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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30.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1

 

1) 교방동 관해정(校坊洞觀海亭)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년~1620년)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1604년에 세운 누정이다.

관해정은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고 현재의 건물은 1886년에 중건한 것이다.

관해정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큰 방문 위에 걸려있는 ‘취백당(聚白堂)’이라는 간판이 있다. 이는 ‘백미(白眉), 즉 뛰어난 인재들을 모으는 집’이라는 뜻이다.

 

 

2003년 시굴 당시 중수 전의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와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한강은 자신의 스승 남명(南冥)을 모시고 산해정(山海亭, 남명의 김해시절 장수처(藏修處))을 다녀온 뒤 스승과 산해정을 기리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관해정을 지었다고 한다.

한강의 사후 그의 제자들은 관해정의 동쪽에 문묘(文廟)를 세워 한강 정구와 그의 제자였던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년~1682년)을 향사(享祀)하였다 한다.

또한 여러 유생들의 유학지소(遊學之所)가 되어 회원(檜原)이란 액호(額號)를 받아 회원서원(檜原書院)을 열었다.

서원은 고종(高宗)때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정자만 남아 있다.

관해정(觀海亭) 앞에 있는 수령(樹齡) 440년의 은행나무는 정구(鄭逑)가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마다 음력(陰曆) 3월과 9월에 정구와 허목의 향사를 지내고 있다. 1983년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2) 교방동 고분군(校坊洞古墳群)

교방동 산415번지에 있다. 2003년 경남발전연구원의 관해정 시굴조사 때 발견되었다.

관해정 아래에서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1기가 조사되면서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다.

현장을 정밀 지표조사한 결과 관해정이 있는 구릉 일대에 다수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관해정 하부에서 조사된 5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되는 돌덧널무덤에서는 굽다리긴목단지 2점, 굽다리접시 3점, 손잡이잔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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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3.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3

 

● 협동정미소 터

상남동 회산다리 건너 회원천변에 붙은 회원동 429-1번지. 현재 환금프라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곳을 이병철이 1936년 마산에 세운 협동정미소가 있던 곳으로 추정해 왔다(머니투데이 성희용기자, 경제기행-삼성, 중교리에서 타임스퀘어까지(3)-27세 200만평 대지주가 되다(http://news.mt.co.kr/mtview.php?no=2004100609333465335&vgb=column&columnType=&code=column119)

일본에서 돌아와 사업을 하기로 한 이병철은 마산에서 정미업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하고 친분이 있던 정현용, 박정원 두 사람과 각 1만 원을 투자하여 정미소를 차리기로 했다.

1936년 봄, 그들은 북마산에 터를 마련하고 '협동정미소'라는 상호를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의 젊은 시절

 

막상 제일 큰 정미소를 만들려고 하니 자금이 부족하자 이병철은 식산은행 마산지점에서 융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1년 동안에 자본금의 3분의 2를 잃고 말았다. 이병철은 실패 원인을 분석해 다음 결산 때는 큰 이익을 냈다고 한다.

또 이병철은 마산에 운송수단이 부족하다 보니 트럭 운임이 매우 비싸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마침 매물로 나와 있던 일본인 경영의 마산일출자동차를 매수하고 기존의 10대에 새 차 10대를 더 보태 20대를 보유한 운수회사를 출범시켰다. 이 사업도 크게 성공했다.

이병철은 정미소와 운송 사업에 이어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는데, 자신의 돈이 아닌 은행 융자금만으로 토지 매입 대금을 전액 지불하고도 돈이 남아도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였다.

게다가 가을 추수가 끝나면 소작료까지 한꺼번에 들어와 자금 사정은 이전에 비해 더욱 여유가 생겼다.

이병철은 동일한 방식으로 은행권 대출을 통한 부동산 투자를 확대해 1년 뒤에는 무려 5배나 되는 200만 평의 대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조선총독부가 비상조치의 일환으로 토지 담보 대출을 일체 중단하면서 식산은행으로부터 대출금 회수 통보를 받은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이병철은 은행으로부터 빌린 엄청난 규모의 부채를 갚기 위해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토지를 팔아넘겨야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협동정미소와 운송회사까지 처분하고 나서야 이병철은 겨우 자신이 빌린 은행권 부채를 청산할 수 있었다.

