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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25. 00:00

YMCA 연원을 찾다 - 2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 국제담당국장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라는 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36일 오전 1115분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정면입구 계단에서 만났다.

나는 e메일을 통해 약속한 대로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확인한 캔 국장이 다가오면서 이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은 시티 오브 런던의 러드게이트 힐에 있는 높이 108m의 성공회 성당으로 런던 주교좌가 자리 잡고 있다.

중세 시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런던을 대표하는 성당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왕족과 함께 해온 곳이라면 세인트 폴 대성당은 오랜 시간 서민들과 함께 호흡해온 곳이다.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완전히 불타 버렸지만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Christoper Wren)35년을 투자해 재건축했다. 둥근 돔이 있는 현재의 모습은 그때 재건된 모습 그대로다.

이는 영국 노르만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높이가 110m에 이른다.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돔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과 더불어 세계 3대 성당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훗날 워싱턴 국회 의사당이나 파리의 판테온 건축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1965년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이 거행된 장소로 유명하다.

성당 내부는 매우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벽화는 모자이크로 되어 있고, 천장화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성당 내부에 들어선 사람들은 그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장식에 눈길을 빼앗긴다. 성당 내부 계단을 통해 돔까지 올라갈 수 있다. 스톤 갤러리에 올라서면 런던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지하 납골당에는 이 성당의 설계자인 크리스토퍼 렌 등 영국을 빛낸 유명인사 200여 명의 묘가 있다.

이 대성당은 런던을 방문한 여행객들의 대부분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1666년 화재 전후의 St. Paul’s Cathedral>

 

Ken Montgomery 국장은 먼저 조지 윌리암스가 점원이었던 Hitchcock & Rogers상회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지금은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 옛 모습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이미 옛 Hitchcock & Rogers 상회는 흔적 조차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도시개발로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상상해보면 당시에 가장 번화한 요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성당 앞에서 보면 전면 왼쪽 모퉁이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었다. 이 새 건물의 전면 오른쪽 모퉁이 쯤에 Hitchcock & Rogers 상회가 있었다는데 지금 모습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건물의 일층 안쪽 벽에 크지 않은 동판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오래동안 보고 싶었던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조지 윌리암스가 근무했던 당시의 Hitchcock & Rogers 상회 건물>

 

설명문 / 1844년 George Williams는 런던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11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가 일하면서 살던 이곳의 양복점에 YMCA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이곳에서 YMCA는 처음부터 세상을 아우르도록 성장했습니다

 

이어서 캔 국장은 조지 윌리암스가 영면해있는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 위대한 건축물을 설계한 크리스토퍼 렌, 영국이 자랑하는 해군제독 호레이쇼 넬슨, 웰링턴 공작 등이 잠들어 있다.

방문한 날 마침 묘소 공간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지만 조지 윌리암스의 묘는 입구 첫 위치여서 경계 밖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

바닥에 부착된 브론즈 표식판에는 조지 윌리암스의 이름과 생몰 기록이 품위있게 양각되어 있었다.

 

 

그를 기념하는석상 아래에는

<나의 마지막 유산이자 소중한 것은 YMCA입니다. 나는 많은 나라의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YMCA를 계속 이어가고 확장하도록 그들에게 YMCA를 맡깁니다.>

라는 영문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내가 평생 활동해온 YMCA를 탄생시킨 분 앞에서 감사와 존경의 예를 갖추었다.

 

성당나와 캔 국장은 캡을 타고 두 장소를 더 안내해주었다.

초기 시민강좌를 하며 런던시민들에게 YMCA를 크게 부각시켜 YMCA의 성지(SHRINE)라고도 부르는 EXETER HALL이 있던 장소와 조지 윌리암스가 생애 마지막 26년을 살았던 장소(No.13 RUSSELL SQUARE)였다.

<EXETER HALL이 있었던 당시 건물 /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있다>

 

<No.13 RUSSELL SQUARE 표지판 앞에서 Ken Montgomery와 함께>

 

이미 당시의 건물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지만 No.13 RUSSELL SQUARE에는 기념표지판이 붙어져 있어서 YMCA의 위상과 조지 윌리암스의 역사적 평가를 실감했다.

