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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15. 00:00

마산번창기(1908) - 13

제4장 위생 및 의료

 

공중위생으로는 1906년(명치39년) 가을에 비로소 대청결법(大淸潔法)이 제정되어 매년 봄가을 두 계절에 집행을 보게 되었다. 또한 청결사(淸潔社)라는 회사가 있어 한인 인부들이 매일 일인 감독의 지휘 하에 쓰레기차를 몇 대 돌리면서 집이나 가게 앞의 쓰레기 함에 모아둔 것을 수거해 간다.

종두(種痘)는 매년 두 번 봄가을에 장려되었다. 마산포의 거리에서도 청결차가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종래부터 일인들이 곤란하게 여긴 것은 화장실 청소에 관한 일이다. 한인들은 일정한 시기를 빼고는 분뇨를 비료로 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논밭에 시비를 할 때 이외에는 분뇨가 많이 남아서 한계에 도달하면 돈을 주어 투기하도록 했다. 청결사가 조직된 이래 이 회사는 연락을 받으면 이것을 날라 버리고 거류민은 이 회사를 편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묘지와 화장터는 신월동 지역의 산기슭에 있고 묘지에는 일본 전관(專管)과 각국의 두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토장(土葬)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간 사람이 나오면 민단의 시설인 화장장에서 화장을 해야만 한다. 묘지에는 뼛가루만 매장하는 것뿐이며 여태껏 여기에 매장된 일은 없다. 단지 신생아의 옷이 매장되어 있다.

 

<당시 일본인 공동묘지와 피병원>

 

피병원(避病院, 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병원)도 신월동 지역에 있어 1907년에 한 명의 콜레라 환자를 수용해 왔으며 연간 한두 명의 이질 환자를 수용했을 뿐이다.

각기병(脚氣病) 환자는 우기 혹은 여름에서 가을에의 장마철에 발생할 때가 있으나 극히 적다. 대개 한국의 공기는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각기 환자가 많다는 것은 다소 이상한 감이 들기는 한다. 마산에서는 이 유례를 벗어나 각기 환자의 전지요양지(轉地療養地)로서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보양지라 하겠다.

기타 말라리아나 장티푸스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또한 건강에 신경을 별로 안 쓰는 한인들 사이에 간혹 천연두나 홍역 등이 유행하고 그 여파로 일인에게도 옮겨진 경우도 있는데 아주 드물다. 페스트 병은 아직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콜레라는 부산에서 그 계통의 병이 전염되어 1907년 10월 중에 4명의 환자를 내었는데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확산되는 일은 없었다. 1908년 6월 하순부터 소아(小兒) 디프테리아 환자가 2,3명 나왔으니 빨리 발견되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

마산에는 지방 풍토병이라 명명할 만한 병도 없다. 특히 전염병은 대체로 느슨한데다가 그 세균이 겨울의 극렬한 추위 때문에 동사하고 그 여독을 다음 해에 끼칠 것도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베풀어주신 은혜일지도 모를 땅, 낙원이라 하겠다. 전지 요양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의료기관으로서는 이사청 보호 아래 세워진 마산병원이 신시의 남쪽 하마마치(빈정 濱町, 현 창포동) 3정목에 있었는데 1909년 9월 초순, 전에 신월지역에 있던 철도관리국 소관의 토지와 가옥을 빌려서 거기로 이전하게 되었다.

현재 75명의 화양(和洋, 왜식과 서양식) 절충의 건물을 건설하고 있으며 의무, 내과, 수술, 안과, 해부, 저약(貯藥), 조약(調藥,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서 약을 조제함), 접수, 환자대기실로 나누어 쓰게 된다. 빌린 가옥 네 동 중 세 동의 방 12개를 병실로 쓰게 되는데 특등부터 3등까지 나눈다. 게다가 저빙고(貯氷庫)까지 짓는다는 계획이다.

본 병원은 서쪽을 정면으로 하고 앞으로는 장군산의 산들이 있고 그 산이 내려오는 높은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후방은 마산만의 매축지를 눈 아래 두고 각 병실은 다 동쪽을 향해 해돋이를 보게 되어 있고 매축지 너무 마산만에 떠다니는 배가 보이는 조망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정경이라 한일 양국을 통틀어 이렇게 좋은 병원 건축의 적지(適地)는 없을 것이다.

이 청정한 공기에다가 산과 바다의 조망을 갖춘 병실은 약의 효과 이외로 위안의 효력을 자아내므로 그 치료 시기를 앞당기는데도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마산포에 분원을 경영하며 후쿠오카 출신의 활달하고 친절한 해군 2등 군의관인 하라다 히코지로(原田彦次郞)가 주임으로 종사하고 있다.

