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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by 운무허정도 2018. 6. 18.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꿀 것을 강압적으로 독려하여 옛 부터 이어 온 초가지붕은 급속히 사라져갔다.

초가지붕 대신 들어선 울긋불긋한 원색의 낯선 지붕들은 자연경관과 부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초가지붕이 가지고 있었던 단열기능과 빗물처리의 능력을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가 대신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집이 되거나 비가 자주 새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시작된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1978년에 이르러 목표 대비 107%의 초과 실적을 올리게 된다.

목표를 초과달성한 정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전국의 농촌주택을 새롭게 건설할 요량으로 1978년부터 표준농촌주택설계안을 마련하여 재정지원을 약속하며 권장하였다.

하지만 입식부엌과 마루를 중심으로 한 집중형 평면의 표준주택은 농촌지역의 풍토와 생활관습에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융자금 상환에 대한 부담까지 작용하여 농민들로부터 외면 받아 실패하였다.

 

 

새마을운동은 초기에는 농민들의 자발성이 매우 두드려졌지만 해가 갈수록 공무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대통령의 최고관심사가 새마을운동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거둔 공무원들의 실적은 승진과 바로 직결되었다.

그렇다보니 일부 몰지각한 공무원들이 지붕개량을 하지 않는 집의 초가지붕을 갈고리로 뜯어내거나 통일벼를 심지 않은 못자리를 장화발로 짓밟는 일까지 빈번히 발생하였다.

하지만 유신체제의 경직된 분위기는 이런 상황을 묵인 방조하였다.

새마을운동이 농촌근대화의 징표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수백 년 이어온 집과 마을의 경관이 하루아침에 낯선 모습으로 일시에 뒤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타율적 존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