Darlington에 산다는 캔 몽고메리 국장은 이 안내를 위해 3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고마운 안내였다.

 

평생 YMCA 운동을 해오면서, 조지 윌리암스가 YMCA를 탄생시켰던 히치콕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상회와 YMCA 탄생 유적들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망을 이루었다. 조지 윌리암스의 묘소까지 참배한 행운은 기대하지 않았던 덤이었다.

내게 이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도와준 이는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을 지낸 후 현재 홍콩에 있는 아시아태평양YMCA연맹 남부원 사무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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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8. 00:00

YMCA 연원을 찾다 - 1

오랫동안 회원으로 활동한 YMCA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 업무 차 런던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약속이 오후로 잡혀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의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 국제담당국장이었다.

 

YMCA184466일 런던의 한 상점에서 일하던 조지 윌리암스를 비롯한 12명의 청년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지배했고, 수도 런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구 200만에 도달한 세계 최고 최대의 도시였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과학기술의 발전이 새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던 꿈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어두움의 그림자도 깊었다.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은 무제한적 투자와 건설, 끝없는 생산과 착취가 수반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극심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기독교는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교회와 교파는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분열했고 종교적 소명도 자기중심적으로 분출했다.

초기 YMCA가 쉽게 전파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의 요청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YMCA를 창설한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매우 성실하고 사려 깊은 청년이었다.

그는 1821년 영국 남부의 애쉬웨이(Ashway)에서 성공적인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이 되던 1835년 글로인 스쿨(Gloyn School)을 졸업하고 열다섯에 브리지 워터(Bridge water)의 홈즈 직조공장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조지 윌리암스는 그곳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을 규합, 작은 기도 모임 주관하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된 1841,

윌리암스는 런던의 대형 포목점인 히치콕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 상회에 조수 점원으로 취직을 하는데, 그것이 그의 생애를 결정 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지 윌리암스가 일했던 Hitchcock & Rogers상회 / 지금은 철거 되고 없다>

 

그 시기에 그가 남긴 기록이다.

“1841년 하느님의 섭리로 나는 런던에 왔다. 그리고 세인트 폴즈 처치야드(St. Paul’s Churchyard)의 어느 상점에 직장을 얻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저녁시간의 대부분은 멋대로 분망하게 보냈으며, 여기저기 오락장엘 드나들었다. 저들의 말투, 부도덕함, 술타령 등 어느 것 하나 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그 상점에 취직했을 때 130~150명의 조수점원이 있었다. ……. 나는 5~6명의 점원들과 한 방을 썼는데……

 

<St. Paul’s Churchyard의 현재 모습>

 

조지 윌리암스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회의와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들과 은밀한 기도모임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웠다.

그러던 중 1843년 말 어느 날, 모임을 함께 갖던 조지 윌리암스와 친구들은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임을 조직화해서 확산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YMCA (Th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 기독교 청년회)는 그렇게 시작한 열두 명의 청년에 의해 탄생되었다. 184466일 조지 월리암스의 하숙방에서였다.

창설 초기의 활동은 주로 성경연구와 기도회였지만 세력이 점점 확장되면서 인문, 자연, 종교에 관한 공개강연회와 출판, 도서실 설치 등 다양화되어갔다.

처음에는 10여 개 점포의 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활동했으나 참여인원이 많아지면서 일반 청년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었다.

창립 후 회원들이 급증했다. 창설 4년 뒤인 1848년에 런던 회원이 10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지방 회원도 520명 가입했다.

 

175년 전 런던 세인트폴 처치 야드의 조그만 방에서 시작된 YMCA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시민조직체가 되었다.

전 세계 123개국에 7,139YMCA, 800여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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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30. 00:00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난 곳은 창원 상남동의 한 식당이었습니다. 노동운동가였던 박성철과 여영국 도의원이 함께 했고 그날 먹은 음식은 갈비탕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의원님이라 불렀고 그는 저를 이사장님이라 불렀습니다. YMCA 이사장을 했던 제 경력 때문입니다.

출마를 앞두고 지역민들 얼굴을 익히는 자리여서 특별한 기억은 없습니다. 저와 그가 다 잘 아는 노동운동가 황주석 최순영 부부를 이야기한 것이 기억납니다.

