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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9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2 /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이하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메데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빈곤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성적은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다.

마약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고, 22세 때 이미 메데진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여러 조직들과의 협작을 통해 1976년 그 유명한 메데진 카르텔을 결성했고 미국 내 마피아 갱단과 연합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콜롬비아 혹은 메데진(Medellin)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에스코바르는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범죄자로도 유명한데 이 글에서는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글 중에는 소문일뿐 확인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 전성기 시절 에스코바르의 갱단은 전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담당했으며 일 년에 500억 달러(한화 약 55조)를 벌어들였다. 현금 다발을 묶는 데 사용하는 고무줄 구매에만 매달 2,500달러(한화 약 270만원)를 지출하기도 하였다.

-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들여올 때 보잉 727기를 개조해서 좌석을 전부 떼어낸 후에 마약을 운반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잠수함까지 밀수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그가 보유한 현금의 10%가 매년 없어졌는데 그 이유가 놀랍게도 쥐들이 쌓아 놓은 지폐를 갉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또한 콜롬비아 정부군과 미군의 합동 작전에 쫓겨 추운 콜롬비아 산맥으로 도주했을 당시에 (손녀가 춥다고 해서) 약 2백만 달러의 지폐를 불쏘시개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 에스코바르가 개인 동물원을 지었는데 그가 몰락한 후 보유한 동물들 중 하마들만 처분이 되지 못하여 자연으로 방생하게 되었는데, 원래 4마리였던 하마들이 50마리 이상으로 늘어나 현재 콜롬비아 생태계의 최대 재앙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의 현재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다름 아닌 이 하마들을 사들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정부가 내전과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약을 팔아 번 돈의 일부를 사회 인프라와 빈민들을 위하여 투자하였다.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축구팀을 창설하였으며 심지어 빈민층에게 상당한 돈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마약왕이 아닌 ‘가난한 자들의 로빈 후드’, ‘구원자’ 라는 칭송을 얻게 되었고, 1982년 콜롬비아 자유당 예비국회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심지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이중적 행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3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 그의 범죄행위와 경찰을 상대로 한 매수 등 비리행위를 폭로한데다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합동 작전으로 인해 결국 수배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의 국가부채를 자신이 상환하겠다며 사면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결국 에스코바르의 수감생활이 시작됐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에스코바르가 수감된 감옥은 호화 별장을 방불케 하는 숙소와 다름없었고 운동장과 수영장, 연회장까지 갖춘 그야말로 마약왕을 위한 맞춤형 감옥이었다. 이유는 에스코바르가 직접 감옥을 설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승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감옥 안에서도 자유롭게 메데진을 시찰하며 마약사업을 관장했다. 이런 행태에 대해 미국이 강력한 압박을 가하자 콜롬비아 정부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콜롬비아 정부가 에스코바르를 다른 교도소로 이감시키려하자 에스코바르는 함께 수감 중이던 지인들과 함께 유유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이때 교도소 간수들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평화로운 탈옥에 성공한 에스코바르는 메데진에 마련해둔 아지트에서 은신을 시작한다. 주민들의 각별한 보호가 그의 은신 생활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가 현상금 8백만 달러를 거는 등 적극적으로 그를 찾기 시작했고 경쟁 마약 조직의 보복 공격이 거세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은신 중이던 에스코바르는 결국 가족을 걱정한 나머지 보고타에 있던 아들과의 20초간 통화 때문에 위치가 발각되고 만다. 자신의 생일 파티를 마친 직후였다.

위치가 파악되자 미국의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즉각 투입됐고, 총을 들고 탈출하던 에스코바르는 그가 숨어 지냈던 건물의 지붕 위에서 특수부대가 쏜 수십 발의 총알에 맞아 사망한다.

 

<페르난도 보테르 작(1999)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

<에스코바르가 최후를 맞이한 곳의 현재 모습>

 

메데진 도시재생을 포스팅하면서 먼저 그를 소개한 이유는 메데진에 남긴 에스코바르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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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1 / 세계가 주목하다

-그들의 변화-

 

한 때 전 세계 마약 시장의 80%를 주물렀던 세기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milio Escobar Gaviria / 1949. 12. 1~1993. 12. 2).

그의 일대기는 최근에까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아직까지도 중남미는 물론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메데진(Medellin)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이자 세계 최대의 마약 카르텔 본거지였다. 이로 인한 마약 쟁탈전과 높은 범죄율은 시민들에게 고통과 두려움의 징표였다. 

도시문제도 심각했다. 공공의 통제를 벗어난 대책 없는 확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도시에 혁신적인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메데진(Medellin)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월 20일. 박용남 선생의 추천으로 이 낯선 도시를 찾았다.

오래 전(2002) 박용남 선생의 책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은 후 혼자 브라질 꾸리찌바에 간 적이 있다. 책에 실린 꿈 같은 내용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나와 박용남 선생과의 인연이다.

그 인연으로 올 초봄에 남미 도시 중 도시재생을 테마로 가볼만한 도시를 묻자 박 선생은 망설임 없이 메데진(Medellin)를 추천해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포스팅한다.

마침 7월 12일 중남미 순방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데진 플라자메이어에서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 메데진 시장과 만나 '서울-메데진 간 우호협력 결연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메데진은 서울시의 우호도시가 되었다.

 

 

내 글에 앞서 세계가 평가한 메데진(Medellin)을 먼저 소개한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글들이다.

