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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헌 속 진해2

『진해』(1912) - 18. 급속한 발전과 통신 18. 급속한 발전과 통신 진해 최초의 통신기관은 해군의 임시건축지부가 명치 43년(1910) 4월에 설치되고 난 후, 같은 해 9월에 동 건축지부 임시청사 앞에 현동우편소란 것이 설치된 것이 시작인 것이다. 그 당시까지는 각 구미(건축업자) 청부사들 부하격인 토목공이나 인부들이 조금 살고 있었을 뿐 별로 사무는 그리 바쁘지는 않았다. 즉 건축지부 통신사무를 맡고 있음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전신, 전화, 기타 모든 우편사무를 취급하는 우편소란 설비는 우편국 이상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차차 모든 상황이 진전을 보고 작년 7,8월경에는 시가지 건축공사가 빈번해지며 이주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통신사무 전반이 빈번해진 것이다. 그리고 시가지역과 떨어져 있어서 불편하다고 해서 시민이 우편국 설치 운동을 벌인 결.. 2025. 3. 10.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절 군항지 개관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마산과 진해만』의 2장 ‘진해만’ 부분이다.  제1절 군항지 개관 동양 제일의 대군항인 진해만(진해만이라는 명칭이 진해군의 앞쪽 해역을 포함하여 웅천군 거제군·고성군으로 둘러싸인 넓은 해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략) 1. 우선 조선시대부터 '진해(군)'이라는 고유지명(행정지역명)이 현재의 진해로부터 조금 떨어진 서쪽에 있었던 점. 2. 당해 해역(현재의 '진해만‘을 말함)에 접해 있는 몇 개의 지역명 중에서, 특히 진해라는 지역명에 당시(러일전쟁 개전 전)의 일본군(정부)관계자들이 주목했던 점. 다케쿠니 도모야스, 2019, .. 2024.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