출마하려 창원까지 내려온 게 미안했던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공적으로는 거침이 없지만 사적으로는 과묵한 분이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만남의 기억은 뚜렷합니다. 총선 직전인 그해 3월 말 경이었습니다.

선거운동본부 요청으로 만들어진 도시문제 지역현안 공부 자리였습니다.

갑자기 창원에 내려온 그에게 지역 사정을 자세히 알게 하고 TV토론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부는 선거 사무실 안쪽의 후보사무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학습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분들은 자리를 물리고 저와 노 의원 단 둘이 앉았습니다.

노 의원의 학습태도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시작할 때는 약간 어색했지만 워낙 진지하게 제 설명을 듣는 노 의원의 자세 때문에 곧 공부 분위기가 잡혔습니다.

경기고 출신답게 노 의원의 집중도와 이해력은 탁월했습니다.

제 설명 사이사이 그의 질문이 섞이면서 알차게 진행된 공부였습니다. 한 시간 반쯤 걸렸던, 오래 기억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만 노회찬 의원이 유독 관심을 가진 부분은 두 가지로 기억됩니다.

하나는 창원의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사례로 꺼낸 슈투트가르트 바람길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듣는다면서 재미있어했고 몇 차례 질문도 던졌습니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노원구 사례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방대한 구상이라 쉽지 않겠다면서 더 늦기 전에 이런 시도가 필요하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역구인 창원성산구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노 의원에게 "모든 구민들이 어디에서건 5분 이내에 숲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이 어떠냐"고 했더니, 노 의원은 고개를 들어 날 빤히 쳐다보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성산구의 지형적 특성을 설명하며 제 생각을 말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공약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숲길을 걷는 것은 신분이나 경제력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혜택이라는 점이 마음에 끌린다고 했습니다.

실제 이 숲길 이야기는 선거 과정에서 노 의원이 구민들에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공부가 끝날 즈음, 이런 일들은 단체장의 손을 빌려야 가능하다는 점에 우리 두 사람 함께 동의했습니다.

언젠가는 창원시장도 바뀌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서로 나누며 공부를 마쳤습니다.

.

.

.

  

안타깝고 그리워서 짧은 추억 글 한편으로 당신을 추모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준 당신은 혼자 홀연히 떠나셨네요.

보고 싶습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오.<<<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 비록 개울처럼 어우러져 흐르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우리 비록 돌처럼 여기 저기 버려져

말없이 살고 있어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도종환의 시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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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7. 23:24

끊어진 다리


얼마 전, 압록강 하류에 있는 중국 단동에 다녀왔습니다.
중국 요령성 단동은 북한의 평안복도 신의주와 철교로 이어지는 곳, 북한과 가장 가까운 중국 땅입니다.
한반도와 중국 땅을 오가기 좋은 곳이라 예부터 조공로(租貢路)로 사용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육이오 때 미공군 폭격으로 부서져 있는 철교며, 이성계가 회군했던 위화도며,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의 도도한 자부심이 넘치는 중국정부의 기념물들과 여진족을 막기 위한 명(明)의 장성(長城, 虎山山城)이며, 고금을 넘나드는 시대의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이곳이 소용돌이쳤던 역사의 한복판이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하여 압록강 철교의 밤풍경부터 보았습니다.


6.25 때 잘려나간 철교가 어두운 압록강 위에 걸쳐 있었습니다.
일한병합 직후인 1911년 일제가 놓은 이 철교는 6·25전쟁 때 파괴되어 중국에 연결된 절반만 남아 있어서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라고도 부릅니다.
철교의 중앙부는 철로로 사용되었고 양쪽에 보도로 사용되었는데 1932년 통계에 의하면 그 해 보도통행자가 26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식민지 말기 쯤, 이 철교가 노후되자 일제는 강 상류 쪽 100m 지점에 새로운 다리를 놓기 시작해 1943년 4월 개통하였습니다.
이 철교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데 기차통행용 철도와 일반차량용 차도가 동시에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1990년 북한과 중국의 합의에 따라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 중국에서는 중차오유이차오[中朝友誼橋]라 부름)라 명명하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방중 때도 이 다리를 건넜습니다.
통한도 60년 전의 일, 지금은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흐르는지 멈췄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캄캄한 강물 위에 덩그러니 떠있는 네온불빛이 여기가 끊어진 철교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질흙 같은 밤이라 강 건너 저기가 북한 땅이려니 상상만하고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9시 경, 어젯밤에 보았던 철교에 다시 나가 이번에는 유람선을 탔습니다. 5-6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유람선 서너 대가 교대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용자는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강 건너 북한 쪽에서 색다른 장면이 보였습니다.
철교 아래에 갖가지 색의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 1-200명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소풍을 나왔는지 현장교육을 나왔는지, 무채색 배경에 짙은 원색의 움직임이 분주했습니다.


