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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0. 00:00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더니 집 내놔라 한다?

통합창원시 청사위치 문제 때문에 지역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해서는 안 될 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옛 창원지역 출신 시의원 한 분은 '시청사는 마산과 진해 중에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더니 집 내놔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마산시민을 두고한 말 같습니다.

그 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공직자로서 해야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가리지 못하니 시민이 시의원을 걱정해야할 판입니다.

 

 

습니다. 3년 전 통합여론조사 때 창원 진해 시민들에 비해 마산시민들이 통합을 많이 원했던 것 사실입니다. 도시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던 마산시민들이 도시통합을 돌파구로 생각했던 것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다”는 생각 옳지 않습니다. 통준위 합의사항이니 시청사를 진해나 마산에 두자는 걸 두고 “집 내놔라 한다”는 말 역시 옳지 않습니다.

3년 때로 돌아가 차분히 생각해 봅시다.

통합은 마산시민들이 하고 싶어서 된 일이 아닙니다. 마산시민을 위해서 한 통합도 아닙니다. 통합은 세 도시 시민들이 뽑아 세운 시의회가 결정했습니다.

애당초 창원 진해에는 통합을 반대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시민 뿐 아니라 시의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통합을 결정하기 직전, 시의회가 통합반대 입장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MB정부의 영향권 아래 있던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시의원들을 압박하자 어느 날 갑자기 통합반대가 찬성 쪽으로 돌아 섰던 겁니다.

여기까지가 팩트(Fact)입니다. 지난 일이라고 잊으시면 안 됩니다.

마산시민이 통합을 가장 많이 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산시민들 중 누구 한사람 창원 시의원들에게 통합을 결의하라고 요구한 적 없습니다. 통합하자고 사정을 한 적도 없습니다. 통합은 창원 시의회가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을 뽑아 준 시민들의 뜻은 내팽겨 치고 공천권자 눈치만 보고 결정한 일입니다. 그 때 창원 시의회가 반대했더라면 이렇게 시끄러운 통합 애당초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창원지역 시민과 시의원 중 통합문제 이야기하다 욕이라도 한 마디 내지르고 싶으면 자신들이 뽑았던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에게 하셔야 합니다. 마산시민들에게 빈정댈 일이 아닙니다. 방향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렇다고 남한테서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더니 집까지 내놔라 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함부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저 개인을 두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파렴치범에게나 할 수 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지며 가슴이 까맣게 타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마산이라는 이름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마산은 제 고향이고, 저는 마산사람입니다.

또한 이 도시는, 싫다고 등 돌릴 수 없는 제 인생 소설의 무대이자 삶에서 도려 낼 수 없는 살붙이 같은 존재입니다.

통합 당시 마산의 도시사정이 나빴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손가락질 받을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이 도시에도 역사와 문화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어린아이가 자라고, 골목마다 거리마다 사람들의 온기가 흐르는, 여기도 사람 사는 도시입니다.

이름도 잃었고 때로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제 마음이 더 애잔해지니, 저는 어쩔 수 없는 마산사람입니다.

희망까지 무너진 건 아닙니다. 생물과 같은 것이 도시라 했으니 언젠가 이 도시에도 새로운 기회가 오리라 믿고 그저 지켜볼 따름입니다.

마산의 도시사정이 나빠진 것, 마산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공직자에게 있습니다. 굳이 시민들에게 책임이 있다면 공직자 잘못 뽑은 책임입니다.

잘나가던 도시가 어느 날 길을 잃고 헤매어도,  기관과 기업이 떠나면서 성장 동력이 사라져도,  난개발 막개발로 도시가 난도질을 당해도,  그래서 한 사람 두 사람 이 도시를 떠나도,,,   마산을 책임졌던 분들  아무도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 분들, 지금까지 시민들께 진실한 고백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욕심 채우기 바빴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산시민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공직자를 잘못 뽑은 잘못입니다.

렇다고 해서 마산시민들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 용납되지 않습니다.

파렴치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마산사람들이 잘못한 일 없습니다. 통합은 원했지만 마산시민이 통합을 결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통합을 두고 마치 마산사람들 때문에 한 것처럼 말하시면 안 됩니다.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더니 집 내놔라 한다”며 마산사람들을 꾸짖은 시의원께 드리는 말입니다.

명칭은 가졌으니 시청까지 전부 갖고 싶습니까? 그래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래야 속이 편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도시통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통합일 텐데, 이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붙잡으시렵니까?