 

【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올해의 도시’(2013) 】

ㅇ 월스트리트 저널은 콜롬비아의 메데진(Medellin)이 도시랜드연구소 (Urban Land Institute)와 협력하여 개발한 글로벌 프로그램인 "올해의 도시 (City of the Year)"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경쟁의 우승자로 선정하였다.

ㅇ Aníbal Gaviria 시장 소감

“메데진은 20년 전의 매우 어두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고통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곳을 현재의 희망의 장소로 만들었고 이는 전 세계 여러 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메데진(Medellin)은 사회변화 프로그램, 도시개발사업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의 결합에서 단계별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성공의 핵심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해의 도시’ 선정을 통해 Medellin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펼쳐질 엄청난 도전의 결과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ㅇ Urban Land Institute 성명서

“지난 20년간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메데진(Medellin) 만큼 변화를 이루어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없었습니다. 메데진의 살인률은 1991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동안 80% 급락했습니다.

메데진은 취약한 언덕 지역에 공공 도서관, 공원 및 학교를 건설했으며 거기로 부터 상업 및 산업 센터까지 일련의 교통 연결을 구축했습니다.

메트로 케이블카 시스템과 급경사 언덕을 가로 지르는 에스컬레이터, 정류 시간 단축, 민간 투자 촉진, 사회적 형평성 및 환경적 지속 가능성 증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 도시행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2016) 】

“메데진은 무분별한 도시 확장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의 도시환경에서 지속가능한 변화와 혁신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ㅇ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메데진은 연간 수익의 약 30%를 공공 인프라 투자로 전환시키는 공공 소유 유틸리티 회사와 협력하여 자금을 창출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ㅇ 또한 Anibal Gaviria 시장과 지도자들은 소규모이지만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큰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 Circumvent Garden : 다중 운송모델을 통해 언덕과 도시를 연결함으로써 도시 확장을 통제하고 산사태 위험을 완화하는 한편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출하여 일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킴

- 구조적으로 건전한 것으로 밝혀진 비공식 무허가 주택 단지의 합법화

-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종전 활용도가 낮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및 문화 공연장 개발

- 기타 유아 교육 프로그램 등의 개발

ㅇ 심사위원장 Kishore Mahbubani 교수

“메데진(Medellin)은 통제되지 않은 도시 확장, 높은 범죄률 및 마약 쟁탈전 등의심각한 과제를 해결하고 과감한 리더십, 장기 계획 및 지속 가능한 사회 혁신을 통해 제한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과 경제를 개선했습니다.

지난 20 여년간 메데진(Medellin)이 직면했던 도전은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도시들이 겪고 있는 전 지구적 도전을 대표합니다.

오늘날의 급속한 도시화는 삶의 조건과 경제적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간 정착의 전경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 솔루션입니다.”

(참고로 2018년 ‘리콴유 세계도시상’은 서울시가 받았다)

 

 

> 위키백과에서는 메데진(Medellin)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콜롬비아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2,499,080명으로 콜롬비아 제2위의 도시이며 콜롬비아 서부,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이다. 해발고도 1500m의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위치한다.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금의 개발 기지로 건설되었고, 후에 커피 재배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콜롬비아 커피 재배 지역의 중심지로 많은 커피를 집산하고 있다. 콜롬비아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제철, 자동차, 플라스틱, 섬유, 식품(맥주)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수도 보고타 다음가는 콜롬비아 제2의 도시로, 아름다운 공원과 근대적인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과연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통해 마약으로 얼룩졌던 기존의 이미지를 떨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룩하였는지 몇 차례의 짧은 포스팅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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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00:00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의령 자굴산 산행

이 포스팅은 학봉산악회 회원들이 진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내 토지주택박물관과 의령 자굴산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글은 회원인 손상락 박사가 썼습니다.

- 일시 ; 2019년 5월 31일∼6월 1일(금, 토)

 

5월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하는 지난 5월 31일(금)과 6월 1일에 우리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100산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박 2일에 걸쳐 진주 혁신도시에 본사의 둥지를 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박물관 견학과 자굴산 산행을 기획했다.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손흥민이 강원도 산골에서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을 보면서 월드스타를 꿈꾸던 오월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1일차에는 토지주택박물관을 견학하고, 날이 새어 새로운 달이 되면 의령 자굴산을 오르는 일정이었다.

1일차인 5월 31일 금요일 오후 3시,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산 문화예술의 전당인 3.15아트센터 주차장에 집결한 우리 일행은 메트로팀과 비메트로팀으로 차량 2대에 분승하여(김흥수 회원은 개별 이동) 진주 혁신도시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회원 대부분이 도시건축분야 전문가라 택한 목적지였다. 

 

 

저성장시대에 도시정책의 대안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향후 쇠퇴되고 지방도시의 소멸위기 마저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 지역의 도시재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공문을 통해 관람 승인을 요청함과 동시에 안내와 해설까지 사전에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항상 이동 차량을 후원해주시는 분의 애마인 아우디와 넥서스로 남해고속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려 진주 혁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주차장에 도착한 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자랑하는 개관 20주년을 맞은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수준 높은 학예사로부터 주거문화의 시대적 흐름을 관통하는 고급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움집에서부터 한옥 그리고 “잘 살아보세”하며 고도성장기의 산업화‧도시화 시대에 집(아파트)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온 주택‧주거문화와 도시의 발전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침 박물관에서는 2017년의 토지주택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2017. 12. 11~)을 하고 있었다. “사랑과 가족”을 주제로, 이름하여 “사랑, 옛 문서에 담긴 사랑이야기”였다. 옛 문서에 남겨진 가족·결혼·부부생활·돈·이별에 대한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스토리를 엮어가고 있었다.