선상에서 관광기념품을 파는 중국여인의 시끄러운 고음이 십여 분 나오더니 유람선이 출발하였습니다.

배는 철교 밑을 지나 위화도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래 사진이 위화도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중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이성계가 위화도회군 때 주장한 ‘4불가론(四不可論)’을 판서로 깨끗이 적어 놓고 설명하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그 중 ‘장마철이라 전염병 때문에 불가’ 하나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일행 중 한 분이 “첫째, 약소국이 강대국과 싸우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둘째, 여름철에 전쟁을 벌이면 농사를 망쳐 농민의 호응을 받기가 어렵다. 셋째, 주력군이 이쪽으로 몰리면 그 틈을 타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다. 넷째, 당시 장마철이라 전투가 불편하고 전염병으로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4불가론’이다” 면서 유창한 역사실력을 과시해 한 수 배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조선’을 있게 했던 역사적인 섬이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지만 사정이 다른 중국 사람들은 이 섬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위화도에 인접한 배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북한 쪽으로 다가가더니 강물의 흐름에 맞춰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2006년 11월 한국YMCA가 북한에 자전거 6천대를 보낸 후 조선기독교총연맹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북한 땅과 북한사람들의 생활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강변에는 작은 배들이 여러 대 정박해 있었고 해안에는 배에 짐을 싣고 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활기 없는 해안가 건물 벽에 붙어 있는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붉은 글이 생경스러웠습니다.


유람선에 탄 사람들 중 몇 분이 반갑다고 고함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지만 북한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반가운지 모르지만 북한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보는 유람선이라 그러겠지 하고 이해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한 항미원조(抗美援朝)기념관과 호산산성(虎山山城)을 관광한 후 오후에 다시 철교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끊어진 철교 위를 걸었습니다. 전쟁 때 폭격으로 끊어진 아픈 역사의 흔적을 직접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제국이 대륙 침략을 꿈꾸며 놓았던 거대한 이 다리는 당시 최첨단 공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큰 배가 지날 때를 대비해 교량 중간부분을 회전시킬 수 있는 개폐식(開閉式)으로, 열면 십자(十字)가 되고 닫으면 일자(一字)가 되도록 설계된 다리였습니다.
사용 않은지 오래지만 철교를 여닫던 거대한 톱니바퀴는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철교 끝에서 강가에서 마주보고 있는 북한과 중국 두 지역을 보았습니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대가로 정체불명의 고층건물들이 빼곡한 중국 땅 단동(사진 왼쪽)과 무기력한 북한 땅(사진 오른쪽)이 비교되었습니다.
빈부격차가 가시화되고 있는 중국의 도시문제가 눈에 들어왔고, 이런
중국에 비해 북한 땅은 너무 썰렁했습니다.
단동의
막개발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쳐져있는 북한 땅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운 건 북한 뿐만 아니었습니다.
남의 땅 중국에서 배를 타고 우리 땅을 관광(?)하고 있는 제 모습도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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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5. 07:00

지구 지키겠다 나선 '호사비오리'들


이틀 전(3월 23일) 마산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초록별 창립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름이 너무 예쁘죠?
정식명칭은 「마산YMCA기후변화교육 강사모임 ‘초록별’ 창립대회」입니다만 줄여서 ‘초록별’이라고 부릅디다.

‘지구온난화의 브레이크를 걸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젊고 고운 마산 아줌마 20명이 모여 지구를 지키겠다고, 지구 지키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자리였습니다. 청일점도 한 분 있었습니다.


