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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22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by 운무허정도 2022. 11. 7.

제6장 개항사

 

3. 일본의 토지 매수 상황

돌이켜 우리 일본의 토지 매수 상황을 회고해 본다. 홀연히 키 큰 괴한이 한복(韓服)을 입고 성긴 수염을 단채 나타나 각 리, 각 동에 출몰하니 그 신분을 사람들은 의문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누가 보아도 한인과 아무런 차등이 나타나지 않으나 그 말투와 거조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 순 한국인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야음을 이용해 혹은 폭풍우 날에도 신출귀몰하게 활동했으니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영사관 분관의 고쿠부(國分), 와타나베(渡邊), 두 통역관 중의 한 사람과 한둘의 사복 순사는 그를 미행했다. 그는 한인의 집을 방문하자 인사를 잘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할 때도 있었으며 한 번도 화를 내는 법이 없이 아주 재미있는 인물 같았다.

이 괴한이 바로 오늘 우리 마산부에서 거류민단 민회 의장을 계속 독점해온 현 도평의회 의원인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씨였다. 씨의 이러한 활동은 제국 정부의 위촉을 맏은 것이며 미행은 호위와 감독을 겸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마산의 개항에 관해 러시아가 이 땅을 아주 가지고 싶어한 것을 감지한 제국 정부는 러시아와 경쟁해 토지 매수에 적극 움직일 것을 경성 주재의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공사에게 명령하자 하야시 공사는 부산 주재의 이주인 히코기치(伊集院彦吉) 영사에게 전달하고 영사는 표면상의 토지 매숴 명의자를 교토의 거상 이오이상점(五百井商店)의 전 부산지점 지배인이었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아래 사진) 씨에게 의뢰했다.

 

하자마 씨는 그래서 지점을 마산에 설치, 이오이상점의 전 동려 간부였던 히로시 세이조 씨를 마산지점 지배인으로 밀어 직접 토지 매수 활동을 담당케 했다.

그 결과 자복(滋福), 월영(月影) 두 동네의 하자마 명의의 정부 소유지는 대지, 논, 밭, 갈대밭을 합쳐 2만 평의 면적과 그 외에 율구미포(栗仇味浦), 완월동(玩月洞), 자산동(玆山洞) 방면에서도 적지 않은 지소(地所)를 입수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훗날 어떤 사정이 있어도 러시아의 매수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하자마 씨 개인의 매수지도 역시 광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유를 표시하는 기둥돌에는 당시 장방형의 틀 안에 ‘하자마의 땅’(迫間地)이라 새긴 것과 단순히 하자마 당이러 쓴 것이 있는데 훗날 러일전쟁이 끝나고 나서 장방형 표석은 모두가 군용지로 다시 새겨져 부근의 각 리와 동 지역에 점점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것은 만약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우세했을 때에 우리의 소유지를 점점이 존재시킴으로써 러시아가 모두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제일 중요한 것이 현재의 마산중포병대대 병영의 주위 일원이었다. 러시아의 매수 활동은 일본을 능가할 수가 없어서 율구미 방면에 중점을 두게 되었으며 그곳에 이미 매수한 우리 당과 러시아가 매수한 월영, 자복의 땅을 교환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이 토지를 대일본제국 전관거류지로 하고 착실하게 군사용으로 경영해 나간 것이다.

대정 원년(1912)에 하자마 씨에게 훈6등, 히로시 씨에게 훈7등의 명예로운 훈장이 수여된 이유는 이 문제 해결에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22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