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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1. 일어 만능 시대

by 허정도 2016. 9. 5.

111. 일어 만능 시대

 

 

한말 나라 운명이 바야흐로 기울어져 갈 때 일어 열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당시 몇몇 출판업자들은 재빨리 일어강습 책을 출판했는데 왈() 속수일어독본(速修日語讀本), 일어대성(日語大成), 일어대해(日語大海) 등으로 이름 붙여 도시보다 농촌 서당 출신들이 열독(熱讀)하였고 더벅머리 총각과 유처(有妻) 유자(有子)한 상투쟁이들이 삭발을 하고는 보통학교 상급생으로 전입학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 발간된 박중화의 일어대해>

 

 

대체로 한문 실력자들이라 한문만 가지고는 개명한 사회에 있어 낙오자를 면할 수 없었으므로 신식학교에 들어가서 산술과 일어를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선 보통학교만이라도 졸업하게 되면 면 사무원이나 헌병보조원, 아니면 순사, 철도 역부도 골라서 할 수 있는 판국이요, 조금 더 면학을 하면 재판소 고원(雇員) 또는 군청 부청에서 금테를 두르고 패검(佩劍)한 주사가 되어 부자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실력 중에서도 특히 일어의 덕분이었으니 아까 말한 일어책자들이 그들에게는 바로 금과옥조가 되었던 것이다.

 

다른 글은 몰라도 일어만 할 줄 알면 여자이면 일인집 하녀도 되었고, 사환도 될 수가 있었다.

 

예를 한 가지 들면, 자산동에 일자무식꾼으로 유명했던 정창순이란 자가 있었는데 어디서 일어를 배웠는지는 모르되 그 능숙한 일어구사로 당시의 일인 박간(迫間)과 고등(古藤)이란 자를 반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정창순을 이등박문에게 천거하여 고성군수로 임명케 하여 조선인 토지를 약탈해 보겠다는 획책을 꾸미려 하였던 것이다.

 

음흉한 이등박문도 문맹인 그를 임명한다는 것은 자신의 위신문제라 하여 거절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우스운 얘기는 쥐꼬리만한 일어 실력을 가지고 영화 변사를 하는 자, 민사소송에 원, 피고 대리로 출정하여 희극거리가 되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그렇게 독판을 치던 영어도 열이 식은 모양이요, 해방 전 조선 민족 말살을 획책하던 그들에 대한 원한이 아직도 골수에 사무쳐 있는데도 일어과를 두어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머리를 현혹케 하고 있는 요즘, 항간에는 민족정기도 배부른 연후라는 배짱에서인지 날로 늘어나는 것은 일어 강습소, 일어학원의 간판들이다.

 

중앙에서 발행하는 몇 개 일간지 안내 광고란을 보면 동경 일어니 무슨 일어 강습소 운운하는 건수가 하루 평균 25건이나 된다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이것은 한말 시절의 일어 열과는 도저히 대조가 될 수 없는 백열(白熱)적인 기묘한 현상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