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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2.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74. 변호사 명록과 대서인, 75, 오촌 변호사

74. 변호사 명록(名錄)과 대서인(代書人)

 

마산에 법원이 설치됨과 동시에 정착 변호사와 출장 변호사(마산에 연락사무소와 서기만 둔 사람)는 다음과 같다. 표는 출장 변호사.

정상의리(井上義理), 굴지(掘池), 이용재, 김기정(통영), 박해극, 오촌(奧村), 천기(川崎), 서기홍, 박지영, 중촌(中村), 소출(小出), 장자빈(莊子斌)

* 마산 최초의 변호사는 정상의리(井上義理)

법원이 현 장군동(通町 4丁目)으로 이전한 다음 모든 대서인들은 이곳으로 집중한 바 그 당시의 대서인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천수 김기수(형제), 길천쾌조(吉川快造), 장도의마(長島義磨), 고교덕조(高橋德助), 미농부 모(美濃部 某), 강인중, 강선중, 선철환, 여병섭, 상야영조(上野榮助), 좌등선구랑(佐藤善九郞), 제갈식, 김회수, 황태규, 김은수, 윤태정, 서경석, 신용식, 이길조, 박재덕, 김형진, 김규명, 미산 모(捤山 某), 서방 모(緖方 某) 이상 25명 중 현재 생존자는 최고참인 김은수와 제갈식, 서경석 세 사람 뿐이다.

그런데 초기의 김천수 형제는 일어는 전혀 모르고 오직 양식 만에 의존하여 소장(訴狀)을 썼을 뿐 그 소장을 한번 낭독할 때에는 한자(漢字)는 조선음으로 가나(假名)만 일본어로 제법 목청을 뽑아 읽을 때에는 재방자(在傍者)가 실소치 않는 사람이 없었다.

* : 명칭은 처음 대서소 다음 사법서사××× 지금은 사법서사×××법무사무소로 변해 왔다.                                                         

<사진은 일제시대 법복 / 옮긴 이>

 

 

75. 오촌(奧村) 변호사

 

오촌(奧村) 변호사의 이름은 잊었으나 그는 경성 지방법원 검사국 검사를 일시 휴직해 있다가 1920년께 부산지법 마산검사분국 검사로 전직(轉職) 2, 3년 후 변호사 개업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검사로 재직 중 독직(瀆職) 혐의로 일본으로 추방되어 잠시 야인으로 있다가 뜻밖에도 저 유명한 박열(朴烈)과 문자(文子) 등 무정부주의자 대역(大逆) 사건 때 시곡(市谷)형무소 전옥(典獄)으로 비약하여 박열부처(朴烈夫妻)의 옥중 결혼의 증인으로 신문에 등장한 것이 필자가 아는 정도의 약력일 게다.

이 사람은 두부불사의 주호(酒豪)라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언제 보아도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피의자를 다룰 때로 검사국 내에서 됫술을 마셔가면서 집무했는가 하면 공판에 입회할 때도 얼근히 취하지 않으면 논고를 못할 정도였다.

그 당시엔 붉은 수를 얼룩덜룩 놓아 만든 법모와 법복을 착용하고 법정에 나섰던 검사였고 보면 평소 제아무리 본심이 유순한 인물이라도 제바람에 위엄을 부리게 됐을 것이다. 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시는 오촌(奧村)같은 사람이지만 그 앞에선 제아무리 호랑이에 날개 달린 식의 피의자라도 여간 담대해 가지곤 맥도 못쓰던 판이었다.

그런 위세를 부리던 오촌(奧村)이가 경성지법 검사로 있다 무엇 때문에 일시 휴직했다가 인구 2만 안팎인 조그마한 마산을 택했을까?

주호(酒豪)가 되어 명주(銘酒)를 찾기 위해 왔던가? 공기가 좋아 왔던가? 그가 마산까지 그의 편모를 모시고 오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비화가 있었다고 한다.

오촌(奧村)의 출신교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가 명동 천주교회 문전에서 오적(五賊)의 두목격인 이완용의 암살 미수로 현장에서 검거된 이재명 의사의 사건 담당 검사로 있었을 때다.

이 의사의 제1회 공판 전날 밤, 그는 친모로부터

이재명이라는 사람을 일본 법률로써 탄압할 것이 아니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아라. 그는 조선 나라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는 위대한 애국자가 아니냐, 내 나라의 애국자를 숭상하듯 남의 나라의 애국자도 보호 숭상하는 마음으로 극형의 논단을 피하라는 자애롭고도 엄한 설유(說諭)를 들었다.

<이완용을 살해하기 위해 칼로 찌른 이재명 의사 / 교수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평소에도 어머니의 훈도를 뼈에 사무치도록 받은 아들 오촌(奧村)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하고 말았다 한다. 이튿날 공판정에 나갈 때 사건이 사건인 만큼 술을 마시고 흥분과 긴장으로 장장한 논고를 한 끝에 사형을 구형했다는 것이다.

그날 전 신경을 곤두세우고 공판 시종(始終)을 듣고 있던 그의 어머니는 공판이 끝났을 무렵 그의 아들을 불러내어

내가 어젯밤 이 어미에게 약속한 것은 어찌되었느냐? 남자가 한 번 개구(開口)했으면 그대로 실행을 못하고 주위의 눈이 무서워 이 어미를 배신, 패륜한단 말이냐? 두 말 말고 오늘 안으로 그 직에서 물러나라하고 준엄히 꾸짖은 다음

사직한 뒤 한적한 것으로 가서 근신을 하라했다는 것이다.

화제를 돌려 오촌(奧村)이 검사로 재직했을 때는 피고들에게 상당히 준열한 논고를 했지만, 사직 후엔 그의 노모 말대로 근신하고, 속죄하고, 참회함이었는지는 몰라도 재야 법조계에서 명성을 날려볼 결심이었으나 역시 골수에 박힌 주벽이 화였던가?

만년에는 식모가 영화관에 가고 없을 때면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유성기(축음기)를 틀어놓고 술을 마시는 해괴한 낙()로 있었다 한다.

술에 취해 법정을 나서면 원고 사건을 맡고 착수금을 받고도 피고에게 유리한 변론을 하여 재판장으로부터

변호인은 원고와 피고 중 어느 쪽 변호사인가?” 하는 핀잔을 먹은 넌센스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촌(奧村) 변호사가 재판소에 나타나면 직원들까지도

원고와 피고를 바꿔치기하는 변호사라고 실소했다 하는 화재 중의 한사람인 오촌(奧村)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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