 

 

100여 년 전 토지문서에 나타난 법순과 푼수의 첫사랑 이야기, 역사 속 선조들의 결혼과 부부생활 이야기, 어긋난 사랑과 첩·치정·돈에 대한 이야기, 자매·상속·증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을 직접 종으로 파는 아들의 부모공경 이야기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클라이막스는 1998년 안동시 장성동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업지구에서 발굴해 전국민의 눈물을 흘리게한 원이 엄마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두고 먼저 떠난 고성이씨 이응태의 아내가 쓴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원이 아빠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다.

이응태 아내의 편지 내용을 잠시 보면,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했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등등. 400여 년전 당시의 부부애와 가정생활, 그리고 남녀 동등관계 등에 대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았다.

 

이렇게 박물관의 주택·토지에 관한 전시와 특별전 관람 등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낸 후 6시경 내일의 산행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진주의 먹거리를 탐방할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진주 원도심에 자리한 이 식당은 번화가가 아닌 뒤안길에 자리한 허름한 곳이었다. 우리 일행이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한산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진주에서 맛있고 특색 있는 소문난 식당이라는 말대로 손님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불고기인 것 같은데, 육수를 먼저 끓인 후 돼지고기 주물럭을 넣어 한참 뒤집기를 하니 특색 있는 먹음직스러운 주물럭 두루치기가 완성되었다.

시장기에다 특색 있는 두루치기에 젓가락질과 술잔 기울이기를 바쁘게 반복하니 모두들 음식 맛에 대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주 메뉴를 다 먹은 후 나오는 디저트가 특이했다. 바로 그 주인공이 “토란 들깨국”라는 것이었는데, 특이하고 맛이 있어 모두들 더 먹고 싶었는데, 주인장께서 국이 얼마 없다시면서 김용운 회장님만 한 그릇 더 드렸다.

진주 최고의 두루치기에 상추 쌈과 소주로 민생고를 해결한 후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야! 잘 먹었다. 특색 있네. 다음에 다시 한 번 와야겠다”며 만족감과 포만감을 품고 식당을 나섰다. 우리 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했는데, 아니 허름하지만 소문난 식당 먹을 것이 많았다.

"맞어, 분위기 있고 품위 있는 곳은 아니더라도 여행자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특색 있는 먹거리가 필요해. 그것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려니"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절묘한 식당의 선택이었다.

 

7시 15분경 식당을 나서 진주성 야경을 일견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갔다. 진주에 와서 진주성을 밟지 않으면 진주에 왔다 할 수 없기에 말이다. 시간 덕택에 입장료는 무료였다.

성내 산책 중 우리는 박물관 우측의 삼층석탑(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을 만났다. 안내판을 보니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국보 제105호였다. 아름다웠다.

 

 

산청군 소재 범허사라 하는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41년 대구의 일본인 골동품상이 구입해서 공장에 세워놓았던 것을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했다가 긴 타향살이를 마감하고 2017년 2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석탑을 살펴보던 우리 일행은 “원형 그대로 이다, 아니다, 복원을 위해 손을 대었다”는 등 분분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주말이면 가끔 지역 내 이곳저곳의 왜성이나 성곽 등의 발굴현장을 탐방하기도 해서 문화재에 대해 어설프지 않는 식견을 갖고 있는 신삼호 회원의 주장대로 원형 그대로가 아닌 일부 손을 댄 것이 맞았다. 사물을 보는 눈은 경험에서 축적되는 것이 판명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진주성을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하는데, 진주의 상징이요 문화재인 진주성의 지척 어디에선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신나는 유행가가 울려 퍼졌다. 진주성 가까이 있는,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진주시가 설치를 했다는 분수광장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순간 “갓 쓰고 두루막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든 화려하거나 멋지지는 않더라도 조화가 필요하려니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화재와 그 주변에 대한 보다 세심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진주성벽에서 내려다 본 남강과 의암>

 

이렇게 진주성을 한 바퀴 산책하고 8시 30분경 숙소에 도착했다.

진짜 시작은 여기서 부터였다. 웃음 섞인 이야기들과 노래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아모르 파티”가 나오자 인문학의 대가께서 그 의미와 해석(運命愛: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이 따랐고 그럴수록 건배 횟수도 늘어갔다. 이윽고 명창 김용운 회장님의 무반주 노래가 나오자 모두들 다시 한 번 그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흥을 돋우는 모임의 조미료처럼,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동안 오가다가 노래의 감정과 느낌이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내용인즉,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장사익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자지러지는 느낌이 전해오는 장윤정 스타일, 비음이 섞여 흐르는 이미자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꺾는 맛이 나는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등등 각자 흥을 느끼고 감상하는 스타일의 다양성을 재발견했다.

