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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7.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77. 광산 약탈에 대한 항거

77. 광산 약탈에 대한 항거 / 한자가 많아 해독이 쉽지 않습니다(옮긴이)

 

개항 이래 일본인들은 마산포 일대의 토지 소유권의 약탈과 아울러 광산권까지도 침탈해 가게 되었다.

마산에 이웃한 창원군 북면에 있는 구룡산 아래 고암동(古巖洞) 동광(銅礦)20년의 역사를 가진 유명한 것이었다.

 

<창원군 의창구 북면 고암리 위치 / 아래 산이 룡산>

 

이를 탐낸 일본인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이라는 자가 전 광무감리(礦務監理) 김위섭과 결탁하여 정부에도 알리지 않고 자기들 맘대로 19016월부터 기계와 재력을 투입하여 약 5년 한()으로 채굴을 시작하였다.

이를 탐지한 내장원(內藏院)19022월 철광(撤礦)을 명령하였다.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은 투자를 구실로 이 명령을 듣지 않았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이 감리보고를 통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접광무위원(現接礦務委員) 서병정 보고하온즉 내개본부경내(內開本部境內) 구룡산하(九龍山下) 고암동(古巖洞) 동광(銅礦)은 개채지(開採地) 20여 년이온바 거년(去年) 6월 전광무감(前礦務監) 김위섭이 일인(日人)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를 청래(請來)하와 불복정부(不服政府)하옵고 기계와 재력으로 5년 약한(約限), 개채(開採)이옵더니 동년 2월 내장원(內藏院)에서 이를 탐지하고 철광(撤礦)하라 하오니 일인 마목(馬木) 왈 개채기삭(開採幾朔)에 인비(人費)가 지위(至爲) 8천여 원이고 종불폐지(終不廢止)오며 전관개채(專管開採)이온즉 자()에 보고하오니 조량(照諒)하시어 일인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이 김위섭 공문을 거()하와 본부(本府) 구룡산 동광고용(銅礦雇用)을 불폐(不廢)하므로 외부(外部)에 거보(擧報)하시와 조량(照亮)하시어 여하조치(如何措置)를 훈시(訓示)하심을 복망(伏望).

광무(光武) 4821 

창원감리 한창수

  의정부찬정외부대신(議政府贊政外部大臣) 박제순 각하

 

김위섭과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의 장정조약(章程條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장정조약(章程條約)

1. 구룡산 반야동(班也洞)은 물론, 은동광(銀銅礦)하고 피차(彼此) 자본전(資本錢)은 각출기력(各出其力)하야 이해(利害) 동사(同事)

1. 상납세단(上納稅段)은 대기은동맥소채(待期銀銅脉所採)하야 의장마련(依章磨鍊)이되 수기도근수(隨其稻斤數)하야 무루(無漏) 정납사(正納事)

1. 재력단(財力段)은 이무위유약반폐칙상납(以無謂有若半廢則上納)은 폐불폐문(廢不廢門) 변납사(辨納事)

1. 가신일인식(可信一人式) 차정감동사(差定監董事)

1. 년한칙이성역소치(年限則以盛役所致)5년 정약(定約) 이약위여광(而若爲與礦)이면 세납지수자동소(稅納之遂自銅所)로 자비태가사(自備駄價事)

1. 동석소채(銅石所採)가 수지과다(數至夥多)하야 약위마항취설(若爲馬港吹設)이면 이동철칭근수(以銅鐵稱斤數)로 십분일례(十分一例)

1. 동석(銅石)은 이석칭수(以石稱數)로 위주(爲主)하고 위선이십분(爲先以十分)에 일이례(一二例)하야 추봉발매대전(推捧發賣代錢) 이상납(而上納)하되 태가(駄價)는 역자동소(亦自銅所)로 담저사(擔著事)

1. 대기재력변래(待其財力辨來)하야 각정명목사(各定名目事)