규모가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흐뭇하고 풋풋한 분위기는 어떤 행사보다도 크고 좋았습니다.
목적이 아름다워 그런지는 몰라도 시종 하하호호 웃음이 넘쳤고 진심어린 격려와 덕담이 이어졌습니다.
초록별 모든 회원들이 차례대로 동영상에 출연해, 참여하게 된 동기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총회 프로그램도 재미있었습니다.
'무조건 무조건이야~~~'로 신바람 낸 노래까지 들었습니다.

‘초록별’ 은 마산YMCA가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야심찬 기획입니다.

의도된 교육과 다양한 체험을 거쳤다고 합니다.
한국사회의 기후변화와 정책동향, 교육기법,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이해, 에너지 자립공동체를 통한 탄소제로운동 등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받았답니다.

뿐만 아니라 순천만에 있는 한국YMCA태양광발전소, 진해 에너지과학공원, 창원YMCA생태건축 등을 견학하여 현장체험도 하였으며,
어린아이서부터 노인들까지 사회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교육시킬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 창립에 이르렀답니다.

‘초록별’ 은 창립선언문에서,

‘CO2의 증가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자연재해와 이상기후로 우리의 생활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면서
‘지역사회의 작은 실천들이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임을 깨닫고 기후변화교육 강사들의 모임을 결정했다’ 고 밝혔습니다.

이 자랑스러운 스물 한 분의 당찬 모습이 내 눈에는 마치 꺼져가는 심지에 다시 붙어 오르는 작은 불꽃같아 보였습니다.


도대체 인류가 갉아먹고 사는 지구의 수명은 언제까지 일까요?
지구가 수명을 다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지구가 죽은 뒤에도 돈과 자녀의 성적, 가족의 건강, 친구, 그리고 전쟁과 문화예술이 필요할까요?

남미의 산악토착민족 코기사람들이 오늘날 문명세계를 향해 던진 메시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혼자서만 세상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
아우가 너무나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
아우도, 보고 이해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함께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죽을 것이다’

코기 족은 밀림 속에 타이로나(Tayrona)라는 거대한 도시의 유적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인류의 형님’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이 문명세계의 아우들에게 ‘앞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엄숙하게 경고했습니다.

‘초록별’ 회원들,,,

희귀하다는 점에서,
아름답다는 점에서,
자연과 생태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분들을 ‘호사비오리’라 부르고 싶네요.
천연기념물 제448호이자 세계적인 희귀조로 알려진 아름다운 '호사비오리' 스물 한마리가 마산에 출현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지금은 희귀조이지만,
퍼지고 퍼져서 모든 사람들이 호사비오리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이 분들을 통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호~사비오리(아~싸 가오리?) 화이팅!!!


                               <세계적인 희귀조 호사비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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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정림 2010.03.25 09:05 address edit & del reply

    그 날 오셔서 큰 힘이 되었는데... 또 이렇게 글로 힘을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항상 화이팅하겠습니다.

    • 허정도 2010.03.25 09:21 address edit & del

      참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재미도 있었고요.
      '호사비오리'들께 인사 전해 주세요.

  2. 최정미 2010.03.25 21:21 address edit & del reply

    격려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더욱더 가슴 벅찬 발걸음 으로 달려보려 합니다.
    호사비오리 무리중 한명

    • 허정도 2010.03.26 09:30 address edit & del

      잔뜩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요.

  3. 이윤기 2010.03.26 08:36 address edit & del reply

    이제 본격적으로 블로거 활동을 하시는건가요?

    곧 파워블로그가 되시겠습니다.

    • 허정도 2010.03.25 11:07 address edit & del

      아니,
      그럼 내가 여태까지는 가짜 블로거였나요?
      기가 막혀서,,,
      연재까지 준비하고 있는데.ㅎㅎㅎ

    • 이윤기 2010.03.26 08:36 address edit & del

      실언했습니다.

