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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6. 융희 황제의 남한 순행

by 허정도 2016. 10. 3.

 

116. 융희 황제의 남한 순행

 

 

조선 왕조 최후의 황제인 순종 이척(李拓)은 1909년 1월 10일~12일(원문에는 '등극한 1907년(융희 원년) 10월'로 되어 있어서 바로 잡았다)에 소위 경부·경의선 철도부설 시찰이라는 명목 아래 마산포를 순행하였다.

 

이 순행을 축하하는 뜻에서 일본의 연합 함대가 마산만에 투묘(投錨)하고 101발의 축포를 터뜨렸다.

 

한편 마산 이사청(현 경남대 평생교육원) 정문과 숙사(宿舍)인 이사관사(부윤관사-현 마산종합복지관) 앞 그리고 경교(京橋, 제일각 앞)와 창원교(전 럭키회관 앞)에는 한제폐하(韓帝陛下)의 어남순(御南巡) 환영대송문(歡迎大松門)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수행원은 통감 이등박문, 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등 외교 문무백관이었다.

 

숙소는 삼증(三增) 이사관(마산부 초대 부윤 1914-1919) 관사였는데 숙사 근방은 한황(韓皇) 신변관계로 관계려니와 이등박문의 신변에 만약의 경우를 고려해서 한일 정·사복 경관은 물론 일인 병대와 헌병 등 3, 4중의 삼엄한 경계망은 수하(誰何)도 얼씬 못했다.

 

익일은 이사철 2층에서 잠시 휴게하셨다.

 

후일 마산부 회의실을 사용한 기념으로 1936년 마산부청 이전 때까지 그 자리에 옥좌라 써 붙이고 일반에게 조심을 환기시켰다.

 

이어 구마산으로 납시었다.

 

어가가 없어 인력거를 임시로 이등과 이완용 그리고 한국 각료 등만 각각 뒤따르고 나머지 무관과 수행원들은 마필(馬匹)을 이용했다.

 

감리서(구 제일은행)에다 급히 행재소(行在所)를 마련하여 옥좌를 감리실에 두고 감리서 내외엔 마산 근처의 국민들이 부복 배알했다.

 

12일 오전(원문에는 도착 다음 날 일모경(日暮頃)이라고 되어 있어서 바로 잡았다)에 천지가 뒤집힐 환호성과 만세 소리에 싸여 열차편으로 한양에 환행(還幸)하셨다.<<<

 

 

<아래는 당시 순행을 기념하는 그림엽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