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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현대아이파크’의 추억.

by 허정도 2009. 9. 18.

마산 앞바다 신포동 매립지에 현대아이파크 고층아파트가 우뚝 섰다.
짓기 전에는 몰랐지만 다 올라가고 난 지금, 많은 시민들이 혀를 찬다.

‘도시를 막았다’

‘추산공원에서 돝섬이 보이지 않는다’



말들이 많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돌이킬 수도 옮길 수도 없다. 도시와 건축은 그런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저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를 기억해 보자.
오래된 일이 아니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시민들의 반대서명, 토론장에서의 날선 소리, TV공개토론 등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인데 왜 다시 짚어봐야 하는가?
두 번 다시 이런 식의 행정을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기왕 지어진 건물, 옮길 수도 없으니 반면교사로라도 삼기 위해서이다.

현대아이파크 고층 아파트는 마산시가 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멋지게 바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이런 마산시의 주장에 시의회가 부응, 자신들 손으로 만든 조례를 불과 열 달 만에 스스로 뒤집어 고층아파트 건립을 가능케 했다.
납득할만한 설명도 별로 없었다. 모두 마산 시민을 위하고, 마산발전을 위한 결정이라고만 했다.

이런 흐름에 반대한 시민도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애당초 이 매립지가 항만관련시설로 허가받았다는 원론적인 지적 외에, 이 고층건물이 도시의 자연환경과 조망권, 나아가 경관의 소수독점이라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까지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반대의사에 동의하는 1만여 명의 시민 서명까지 받아 시의회가 다시 한 번 재고하도록 청원까지 했다.


시의회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결정하고 난 뒤에도 계속 의견을 개진했다.
당시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다.

첫째, 시민의 혈세로 수백억을 책임져야한다는 마산시의 주장은 적절치 않다.
애당초 현대산업개발과 해양수산부가 계획했던 것은 항만이었지만 그 기능이 없어졌다. 아니 애초부터 아파트가 목적이었고 항만은 서류상 필요한 수단이었다는 것도 알만한 시민은 다 안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항만이 쓸모없어졌다면, 그래서 건설회사에 비용보전을 해주어야 한다면, 그 고민은 순전히 건설회사와 해양수산부(당시 명칭)의 몫이다. 매립허가 과정에서 마산시가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필요도 없는 항만 만든답시고 결국 아파트 부지만 조성한 저 매립을 마산시민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책과 기업을 두고 투자비 보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중앙정부가 실패한 정책을 추궁하는 것이 시의원의 권리요 의무다.


둘째, 고층아파트 건립을 찬성한 시의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기 바란다.
이 터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개정한 조례는 마산시의원 총 서른 명 중 열여섯 명이 찬성함으로써 결정되었다. 그 분들은 자신이 찬성한 이유를 시민들에게 알려, 설득시킬 것은 설득시키고 양해구할 것은 구하기 바란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마산시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고 이 도시는 무엇이 좋아지는지 이해시켜주기 바란다.

이는 신뢰받아야할 공인의 마땅한 의무며 유권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건립반대서명을 받으면서, 의회가 왜 저곳에 고층아파트를 짓게 했는지 대다수 시민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셋째, 최종 결정은 시민들의 뜻을 물은 후 내리기 바란다.

제도상으로 보면 의회가 시민의 대의기구인 만큼 의원 각자의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처럼 중요한 사안일 경우, 본인을 뽑아준 시민의 뜻을 확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형 건물은 한번 들어서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철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만약 다수 시민이 고층아파트 건립을 찬성한다면 시민의사가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값진 일이며 설령 건축 후 도시환경이 나빠지더라도 의원들에게 돌아가는 부담도 준다. 역으로 고층아파트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이 많아 조례를 다시 고친다면 그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의회가 시민들의 뜻을 묻는 여론조사가 아무 부담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주장에 시의회는 묵묵부답,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2004년 추산공원에서 바라본 돝섬 풍경(좌)과 당시 아이파크 건립후를 예상한 시물레이션(우)



▲2009년 추산공원에서 바라본 돝섬 풍경
시야를 가로막은 아이파크로 인해 섬의 온전한 형태를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도시발전을 위한 중요한 판단은 일부 소수의 결정권자에게 독점되어 있다. 제도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도시사용자인 시민들과 충분한 교감을 얻지 못한 도시정책은 결국 실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실패한 도시정책은 회복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부담은 미래의 도시사용자까지 져야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현재와 미래의 두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의원들은 말했다.

‘마산시민을 위하여, 마산의 미래를 위하여’
유권자이자 시민인 우리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가?
이 고층 아파트가 마산을 살려줄 것이라 했던 시의원들께 묻는다.
정말 그런가라고, 저 고층 아파트가 정말 마산을 살렸느냐고.

TV토론에서 마산시 담당 국장은,
‘저 아파트를 지으면 문신미술관에서 돝섬이 보이지 않는데 어쩔 거냐' 고 하자
‘돝섬이 보이지 않으면 어떠냐’ 고 공개적으로 답했다.
'저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획기적으로 발전될 것'
이라고도 했다.

그 분께도 다시 묻는다.
지금도 마산 앞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조망이고 뭐고 여기저기 건물만 올라가면 도시가 좋아진다고 믿는지?
5년 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버스 지나간 뒤 손드는 짓 두 번 다시없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