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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오동동 아케이드'가 철거된다고 ?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7. 28.

오동동 아케이드가 철거된다고?
- 얼마전에 오동동 아케이드가 철거될거라는 얘기를  듣고서,
 갑자기 철거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시청에 알아보니 자유상가아파트는 보상이 끝나서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고, 오동동 아케이드는 아직 보상이 끝나지 않아서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 그래서 지역사에 관심이 많은 박영주선생과 의논한 바, 우리라도 한번 기록을 남겨보자는 거사(?)를 치를것을 결의하고 박선생과, 김주완 국장과 함께  지난 6월 12일 토요일오후에 방문을 하였었다.
 
(게을러서 글 정리가 조금 늦었음)
사전에 간단한 자료를 준비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 건물전경 (2010년 6월 12일 촬영)



● ‘오동동 아케이드’와 '자유상가아파트'의 기록
- ‘오동동 아케이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식 명칭은 '마산 자유시장’ 이다.
이것은 시장개설허가를 득한 건물에 붙여지는 공식명칭이고 '아케이드'는 우리가 부르는 애칭에 해당된다. (이 글에서는 '오동동 아케이드'로 칭함)
- 이 건물이 약 40년 가까이 되어가면서 주변환경의 변화와 시설의 노후화로 철거 명분을 찾지 못하다가, 도시환경 개선사업의 일환인 ‘생태하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철거될 상황이다. 
도면 관련 자료를 시청에 확인해보니 별도의 자료는 없다고 하였다.
- 단편적인 기록들을 찾아보니
‘오동동 아케이트’ 는 지난 70년 9월에 오동동 일대 회원천을 복개하여, 74년 1월에 ‘마산 자유시장’으로 문을 연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하천 상류쪽의 '자유상가 아파트'는 1층 상가, 2층에 27세대의 아파트로 구성된, 요즘 말로 '주상복합 아파트'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건물은 1977년 지어졌으나 ‘하천터’라는 이유로 2년동안 준공검사를 받지 못하다가, 2년이 지난 79년에야 준공필증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 당시로서 흔치 않은 건물 상호로 '아케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볼 때,
근대적 상가를 지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아케이드'라는 용어의 의미는 쇼핑을 위한 보행로에 지붕이 있는 구조를 나타내지만,
'발터벤야민'이라는 사람이 근대성의 상징을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을 통해 소개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오동동 아케이드'라는 명칭도 당시로서는 첨단의, 근대화된 시설을 지향하였으리라 생각된다.
-  당시로서 이만한 규모에 다양한 용도가 어울러진 건물은 없었기 때문에 작명부터 상당한 의지를 내포한 건물이라고 생각되었다.

● 수출자유지역과 함께한 ‘오동동 아케이드’의 역사
- '오동동 아케이드'의 건설 배경은 수출자유지역의 역사와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수출자유지역'의 시작 당시 산호동은 주거지역으로 구획정리되어 개발되는 과정이었기에, 상권의 중심지는 수출 정문앞과 가장 가까운 기존의 중심상권인 오동동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당시에 워낙 오동동 상권이 부흥했었던 터라, 기존 대지에는 손을 못되고, 가장 용이하게 개발할 수 있는 곳이 공유부지에 해당되는 오동동 하천의 복개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 70년대에 수출자유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꾸준히 늘어서 70년대 말에는 3만 6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소비층이 생기면서 '오동동 아케이드'는  청춘 남녀들의 해방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 수출자유지역이 마산을 산업도시로서의 성장 동력 역할을 하였다면 ‘오동동아케이드’는 그 동력원이 되는 근로자들의 휴게, 오락 및 거주시설로서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권도 '수출자유지역'의 경기와 부침을 같이 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하천을 따라 휘어진 것을 알 수 있다.

* 건축물의 공간 구조
도면도 없이 건물을 조사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건축하는 전공을 살려서 대략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상당한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 '오동동 아케이드' 건물 규모는?
- 대략 40미터 되는 건물 3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 건물의 길이는 120미터에 이른다, 길이로서는 최근의 건물도 이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 건물을 3동으로 붙여서 지은 이유를 살펴보니
하천 상류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는 것을 건물이 연결되는 부분에서 계단 처리를 하여 자연스럽게 보행동선이 연결되도록 되어있었다.
- 그리고 구조적으로 건물은 일정길이 이상이 되면 구조적으로 신축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구조적인 안정을 고려하여 3동으로 구분하여 지어진 것 같았다.
- 건물의 폭은 약간의 차이은 있지만 대략 21미터 정도 였다.
정면에서 양단부에 폭 5미터의 점포와 각 2미터 복도를 설치하고 내부 점포는 7미터 정도로 칸을 구획해 놓았다.
- 건물의 측면폭은
 1칸이 5미터로 건물에 따라 7.5칸에서 8칸으로 길이는 약 40미터 내외로 되어있었다.
- 점포의 크기는
외부 상가 정면폭과 측면폭을 계산하면 약 25평방미터, 평수로 환산하면 7.5평 정도였다.

● '자유 상가아파트' 건물 규모는?