 

 

노래 말에 관한 한 대미를 장식한 히트송은 유행가가 아닌 동요였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였다. 노랫말이 주는 어느 회원님의 재해석에 또 다른 시대상을 느끼게 했고, 이는 당시의 가족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 회원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번에는 산악회 사진전 실행 여부로 화두가 옮겨졌다. 지난 4월 일본 홋가이도 해외원정 시 논의된 바 있는 산악회 차원의 등산·여행과 관련 사진전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

왜 하느냐에서부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회원, 일반 대중이 많이 찾는 장소에 게시하는 것은 핀잔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개떡 같은 사진이라도 찰떡같이 기획할 수 있다”는 강한 의욕을 피력하는 회원, 사진전 시행을 염두에 두고 이미 출품사진을 확보하고 있다는 회원 등등. '정신없는 산악회'인듯하면서도 실행 여부를 둘러싼 의견에 다양성과 균형성을 재발견했다. 하지만 이것뿐, 실행 여부에 대한 결론은 끝까지 나지 않았다.

밤은 깊어 시계침이 새로운 달 6월 초하루를 가리킬 즈음, 원로님과 회장님은 큰방으로 가서 2일차 산행을 위한 체력 비축용 잠을 청하시고, 다른 회원들은 사진전과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하지만 술에 장사 없는 법. 시간이 계속 흐르자 한분 한분씩 체력 소진으로 각 방으로 가서 베개를 벗 삼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새벽녘까지 거실에서는 여전히 인문학과 인생을 논하며 잠꼬대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몇분 회원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잠꼬대 같은 소리 중 백미는 “이불 속에서도 와 이리 손이 차노.?” 였다.

 

 

10주년 기념 산행의 날이 밝았다. 7시 출발 예정이었지만 지난 밤 무리 탓에 1시간 가량 지체된 기상이었다. 게다가 거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와 균형·조화를 찾아가는 산악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질서를 찾기 시작하면서 언제 전쟁터와 같은 거실이었는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9시경 숙소에서 나와 인근 콩나물국밥집에서 속풀이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두 대의 차량으로 이동해 9시 40분경 자굴산 산행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했다.

 

 

어제 밤 무리 탓에 힘든 몸을 끌고 시작된 산행이었다.

15분가량 산을 오르니 기와를 올린 꽤 모양새 있는 정자를 만났다. 반가웠다. 전날 밤의 취기와 무리로 체력이 소진된 탓에 가쁜 숨을 가다듬기 위해 배낭을 풀고 잠시 허리를 내려 쉬었다.

둘러보니 당호가 없는 정자였다. 우리 산악회가 마산 무학산 둘레길에 있는 정자에 산악회 창설 10주년 기념으로 '취풍정'이라는 현판을 설치한 것이 문득 생각나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다.

자굴산 중턱 쯤에 이르러 산행루트의 갈래 길을 마주쳤다. 백산대장은 2일차 산행루트를 미리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텐데,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디로 갈 건가를 두고 이야기했다. 다른 때와 달리 회원들의 눈빛에 전날 밤 음주로 체력이 소진되어 회복이 안 되었으니 짧고 평이한 코스(둘레길)로 가자는 기색이 역력했다.

통상 산행 속도는 시간당 2∼2.5킬로를 이동하는데, 쇠목재(베이스, 해발고도 650m)에서 자굴산 정상(897m)까지 약 1.3킬로를 전날 밤의 여파로 1시간 20분 걸려 11시경에 정상을 정복하는 거북이 산행이었다.

 

기진맥진하여 정신없이 산행을 했던 터라 정상에서 10주년 기념 산행의 회장님 기념사도 잊은 채 산행을 하다가 하산 도중 둘레길 중턱에서 회장님의 기념사를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2시 10분경 하산을 완료,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해 의령 읍내로 가니 12시 50분경이었다. 유명한 종로식당에서 쇠고기 수육과 국밥, 그리고 전통주로 속풀이를 하면서 배를 채운 후 회비 1만원 거출해 그 유명한 의령 망개떡을 구입하여 회장님 하사품으로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자굴산 산행이라는, 의미 있고 스토리 있고 진한 추억까지 가슴에 잔뜩 남겨준 학봉산악회 10주년 기념 100산 탐방 1박 2일의 산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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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4 – 삿포로(札幌), 뒷풀이

4. 28 (일요일, 넷째 날) - 맑음

 

8시 반 출발을 앞둔 호텔 앞 주차장에서 간밤에 있었다는 지진 얘기가 한창이다.

허와 서, 두 원로는 웬 지진 얘기라며 금시초문이다. 가이드가 진짜 있었다고 확인해주면서 지진의 강도를 규모와 진도로 구분까지 해가며 설명해준다.

원로 두 사람만 곯아떨어져 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라 깨어났다! ... 나이만 먹는다고 아무나 원로가 되나요? 자연재해에도 무심할 정도로 도가 터야지, 원로원 가입기준이 하나 생긴 셈이다!

막 출발하자말자 누가 호텔방에 도수 있는 선글라스 놔두고 왔다고 한다. 도로로 나오자 말자 바로 차를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새로 ‘정규직’이 된 김 구청장이다. 어젯밤 기대치 않은 깜짝 승진의 감동과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게 정답일 듯.

이 에피소드는 학봉산악회 ‘정규(직)’ 회원의 위상을 웅변해준다. 향후 학봉의 정규회원 가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이 틀림 없으렸다!!!

가이드 기사가 호텔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큰 봉지 두 개를 들고 온다. 오늘 일정상 점심식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비행기 안에서 드시라고 도시락을 준비했단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가이드의 성심이 엿보인다. 내가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인가, 호호.

아파호텔 객실마다 일본 극우가 쓴 문고본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 그리고 호텔 방 뒷면 창문이 바깥이 안 보이도록 해놓은 것 등이 궁금해서 이동 중에 가이드한테 그 이유를 물어본다.

