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이등(伊藤)방망이 피살보(被殺報)
1909년 10월 27일(이등 피살 이튿날) 마산공립보통학교 제4학년 정영관(본교 3회 졸업생)은 완월 의숙(義塾)학원 생도들과 하학 도중 성지학원 앞에서 만났다.
그는 이등박문이 북만주 ‘하르빈’이라는 정거장에서 한인 독립군 안중근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총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전했다.
전보 통신이나 라디오가 없던 시절인 만큼 신문보도인 경성일보를 본 흑목원이(黑木源二) 교장이 전교생을 모은 가운데 울면서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등이 어떠한 위치에서 무엇을 하는 위인인가는 확실히 모르면서도 한인의 원수라는 것만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일부 국민들은 덮어놓고 통쾌하게 생각했으며,
이등박문이라는 것이 와전되어 이등방망이가 한국인의 방망이에 맞아 죽었다고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을 죽인 안중근의 원하던 노래가 삽시간에 퍼져 나왔다.
만났도다 만났도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
너를 한 번 만나려고
혹은 륜선 혹은 기차
수륙으로 수십 만리
너 만나기 원이었다(이하 망각)
이리하여 경찰과 밀정들은 혈안이 노래 부르는 자의 색출에 힘을 다했다.
이때 보통학교 기숙사에는 백주에 정복 경시(警視)가 나타나 가택수색 사건이 벌어졌다.
소문은 감판동(甘判同)이라는 3년생 학생이 창신학교에서 불온 창가를 담임 김학배 선생에게 전하였다는 것으로 교내가 소란하였는데 배일 훈도 장기현 선생은 흑목(黑木) 교장에게 직접 화풀이를 했다.
문제의 대상인물 김학배 선생은 극도로 흥분하여 사무실에서 금지된 ‘황실가’를 소리 높게 부른 일도 있었다.<<<
<안중근 의사와 이등 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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