시민인 저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4
  1. 마산시민 2013.01.30 15:45 address edit & del reply

    어디 시의원인지는 몰라도 아직도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저런 무식하고 무례한 작자들이 시의원이랍시고 가당찮은 소릴 시부리니 기가찹니다.
    시의원 저런 구조라면 없는게 낫습니다. 시민의 녹을 먹고 살 자격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무료 봉사하겠다던 원래 시의원의 모습으로 돌려 보내야 합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2. 도시를담은틀(창동공화국) 2013.03.28 19:21 address edit & del reply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더니 집 내놔라 한다? 정말 무식하기 짝이없는 말이네요.
    진짜 팩트를 들여다보면 됩니다.

    실제 팩트는 무엇일까요? 진짜 마산살림이 가난했을까요? 창원이 마산의 빚을 갚아줄만큼
    상황이 호락호락했을까요?
    1. 2009년 통합직전의 정황.
    1-1 마산은 국책사업에 말미암아 회생의 발판(로봇랜드)마련
    1-2 창원은 2006년이후 끊임없이 도시정체발생 인구감소와 기업유출
    입니다. 특히나 2007년이후 세계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제조업산업 기업중심의 세수입으로 버티던 창원시가 세수입감소로인해 전체적인 재정자립도 하락과 재정악화상황이 빚어지고있었습니다.
    특히나 "북면""동읍"등의 무리한 도시계획사업의 추진으로 급기야 지방채를 발행하며
    돈많다고 자랑하던 창원조차 빚을지며 허덕거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의 빚을갚아준단 말인지 정말 한심하기 짝이없습니다.

    2. 과연 마산시의 재정지수가 나빳는가?
    2-1 마산은 2007년도 재정 A급의 재정안정성을 보입니다.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Press/YIBW_showPress.aspx?contents_id=RPR20080104012300353
    그런데 돈이없어 빚을 갚아줘야했다라는게 말이나 될까싶은데요

    특히나 행정안전부 재정고의 통합전의 2009년과 2010년 상반기 자료를 보면
    창원시의 예산액은 총 9700억(09'년기준)과 마산시의 예산액은 총 9000(09'년기준)으로볼수있습니다 더욱이나, http://cafe.naver.com/scenerycitygall/5551
    해당자료에의하면 재정자도와 재정결산액을 봤을때, 인구 42만의 마산시와 인구 50만의 창원시의 주민세등의 재정상황을 비교했을때 마산시의 재정이 과연 창원에서 말하는만큼 상황이 좋지않았는가라고 반문 하고싶을정도입니다.

  3. 도시를담은틀(창동공화국) 2013.03.28 19:27 address edit & del reply

    현재 통합창원시 재정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통합당시 온갖 찌라시를 뿌리며 시민들의 여론을 호도하고 현혹하면서 기존 중복투자를 감소해서 재정도를 줄일수있다고 현혹했습니다.
    과연그랬을까요?
    마창진은 이미 모든 그림이 그려져있는 그림과도 같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의 그림입니다.
    눈도있고 코도있고 입도있죠. 그래서 기초자치단체에 KTX역만 3곳이나됩니다.
    앞으로 중복투자는 언제할지는모르겠지만 "중복시설"을 "운영"하는데에만 재정이 지출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마산시의 1인당 부담해야할 재정이 약 90%이상 인상되었습니다.(행안부기준 09'~12' 비교)
    그런데도불구하고 현재의 창원시는 급격하게 긴축하며 돈을 아끼고있는모습입니다.
    그리고 항상돈이부족하고 예산이없다며 아우성치고있지요.

    통합전 마산이 과연 돈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할만큼 아우성쳤을까요?
    물론 풍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없지는 않았다라는 말을 하고싶습니다.

    현재의 통합시가 가장필요한것은 "국가보조금"과 "교부금"입니다.
    그러나 통합시출범이후 정부지원이 끊겼습니다. 겉으로는 거대규모가 되었기때문에 당연한 사실입니다. 2007년이후, 전국 거의 모든 지자체는 자체세수입감소로인해, 교부금과 국가보조금으로 버티고있습니다. 현재 재정집계로봤을때, 중앙정치힘으로 누가더많은 국비를 끌어오는가
    창원시는 그러한 능력이 있는가 반문했을때 누가 대답을할수있을까요?

  4. 허정도 2013.03.29 07:47 address edit & del reply

    다시 생각해봐도 문제가 많은 통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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