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월 25일,
마산시 양덕동 들판에서 1차 건설을 마무리하고 가동하기 시작한 한일합섬은 마산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산업체로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이자 마산시민의 자부심이요, 자랑거리였다.
비록 경영진의 오류와 산업변화가 빚은 몰락이지만 아직도 한일합섬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무게는 마산시민에게 더없이 무겁다.
▲1970년대 한일합섬 전경
그로부터 36년 후,
2003년은 주인 잃은 한일합섬 터의 미래가 시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이 되었던 해다. 그해 4월 3일 한일합섬 강당에서 개최된 이 터의 개발계획에 대한 공청회는 행사를 하루 앞두고 일정이 발표되었다는 이유로 시작부터 평탄치 못했다. 뿐만 아니라 공청회 내용에 대한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마산시가 비공개로 진행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마산시에서는 이 넓은 터의 개발을 두고 공청회다 설명회다 하며 여론을 이끌었고, 시민단체에서는 개발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지금은 여당 국회의원이 된, 당
시 지역의 시민단체 대표도 적극 참여하여 마산시 행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각계각층에서 ‘이러자’ ‘저러자’ 의견이 분분했다.
마산시는 법정관리중인 기업의 상황과 도시미관 그리고 도시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뿐 아니라 도시 발전에도 기여하는 win win 전략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반대 측에서는 마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만큼 대규모 땅(9만여 평)인 만큼 공익적 관점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한일합섬이 경영에 실패하여 무너진 사기업이지만 지난 40여 년간 농업용지 ⇒ 공업용지 ⇒ 주거용지로 변해 온 과정에서 축적된 이 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자고 했다. 결론은 공공용지를 늘이라는 것이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이유로 공격도 많이 당했다.
▲1950년대 한일합섬 조성전의 양덕동 전경
돌이켜보면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이었다.
마산시는 공업용지인 이 터를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던 시기에 주거상업용지로 변경해 주었다. 정말 한심하고도 어이없는 도시행정이었다. 졸속 단견 그 자체였다.
섬유산업에 한계가 있었다면 업종을 바꿔 새로운 산업용지로 전환시킬 판단을 왜 못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기만 하다.
공장용지를 주거상업용지로 바꿔주는 행위는 ‘이제 땅값이 높아졌으니 어서 빨리 공장 그만두고 땅 팔아 떠나라’는 뜻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설명될 수 있는가.
미래비전 없는 도시행정이 얼마나 무모한 결정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창원으로 떠나버린 한국철강 터도 마찬가지다.
2009년,
이제 잔치는 끝났다.
프리미엄 차익을 기대하며 9만평 담장을 감고 늘어섰던 장사진도 끝났고, 경쟁률 높았던 분양권추첨도 끝났고, 호화로운 모델하우스 구경도 끝났다. 남은 것은 거대한 아파트 숲뿐이다.
▲한일합섬 부지에 조성중인 아파트단지
‘이 아파트로 인해 마산인구가 늘어날 것이다’고 했던 마산시의 주장이 귀에 생생한데 분양받은 사람들의 계약률조차 별로 높지 않다고 한다.
얻은 것이 있다.
미래에 무관심한 도시행정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낳는지 알게 되었다.
기회 놓치면 위기가 오는 건 야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은 부지에 대한 구속력도 없다. 오직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의 선한의지 뿐이지만 애당초 어려운 주문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마산의 경제도 살고 도시가 획기적으로 발전될 것이라고 외쳤던 그 분들은 저 거대한 아파트 숲을 보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6년 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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