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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23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by 운무허정도 2022. 11. 14.

제6장 개항사

 

4. 각국거류지 제1회 경매

이후 각국거류지의 정리는 차차 진척되어 광무 3년(1899) 11월 1일에 제1회 토지경매가 진행된다는 고시가 나왔다.

그 지역은 A호 제1지구에서 35소구획이고 총면적 약 9,131평, 즉 3만185평방미터이며 이는 전체 면적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해병에 연해 있어 장래가 촉망되어 일본, 러시아 양국은 물론 기타 외국인에게도 희망자가 많다고 전해졌다.

그 외의 지역은 오늘날에는 극히 중요지 되지 않는 현재의 하마마치(濱町) 해안로에서 혼마치(本町) 2-5정목(丁目) 남쪽 일대다.

이 경매에 참가하거나 관람하기 위해 10월 30일 일본 우선(郵船) 부산지점장 시마무라 아사오(島村淺夫), 경매사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 외 2~3명이 작은 기선 이쿠쇼마루(生昌丸)를 타고, 도한 부산세관장 라포드(라포르트, E. Laporte, 羅保得, 1883년 조선해관의 창설과 함께 해관원에 임명되어 주로 인천해관에서 근무한 프랑스인. 1898년부터 부산해관의 세무사로 있었다) 경매사인 미국인 선교사 어빙(찰스 어빙, C. H. Irving, 1894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로 1894년 부산에 파송되어 선교 활동. 조선 최초의 나병 요양소인 부산나요양소(釜山癩遼陽所)를 창설하기도 했다), 경매사인 동청철도(東淸鐵道) 대표자로 나가사키에 주재하는 독일인 긴스버그 상회의 후벤(H. J. Houben, 厚彬, 생몰년 미상. 개항기 부산과 마산에서 활동한 상인.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 출신), 부산 출장 중이이었던 가와카미(川上) 마산분관 주임 서기생, 신임의 마산분관 나카무라 기(中村魏) 영사관보 외 십수 명은 한국기선 현익환(顯益丸, 현익호-아래사진, 세곡운동 및 연안 해운에 이용되던 증기선. 만재 709톤. 1892년 노르웨이 선박 붕기복(Bankchef Henrikssen) 호를 인수해 현익호로 개명해 세곡 운반선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전운국(轉運局)이 폐지되면서 이운사(利運社)로 넘어가 연안 해운에 사용된다. 이후 독일계 상사 세창양행(世昌洋行)에서 운항권을 맡아 운영하였다)을 타고 내항했다.

 

31일에는 오사카상선의 오타니(大谷) 부산지점장, 동 이치무라(二村) 회계주임, 유지 후쿠다 마스베(福田增兵衛), 사카다 요이치(坂田興市), 야마모토 준이치(山本純一), 고지마 다케기치(小島武吉), 아오미 구메조(靑見久米藏) 등 사십여 명이 기선 다마요시마루(玉吉丸)를 타고 도착해 다음 날 11월 1일은 모두 창원감리서 별실의 마산세관 출장소의 경매장에 집합했다.

그러나 경매용어에 관해 어빙은 영어 전용을 주장하고, 가와카미 서기생은 목포, 진남포의 선례에 따라 일어 전용을 주장하여 격렬한 토론 끝에 가와카미 씨는 주장을 취소하고 한국어 전용을 청구해 해당국의 토지경매에 자국어를 사용함은 아무도 거절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어빙은 가와카미 씨의 굳은 결심을 보자 앞선 주장을 번복해 일어 영어 병용을 새로 주장해 당사자들이 받아들인 바가 되었으니 때는 이미 저녁때인지라 다음 날부터 하기로 약속하고 폐장했다.

11월 2일에도 서로의 기세를 정탐하고자 하는 등의 사정으로 유회가 되었고, 3일에는 우리 동포 1백20여 명은 명치대제의 탄신기념일인 천장절(天長節)을 경축하여 서로 불필요한 경쟁을 삼가도록 약속하고 경매장에 나오게 되었다.

나가사키에서 부산을 거쳐 며칠 전에 마산만에 정박하여 수상항 거동을 보인 러시아의 군함 우라지미르 모노마크(블라디미르 모노마흐 호, 러시아제국 해군의 장갑 순양함. 18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조된 배수량 5,593톤의 증기기관선. 1883년 취역하여 여순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05년 쓰시마 해전에서 침몰되었다) 함장 오스톰스키(오크톰스키, 1848~1910) 소장은 통역관 마키시모후 외 장교 십여 명과 함께 와 방관석에 착석하였다. 때는 오후 1시.

제1구 785평방미터, 원가 41원 70전이라는 큰 소리가 경매주임의 입에서 나오자 이것이 영어로 번역되니 어빙과 후벤, 두 사람은 바로 단 밑에 다가가 우리 경매사 사이에 경쟁을 개시했으나 처음이라 서로 경계해서 그 기세를 탐지하려 하면서 서서히 경쟁이 벌어졌는데 제1구는 450원으로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 씨에게 낙찰되었다.

그 땅은 지금 하마마치(濱町) 3정목 마산수산회사가 있는 터이다. 이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경락되어 갔는데 5, 6구로부터 차차 경쟁에 열이 올라 제6구는 원가 57원 60전임에도 1,702원으로 어빙에게 낙찰되었고, 그것부터 23구까지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등락을 거듭하였고 가격은 오를 뿐이었다.

24구의 경매가 시작되자 함장 오스톰스키 소장은 자기 편의 경쟁이 느슨하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 방관석(傍觀席)에서 나와 스스로 단 밑에 와서 잘 구사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계속 가격을 올리자 이 때문에 35구까지는 경쟁이 특히 심해져 거의 원가의 백 배까지 가격이 올랐다.

오후 9시에나 예정구역의 경매가 종료되었다. 그 결과 19소구는 구미인의 손에 들어가고 나머지 16소구는 우리 손에 들어왔다. 오이케 씨가 다수를 차지했다.

토지소유권을 증명하는 문권인 지계(地契)는 고지마(小島), 아오미(靑見) 등 제씨가 낙찰한 5필지 이외, 오이케 씨가 낙찰한 11필지는 곤도 겐페이(近藤廉平), 시마무라 아사오(島村淺夫), 오구라 한사부라(小倉胖三郞) 3인의 명의로 어빙, 후벤, 오스톰스키 소장이 낙찰한 토지는 긴스버그(긴즈부르크, M. A. Ginsburg, 러시아의 오데사 출신 사업가. 일본 요코하마와 나가사키에서 외국 선박 관련 일에 종사하다가 자신의 회사 긴스브르크 상회(Ginsburg & Co.)를 차리고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슨인된 공급업체가 되었으며 중국, 싱가포르 등지에 지사를 두기도 했다. 그는 마산포 개항 후 동청철도의 부산 에이전트인 후벤을 대리인으로 하여 러시아의 마산포 경영에 개입하였다)의 명의로 교부되었다.

이것은 러시아, 일본이 똑같이 괴뢰를 썼다는 사정이 밝혀지게 되었다며 더욱이 우리 측 3인 명의의 땅은 정부의 소유지임을 명기한 언명서(言明書)와 토지사용법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선서서(宣誓書)를 내게 하고서야 명의인에게 교부한 것이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23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