다.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마산관련지도로 추정됩니다.

표기내용과 축척, 제작시기 등을 미루어 지난 주 올린 글에서 소개한「군용비도(軍用秘圖)」의 초기도면으로 보입니다.

지도의 왼쪽 상부가 마산포인데 도면의 명칭처럼 진해, 웅천까지 마산포 근방 해안을 상세히 표기한 지도입니다.
오른쪽 상부에 별도로 그려놓은 것은 거제도 지세포 항을 확대한 지도입니다.

마산포부분만 확대하여 옮겨보겠습니다.


지도 상부에 짙게 표시된 삼각형 지역이 마산포입니다.

이 지도에 의하면 1899년 마산의 도시상황은 마산포(원마산)의 영역인 남성동을 중심으로 성립한 일단의 자연발생 취락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산포(원마산)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소위 신마산에 일본인들이 새로운 도시, 즉 각국공동조계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위치는 지도의 좌측중앙부입니다. 가늘게 직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두 곳 사이에 위치한 중앙부(마산포와
신마산의 중간 부분인 현 자산동․중앙동 그리고 장군동 일대)는 논밭으로 이어진 채 인가(人家)가 거의 없었습니다.

원마산 외에는 오산이라 불렀던 용마산 아래의 현 산호동에 마을이 있었으며 북쪽으로 교방동 및 회원동 그리고 현 봉암교 아래의 봉암동에도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양덕과 합성 쪽에도 이 당시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이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환주산 근처에 성호동과 자산동, 그 남쪽으로 완월동․신월동․월영동 쪽의 마을도 잘 그려놓고 있습니다.

무학산에서 마산만으로 흐르는 하천은 교방천과 회원천․척산천(尺山川)․장군천․창원천이 표기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장군천이 현재처럼 직선으로 마산만과 연결되지 않고 휘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지도상의 장군천 하구는 마산선 철로의 기점이었던 마산 역 자리입니다.
1905년 이후에 제작된 자료들과 관련해 볼 때
장군천은 1905년 일본군에 의해 마산철도와 마산 역이 건설될 때 지금처럼 직선화된 것 같습니다.

각국거류지라고 표기되어 있는 조계지 내의 세관․일본영사관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건물은 개항과 함께 개설된 우편국을 말하는 것으로서 1899년 당시에는 임대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봉암동 쪽입니다.
지금의 창원공업단지에 표현되어 있는 염전인데 구전으로 전해오던 봉암의 대규모 염전이 이 지도가 정확하게 그 실체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지도의 오른쪽 상부에 바둑판처럼 격자로 그어 놓은 것이 염전 표시인데 이 염전은 해방 이후까지 존속하여 1947년에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나타납니다.

보는 것처럼 이 지도에는 진해만을 중심으로 마산포 부근의 해안선․수심․지형 등이 비교적 정밀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특히 간석지의 경계까지 상세히 표기해 놓아서, 매립 등으로 사람의 손이 닿기 전에 존재했던 천연상태의 마산포 해안 원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보입니다.

이 지도는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찾았습니다.
지도를 보는 순간, 그리고 이 지도가 1899년 제작되었다는 기록을 보는 순간, 저는 전율했습니다.
너무나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의 내용에 놀랐고, 다음은 1899년이라는 시기와 제작자가 일본해군이라는 점에 또 놀랐습니다.

1899년에 제작했다면 비밀리에 한반도 곳곳에 들어와 측량한 시기는 그 보다 몇 년 전일 겁니다.
1899년은 마산이 개항된 해이기도 하지만 을사조약 6년 전, 경술국치 11년 전인데 이미 그 때 한반도의 해안을 이렇게 샅샅이 조사해 놓았다는 사실에 놀랐던 겁니다.

조선을 식민지 삼겠다는 야욕이 한 눈에 확인되는 이 지도를 보면서 '이렇게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준비한 일제의 야수를 벗어날 길이 없었겠구나'라는 자조감도 들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위 지도에 표기된 부분의 현재상황입니다.



끝으로 이 지도를 조금 더 확대해 현재 마산시내의 시설물들 위치와 비교해보겠습니다.
3.15의거 탑 바로 앞이 바닷가였고, 대우백화점은 바다 한 복판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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