이후 이병철은 1938년 3월, 대구에서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병철의 협동정미소는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자리에 해방 이후에도 정미소가 있었음을 볼 때 정미소로 계속 운영되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자리에 들어 선 정미소는 환금정미소(丸金精米所)였다.

그 후 김일권(1927년생, 생존)이 1955년에 인수하여 정미소를 계속 하다가 그 뒤 환금장여관이 들어섰다가 다시 환금프라자 건물이 건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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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6.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2

 

● 교원동 일대의 공장들

 

 

건설목공소(가구 제조), 교원동 117번지, 대표 김협환

광전사(전기공사업), 교원동 54번지, 대표 한만규

대광메리야쓰공업사(세타, 방모), 교원동 69-7번지, 대표 박응호, 1958년 설립

대성편물공업사, 교원동 76번지, 대표 이형근, 1959년 조사

대영공업사(솟, 다라이), 교원동 76번지, 대표 박희철, 1951년 설립

동아인쇄소, 교원동 72-9번지, 대표 안보상, 1963년 설립

동양메리야쓰공업사, 교원동 76번지, 대표 이형근, 1958년 설립

마산피혁공장, 교원동 21번지, 대표 박경식, 박경화, 1940년 설립

산호메리야스공업사(장갑), 교원동 34번지, 대표 허성조, 1953년 설립

삼공산업사(쉐타), 교원동 3-5번지, 대표 구자경, 1970년 설립

삼마정미소, 교원동 78번지, 대표 이수용, 1945년 설립

삼화메리야스공업사, 교원동 34번지, 대표 조용환, 1959년 조사

삼화정판사(인쇄), 교원동 441-4번지, 대표 최순자, 1971년 설립

서라벌제과소, 교원동 18번지, 대표 한성열

성신메리야스공업사, 교원동 48번지, 대표 김세규, 1959년 조사

신광메리야스공업사, 교원동 34번지, 대표 이흥조, 1959년 조사

신생메리야쓰공업사, 교원동 69번지, 대표 고용길, 1945년 설립

신영메리야쓰공업사, 교원동 63번지, 대표 최석환, 1950년 설립

신일공업사(단추), 교원동 3번지, 대표 조영순

신창메리야스공업사, 교원동 36번지, 대표 조창복, 1959년 조사

영남산업사(쉐타), 교원동 3-4번지, 대표 김영근

영실제과소, 교원동, 대표 이옥자

용마메리야스공업사, 교원동 35번지, 대표 조권도, 1959년 조사

익춘메리야스공업사, 교원동 68번지, 대표 박점수, 1959년 조사

인쇄소(명판), 교원동 3번지, 대표 조동영

일산메리야쓰공업사(세타), 교원동 70번지, 대표 김창근, 1958년 설립

일흥메리야쓰공업사, 교원동 72번지, 대표 조민우, 1953년 설립

조일수도사, 교원동 63-4번지, 대표 허봉수

창성메리야스공업사, 교원동 63번지, 대표 조성길, 1959년 조사

최신메리야쓰공업사, 교원동 72-5번지, 대표 최용갑, 1953년 설립

태창직물공장(뽀뿌링 및 골덴지), 교원동 26번지, 대표 오세규, 박영근, 1959년 조사

흥아방직공장(면직물), 교원동 89번지, 대표 오한면, 1957년 설립

 

● 교방동 일대의 공장들

국수공장, 교방동 119번지, 대표 한석우

미진메리야스공업사(세타), 교방동 56번지, 대표 김순백, 1960년 설립

삼정화학공업사(파마약, 화장품, 쥐약), 교방동 48-2번지, 대표 이기호, 1960년 설립

수송메리야쓰공업사(세타), 교방동 142번지, 대표 심재익, 1953년(1943년) 설립

신광메리야쓰공업사, 교방동 82번지, 대표 이흥조, 1955년 설립<<<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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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9.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써 스토리텔링 발굴을 위한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지역에 주소를 두었던 기업체와 공장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았다.

목록은 마산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한 마산상공연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를 기초로 하여 기타 여러 자료에서 발췌하는 방식으로 작성하였다.

