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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간 도시이야기

포르투칼 도시이야기 13. 리스본. 대항해시대의 거점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13.

리스본은 포르투칼의 수도로 대서양에 면한 도시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테주(Tejo)강 하구에 자리잡은 도시입니다. 15세기에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여 잇따른 신대륙의 발견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1755년 대지진으로 도시전체가 파괴된 폐허에서 포르투칼의 정치가 '폼발 후작'의 재건계획에 따라 아름다운 도시로 새롭게 탄생한 도시입니다. 특히 골목을 누비는 노란색 트램과 좁은 골목길의 전경이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포르투칼의 역사 : 우선 지명에서 찾아 볼수 있습니다. 포르투칼(Portugal)은 기원전 2세기 경부터 500여년간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라틴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군의 전진 기지였던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 오늘날의 오포르투)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로마의 침략이후에도 스페인의 역사와 같이하고 있습니다. 624년에는 서고트족의 침입으로 서고트 왕국이 세워졌으며, 얼마지 않아 711년에는 이슬람세력의 지베를 받게 됩니다. 이때만 하드라도 이베리아 반도 내에는 여러 왕조국가가 있었기에 지금의 스페인처럼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왕조들 중의 한켠의 차지하는 정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지배하에서 기독교인들이 국토회복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 스페인의 백작령으로 포르투칼지역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알폰수 엔리케'장군이 이슬람교토들 대파하면서 1147년 리스본을 재벙복하여 그 후 1267년 협정을 통해 포르투칼과 카스티야 레온왕국간의 경계가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1. 2 왕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 신대륙에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인도 항로를 발견하는 등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통해 대항해 시대를 개척하였습니다. 이후 1580년 알칸타라 전투에서 카스티야에 패함으로서 '카스티야 왕국'에 통합되게 됩니다. (카스티야는 현재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스페인의 주축이 된 왕조) 이후에도 포르투칼 뿐만 아니라 여러 왕조들(카스티야, 아라곤, 카탈루냐)간의 독립운동이 벌어져 1640년에는 카탈루냐와 포르투칼이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스페인의 오랜식민지였던 관계때문에 스페인과의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수 많은 외세의 침입으로 맺힌 서러움과 뱃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대항해 시대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향수 등 다양한 정서가 담겨 있는 '파두'라는 음악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국민가수 '아마리아(Amaris)'의 파두를 듣노라면 세티멘탈리즘에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 상부의 장방형 광장이 '로시우 광장' (Praca Rossia) 이고, 강변에 있는 정방형 광장이 '코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이며 그 사이 길이방향 장방형의 블록이 상업지역입니다.

코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 : 리스본 최대의 광장으로 돈호세 1세의 동상이 태주강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주변에는 노란색 상가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습니다.-아우구스터 거리 남측에 있는 광장- 포르투칼 국왕인 돈호세 1세의 동상-로시우 광장과 연결되는 관문으로 주변에 노란색 상가로 주변을 장식

로시우 광장 (Praca Rossia) : 정식명칭은 돈 페드로 4세광장으로 중앙에 동상과 주변에 화려하게 장식된 분수, 그리고 국립극장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타 거리 (Rau Augusta) : 리코메르시우 광장과 로시우 광장 사이에 있는 상업지역의 중심가로 입니다. - 남북축 방향의 중심가로입니다. 건물디자인은 다르지만 높이와 색상에 의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동서를 가로 잇는 지선도로입니다. 좁은 길에 비해 4층 규모의 높이비로 인해 협소한 느낌이 들법도 한데, 간판이 없고, 가로변에 지상시설물(전신주, 가로등 등)이 없어서 답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바닥포장이 타일만한 돌맹이로 포장이 되어있습니다. 여기에는 차도 다니고 사람도 다닙니다. 결국은 보행자를 배려한 공간이 됩니다.- 오후가 되니 서서히 노변이 테라스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가판대 뒤로 에펠의 엘리베이터가 보입니다.- 드디어 도로 중심에 노천 카페가 설치됩니다. 바닥포장이 마치 실내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왜 바닥포장이 타일같은 돌로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Elevdor Santa Justa) : 1902년 거이에 세운 높이 60미터의 전망대 입니다.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하여 더욱 유명하다고 합니다.- 타워구조체의 장식물이 독특합니다.-탑 주변상세입니다. 금속공예품처럼 철골을 다듬어 놓았습니다.- 승강장 부분입니다. 112년이 경과한 건물입니다. 마치 최근에 디자인한 건물 못지 않습니다. 아니 더 나이스해 보입니다.

예레니모 수도원(Mosterio dos Jeronimos) : 이 수도원은 대항해시대 선구자역할을 한 엔리케 왕자가 세운 예배당에 1502년 마뉴엘 1세가 예레니모파 수도사들을 위해 건립한 수도원으로 다행히 지진의 피해없이 1672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좌측의 기존의 예배당이고 우측에 백색으로 마감된 부분이 수도원입니다..- 수도원 남측 주출입구 의 화려한 모습 : 중앙에 있는 것이 항해왕자 엔리케 동상- 수도원 종탑의전경 : 백색 대리석도 세월앞에 장사없듯이 세월의 때가 꼬질 꼬질 묻어있습니다.- 예배당 주출입구로 주출입구의 아치와 첨탑 그리고 스페니쉬 기와의 구성에서 무데하르풍(이슬람풍) 장식미가 나타납니다.

벨렝탑(Torre de Belem) : 테조강 근처에 있는 등대입니다. 1512-1521년 프란치스코 데 알마가의 업적을 추모하여 지은 탑건물입니다. 건물 모퉁이 마다 감시탑을 세우는 형식의 3층 구조로 되어있으며, 19세기까지 1층은 정치범 수용소로, 2층은 포대, 3층은 망루 및 세관역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탑의 주변 장식이 드레스 자락을 늘어뜨린 귀부인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테주강의 귀부인'이라고도 불린답니다.-탑신주변이 포르트칼 특유의 마뉴엘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발견의 탑 (Padrao dos Descobrimentos) : 벨렝지구 예레니모 수도원 앞에 위치한 발견의 탑. 예레니모 수도원과 황제광장((Empire Square)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해양왕국의 개척자인 엘리케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1960년에 세운 기념탑. 그 뒤에는 콜럼버스, 마젤란, 다마스커스 - 황제광장에서 바라본 전경- 황제광장 좌측의 벨름문화센터(Centro Cultural de Belém)- 리스본의 마스코트 노랑색 트램- 강을 향해 열린 열주, 그리고 비둘기와 사람들의 한가로움

- 리스본에 별다른 보물은 없습니다. 18세기 중반에 도시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해 이후에 복구된 도시입니다. 그러나 도시재건사업에 의해 재탄생한 계획 도시입니다. 중심광장 2개와 테주강, 그리고 잘 정비된 상업가로구성, 그리고 4층 이하의 건물, 보행자 위주의 가로공간계획, 노천카페로 변신할 수 있는 가로공간의 변신, 골목길을 비집고 다니는 노란트램,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파두소리와 구수한 파스타 내음이 더해져 왠지 끌리는 매력이 있는 도시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