그 외 개업의원으로는 신시 혼마치(本町, 현 월남동) 1정목에 오카바야시(岡林 강림) 의원이 있다. 원장 오카바야시 도지로(岡林藤次郞) 씨는 특히 외과, 위장, 화류병과(花柳病科)에 능숙해 찾아오는 환자로 많은가 보다. 또한 완월교 부근에 오오카(大岡) 의원이 있으며 오오카 키(大岡規, 대강규) 씨는 에히메(愛媛, 애원) 현 무사 집안 출신이며 내외과와 소아과를 잘 봐서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환자가 계속 문전에서 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마산포 신마치(新町, 현 추산동)에는 산과, 부인과, 소아과를 잘보는 고세이(弘生, 홍생) 의원이 있고 신월동에는 요쿠라(興倉, 흥창) 치과 전문의가 있다. 수의(獸醫)로서는 마산포 신마치에 개원하여 경찰 수의사로 촉탁된 야마구치 가나우(山口叶, 산구협) 씨가 있다. 또한 신시 혼마치 2정목에 있는 인풍당(仁風堂) 약국의 이이츠카 추타로(飯塚忠太郞, 반총충태랑) 씨는 약제사로서 수질 및 우유 등의 검사를 할뿐더러 청결사 사장으로서 공중 위생 집행에도 입회(立會)하고 있다.

산파(産婆)로는 마산포에 오카모토 나츠(岡本なつ), 신마치에 유카다 우미에(湯川うみえ) 니시하라 마스에(西原ますえ), 구리하라 도요(栗原とよ)란 네 여사가 조산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실력에 얀간 차이가 있다 해도 모두 상당한 학술과정을 마친, 면허를 가진 이들이다.

이 지방은 소(牛)의 명산지이며 그 숫자도 많으며 공기가 건조하여 소의 병도 적은 편이다. 그래도 한 번 병이 번졌다 하면 참사를 이룬다고 한다. 닭 콜레라도 간혹 유행할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극히 드물다.

의료계에서도 페스트 예방을 위해 도쿄(東京) 식으로 고양이를 기르는 것을 권장하면 어떨까. 일이 발생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법. 이 항구처럼 해륙의 출입이 빈번한 곳에서는 언제 그 균이 들어올지 모른다. 나쁜 역병이 유행하고 나서 비로소 대청소는 한다는 꼴이 된다면 최악 중의 최악이 아니던가.<<<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열세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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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5.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27. 청년들의 방역운동

 

127. 청년들의 방역(防疫) 운동

 

 

1920 (원문에는 1929년으로 되어 있지만 본문의 여러 정황으로 보아 대정 9년인 1920년으로 추정되어 바로 잡음) 즉 일치(日治) 대정 98월경에 마산시내를 엄습한 콜레라로 인해서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이 되면 피병원(避病院, 격리병원)으로나 묘지로 가고 만다.

 

1918년에 전 세계를 휩쓴 이스파니아독감의 맹위에 굴복된 민중들은 환자가 발생하면 약보다 기도하는 것이 만배 이상의 효능이 있다는 미신이, 현대의 예방치료나 과학을 억누르고 집집마다 샤머니즘에 젖어서 밤이나 낮을 가리지 않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여기에 호역(虎疫)의 예방주사 같은 것도 일본인의 병원에는 편협한 민족 감정으로서 고의로 한인 환자에게는 차별을 하고, 심지어는 절명케 한다는 최극단의 유언(流言)이 횡행하여 일의(日醫)의 치료와 시료(施療), 격리 병사의 수용 등을 완강히 거부하던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이때에 마산민의소 간부를 중심한 중견 청년들로 결속된 마산구락부 청년회에서는 화급히 마산 호역방역대(虎疫防疫隊)를 편성하여 긴급 동원을 하였는데, 방역에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은 한 푼도 당국(일본인 각 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당시 청년들의 방역태세를 보면, 본부의 명령에 일사불란 신속 출동으로 적십자 완장의 가운(소독복)을 입고 환자가 발생한 상당 거리를 교통 차단과 동시 석회 소독을 하여 출입제한, 혹은 이 마을 사람이 이웃 마을로 갈 때라도 예방주사 필증을 정시(呈示)치 않으면 통행은 절대로 용인치 않았다.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공동우물과 우물주변을 소독한 뒤에는 부녀자의 접근을 금하고 대원 자신들이 급수 공습하였으며, 각 가호호(家戶戶)의 음료수에 희염산(稀鹽酸)을 타서 먹게 하는 일방 출입문전에 가마니 위에다가 당시 유일한 소독약이었던 석탄 산수(酸水)를 뿌려 반드시 소독한 가마니를 밟고 출입토록 하는 등,

 

방역에 치중하던 이들의 애족심에는 감개무량할 뿐이며, 당시 활약하던 대원들 명단을 기억으로 더듬어 보자.

