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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2. 포시의 명 강연

by 허정도 2016. 9. 12.

112. ‘포시(布施)’의 명 강연

 

포시진치(布施辰治)라고 하면 50대 이상의 조신인 사회주의자나 민족운동가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수많은 자유주의자 혹은 좌경 변호사 중에도 상촌진(上村進), 산기금조미(山崎今朝彌) 포시(布施) 등은 학의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하천풍언(賀川豊彦)을 종교가라기보다는 사상가로 보는 것처럼 포시(布施)도 급진 사상가로서 일반은 간주하였다.

 

사법성과 내무성에서는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인데, 일본 공산당 사건의 변론공판 변론 중 당국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정부 당국의 비위를 거슬리게 되어 치안 유지법을 적용하여 4년 형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피고인 포시(布施)는 판에 박은 주소, 성명을 묻는 판사에게 무직이라고 하기는 싫었던지 법률 기술자라고 비꼬아 답변을 해서 화제거리가 된 일도 있다.

 

布施辰治(후세 다쓰지, ふせ たつじ) ; 18801113~ 1953913,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 출신의 일본의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이다. 2004년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애족장)을 수여받았다.(옮긴 이)

 

 

그가 사회운동이나 약소 민족운동에 대해서는 발분망식(發奮忘食)으로 활약하였으며, 정의를 위하여 사자후(獅子吼)하는 것은 그의 성격이요 생리하고 할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큰 사건 몇 가지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총독부 폭파 미수로 끝난 의열단의 김시현 사건(1923), 상해부두에서 전중의일(田中義一) 대장 암살 미수사건(1921)으로 검거되어 장기(長崎)로 이감된 의열단의 김익상 씨(당시 동지 오성륜 씨는 일본 영사관 유치장을 파옥 탈출하였음), 세칭 백단일명(百單一名)의 제2차 조선 공산당 사건(1925), 충주의 흑기(黑旗)연맹사건(1922), 동경 흑우(黑友)연맹의 재경학우회 습격사건(1928), 대구 무정부주의자의 진반(眞反) 연맹사건(1926), 일본 궁성(宮城) 이중교(二重橋) 폭파 미수의 의열단 김지섭 사건(1924) 등등인데 김지섭 씨의 옥사가 타살이 아닌가를 형무 당국에 맹추궁 후 시체를 인수하여 흑우연맹에 인도하였으며, 대역죄의 김자문자(金子文子)의 옥사도 추궁 후 흔구연맹에 인도한 것은 특기할 사실이다.

 

이 대역죄는 대정(大正) 천황과 황태자 유인(裕仁, 현 천황)을 암살 음모 사건이라 했는데, 연루자 10여 명이 예심 면소(免訴)되고 그 주동으로 박열과 그의 애인 김자문자(金子文子) 2명의 특별 재판 때 포시(布施) 변호사는 장장 다섯 시간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열변을 토했던 것은 법조계를 경탄케 하였으며 자신도 통쾌하였다고 술회한 바 있었다.

 

포시(布施)가 전기(前記) 김시현 사건 변론 차 내조(來朝)하여 그때 마침 김해읍에서 일어났던 농민대 형평(衡平)사원간의 충돌 사건을 현지 답사하고 마산에 들렀을 때이다.

 

19238월 그를 연사로서 초청한 사람은 재마 신진 청년들이었지만 이 가운데는 그를 평소 사숙(私淑)하고 무상 접촉해 왔던 명대(明大) 재학 중 동경에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던 김형두이다.

 

손문기의 개회사에 김형두 통역으로 개최된 강연 장소는 민의소였으며 임관(臨官)은 가등환일(加藤歡一) 즉 서장과 김 모라는 조선인 고등계 형사 주임이다.

 

연제(演題)무산 계급의 정신이었는데 연사가 일본 굴지의 변호사이며 쟁쟁한 학자 투사인데 비하여 임관(臨官)은 일개 미미한 시골 서장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예의는 매우 경건하였고 또 긴장하고 있었다.

 

연설은 약 한 시간이었는데 연설 중에 무산 계급의 정신 운동을 여하히 하느냐? 그 방법은…………하는 대목에 임관석에서 주의 소리가 있자 연사는 이내 주의가 있으니 그러면 화제를 바꾼다고 멋있는 화술로 이어 가다가

 

제군! 동방에 여명이 트면 우주의 암흑은 무산하는 것과 같이 우리 무산계급의 정신운동도 단결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전 사회의 비밀 정치와 권력 계급은 여지없이 분쇄되고 말 것을 확신한다고 끝을 맺었다.

 

이때 임관들은 당황하여 중지를 시킬 양으로 기립하였으나 연사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난 뒤라 마치 그 광경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