      진짜로 아니라 본격적으로...라고 해야하는데...^^*

  4. 이재철 2010.03.26 13:04 address edit & del reply

    어깨가 무겁네요~~~
    열심히 해볼께요~~~

    • 허정도 2010.03.26 16:53 address edit & del

      호~사비오리 화이팅

2009. 11. 11. 06:00

창의적 도전 필요한 민선교육감


어제 오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학교운동장을 찾아보자’ 라는 제목의 작은 토론회에 참석했다.
네 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다는 두 분이 발제를 하고 세 분의 전문가가 토론자로 나섰다.
소박했지만 중요한 주제였다.
요즘 점점 확산되는 ‘학교운동장 인조잔디’에 대한 이야기와 ‘학교운동장 형식’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조잔디' 이야기다.
‘인조잔디는 유해할 뿐 아니라 수명이 7-8년이라 앞으로 애물단지가 된다’게 핵심이었다.
파워블로거 마산YMCA 이윤기 부장이 쓴 글
http://www.ymca.pe.kr/385  http://www.ymca.pe.kr/389  두 개가 있으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음은 '학교운동장의 형식'.
발제는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김인호 교수가 맡았다.
건축가 시절,
학교설계를 할 때 마다, 학생들에게 학교건축에 대해 강의할 때 마다 했던 이야기를 김 교수가 똑 같이 했다. 반가웠고 안타까웠다.

우리의 초등학교 운동장.
그 멀겋게 벗겨진 맨땅 운동장은 일제 때 군복입고 칼 찬 교장이 구령대 위에서 호령하던 식민지 시절 도입된 일제의 산물이다.
칼 찬 교장도 군사훈련도 벌써 없어졌지만 일자형 건물과 넓은 운동장은 지금도 건재하다.

전교생이 고루 사용하지도 않는다.
6학년 남학생 중 축구 좋아하는 아이들만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황당한 공간’이라고도 했다. 운동을 잘 못했던 나는 그 운동장의 한 복판에서 뛰어본 기억이 없다.

매주 열렸던 전체조례도 요즈음은 교실에서 방송으로 하니 운동장 사용할 일이 더 없어졌다.
체육시간에 사용을 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저렇게 클 필요는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운동회할 때 외에 늘 놀고 있는 저 땅을 활용해야 되지 않는가, 일본에서도 저런 운동장은 없어져 가는데’ 라고 김 교수가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지금의 운동장을 숲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국내 사례(포천 추산초등학교, 남양주 광동중학교 등)들과 특수학교인 성남 혜은학교숲의 치료효과와 교육효과도 소개했다.
비오톱(Biotope)까지 조성된 영국, 독일, 미국, 캐나다, 일본의 학교숲도 보여주었다.
학교운동장 한 개를 숲으로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대충 12억 정도라고 했다.


                              <학교 숲에서 즐기는 아이들>


                               <학교 숲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


그냥 듣고 지나칠 내용이 아니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말이었다.

아이들의 공간인데, 아이들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생각해본 적 없지 않은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학교 운동장은 원래 그런 것인 줄 알고 지나쳤지 않은가?
멀겋게 벗겨진 맨땅 운동장이 아이들의 감성과 창의성을 키우는데 해가 되지 않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지 않은가?
21세기를 사는 아이들한테 20세기 어른들이 못할 짓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경남에는 마산 월영초등학교에 '학교숲가꾸기' 시도가 있었고, ‘모델학교숲’에 선정된 마산진동초등학교에서 다음주 화요일(11월 17일) 내부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런 학교 숲은 운동장 한쪽에 소규모로 하는 것.
운동장 전부 혹은 많은 부분을 숲으로 할애한 사례는 없다.

그래서 경남교육청에 권한다.
도내 몇 도시에 시범학교 한군데 씩 정해서, 휑한 운동장에 나무 심고 잔디심고 텃밭 가꾸고 연못도 넣어 근사한 숲으로 꾸며보기를.

관리는? 운동회는? 모기떼는? 조기축구회는?
온갖 예측 미리하며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 도시에 한 학교만 해보자는 거니.
문제가 생기면 답은 찾으면 될 것.

이것이야 말로 ‘저탄소 녹색성장’전형 아닌가?
창의적 도전이니 나쁠 것 없다 싶다.
민선 교육감이니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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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무조아 2010.04.29 17:51 address edit & del reply

    수목 가꿀때~
    친환경 퇴비 냄새없고 최초 땅에 박는 말뚝퇴비로 쾌적환경 조성 간편시비~

    상세사항은 www.namujo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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