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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한일합섬 터에 아파트 대신 공원이 생겼다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12.
2006년 11월 어느날.
마산 옛 한일합섬터
에 분양하는 아파트의 청약을 위해 담요는 물론 난로와 텐트까지 준비한 수 천명의 사람들이 밤새 줄을 서 있었다.
이 모습은 저녁 9시뉴스의 메인 소식으로 전파을 타 전국에 소개 되었고, 지역에서도 한참 화젯거리였다.
이러한 현상은 분양가 프리미엄을 노린 투기꾼과 수도권 아파트값 폭등을 지켜보면서 투기심리를 자극받은 지역민이 가세해  빚은 촌극으로, 웃돈이 예상 만큼 되지 않자 당첨자 3명중 1명꼴로 계약을 포기해 청약광풍이 사실상 거품임이 증명되었다. 

한일합섬 부지에 들어설 아파트단지 조감도 (출처:태영건설 홈페이지)



집이 주거의 목적이 아닌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면서, 우리나라의 주거정책이 의도했건, 안했건 집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공급 되어야하는 삶의 본질과 많이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인해 아파트는 계속 짓지만,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미분양은 넘쳐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현재 마산은 노후한 주거지역 대부분이 재개발,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으나, 줄어드는 인구는 고려하지 않은채 예외없이 세대수와 용적율에만 집착하여 공급과잉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렇다면,
국내 섬유산업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확장이 제한적인 소도시의 중심에 자리잡은 소중한 터에 굳이 아파트를 지어야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일합섬은 1966년 당시 논밭이었던 양덕동 일대에 국내최초로 아크릴섬유 제조공장을 가동한 이후, 1973년 단일기업으로는 국내최초로 1억불 수출을 달성하였고, 2004년 부지가 매각될때 까지 국내 섬유산업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투영하는 섬유산업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섬유산업이 전체 수출액의 30%이상을 차지했음을 감안하면 산업화시대의 상징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산업건축물로서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부지가 기업이 소유한 사유지이고 (부지를 취득할 당시의 특혜와 수십년간 굴뚝연기를 참으며 살아온 시민을 생각하면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그 회사가 사경을 헤메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건물이 한번 지어지면 최소한 30년을 간다고 봤을때 현실에 급급해 더 큰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 근시안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때늦은 가정이지만, 만일에 한일합섬터에 아파트가 아닌 문화시설과 공원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과거 산업화시대의 상징과 앞으로 다가올 문화시대의 교량역할을 하는 매개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사방을 둘러봐도 마땅히 쉴 곳 없는 쇠락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산소같은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만 보던 성공사례라며 각지에서 방문객이 찾아오는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현실적으로 부지전체가 어렵다면, 무공해산업을 유치하고 공원과 공존하는 형태도 가능할 것이다. 


10여년전 대학 졸업설계를 하면서 한일합섬부지의 일부만이라도 그 땅이 가진 역사성과 장소성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에 기존 유류탱크를 리노베이션해 섬유박물관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이후 여행을 하거나 책을 통하여 한일합섬과 유사한 사례임에도 시장, 전문가, 기업, 때로는 국가의 수장까지 나서 훌륭한 문화, 관광자원으로 변모시킨 경우가 해외의 사례가 더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경우 수명을 다해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외형을 거의 유지한채 현대미술관으로 변모시켜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영국미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테이트모던 미술관 (2004년 유럽여행)


비단, 한일합섬 터 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의 근, 현대 유산들을 생각하며 해외의 성공적인 사례를 통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계속...

지금은 사라진 마산화력발전소와 구마산역 (출처:마산시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