뒷 창문 바깥 안 보이게 해놓은 건 아마 노천탕 때문인 것 같고, 아파호텔 체인 사장 남편이 극우인사인데 자기가 쓴 책을 출판해 홍보용으로 비치해놓은 것 같다고. 일본에는 그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데, 언론의 자유라 금지할 수도 없고... 대개들 그냥 무시한다고.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는 타키노레이엔(瀧野靈園)의 묘지공원 두대불전(頭大仏殿)을 보러간다.

 

 

이 불전의 모습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으니 사진들 참조하시기 바란다. 며칠 전에 씨네아트 리좀에서 ‘안도 타다오’라는 다큐영화를 보았는데 이 묘지공원은 나오지 않아 의아했고, 베네통 그룹의 파브리카연구소를 그가 설계했음을 알게 되었다.

파브리카연구소는 전 세계에서 25세 미만의 젊은 창의인들을 모아 숙식하면서 무엇이든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일체의 지원을 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지식인 장기 레지던스라고나 할까.

공원 입구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모아이상과 33명의 보살상을 보러 간다.

모아이 상들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다르다. 말해 놓고 보니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아이상들이 날 쏙 빼닮았다는 중론이다.

생각난다. 주왕산 계곡을 내려오면서 암벽의 사람 옆 얼굴, 그것도 날 쏙 닮았다고들 했다. 그래 나는 인류의 표본이야, 갑자기 자긍심이 밀려온다...

허 원로가 나를 나와 가장 닮은 것으로 보이는 모아이상 옆에 세우고는 작품사진을 찍는다.

 

 

작품의 이름은 ‘비몽사몽’을 제치고 ‘반모반인’으로 정한다. 이거 공동작품으로 인정 안 하면 초상권 행사할거다. 가장 먼 쪽에 다른 모아이들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석상이 하나 있다.

내가 보니 임 보급대장과 닮았다. 그는 이 얘기를 듣자말자 가서 확인한다. 그도 허 원로의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웃는 바람에 대칭성이 사라졌다고... 나는 표정을 모아이처럼 잘 했다고 칭찬 듣고...

 

 

공항이 있는 남쪽 신치토세 방향으로 내려간다.

좋은 길을 두고 산길로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가는 이유는 일본서 가장 물이 맑다는 산정호수 시코츠코(支笏湖)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 호수를 두고 분화구인가 아닌가 논란이 일었고, 이렇게 큰 화산 분화구는 없다는 주장이다. 가이드 아니라고 확인해준다. 그럼 어떻게 해서 생긴 건가? 설명한 것 같은데 못 들었다.

 

드디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다.

좌석 예약이 안 되어 있고 가장 늦게 도착해 뿔뿔이 흩어져 앉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운데 자리들이 많다.

돈 더 주면 좋은 자리로 바꿔준다는 제안에 어안이 벙벙. 빈자리 있으면 처음부터 줄 것이지. 비상구 옆 좌석은 원래 가치가 낮은 자리인데 발 뻗을 여유가 있다고 가치가 상승했나보다. 어쨌든 고객 입장에서는 저가항공 이용자의 비애이고, 항공사 입장에서는 수익 극대화 방법의 일환이겠지, 이해하고 넘어간다.

가이드는 우리가 눈에 안보일 때까지 서 있다 가고, 비행기는 12시 55분 정각에 이륙한다.

신 대장의 양보로 허 원로와 나란히 앉은 나는 도시락 까먹고, 열심히 얘기도 하고, 호텔서 가져온 일본 극우가 쓴 소책자도 몇 페이지 읽고, 잠시 졸고 하다 보니 벌써 김해공항이다.

 

시간을 보니 15시 40분. 아, 3박4일은 좀 지친다. 그래도 2박3일은 짧고, 4박5일은 피곤할 것 같고. 해서 가장 적당한 일정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마땅한 식당이 떠오르지들 않나보다. 기내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앉았던 회원들 중에는 눈치가 보여 도시락을 못 먹은 사람도 있다. 누구는 아침도 못 먹었다네. 세상 불공평하다. 먹은 사람들 중에는 도시락 내용이 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일단 마산으로 가면서 의논해서 전화 연락하기로 하고 올 때처럼 두 팀으로 나뉘어 돌아간다.

우리 차에서는 허 원로 제안으로 생아구를 잘 한다는 다정식당으로 정했고, 통보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 저쪽 팀에서는 회장이 다정식당을 제안했다나. 누군가 말하길 우연의 일치이지만 허 원로와 김 회장이 처음으로 통했다며 앞으로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나. 하하 역시 쯔기다시 이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싶다.

 

17시에 마산의 '다정 생아구' 식당에 도착하다.

조금 이른 석식이지만 오늘은 제대로들 못 먹어서 괜찮다. 해단식도 해야 하고...

이번 산행 겸 여행에 대한 자평들도 있었다. 너무 학습 위주 여행이었다, 마지막 밤은 시내에서 지내야 했는데... 비용 절약 위해서는 패키지 이용도 검토해야. 패키지도 별도 가이드 둘 수 있다는 둥. 그래, 해외 갈 때는 공부도 좋지만 즐거움도 있어야지...

해외원정단장이 향후 해외원정지는 직권 결정한다고 선언한다.

