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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73. 어떤 일인 변호사

by 허정도 2016. 2. 15.

73. 어떤 일인(日人) 변호사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장자(莊子) () 노인은 한문학자로서 다분히 야인적 정치 색채를 띤 일종의 장한(壯漢) 타입이다.

일찍 조선 토지조사국에 봉직한 일이 있으나 언제 어떻게 되어서 법조계에 뛰어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가 오래 우거(寓居)한 곳은 장군동 3가이며 만년의 가족으로 자부(子婦)와 시부(媤父) 단 두 사람이다. 말하자면 형영(形影) 상조(相弔)라는 표현이다.

그는 사족(士族)으로 선대의 무사(武士)집 자제라고 하며 일설에는 일본의 정당인 정우계(政友系)라고도 한다. 당시 망() 70년령인데 소장(少壯) 2, 3명 쯤이야 때려 눕힐만한 건강체이고 술도 두주불사하리만큼 호주(好酒)이며 대식(大食)이다. 자기가 맡은 사건이 여의치 못한 판결이 있을 때에는 으레 집에 돌아오던 길로 며느리더러 닭을 잡아 오라 해서 무사검(武士劍)으로서 울화를 끈다고 한다.

다음은 술이다. 평소에는 홀로 있을 때나 객이 올 때나 불구하고 건너집에서 한 모의 두부로 통음(痛飮)을 한다. 법정에서도 피고인의 변론보다는 방약무인(傍若無人)의 태도로 법정을 소란케 한다.

이러다가 입회 검사와 논의 끝에 그날 변론은 중지라 선포하고 퇴장해 버린다. 공판이 끝나면 검사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기 마련이었다. 한번은 일본서 오래 살다 돌아온 박병주란 청년이 자기 형의 채권자를 식도로 척살(刺殺)한 상해치사 사건의 공판 때

잘하는 암성(岩城) 검사가 피고는 계획적으로 사람을 해쳐 놓고 술 취했다고 빙자함은 비겁한 일이라 하여 7년을 구형하자, 변호인 장자(莊子)는 몇 마디 변론을 하다가 검사 자신도 술 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무슨 그런 술타령을 하느냐 식으로 변론이 급선회를 하자 그대로 듣고 있을 수 없다는 입회 암성(岩城) 검사는 변론 중의 변호사에게

나는 법정에 나온 천황의 대리다. 무엇 때문에 개인의 인신공격을 하느냐

서로 설왕설래 예의 장자(莊子) 노인은 분연히 퇴장하였고, 이 틈에 끼었던 박 피고인은 구형보다 2, 3년 가형 판결이 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났다. 아들 없는 노 변호사는 미남의 암성 검사를 자기 아들이라고 농도 하며 뿐종 술자리를 벌였다. 자기 집에 초대되는 사람은 암성(岩城)과 그 당시 서기홍 판사 분이다. 술안주는 천편일률로 두부로써 생색을 낸다.

검사와 변호사는 법정에서는 싸워도 자기 집에서 술 마실 때는 화기애애하게 다정하다. 술이 몇 순배 되면 노인과 청년은 또 싸움이 벌어진다.

한날은 검사로서 참을 수 없이 격한 끝에 노인을 유도로써 방바닥에 때려눕히고 나가려 할 찰나에 검사의 멱살은 노인의 거센 손아귀에 잡히는 동시에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어 검사의 목에 견주었다. 과연 전광석화다. 손 한 번 까닥하면 검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검사의 위세고 무엇이고 얼굴은 순식간에 황토빛이다. 이때에 그 자부가 뛰어들어 사력을 다하여 만류한 끝에 권총은 떨어지고 사경에서 벗어난 암성(岩城)은 맨발로 탈출하였다.

잠시 후에 치다꺼리를 하는 자부에게

네 시부가 살인할 사람인 줄 알았느냐? 제깐놈이 검사라고 까불어대도 살려달라고 항복할 것이 아니냐 말이다. 이렇게 되면 세작(洗酌) 갱진(更進), 기쁜 마음으로 서로 담소화락(談笑和樂)하면서 화해술을 마시게 되는 것을, 술 먹는 시부의 마음을 몰라 주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장자(莊子) 변호사는 술값을 비롯해서 일상 생활 필수품의 외상값이 엄청났다고 했는데 동경에 다녀오겠다고만 하고 비밀리에 자부를 불러들인 후에 종적을 끊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