여러 업종의 제조업체를 기본으로 하되 단순 판매업, 서비스업종 등은 생략하였다. 지역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흐름을 중심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목록은 회사 명칭과 생산품, 소재지, 대표자, 설립년도 등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취합한 것으로, 회사의 존속기간, 매출과 영업실적 등등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영 상태를 파악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다만 이 목록을 통해서 1950년대 이후 지역의 기업 및 공장의 존재 실태에 대해서 개략적인 추정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한때 마산은 장유양조업 못지않게 섬유공업으로도 유명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면방직 및 모방직 산업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마산에도 많은 면직물 공장이 들어서는데 대표적인 것이 메리야스 공장이었다.

이들 메리야스 공장은 대개 가내공업 수준의 소규모 공장이었는데 1960년대 후반 화학섬유가 국내 생산되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천연섬유에서 인조섬유로 소비가 이동하면서 점차 사라져가는 양상을 보였다.

 

● 회원동 일대의 공장들

가내공업센타(쉐타), 회원동 363-1번지, 대표 최석경

갑을제면공장, 회원동 46번지, 대표 김갑수

경남포장공업주식회사, 회원동 444번지, 대표 채수인, 1970년 설립

고광건재사, 회원동 405번지, 대표 최덕림

곡륜목공장(제재), 회원동 207번지, 대표 이경도, 1940년 설립

광림산업사(타이루), 회원동 327번지, 대표 이강재, 1954년 설립

광성스텐공업사, 회원동 29-4번지, 대표 김정식

기일제과소, 회원동 430번지, 대표 이기주

남성모직공업사(방모사, 방모직물), 회원동 355-13번지, 대표 박재환, 1962년 설립

남성스텐공업사(각종 스텐제품), 회원동 403번지, 대표 남호현, 1967년 설립

내서양조장, 회원동 203번지, 대표 강선규 <제6대 국회의원(민중당) / 아래 사진>, 1935년 설립

내서주조장(탁주), 회원동 203번지, 대표 이성근, 1965년

노벨악기공업사, 회원동 442번지, 대표 송삼희

노벨제과소, 회원동 500번지, 대표 민영홍

대동국수공장, 회원동 6번지, 대표 조영시

대동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380번지, 대표 고주용, 1955년 설립

대동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정복조, 1950년 설립

대륙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손재일, 1951년 설립

대명공업사(기계부속), 회원동 362번지, 대표 김성희

대성섬유공업사(쉐타), 회원동 3-4번지, 대표 조병웅

대성정미소(국수, 도정), 회원동, 대표 서학룡

대양직물공장(면직물, 아세테이트사), 회원동 348번지, 대표 심보갑, 1948년(1956년?)

대원산업사(쉐타), 회원동 661번지, 대표 김창규, 1972년 설립

대한메리야스공업사(메리야스, 세타), 회원동 333번지, 대표 김봉현, 1965년 설립

도금공장, 회원동 443번지, 대표 김남훈

동조제면공장, 회원동 35-7번지, 대표 조문호

동해직물공장(골텐), 회원동 348번지, 대표 조상규, 1951년 설립

떡방아간, 회원동 430번지, 대표 문정순

마산비누공업사(세탁비누), 회원동, 전원주, 1962년 설립

마산아교공업사, 회원동 170번지, 대표 박영환

마산직물공업사(사견, 재생모), 회원동 403번지, 대표 권희준, 1961년 설립

면장갑공장, 회원동 327번지, 대표 이현숙

면장갑공장, 회원동 341번지, 대표 홍재호, 1968년 설립

목공소, 회원동 209번지, 대표 김민전

목공소, 회원동 305번지, 대표 한성

미흥스텐공업사(스텐식기), 회원동 443번지, 대표 차보현

봉현제와공장(기와, 토관), 회원동 342번지, 대표 최재근, 1950년 설립

북마메리야스공업사, 회원동 500번지, 대표 정태형, 1959년 조사

삼공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67번지, 대표 홍재성, 1952년 설립

삼부제면공장, 회원동 36번지, 대표 김부사자

삼성직물공업사(소창), 회원동, 대표 김석원

삼천리소주공장(희석식소주), 회원동 595-1번지, 대표 구순기, 1968년 설립

삼풍제면공장, 회원동 40번지, 대표 최일권

삼흥기계공업사(미싱부속), 회원동 352번지, 대표 이갑상, 1959년 설립

숟가락공장, 회원동 398번지, 대표 한사봉

숟가락공장,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달동

숟가락공장, 회원동 500번지, 대표 김태성

숟가락공장, 회원동 500번지, 대표 정재우

숟가락공장, 회원동, 대표 옥장술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207번지, 대표 옥장술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207번지, 대표 차보현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410번지, 대표 박상기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410번지, 대표 조성래