검토 중인 후보지 중 인도네시아의 모 해변이 1순위란다. 부하 직원이 추천했다는데, 세계 제일의 석양과 노을을 볼 수 있단다. 어쨌든 알아서 하시고...

정신없는 산악회로 규정하는 바람에 무등산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했던 김 부총무, "회장은 뭐 인사만 하고 권한은 직책 맡은 사람이 가지고 있고, 정신없는 산악회 맞네."

하하, 정규직 되더니 인자 눈에 보이는 게 없제? 원로원 가입만 늦어질 껏이다! 김교쑤! [끝]<<<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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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3 – 비에이(美瑛), 삿포로(札幌)

4. 27 (토, 셋째 날) - 흐리다가 삿포로 도착 후 맑음

 

숙소에서 조식을 먹은 후 9시 출발을 위해 탑승 준비들 한다.

게스트하우스 리좀과 무관하지 않은 나는 펜션 주인장 부부와 함께 건물 입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같은 숙박업자로서...

떠나는 차 안에서 김 구청장 숙소 파트너였던 김 교수 왈, 자는 데 보니까 정말 몸이 안 좋다는 걸 알았단다. 어젯밤에 너무 닦달한 게 좀 후회스럽다. 그런데도 그동안 전혀 내색을 안 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이드는 어젯밤에 주인장이 놀랬다 한다. 경험상 한국인 단체손님 왔으니 오늘밤 잠 설칠 각오했다는데, 조용한데다가(노래 소리가 잘 안 들렸나보다) 11시도 안 되어 취침하다니 다른 한국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그동안 안 좋은 이미지 개선했다면 좋은 일이지...

먼저 간 곳은 ‘시라히게노다키(しらひげの瀧, 흰수염폭포)’와 ‘시로가네하시(白金橋)’다.

 

 

용암이 흘러 생긴 작은 개천이라 한다. 작은 개천이 넓은 개천과 만나는 곳에 폭포가 생겼는데 절벽 위에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절벽 수직면의 군데군데서 흘러나온다. 가까이 갈 수는 없고 백금교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폭포 바로 위에 집들이 들어서 있어 위험해 보였지만 전혀 아니라며 그 때문에 오히려 인기가 많다고 가이드 설명한다.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아오이이케(靑い池)’를 구경한다.

 

 

둑을 따라 산책길이 나 있다. 이 연못은 혹시 용암이 또 흐르면 막을 목적으로 인공으로 조성되었다. 나무들을 그냥 두고 둑을 쌓아 나무들이 물에 잠겼다.

신기하긴 하지만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김기덕 영화의 무대, 청송 주산지의 운치와는 비교가 안 된다. 물 색깔이 파랗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색깔조차 이름값을 못하는 것 같다. 이 호수가 무언가에 나와서 유명해졌다는데... 무엇인지 잊어먹었다.

 

일본의 유명한 풍경사진 작가 마에다신조(前田眞三)의 기념관, 타쿠신칸(拓眞館)으로 이동한다.

 

 

마에다는 가장 일본다운 경치를 찾아서 전국을 쏘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했고, 비에이의 구릉지대를 사철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한다. 구릉지의 낮밤, 노을, 석양, 계절 등 다양한 순간들이 포착되어 있다.

누군가 사진은 기다림의 작업이라 했던가. 같은 곳에서 같은 전경을 찍어도 사진은 다를 수 있다. 작가의 인내와 수고로움을 짐작할만하다.

척진관을 나와 바로 옆에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 속 오솔길을 따라 프로므나드(산책)한다.

사진들 찍기 바쁘다.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나무 숲길 끝은 언덕 위 도로로 이어진다. 밑에서 보면 병풍처럼 둘러선 언덕 위에 올라서니 신천지가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 멀리 눈 덮인 연봉들이 보이고 그 중 어딘가가 이틀 전 주봉 턱 밑까지 가보았던 대설산이 있겠지.

나는 사진 찍느라 뒤쳐졌는데, 마에다의 사진작품에 혹했는지 구릉지의 절경에 반했는지 이미 사진작가회를 결성했단다. 나도 무조건 회원이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10월에 전시회 개최까지 결정하고, 전시장으로 갤러리 리좀 예약까지 부탁한다. 진도를 한 번에 다 나가니 현실감이 없다.

 

언덕길에서 내려와 자작나무 숲길을 다시 돌아간다.

가이드 상, 전시회 리플렛에 실을 작가 얼굴사진 찍어준다 해서 모두들 번갈아가며 자작나무 숲길을 배경으로 폼들을 잡는다. 벌써 사진작가 된 줄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사진 공유는 없다. 우리는 경쟁자인 것이다!

 

 

비에이 구릉지대를 이리저리 더 돌아다니다가 일명 파노라마 로드라는 길에 잠시 멈춰 구릉지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비에이역을 거쳐 비에이쵸(美瑛町)의 고마소바(ごまそば;검은깨 소바)점 쯔루키(鶴喜)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제 정든(?) 비에이죠를 떠날 시간이다.

구릉이여 아듀(A Dieu!=to God). 연중 가장 경관이 못하다는 4월이 이 정도 감동을 주는데 언제 다시 한 번 와서 비에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려나.

이동 중에 내가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일어도 우리처럼 한자 없이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만으로 전용이 가능하지 않나? 혹시 그런 움직임은 없냐고? 가이드 답변, 못 들어봤다면서 자기 생각엔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서가 아닌지... 그래선지 일본인들은 언어유희를 많이 즐긴다고. 언어 후진국이라나!

