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2. 11. 28. 08:00

일본에게서도 배울만한건 배워야하지 않겠습니까?

얼마전 가족여행으로 올빼미여행(금요일 퇴근후 밤배를 타고, 주말동안 관광. 일요일 밤배로 월요일 아침 출근후 곧장 출근하게 되는)을 다녀왔습니다. 시모노세키항으로 입항하여 후쿠오카를 돌아보는 여행일정이었었는데, 근사한 상업지와 흥미로운 관광지의 모습보다도, 직업병인지 '일상의 도시 모습'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창원시에서 '공공시시설물 표준디자인 개발' 정책을 수립과 도입을 앞둔 즈음에, 선진국의 사례를 컴퓨터화면과 책으로만 보는것에 비해, "그 공간에 서 있는 동안의 체감" 이 무척 중요함이 다시 한번 각인되었습니다.

우선 도착하여 만난 것은, 장애인 점자블럭입니다.  수없는 장애물과 만나고 끊김이 거듭되는 우리 도시의 모습과 비해, 모든 동선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좀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단정한 거리의 모습입니다. 자전거도로는 안전하게 자동차 도로, 보행자용 보도와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교통표지판은 지나치게 크기 않아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습니다.

도로측으로 면한 주택의 주차 진출입부는 휀스만 개방하였습니다. 이는 '자전거가 더 우선이니, 운전자가 더욱 조심하세요'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주의에 대한 표시는, 바닥에서 구분된 붉은 포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도로와 보도의 높이를 같도록 하였습니다. 우리의 경우 보도와 경계석을 같은 높이로 하여 한쪽이 기울어도 개구리 주차가 가능한데, 중간에 불쑥, 경계석이 올라와 있으면 개구리주차(RV차량은 가능할지?)는 꿈도 못꿉니다. 또 유니버설디자인개념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로 다닐때에도 높이 턱이 안생겨 휠씬 걷기 편해집니다.

우리의 경우, 다운석(경계석을 횡단통행부에 낮추어 시공하는 것을 말함)을 사용하지만, 딱 맞는 높이가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걸어보면 크게는 3~5cm, 적게는 1~2cm는 턱이 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배워야 할 것은 통합형으로 가로시설물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가로등(도로+보도)과 교통신호동, 표지판을 일체형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 조정버튼입니다. 아주 눈에 잘 띕니다. 또한 높이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누르기 쉬운 높이 설치하였습니다. (우리의 경우, 아이들이 쉽게누른다고 다소 높이 달지 않겠습니까?)

또 지나다 만난, 육교입니다.

도로에 면한 공원의 녹지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대부분, 밝은 연두색으로 설치된 메쉬철망을 쉽게 볼수 있는데, 이 또한 어두운 색으로 하여, 물리적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투시율을 높여, 철망휀스 뒤의 나무와 녹지를 감상할수 있습니다.

아주 단편적인 사례일수도 있지만, 이 작은 부분들이 도시의 품격을 만듭니다.

앞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시설물의 "색상"입니다. 디자인이 형태와 색상으로 결정지어지듯, 도시가 모습와 분위기를 좋게 꾸며가기 위해서는 합칠건 합쳐야 하며, 통일되어야 할것 똑같아져야 하겠습니다.

아주 작은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배너를 모래통(무거운 지지력 보강을 위한)에 설치되는 우리의 배너광고 깃대의 모습과 다른, 건물 부지내에 설치된 배너설치 모습니다.

자~ 그럼, 일본의 사례를 보고서, 우리 도시로 나가 보시지요? 무엇이 발에 걸리며, 하늘을 보면, 맑은 하늘보다도 무엇이 눈에 거슬리는지요?

 

Trackback 0 Comment 1
  1. 강창원 2012.12.05 20:44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의 점자블록 설치방법이 일본 것을 빼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선형블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사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일본도 일본 만의 방식을 채택한 경우로 선형블록에 너무 의존한 경우 입니다.
    사실 점형블록의 원리를 이해하면 저렇게 점자블록에 예산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120년 전 마산은?  -  1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문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정했습니다. 전 세계 45여개 국가 1400여개 지방정부는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선물

이 글은 청란교회 목사이며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사진)가 3월 12일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되새겨볼만한 내용이라 옮겨 포스팅합니다. 나는 배웠다. 모든 시간은 정지되었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12

본 회까지 총 12회에 걸쳐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위 사진)의 생애사를 연구한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아래 사진)의 논문을 포스팅하였다. 이 논문은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99 No..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11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4)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상해격발」이라는 문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상화 소장 「상해격발」 참조.) 비단 위에 인쇄된 이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큰 주제..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10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3) 그렇다면 개별 문건들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이교재(우측 사진)가 전달하려던 문건 중에는 달성의 문영박(호는 장지, 1880~1930)에게 보내려던 두 종류의 문건이..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9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2) 이교재(우측 사진)의 임정문서 일부가 동아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는 이정순의 아들인 이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이상화와의 면담은 2017년 9월 27일 마산..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8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1) 이교재(우측 사진)의 독립운동 중에서 증거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부분은 상해임시정부에서 발급한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라는 위임장을 비롯하여 다종..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7

Ⅲ. 상해 임시정부로의 망명과 통영 군자금 모금 사건(2) 이교재(우측 사진)가 상해 임정에 도착한 1921년대 혹은 1922년대 초는 임정으로서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베르사이유 체제가 공고화되고, 임정 내의 갈등도..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6

Ⅲ. 상해 임시정부로의 망명과 통영 군자금 모금 사건(1) 이교재(우측 사진)의 독립투쟁에서 두 번째 단계는 상해로 망명한 다음 상해 임시 정부의 일원으로서 활동한 시기이다. 그는 상해에 언제 갔으며, 어떻게 갔을까? 이 부..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5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4) 그렇다면 이교재와 함께 형무소에 갇힌 위의 인물들은 누구일까. 순서대로 적힌 인물들을 검토해 보자. 沈相沅에 관한 기록은 재판 기록 이외에서는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4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3) 이교재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뛰어든 것은 3.1운동 때였다. 그는 1919년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고향의 동지와 더불어 선언서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문..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3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2) 이교재가 소년시절을 보냈던 조선조 말기와 대한제국시기에 진전면 일대에는 몇몇 서당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마을 단위이자 문중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문중 중에서도 ..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2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1) 이교재(사진)는 1887년(고종 24년) 7월 9일 경상도 진해현 서면 대곡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578번지)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가 부농의 아..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 1

앞서 9회에 걸쳐 1954년 김형윤 선생이 마산일보에 기고한 '이교재 선생 생가 기행문' 「삼진기행」을 포스팅했다. 오늘부터는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위 사진)의 생애사를 연구한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아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