양산철공소(육해상용 디젤엔진), 회원동 348-12번지, 대표 최호민, 최인훈, 1955년 설립

양진토건사, 회원동 345-1번지, 대표 황봉재

엿공장, 회원동 1-5번지, 대표 구귀남

영흥유지화학공업사(세탁비누), 회원동 541-2번지, 대표 장인섭, 1954년 설립

용마기계공업사(다이야젠그네 하우스),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희제

용신공업사(공작기),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도선

원동정미소,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진권, 김형일, 1961년 설립

월성직물공업사(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최복수, 1956년 설립

일성제지공업사(모조지, 선화지), 회원동 500번지, 대표 전한규, 전용수, 1961년 설립

일성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권복수, 1954년 설립

일진산업사(두부, 콩나물), 회원동 355번지, 대표 명말선

일진산업사(엿), 회원동 1-5번지, 대표 구기룡, 1954년 설립

정미소, 회원동 227번지, 대표 이경도

정미소, 회원동 483번지, 대표 배용봉, 1942년 설립

제일국수공장, 회원동 437번지, 대표 남차석

제일물산주식회사(제과제빵), 회원동 384번지, 대표 김시웅, 1967년 설립

제일벽돌, 회원동 356번지, 대표 천희옥

제일제과공사(건빵), 회원동 382번지, 대표 홍성달, 1962년 설립

중앙섬유공업주식회사(모직물), 회원동 363-1번지, 대표 최무용, 1971년 설립

칠칠정미소, 회원동 52번지, 대표 김진수

크로바제과소, 회원동 500번지, 대표 이상우

태흥인쇄소, 회원동 212번지, 대표 성상근

평화산업사(쉐타), 회원동 409번지, 대표 이광세

풍국제면(국수), 회원동 425번지, 대표 정복조, 1968년 설립

한성직물공업사(면직물), 회원동 442번지, 대표 오한일, 1955년 설립

한일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359번지, 대표 윤한일, 1956년 설립

합자회사 회원정미소, 회원동 436번지, 대표 최인두, 1946년 설립

해동국수공장, 회원동 52-8번지, 대표 조덕순

호남제과소, 회원동 36번지, 대표 곽규수

환금정미소,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일권, 1955년 설립

회산용접소, 회원동 403번지, 대표 주외술

회원연탄공장, 회원동 430번지, 대표 진정수, 1958년 설립

회원정미소, 회원동 402번지, 대표 강백희

흥농기업사(정부미도정), 회원동 436번지, 대표 백종기, 1966년 설립

흥아직물공장(뽀뿌링), 회원동 80번지, 대표 조순옥, 1951년 설립<<<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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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2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5

 

● 북마산중앙시장, 북마산청과시장

북마산중앙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37년 전인 1976년 11월이다. 이 시장은 북마산 우시장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1967년에 우시장 자리에 선화고등공민학교가 들어서면서 우시장은 사라져갔다.

2년 후에는 학교가 상남동 64-1번지 일대, 지금 마산문학관 바로 밑으로 옮겨가게 된다. 

학교가 옮겨가면서 우시장의 넓은 공터에는 자연스레 난전이 형성되고 어느새 가건물이 들어섰다. 

교통이 편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북마산역이 바로 인근에 있어서 시장이 형성될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에서는 주로 의류와 생선을 취급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청과물을 취급하는 경매시장도 들어서게 된다. 

시장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자 상인들은 본격적인 시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조합을 추진한다. 땅 소유주와의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회원천 회산다리 밑 상남동 40-1번지 일대의 빈 땅 860여 평을 매입하고 시장 이전을 추진하게 된다. 

진주의 대동건설이 건축을 맡았고 1976년에 새 시장이 문을 열었다. 청과시장도 함께 옮기기로 했으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청과시장은 그대로 남았다. 18개의 점포를 가진 북마산청과시장(주)은 김인택 씨가 대표를 맡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청과물 중계를 하였다. 