 

나카후라노(中富良野)에 있는 도미타(富田) 농장으로 간다.

주차장에 내리자말자 살짝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아무도 없어. 이크, 부리나케 뒤편 산 쪽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올라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건물 뒤편이 수상해서 가보니 라벤더 노상 밭도 있고 하우스도 있다.

일행은 하우스 안에서 라벤더 꽃들을 구경하고 있다. 누군가 실종되었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까. 버려진 느낌이 이럴까?

7~8월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라벤더 밭. 아,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흐드러진 라벤더 밭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이번 북해도 여행은 프랑스 유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계기가 적지 않다.

그다지 크지 않은 농장을 둘러보는데 라벤더를 넣은 빵 같은 것을 총무가 사먹자고 한다.

원로 두 사람 거절하고 커피나 한 잔 먹자 하니 총무 왈, 그건 공금 지출이 안 된다고 자른다. 할 수 없이 엔화가 없어 보급대장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는다. 그런데 회장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들어온다. 공금으로 샀단다. 항의를 받자 자기는 빵 대신이라고 강변한다.

그럼 빵 대신 커피는 왜 안 되는데? 회장님의 기호는 일반회원과 별도로 취급하는 건가? 총무님 회장에게 너무 아부하시는 건 아닌지요? 이것이 아이스크림 사건의 전말이다. 결국 이틀 뒤 해단식에서 회장은 아이스크림 값을 토해낸다.

회장은 억울하다고 했지만, ‘회장단 위에 원로원’(‘조물주 위에 건물주’의 패러디) 다시 한 번 절감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쯔기다시’라는 사실도. ‘원로원 외 기타 둥둥’.

원하는 것 있으면 구입하라며 가이드 상이 근처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을 들린다. 다들 뭔가 샀는지 모르겠지만 보급대장이 원했던 유리창 닦게는 결국 못 찾았다고. “글쎄요,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이 도시 외곽에 있는 후라노 와인공장으로 이동하다.

입구에서 바로 지하 와인저장소로 내려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연도별로 제작된 포도주병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샤토(Chateaux, 성)들에서 거대한 지하 저장소를 본 나는 시들하다. 이층에서 공짜 시음을 하고 바로 나오려고 하니 총무가 유료시식 안 할 거냐고 해서 안 한다고 답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허 원로 등과 함께 공기를 쇤다.

다른 사람들이 한참 있다 나오더니 하는 말 와인 5가지를 유료 시음했다며 왜 안 하셨냐 한다. 헛기침이 난다. 이 몸은 프랑스 본토 포도주를 충분히 마셔본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 게 눈에 들어오겠어.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이제 북해도의 마지막 밤을 보낼 삿포로를 향한 장도를 시작할 참이다.

두 시간 못 미쳐 도착할 예정이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가이드 운전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5월 1일부로 천황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된다.

우리가 방문했던 대형마트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세일이 진행 중이었다. 공식행사 중 총리가 ‘천황 만세’를 부르는데 지난 번 연호 변경 때 이에 대해 위헌 소송이 제기되었고, 일본 헌재가 합헌으로 판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가다보니 고속도로 갓길에 승용차 두 대가 서 있고 경찰이 단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뒤에 선 차의 종류는 ‘토요타 크라운,’ 경찰차가 아니어서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이른바 ‘복면 패트롤카’라고 한다. 일종의 암행순찰로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갈 카메라가 위헌이라며 모두 제거했다 하지 않았나? 어느 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는 계속해서 삿포로시의 개척사 시대 이야기를 계속한다. 현재 인구는 200만 명, 대도시다. 평지인데다 마천루도 없어 도시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방향도 해가 없으면 짐작할 수 없다. 이런 곳에야말로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가르친 게 도시학자와 건축가들 아니었던가요?

첫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남성용 주간지 1권을 샀던 총무는 오늘 또 1권을 샀다. 두 잡지에서 여성들의 노출 정도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하나는 좀 노골적인 대중 잡지 같고, 다른 하나는 거의 포르노 잡지에 가깝다. 인물들 연락처까지 있다. 생각 있으면 전화하라는 신호인가. 무슨 생각? 몰라! 편의점이나 서점에서 대놓고 팔고 있으니 점잖은 한국 선비들, 어이없다.

한국인은 이보다 더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쾌락을 추구하며 ‘눈 감고 아웅’하는 데 비해 일본인은 뭐 굳이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닌가라는 논평에 다들 동의한다. 이웃사촌 간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이드는 이러한 일본인의 성 관념에 대해 지진이 빈발하는 재해국가 사람들의 특징은 아닐까, 즉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항상 즐기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철학박사는 일본 문화의 감각주의 성향도 여기서 기인한 건 아닐까라는 가설까지 세운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유명한 영화까지 거론된다. 다들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렇다고 염세주의까지는 아닌 것 같고. 섬나라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항상 대륙 경영을 호시탐탐 노리고 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과감하게 실행했던 침공의 역사를 감안하면 말이다.