- 상가아파는 2층 아파트 세대당 폭이 6미터 13칸과 발코니 길이가 합쳐서 약 80미터에 이른다.
- 상가는 2층 아파트 폭에 의해 정면 6미터로 되어 있다.
- 단위세대 면적은 외부에서 추산해 보았을 때 정면 6미터에 깊이가 약8미터로 전용면적 48평방미터, 평수로 14.5평 규모 아파트 27세대로 지어졌다.
- 일단의 하천위에 약 200미터에 이른는 초대형 상가건물과 주상복합건물이 있었다는 것과 약 400여개의 점포와 27세대의 아파트가 공존했던 흔적은 건축사적으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 아케이드는 3동의 건물이 이어져 있다.(총길이 120미터)

▲ 3개의 동으로 분리된 이유는 구조적인 이유와 높이차를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 분홍색 건물이 오동동 상가 아파트 이다. 이건물은 직선형태임.


▲ 상가내부 : 소규모 사무실들이 아직 남아있다.

▲ 외부 상가와는 달리 여러 업종들이 많이 남아 있다.



● ‘오동동 아케이드’의 추억
- 수출자유지역 근로자들의 애환과 이곳을 생업의 터전으로 삼았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있으며, 마산의 근대화와 영욕을 같이 한 상징성이 있는 건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 탐방 중에, 철거를 기다리며 아직도 막걸리 장사를 하는 집을 들러 간단하게 목을 축였다.
주모인 할머니는 처녀시절인 70년대 초반부터 여기서 장사를 하면서, 딸 아들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고 지금껏 여기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 하였다.
- 올해 70을 넘긴 할머니는 해병대 출신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애를 먹였던 이야기를 하며 ‘오동동 아케이드’와 함께한 자신의 애환을 늘어 놓았다.
- 얼마지 않아 철거될 '자유상가 아파트'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닌, 도시빈민들의 주거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찌짐도 부쳐먹으면서, 카드놀이도 하는 노인분들이 많이 보였다.
공터에 텃밭도 가꾸면서 도심형 빈민가를 형성하고 있는듯 하였다.
철거가 되면 이들은 어디로 갈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당시 수출에 근무하면서 '오동동 아케이드'와 함께 청춘 시절을 보낸 사람들과 이 외에도 많은 마산사람들이 ‘오동동 아케이드’에 대한 얽힌 사연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우측면 : 복개한 부분을 아케이트의 진입로 겸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상가 후면 모습 : 지금도 성인텍이 영업중에 있다.

▲ 건물 좌측면 전경 : 1층 점포는 영업중에 있다.

▲ 좌측면 전경 : 셔터가 내려진 점포도 더러 보인다.

▲ 우측 하천변에 지어진 무허가 건물들도 거의 문을 닫았다.

▲ 하천변의 우측면 상가는 문닫은 곳이 많다.


<<< 여기서 부터는 '자유상가 아파트' 풍경입니다.>>>
 

▲ 자유상가 아파트의 출입구 : 현재 보상이 되어 철거 직전의 상태이다.

▲ 오동동 '방석집(?)'에 면한 상가 모습.

▲ '방석집(?)'- 왕년의 흥청거림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 복개천에서 본 오동동 상가아파트 : 1층은 상가이고, 2층은 아파트이다.

▲ 자유상가아파트 전경 : 도시빈민들의 주거지로 변해 있다.(텃밭을 가꾸면서)

▲ 편안한 주말 오후 풍경: 전도 부치고 카드놀이도 하면서

▲ 아파트 1층 입구 통닭집 : 학생들의 아지트로-

▲ 수천마리의 통닭을 꾸었을 화로의 마지막 모습


●  '도시 기록화 작업' 누구의 몫인가?
- 우리가 사는 도시는 단순한 구조물로 형성되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생명체 처럼 성장하고 소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주로 개발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 최근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도시들은 재개발전에 의무적으로 도시기록화 작업을 요구 하고 있다.
그간 무시되었던 도시 기록화 작업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어, 도시역사의 보존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 인근 지역 부산시는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정비사업 도시기록화’ 프로젝트를 2008년 7월에 시작, 금년 5월에 마무리 하여 과거 도시의 사진 자료들을 시민들에게 제공해 주는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 도시기록화 작업’은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을 수집하고, 현대를 충실하게 기록하면서, 미래의 변화를 앞서 확보해 놓는 작업이다. 단순한 역사적인 기록 보존의 역할 뿐만 아니라 도시정책 수립과 경관 관리를 위한 기초자료로서도 활용될 수 있기에 서둘러 해야 할 작업이다.
- 지금 '오동동 아케이드' 건물에 대하여 어떤 조사를 하여야 하는가?
: 건축물의 도면화 작업과, 과거사진 및 현재 사진의 보존, 경제적인 역할에 관한 기록자료,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생활사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동동 아케이드'
- 근사하고 멋진 풍경은 아니지만, 어둡고 지저분한 모습을 통해 과거의 어려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었기에, 마치 그 건물과 함께한 추억도 사라지는듯하여 아쉬움을 남기게 한다.
-
우리가 사는 이 도시는 과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결과물이며, 우리 역시 살다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대상이다.
- 이 도시에 남아있는 도시의 흔적들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도시 기록화작업’은 현재의 도시를 꾸려가는 도시행정가들의 중요한 역할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