당시 마산에는 신포동의 마산청과시장이 가장 큰 시장이었고 월영동에도 신마산청과 시장이 있었지만 거래량은 얼마되지 않았다.

회산다리 밑으로 옮긴 북마산중앙시장은 196개의 점포를 가진 시장으로, 지하에는 생선류가 주이고 1층은 메리야스, 포목 같은 의류가 주종을 이뤘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고 한다. “북마산중앙시장에는 돌을 가져다 놔도 팔린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니까 자연스레 주변에 노점 좌판이 몰려들어 시장 상인들과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좌판이 점점 커지면서 경전선 철로 주변으로 상권이 확산되면서 ‘철둑시장’도 생겨났는데 1997년경이 되면서 거의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한 이십여 년전에는 시장 건물을 2층으로 증축을 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아 완공을 못해 오랫동안 앙상한 흉물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2층 외벽을 깨끗하게 단장을 한 상태이다. 

마산에 백화점이 들어서고 대형 마트가 여기저기 생기면서 북마산중앙시장 역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부림시장 보다는 다소 사정이 나아 2000년까지는 그런대로 장사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재건축을 추진 중이지만 건축경기도 그렇고 해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도 지하의 횟집들은 아직도 성업 중이다.

 

 

● 마포중학교, 후생주택, 남영주택

현재 교원동에는 2010년 11월 완공된 무학자이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있다. 

그 자리에는 예전에 ‘후생주택’과 ‘남영주택’이 있던 자리였다. 당시 교원동 일대에는 집없는 서민들을 위해 지은 시영주택인 후생주택이 줄지어 들어섰다. 

그리고 1969년에는 ‘삼남(三南)지방 폭우’가 발생했는데, 1967년, 68년 2년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혹심한 피해를 입은 삼남지방이 1969년에는 수마에 휩쓸린 사건이다.

1969년 9월 14일 오후부터 16일 낮까지 부산, 경남, 전남 등 남해지방과 제주와 경북 일부 지역에 집중폭우가 쏟아져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이 폭우로 2백89명이 죽고 1백7명이 실종했으며, 2백21명이 부상했다. 이것은 1959년 9월 17일 내습, 8백46명을 사망 실종하게 한 사라호 태풍 이래 가장 비참한 재난이었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마산에서도 교원동에다 ‘남영주택’을 지어 수재민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또 콜레라가 발생하여 여러 사망자가 생기자 격리병사(62평)를 짓기도 했다.

그 주택들이 들어서기 전에 그 자리에는 마포중학교(馬浦中學校)라는 중학교가 있었다. 10여 년 미만의 짧은 기간 동안 있었던 학교라 그런지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었다.

 

마포중학교 상량식 (남조선민보, 1950.2.25.)

 

그래서 자료에 나타난 마포중학교의 연혁을 살펴보기로 한다.

1946년 3월 고등공민학교령에 의하여 마산고등공민학교 인가

1948년 9월 마포중학교 설립기성회 조직

1950년 3월 건벽돌 교사 5교실 준공

1951년 6월 재단법인 마포학원 인가, 7월에 마포중학교 설립인가, 동년 9월 개교식 거행

마포중학교는 처음에 마산 상남동 74번지 호주 선교회 마산지부의 건물에서 공민학교로 출발했다. 

그러나 호주 선교회 소유 건물이기 때문에 교원동 40번지~43번지 일대에 2829평에 달하는 새로운 터를 마련하고 학교 설립을 준비했다.

1950년 4월 당시 마포학원설립기성회(馬浦學園設立期成會) 대표자는 마산의 유력 실업인 김종신(金鍾信)이 맡았다. 재단법인 마포학원 이사로는 손문기, 문삼찬, 이병진, 김상룡, 한태일, 손성수, 박봉기, 박성실, 유석형, 이만희 등 당시 마산지역의 유력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후 4년제 중학교로 개교한 마포중학교는 주야간 학급을 운영하였다. 

마포중학교는 개교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61년 3월에 재단법인 마포학원의 임원이 교체되었는데 정석현 등 7명이 새 이사로 선임되었다. 이 시기를 뒤로 해서 더 이상의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아마도 이 시기에 마포중학교는 폐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958년에는 회원동 480번지에 웨슬레고등공민학교(교장 서익수)가 설립되어 정규 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많은 불우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활동을 벌여 나가기도 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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