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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8.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86. 고춧가루 강도, 87. 제2의 헤스마

86. 고춧가루 강도

 

확실히 1924년 봄이다. 그때만 해도 구마산(元町, 현 남성동) 우편소에서 직접 집배는 물론 적행낭수송(赤行囊輸送)하던 때다.

오전 7시면 먼동이 트이고 모든 물체를 확연히 볼 수 있는 때다.

7시 몇 분에 구마산의 발차시간에 우편직원(모라 했다)이 행낭과 우편물을 둘러메고 가는데 당시 상업학교 정문 근처에서 별안간 괴이한 청년이 나타나 아무 말 없이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뿌리는 찰나 직원은 쓰러졌다.

세상이 어둡기만 했으면 다행인데 눈이 따가운데다 눈물과 콧물 그리고 재채기까지 병발(倂發)하여 상당한 시간 동안 땅바닥에 쓰러져서 고통을 겪는 중 역으로 가는 승객들에게 구조되었는데 소중한 적행낭(赤行囊)만 없어지고 말았다.

행낭에는 대소액환 송금증이 들어 있었다는 신고를 받은 민완 형사진은 사방으로 분산, 사고 몇 시간 안에 범인을 창원역 근처에서 체포했는데,

범인은 일본인 청년으로 여숙비, 잡비에 궁하여 며칠 동안 생각한 것이 고춧가루 공세를 하는 것이 제일 간단하다는 것으로 자백했다.

이 사건이 각 신문에 일제히 보도되어 수개월 뒤에 경북 어느 곳에서던가 단 한 번 제2 고춧가루 노상강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고춧가루 강도 출현 제1호는 마산이라 하였다. 

<구마산역, 사진의 건물은 위 사건 12년 후인 1936년 지은 건물이다>

 

87. 2의 헤스마

 

1925년 평북 순안에 영인(英人) 선교사 헤스마(한자 許時模, 허시모) 란 자는 자기 과수원에 조선인 아동이 침입하여 사과를 따먹었다고 그 얼굴에 콜탈로써 도독이라고 썼던 헤스마의 린치 사건이 동아·조선 양 지()는 물론, 일문지(日文紙) 아사히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전국적인 의분이 격앙하고 있을 때인데, 마산 서성동에서는 일인 주택 벽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조선인 아동에게 폭력을 가한 가등(加藤)이라는 일인 간수장이 있었다.

실은 이 소년이 낙서를 한 것이 아니고 이미 낙서되어 있는 것을 지우고 있었던 것인데, 전기(前記) 가등(加藤)은 이를 오인하고 퇴근길이라 정복에 칼을 찬 그대로 소년을 발길로 차고 때리고 하였으니 너무나 겁에 질린 소년은 오줌까지 싸면서 넘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공교롭게도 조선일보 지상에 보도가 되었다. 이것이 자극이 되어 모종의 불상사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한 대구고검, 부산지검, 마산검사국 등의 검사장 및 검사, 고등계 형사들은 사건 진상을 조사한다는 구실로 취재한 기자를 금품 향응으로 매수하여 수회죄(收賄罪)로 구속을 시킬 방침이었으나 기자는 이를 당연히 일축하였던 것이다.

검찰당국은 할 일 없이 기자의 지조를 찬양하는 수밖에 없었고 가등(加藤)이라는 간수장은 부득이 김천 소년형무소로 좌천이 되어 버렸던, 헤스마 사건을 방불케 하는 사건이 마산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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