광무(光武) 484

경전양도(慶全兩道) 각광감리(各礦監理) 김위섭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 중촌연송(中村年松) 귀하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 등은 조선정부의 철광 명령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의 권리옹호 기관인 현지 일본 영사관의 힘을 배경으로 끝끝내 상기 불법계약을 강행하여 채굴하였던 것이니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감리보고(監理報告)가 그간의 사정을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내장원(內藏院) 4호 훈령을 봉접(奉接)하난즉() 내개(內開)에 본부소재동광지설치(本府所在銅礦之設置)는 즉칭노수고(卽稱努需故)로 송감리파(送監理派) 파원(派員)하야 의식취세(依式取稅)가 비유실효연후(俾有實效然後)에 기과봉지본의(其過奉旨本意)어늘 세무기효(稅無其效)하고 이귀타처(利歸他處)가 사심아연(事甚訝然)이기로 탐기리허(探其裏許) 칙해광무감리(則該礦務監理)와 위원서병정(委員徐丙鼎)이가 불유본원(不由本院)하고 여일인(與日人) 마목(馬木)으로 사자성약(私自成約)하야 무난천채운자(無難擅採云者)가 시기성설평(是豈成設平)이 차불용불사정내기(此不容不査正乃己)기로 해감리(該監理)를 하송(下送)하며 자용발훈(玆用發訓)하니 도즉상탐근유(到卽詳探根由)하야 일인여서가지상약문기(日人與徐哥之相約文記)를 추멱상송(推覓上送)하야 이위처변당요등인(以爲處辨當要等因)인바 차()를 준()하와 해광무감리(該礦務監理) 김위섭과 위원 서병정과 일인 마목(馬木)을 삼조질사(三造質査)하야 근유(根由)를 상해(詳該)한 즉 광무감리(礦務監理) 김위섭이가 동년 84일에 일인 마목(馬木)과 서병정에게 본부(本府) 북면 구룡산 반야동(班也洞) 양광(兩礦)을 인허(認許) 채광하라는 훈령과 장정약조(章程約條)를 날인계약(捺印契約)한 사()가 확실할뿐더러 김위섭 사실지장(査實之場)에 역분명자복(亦分明自服)하옵고 서병정 따윈 거전지관하(渠全之管下)하야 지청기지휘이기(只聽其指揮而己), 성약문자(成約文字) 중에는 실무주관간보(實無主管干涉)이고 마목(馬木)따윈 자사아기여귀국내장원소차광무감리(自私我旣與貴國內藏院所差礦務監理)로 호상계약(互相契約)하였은즉 아정부명령지전(我政府命令之前)에는 해계약서(該契約書)를 이불가환납(理不可還納)이인 차해계약서(且該契約書)가 금재아영사관(今在我領事館)하니 조청아영사관조치위가(照請我領事館措置爲可) 이자기정부(而自己政府)로서 기욕환추칙양년소입(期欲還推則兩年所入) 자본급기계제비(資本及機械諸費) 합의(合議) 일만팔천원(一萬捌千元)이니 약자기정부(若自己政府)로서 환상차비(還償此費)하면 즉당해약운운(卽當解約云云)이옵고 소무환납서지의(小無還納書之意)하오니 수유지협지(雖誘之脅之)하야 백계요환(百計要還)이나 일직강경(一直强硬)하야 돈무동령(頓無動令)하오니 차계외국인(此係外國人)즉 실난사력환탈(實難私力還奪)이온바 대저광무감리(大抵礦務監理) 김위섭은 막중국광(莫重國礦)을 천허외인(擅許外人)하니 구궐죄상(究厥罪狀)하면 합치중피(合寘重辟)이오나 본감리불가천변(本監理不可擅辨)이옵기 해감리소위훈령급장정약조등본(該監理所謂訓令及章程約條謄本)을 호부보고(號附報告)하오니 사조(査照) 처변(處辨)하심을 복망(伏望).

광무 41128

창원감리 한 창 수

의정부찬전외부대신(議政府贊政外部大臣) 박 제 순 각하

 

또 상기 감리보고 부기(附記)동석출구사(銅石出口事)는 루박힐(屢駁詰)타가 해일인(該日人) 마목(馬木)이 잠솔모군(潛率募軍)하고 장제이거(裝制以去)……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불법무도하게 행동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 같은 일인들에 의한 우리의 주권 침해는 당연지사로 인민의 분노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니 19016월 맹감역마중군여당(孟監役馬中軍與黨)에 일인 마목(馬木) 습격사건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감리의 보고를 통하여 알 수 있거니와 이때 마산 일본 영사는 이들의 체포를 감리에 독촉하였던 것이다. 

본항(本港) 부근 군()에 초적(草賊)이 창궐(猖獗)하야 소위맹감역(所謂孟監役) 마중군당여중(馬中軍黨與中) 수삼한(數三漢)은 현기파순제득(現己派巡提得)하와 방엄수취초(方嚴囚取招)이옵건과 우접주항(又接駐港) 일본영사 판전조개(坂田照開)에 작년 6월 일어(日於) 창원구룡산아방인(昌原九龍山我邦人) 마목건삼품략탈지초적(馬木健三品掠奪之草賊) 마중군(馬中軍) 맹감역배근경유가(孟監役輩近頃愈加) 폭행 이경찰관지력(以警察官之力) 응무이체포(應無以逮捕) 청번진남진위대중(請煩鎭南鎭衛隊中) 상당병원(相當兵員) 일시파유지급(一時派遺之急) 체포등인(逮捕等因)이온바 준사해적(准査海賊) 괴마(魁馬) 맹양한(孟兩漢)이 솔당수십(率黨數十)하고 각지흉기(各持凶器)에 동섬서홀(東閃西忽)하야 혹방화인가(或放火人家)하며 혹창략전재(或搶掠錢財)하야 근경(近頃)에 소취어밀양수산장등지(嘯聚於密陽水山場等地)이온바 해지방(該地方)이 여본항(與本港)으로 접양심근(接壤甚近)하와 장유만연지려(將有蔓延之慮)이온즉 부득불급금체포(不得不及今逮捕)이오나 이순검약간력(以巡檢若干力)으로 불유불능초포(不惟不能剿捕)라 내반수기(乃反受其) 위해(危害)이옵기 자()에 보고하오니 조적(照積)하오셔 이조원사부(移照元師府)하시와 사즉전식우(使卽電飾于) 진남진위대(鎭南鎭衛隊)하야 병정한십명(兵丁限十名)을 파유후(派遺後) 본항(本港)하야 사순검(使巡檢)으로 합력(合力) 체포(逮捕)케 함을 복망(伏望).

광무 6613

창원감리 한 창 수

의정부찬정외부대신서리 철도원총재(鐵道員總裁) 유 기 환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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