 

대장 ; 김무경(金武敬, 일명 태권)

대원 ; 이영재, 명도석, 나인한, 김용환, 김용선, 김태곤, 김치수, 김철두, 손문기, 김기호, 김계호, 오호봉, 명상수, 김지철, 이정찬, 김명규, 김형오, 전 석, 황태현, 이우문, 최대규, 김기성, 여병섭, 황장오(이상 전원 고인), 최철용(무순)

* ; 이상 명단 중에서 누락된 분이 있다면 양해 바람<<<

 

 

<마산민의소 회관이 있었던 옛 시민극장 / 지금은 다른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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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9) - 강점제3시기

마산도시변화와 관련된 두 개의 기사 두소개합니다.

12. 1940년 2월 3일자 동아일보7면 기사입니다.

기사 제목은 「共同墓地 移轉要望」이고,

내용은 「마산부 완월동 산기슭에 설치되어 있는 현재의 공동묘지는 도시의 미관으로나 일반출입인사의 눈에 뜨이는 점으로 보아 늘 불유쾌한 감이 있어 각 방면에서 항상 논의되어 오던 터에 더욱 마산부에서도 대마산건설을 목표로 명년에 도시계획실시의 예정인 차제 도시미관을 파괴하는 차등공동묘지는 당연 타처로 옮겨야할 것을 크게 요망한다. 차 지구는 마산의 고지대로서 도로가 불편하므로 부 도로 행정에 대한 불편의 소리도 자자하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월동 공동묘지는 1916년에 제작된 마산지도(아래 그림 참조)에도 나타납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이 공동묘지는 일본인들이 마산에 정착한 시기부터 있었던 일본인 공동묘지로 보입니다. 오래된 묘지죠. 지도를 자세히 보면 공동묘지 인접해 피병원(避病院), 즉 격리병원도 보입니다.

공동묘지의 위치는 현 월성초등학교 남측 일대(아래 위성사진의 노란 표시선 참조)입니다.

아래 지도와 본 기사의 시차는 24년입니다. 그 짧지 않은 시간에 마산도시의 범역이 점차 넓어져 공동묘지 인근까지 도시지역이 되어 이전 여론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여론에 의해 옮겨진 위치는 지금의 자산동 한우 아파트의 서쪽 무학산 산록 일대(아래 위성사진의 붉은 표시선 참조)입니다. 

 

13. 1940년 3월 28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입니다.

기사 제목은 「馬山中央埋築地에 鑄物工場設置」이고,

내용은 「마산중앙매축지에 대판의 우수한 실업가 대전매송(大田梅松) 씨는 마산에 주물공장을 설치할 양으로 상공회의소의 알시(斡施)를 얻어 공장 부지를 물색 중이던 바 중앙매축지의 일부를 매수하기로 18일 매축회사와 매매계약이 성립되어 근근(近近) 공장 건축에 착수하게 되었다. 동 공장은 특수공업으로 주로 광산용 기구를 제조할 터이며 직공도 상당히 다수 사용할 것이므로 공업도시로 약진하는 마산은 일층 활기가 기대 된다」입니다.

이 기사에서 말하는 마산중앙매축지는1929년에 착공해 1935년 준공한 신포동 대우백화점과 삼익아파트 일대의 65,000평 매립(아래 두 그림 참조)을 말합니다.

기사가 말하는 주물공장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삼익아파트 인근에 주물공장이 제법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해방 후까지 지속된 이 주물공장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업유치와 고용창출에 관심,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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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1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6) - 강점제1시기

<1910년대 건축물>

1910년대에는 마산에 도시변화가 많이 없었던만큼 건축공사도 많이 없었습니다. 종교시설과 일부 교육시설만 약간 들어섰습니다.
개항기에는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관아시설들이 주로 건설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개항기에 지어 놓은 건물들의 증․개축이 많았으며 관아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용 건물이 많았습니다.

또한 목조건축물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이 시기부터는 벽돌을 이용한 조적조 건축물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신마산에 집중되었던 건물들이 서서히 원마산 쪽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 장군천 이북에 지방법원지청이 들어섰고 현 마산시청 자리에 전기회사가 들어오는 등 공공건물들이 건축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일대(옛 마산시청부근)가 신마산의 마산포 진출이라는 의미 외에 마산포와 신마산 양도시를 관장하는 공공업무지구 성격의 새로운 영역(중앙마산)으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 건축된 부산지방법원의 마산지청입니다.

