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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2) - 강점제3시기

by 허정도 2013. 5. 20.

<1941년에 세운 ‘상이군인요양소’ 그리고 ‘산장의 여인’>

일본제국주의가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년)에 이어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킨 1941년, 조선총독부는 ‘상이군인요양소’라는 이름으로 마산에 결핵전문병원을 세웠습니다.

마산 가포지역에 있는 현 국립마산결핵병원의 전신입니다. 시작은 상이군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오랜 시간 변화를 거듭해 지금은 한국 최대의 국립특수의료기관이 되었습니다.

 

마산도시의 끝자락인 가포(자복포, 율구미 포함)지역은 한 많은 땅입니다.

110여 년 전, 한반도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을 때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먹겠다고 각축을 벌인 ‘마산포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며 ‘지바무라(千葉村)’라는 이름으로 일본 어업이민의 전진기지가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가포는 20세기 초입에 강대국의 발톱에 찍힌 치욕스러운 현장입니다.

병원의 본관 건너편 숲속에는 가요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한 산장의 흔적이 있습니다. 키 큰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아래, 오래 전 사라져간 결핵환자들의 외로움과 절망과 눈물을 담아냈던 그 산장의 흔적은 지금도 처연히 홀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장이란, 카테이지(cottage)라 불렀던 2인용 병사(病舍)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숲속에 카테이지 10동과 부속건물들이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잔해는 그 건물들의 흔적입니다. 일제 때 세웠지만 1950년대 후반에 모두 철거된 뒤 지금은 잔해만 남아 있습니다.

다음 사진이 당시 사용되었던 카테이지(cottage) 이고, 그 아래 사진은 현재 남아 있는 이 건물의 잔해입니다.

 

 

지금은 OECD가입국까지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결핵왕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폐결핵이었습니다.

결핵은 가난 때문에 생긴 비위생적인 생활관습이 주요 원인으로, 선후진국을 구별 짓는 사회상징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가 ‘결핵왕국’이었습니다.

변변한 치료약조차 없었던 시절, 폐결핵에는 맑은 공기가 최고의 약이었습니다.

하여 물 좋고 공기 좋기로 유명했던 마산지역에 결핵환자를 위한 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섰고, 6·25전쟁 시기에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도립마산병원, 국립마산요양소, 마산교통요양원 외에 마산상고 교사(校舍)를 징발해 급히 세운 국립신생결핵요양원, 결핵전문 제36육군병원, 공군결핵요양소, 진해해군병원결핵병동 등이 그것이며 결핵을 전문으로 보는 개인병원도 많았습니다.

결핵은 ‘글쟁이들의 직업병’이라고 불릴 만큼 문인들 사이에 폐결핵이 만연되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마산결핵병원에도 수많은 문인들이 거쳤고 글자취도 남겼습니다. 마산을 두고 '결핵문학의 요람'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일제기에 요양 차 이곳 마산에 왔던 문인은 나도향, 임화, 지하련이었고 광복 후에는 권환, 이영도, 김상옥, 구상, 김지하 등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함석헌, 김춘수, 서정주 등 유명 문인들이 결핵을 매개로 마산을 오갔습니다. 가요「이름모를 소녀」로 70년대를 풍미하다 요절한 가수 김정호도 이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뭐니 뭐니해도 마산결핵병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산사람 반야월 선생이 노랫말을 짓고 가수 권혜경이 부른 ‘산장의 여인’입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날의 /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 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 가네

 

1941년 일제가 ‘상이군인요양소’를 건축할 당시만 해도 가포지역은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병원 앞 바닷물은 수정처럼 맑았고 주변의 경치도 아름다웠습니다.

가포해수욕장이 있었던 시절까지도 그랬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결핵요양소가 들어섰던 겁니다.

하지만 그 맑았던 바닷물과 아름다웠던 경치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누런 흙들과 아스팔트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 도시를 위해 바다를 메웠다는데,,, 정말 그럴까요? 

어릴 때, 여름만 되면 가포해수욕장가는 일이 큰 낙이었는데,,, 그 때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