어쨌든 일본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정말 쉬운 나라가 아니다. 일본과 일본인을 무작정 무시하는 태도와 일본 뒤만 따라가는 행태와 그래도 배울 건 많다고 보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일본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삿포로 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출구 근처 도로표지판에 백석(白石)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어! 우리의 사랑하는 백석 시인과 한자도 같네. 확인해보니 흰 돌이 많은 지방이란 장소명이다. 하지만 무등산 때처럼 단어의 뜻만으로 추리하는 것은 틀릴 확률이 높다는 경험을 한 바 있어 확신할 수는 없다. 혹시 백석이 일본 유학시절에 삿포로에 어떤 인연을 남겨놓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누가 알랴! 나중에 백석 연구자들에게 물어나 볼거나? 상상은 자유고 끝이 없다.

 

홋카이도청으로 직행한다.

 

 

북해도의 상징이라는 아카렌가(붉은 벽돌건물) 구 청사의 2층 전시장에서 북해도의 역사를 공부하다.

마침 사할린 관련 전시와 아이누족 등 소수민족 관련 전시도 하고 있다. 건물이 낡아 곧 보수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전시 내용과 가이드 설명을 통해 사할린 동포 문제의 원인이 망국과 분단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일제에 끌려온 노동자들은 일본 항복 후 이미 망해 없어진 조선의 국민으로 간주되었고, 당시 남북한 어느 곳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국민으로서 여권 발급을 해주지 않아 국제 미아로 방치되었다는 것. 자주국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일본 북해도의 국제적 현안은 러시아가 약속했으면서 아직 반환하지 않고 있는 북방 4개 섬을 돌려받는 것이다. 소수민족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는 내년 올림픽을 대비해 인권 중시국의 인상을 주기 위해서란다.

그들의 존재를 원(原)주민이 아닌 ‘선(先)주민’으로 표현한 것은 뭔가 의도가 있어 보인다. 아이누족이 일본의 원주민이고 체격이 왜소하다고 왜놈이라고 비하해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지식이란다. 사진으로 보는 아이누족은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데다 잘 생겼다. 이 또한 식자우환이다!

삿포로 맥주 공장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훓어보고, 인접해 있는 비어가든에서 걸게 저녁식사를 한다.

 

 

‘쯔기다시’가 다시 등장한다. 게를 비롯한 안주가 나온 후 여러 가지 종류의 삿포로 맥주를 마시면서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다. 우예 된 일인지 고기가 너무 많이 나와 결국 마이 남긴다. 사람으로 가득 찬 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우리보다 걸게 먹고 마시는 팀은 없다.

인사말 하라는 허 원로의 지시에 김 회장 폭탄선언을 한다. 김 예비회원을 이 시간부로 ‘정규직’으로 발령한다는 것이다. 회장 직권이란다. 모두들 환영 및 축하 박수다. 원로들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분석해보자. 전날 밤 비정규직 논란으로 더 이상 구청장 출신의 전직 동료가 더 이상의 설움을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안타까운 동료애의 발로, 언제 ‘정규직’으로 받아줄지 모르고 계속 갖고 놀려고 드는 고집 센 원로들과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것은 회장임에도 쯔기다시로 처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자긍심의 발로, 그리고 다른 회원들은 비정규직 시절이 없었거나 짧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공평성의 원칙의 적용 등이 아니겠는가?

큼큼. 내가 생각해도 제대로 분석한 것 같은데... 회장의 단독 결정에 다들 환영하는 것을 보니 이제 원로원 전횡 시대는 끝이 나는가 보다. 아, 옛날이여. 이젠 ‘황제 천국’이 될까.

실컷 먹고 마신 후 나오면서 비어가든 건물 입구에서 단체기념사진 해프닝 발생. 안 찍겠다는 걸 사진사가 공짜라 해서 찍었더니 사진 인화는 공짜가 아니란다. 잘못 알아들은 건지 속은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인접한 쇼핑센터에서 자유시간, 별 일 없는 나는 김교수와 정교수와 함께 맥주 한 잔 더 한다. 좀 있다 허 원로가 창밖에 지나가는 걸 보고 잡아들인다. 무슨 얘기들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 난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를 향해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빛나는 시내를 지나간다. 가이드 하는 말, 삿포로 유흥도심은 중앙가로 남서쪽에 있는데 호텔로 가는 방향이라며 번화가를 한 바퀴 돌아준다.

어느 건물 3층인가 4층인가에서 손님 주문 받고 있는 듯 술집아가씨 두 명이 맨살의 엉덩이를 바깥 유리창 쪽으로 드러내고 서 있는 뒤태가 훤히 보인다. 이야, hot place 맞네! 그것만 제외하면 유흥가라 하지만 한국의 도시들만 못한 것 같고, 장기불황의 그늘도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번화가를 빠져나와 어디론지 외곽으로 계속 간다.

가이드 상 호텔에서 시내를 왕래하는 셔틀이 있지만 11시엔가 막차라면서 혹시 시내 나가신다면 올 때는 택시 타야 한다고... 말들은 안 했지만 상당수 회원들 불만이 이때부터 싹텄다는 사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날 밤인데 왜 호텔을 시내에 정하지 않았냐는 거지.

어딘지는 몰라도 시내에서 제법 남쪽인 것 같은데, 이름은 아파호텔이다. 멋지지는 않지만 대형호텔이다. 방 배정하고 사우나한 후 1235호실(3인실)에 모여 남은 술과 비어가든 나오면서 들렀던 쇼핑센터에서 사 온 치즈를 안주 삼아 한 잔들 한 후 조용히 자러들 간다.

속들이 부글부글 끓었을까. 아마 그래서 잠들을 깊이 들지 못했나보다. 새벽에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 다들 깼다고 하는 말이다. <<<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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