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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1) - 강점제1시기

-일본인의 마산포 토지 소유-

남성동의 매립으로 1912년 당시 전체면적의 31.4%이던 일본인 소유 토지가 1920년에는 35.0%로 변했습니다.

매립 직후에는 매립시행자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이 전량 소유함에 따라 41.1%로 급증하였다가 35.0%가 된 것입니다.

이 시기 한국인들이 소유한 토지는 1912년 당시 63.2% 이었으나 1920년에는 62.5%로 줄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토지소유변화를 단순 비교하면 일본인 소유의 토지는 3.6% 증가하고 한국인 토지는 0.7% 줄어든 셈입니다.

아래 표는 1912년과 1920년의 마산포 토지소유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구분 정부. 마산부  기업. 단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게
 필지수  5  10 853   271 18   1,157
 비(%)  0.4 0.9   73.7 23.4   1.6 100.0 
 면적 5,783.54  1,299.18  107,051.13  53,228.14  2,105.79  169,467.77 
 비(%) 3.4  0.8  63.2  31.4  1.2  100.0 
 필지평균  1,156.71 129.92  125.50  196.41  169.99  146.47 

 필지수 10  981 274 12  1,286
 비(%)  0.7 0.8  76.3  21.3   0.9  100.0
 면적 760.99  2,714.05  116,320.88  65,000.11  1,323.64  186,119.67 
 비(%) 0.4  1.5  62.5  35.0  0.7  100.0 
 필지평균 84.55  271.41  118.57   237.23 110.30  144.73 
             


그렇지만 원마산(마산포)에 새로 조성된 박간(迫間) 소유의 토지가 8,078평이었던 것을 감안해보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오히려 이 시기에 박간 외에 다른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1912년 이전에 사들였던 토지를 상당히 넘겼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1912년과 1920년 토지소유를 비교한 아래의 두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 가능합니다.

이렇게 일인 소유의 부지가 1910년 대 후기 동안 작아진 이유는, 매립지 때문에 중심상권이 바뀌면서 발생한 소유권 이동 및 사업장 이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신마산과 원마산이라는 두 핵에만 집중해 있던 여러 시설들이 시내 전역으로 흩어지는 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원마산 중심상권에 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이미 전국에 알려질 정도의 시장으로 발전해 있던 마산포장(馬山浦場)이 매립이라고 하는 새로운 변화에 의해 크게 바뀌었습니다.
굴강과 선창은 없어지고 박간의 토지가 원마산 해안의 중심이 되는 구역을 차지하게 되어 마산포는 바다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일찍이 창원부윤 이기(李琦)는 마산포가 매립되면 도시구조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하여 1907년(隆熙元年) 11월1일, 일본인 홍청삼(弘淸三)이 세우고 있던 원마산 해안매립계획을 무산시키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당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올렸던 보고에서 「․․․만약에 (원마산 해안을) 타인이 매립해 버리면 (원마산은)입이 틀어 막힌 목구멍이나 문이 잠겨버린 집과 같이 되어 (원마산 내의) 수천 호 주민은 결국 생업을 잃고 흩어져 비참하게 될 것이라․․․ (
昌原港案1, 議政府 外事局, 隆熙元年11月1日字 報告 第3號 / ․․․萬若讓與於他人埋築오면 便同塞口之咽喉요 閉戶之門扉라 本港幾千戶居民은 勢將失業渙散乃己기․․․)고 했는데 이 예측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② 일본인의 소유변화가 수성동 일대에서는 적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성동은 새로 조성된 매립지와 가깝고 상업용보다 주거용의 건물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상권변화의 영향이 적은 지역이었습니다.
위의 두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인들의 토지매매는 수성동을 제외한 동성동․오동동․중성동 등에 산재해 있던 토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중심권으로 부상한 매립지 부근의 땅은 매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동안 지속해 왔던 서성선창과 백일세 선창, 그리고 서굴강이 없어지고 외부에서 마산의 선창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새로 개통되는 도시구조의 변화는 당시의 원마산 상권이동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두 사실을 근거로 볼 때, 일본인들의 토지매도 이유는 원마산의 상권이동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이동 장소는 박간의 매립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중심상권으로 부각된 매립지로 옮겨가기 위해 그 때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를 처분하거나 아니면 사업장을 그곳으로 이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간파한 박간이 매립지의 차지료(借地料)를 고가로 받았던 것입니다.

매립으로 일인소유의 토지 필지 수는 271필지에서 274필지로 3필지 늘었습니다. 필지 당 평균면적도 196.4㎡에서 237.2㎡로 40.8㎡가 커졌습니다.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소규모 형태에서 매립으로 조성된 큰 규모의 형태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단위면적이 커진 것입니다.

이는 1910년대 초기에 비해 일본인들의 소규모 토지 중 일부가 한국인에게 다시 넘어갔지만 대신 중심상권지역에 대한 지배는 강화된 결과입니다.

이런 변화는 개항 때부터 시작된 일인들의 원마산 토지지배가 점점 구체화․집중화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통계도 일본기업을 제하고 개인 소유의 토지만 계산한 것이므로 실제로 기업소유의 토지까지 합한다면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율은 이 보다 더 높았습니다. 기업소유 부지 중 거의 전부가 일본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계산이 가능합니다.

이에 비해 중국인 소유의 토지는 1912년 당시 1.2%, 18필지였던 것이 1920년에는 0.7%, 12필지로 변하였습니다.

중국인 소유의 토지가 이렇게 작아진 이유는 일본의 지배체제가 합방 이후 점점 강화되면서 중국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림동 일대 중국인 집단주거 현상도 강점기가 지나는 동안 많이 퇴색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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