1919년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해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1/10,000지도「마산」을 보면 마산포에 근대식 시설들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현 삼성생명 부지에 부산감옥 마산분관과 인근에 동척(東拓)출장소, 그리고 전 북마산 파출소 앞의 삼성라디에타 부지에 조면공장(繰綿工場)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또 옛 중앙극장 건너편에 금융조합이, 그리고 보통학교(성호초등학교)와 통도사 포교당, 보통학교의 서쪽 약 250m 지점에 피병원(避病院)이 있습니다.
피병원은 전염병환자 전용병원으로 이 외에 신마산 완월리 아래(현, 마산여고 뒷편)에도 있습니다.
위치를 보아 신마산의 것은 일본인 전용, 원마산의 것은 한국인 전용 아니었나 싶습니다.

1918년에는 조선식산은행이 현 제일은행 부지에 들어섰는데 이 부지는 원래 마산창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이 때 지은 조선식산은행 건물은 해방을 거쳐 현재의 건물을 지은 1970년대까지 이용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았던 근대건축물 중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도시라,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까운 건물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이 시기에 건축된 교육시설은 의신여학교와 마산실과고등여학교가 있었습니다.
창신학교 여학생들로서 시작했던 의신여학교 건물은 성지학교에 이어 벽돌조 건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규모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추산동에 있는 포교당 정법사는 1912년 건축되어 최근까지 남았다가 얼마 전 새 건물 짓는다고 철거했습니다. (2011/07/0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불교시설인 포교당을 지은 7년 후(1919년) 마산 최초의 개신교회인 마산포교회가 문창교회로 개명하면서 석조 1층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배당을 신축하였습니다.
1만 6천원의 건축비를 모아 무학산 기슭의 석재를 사용하여 지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한국교회 석조건물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지은 건물 중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No

건물명

현위치

건축연대

有無

구조 및 규모

양식

면적

비고

1

도립마산병원

 

1911

 

 

 

 

 

2

마산포교당

추산동65

1912

목조1층

한식

30평

통도사正法寺

3

의신여학교

상남동

1913

벽돌조1층

양식

 

창신학교여학생

4

구마산우편소

남성동

1913

 

 

 

매립지(남성동우체국)

5

노동야학교

창동

1914

 

 

140평

1,300엔․교실 6개

6

실과고등여학교

장군동3가

1915

목조1층

의양풍

 

마산여고 전신

7

조선식산은행

남성동3가

1918

벽돌조1층

양식

 

농공은행합병․현제일은행자리

8

문창교회

추산동

1919

석조1층

로마네스크

84평

최초의 석조예배당

9

마산창고(주)

남성동198

1920

 

 

 

한국인 신설회사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2011/06/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 제1시기
2011/06/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 제1시기
2011/07/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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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산신세대 2011.08.30 13:16 address edit & del reply

    이런 블로그를 발견해서 뛸듯이 기쁩니다. 그런데 사진을 어떻게 구하시는지요?

    • 허정도 2011.08.30 16:57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사진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합니다.
      문헌에 나와있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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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지질 및 기후 마산 부근 일대는 제3기층에 속하는 데가 많고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또는 결정편암(結晶片巖)을 노출하고 있는 데가 있다. 해변 및 평야는 주고 제4기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미(地味)는 기름지고 좋다. ..

마산번창기(1908) - 11

마산의 관공서 - 5 □ 민의소(民議所)-마산포 소재(전 마산보통학교 터) 이것은 한인(韓人) 측의 자치기관이며 마산포 읍내 6개 동의 하급 행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 사무소에도 역시 민의소장과 부소장이 있고 의원도 있지만 ..

마산번창기(1908) - 10

마산의 관공서 - 4 □ 마산거류민단역소(馬山居留民團役所)-신시 사카에마치(榮町, 홍문동) 소재 1899년(명치 32년) 7월에 조직된 일본거류민회의 총대(總代) 사무소가 진화한 것이며 그 후 총대를 이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

마산번창기(1908) - 9

마산의 관공서-3 □ 마산경찰서-신시 토모에마치(巴町, 대외동) 소재 각국 거류지회 조직과 더불어 각국 경찰 사무를 보기 위해 설치된 것이며 새로 신축할 곳은 마산정차장 앞 철도관리국 소관지를 예정하고 있다. 아마 19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