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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2. 00:00

마산번창기(1908) - 14

제5장 교육기관

 

일본인 아동의 교육기관으로는 마산거류민단이 공설(公設)한 마산심상고등소학교가 있다.

위치는 전에 신월동 지역 내에 있던 철도관리국의 소관지이며 신시와 마산포 사이에 있으면서 약간 신시 쪽에 가깝다. 그 소재지는 사방이 뚫려서 조금 높은데에 있기에 소학교의 위치로서는 최고라 하겠다.

 

<마산심상고등소학교 / 현 월영초등학교>

 

학교 건물은 1908년 2월 11일, 기원절(紀元節, 일본의 건국기념일)에 낙성식을 올린 것이다. 부지는 2,500여 평이며 교사 및 부속건물의 건평은 380여 평, 그 경비는 29,510여 원이 들어간, 항내(港內)의 장대미려(壯大美麗)한 큰 건축물이다.

이 학교는 1902년 11월 4일, 정토종 포교승 미스시다 지몬(三隅田持門, 삼우전지문) 스님이 혼자서 자금을 내어 신시의 남단에 일본소학교를 일으켜 생도 13명을 수용하여 개교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고 다음 해 11월에 마산심상소학교란 공인(公認)을 거치고 1906년 7월 관인을 얻고서 심상고등소학교가 된 것이다.

1907년 이후 통감부에서 연간 42원의 보조를 받기로 되었고 같은 해 일본 동궁(東宮) 요시히토(嘉仁, 가인) 전하가 방문했을 때 학사 장려하는 뜻에서 장려금 3백 원을 받아 바로 학교 기본재산에 산입하였고 동년 12월 12일, 양 폐하의 사진과 칙어(勅語)를 증여 받은 한국 내에서 몇 안 되는 학교 중의 하나다.

낙성식은 진해방비대사령관인 해군소장 미야오 나오키(宮岡直記, 궁강직기) 씨 및 진해만요새대대장 이하 관민 3백여 명을 초대하여 총감부 총무장관 츠루하라 사다키치(鶴原定吉, 학원정길) 이하 여러 명의 축사 낭독이 있었다.

당일 통감부의 부통감인 소네 아라스케(曾根荒助, 증근황조) 씨로부터 건축비용 일부로서 5백 원이 정해졌다. 본교의 방침으로는 학사장려를 위해 수시로 학부형 회의를 개최하고 위생에 관해서는 직원과 아동들에게 매일 학교 안팎을 청소시키고 매주 한 번 대청소를 시킨다.

또한 매년 4월에는 촉탁 의사가 와서 위생 상태를 시찰하고 학생 전원의 건강진단을 실시한다. 눈병인 트라코마(角膜粒腫, 각막입종, 전염성 만성결막염)에 관해서는 특히 엄중한 예방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학생 수는 346명이며 그중 남학생이 160명, 여학생이 186명이다. 교장은 사가(佐賀, 좌하) 현 출신 나카지마 데이지로(中島訂治郞) 씨이며 교감은 다케시다 도모(竹下智) 씨, 이하 남녀 교사 5명과 한국 촉탁교사 1명이 지도하고 있다.

일단 소학교 전과(全科)를 졸업한 자는 별도로 보습과(補習科) 혹은 고등여학교나 중학교 등 설비가 없기 때문에 그 학식(學識)의 향상을 쉬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다. 그래도 진학하려는 자는 한국에 있어서는 부산이나 경성, 인천 이외에는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참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교육과정은 일본과 연결되어 있어 전혀 다를 바 없을뿐더러 고등과에는 도리어 한국어 이수라는 부하도 있는 것이다. 매년 3월 시험을 실시하여 졸업증서와 수학증서를 수여한다. 봄, 여름 두 계절에 대운동회를 행하고 고등과 학생은 수학 소풍 여행을 실시할 때가 있다.

교육계에서 불리는 노래에 “노래(唱歌)는 부산, 수공(手工)은 마산, 도화(圖畵)는 경성, 도구(道具)는 원산, 유희(遊戱)는 인천”이라고 하여 그 특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수공은 마산소학교가 잘하는 분야일지 모르겠지만 유희도 아주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인의 아동교육에 관해서는 마산포의 성호라는 곳에 공립마산보통학교란 것이 있다.

전 학급을 4학년으로 나누어 매 학년 50명씩 도합 200명을 수용할 예정이나 현재의 학생은 100명에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남학생이고 여자부의 설비는 없다.

한국 정부에서는 매년 360원, 지방청인 창원부는 230원의 보조를 주고 있다.

교장은 한국이이며 본과(本科) 훈도(訓導)로는 윤태권과 교감이자 일어를 가르치는 가고시마(鹿兒島, 녹아도) 현 출신의 구로키 겐지(黑木源仁), 두 사람이 있다. 그 외 부훈도가 두 명이 있다.

교사(校舍)는 융희 2년 즉 1908년 3월 10일 봄날의 좋은 시기에 낙성식이 거행된 것이다. 당일 낭독된 축사는 아래의 한 건이며 뒤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나머지는 식사(式辭)와 축전에 불과했다.

 

공립마산보통학교의 낙성식을 경축드리며

장가(長歌, 5자 혹은 7자로 짓는 일본 시가인 화가. 끝에 만가를 따른다.)

융희 2년 무신년 2월 초 일본 재야의 신하 스와 부고츠(諏方武骨)

 

“장차 향기롭게 성장하는 아이들이여 학창에서 보이는 뜰의 꽃들과 같구나.”

운운(이하 시가의 번역은 생략한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열네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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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9.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3. 생도들의 복습소, 114. 간수의 인권유린

113. 생도들의 복습소

 

 

천자문에서 사서삼경을 공부하는 동안 신학문이 들어오고 학교가 설립됨에 따라 학교에서 하학하면 과거의 서당과 마찬가지로 그 날 배운 과목을 단순히 통독하는 것이 관습이 되어 있었고, 이것을 독려하기 위한 무료 과외 수업격인 복습소를 웬만한 가정에서는 차릴 수가 있었다.

 

즉 한 칸 방을 복습소로서 다수 학생을 상대로 이를 제공하게 되면 학부형들은 연료인 화목대(火木代)만 부담하면 석유대는 없어도 좋고, 또 전등이 있더라도 전기 사용료라는 명목은 없었다.

 

상급 생도는 하급생을 감독하였고, 또 일정한 시간에 출석하여 일정한 시간에 복습을 시킨 후 공동 취침을 하는데, 때로는 복습소끼리 경쟁을 하여 성적이 우수한 복습소에는 학교 선생과 부형들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각 복습소를 순찰하는 암행어사격인 상급생의 시찰반이 있어서 때에 따라서 시찰(視察)’이라고 쓴 초롱을 들고 급습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가운데는 게으름뱅이도 있어서 책만 펴놓고 다른 잡담만 씨부렁거리고 있는 것을 시찰은 공부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돌아갈 때도 있었다.

 

공부에 권태를 느낄 때는 망보는 아이를 내세워 놓고 놀다가 연락이 오면 그제야 책을 펴들고 읽어대는데 시찰은 그것도 모르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또 어떤 때는 담배를 태우다가 들켜 혼이 날 때도 있는가 하면 시찰이 와 있는 것을 모르고 눈치 없이 술상을 들고 들어오다가 벼락이 떨어지는 수도 있었다.

 

특히 기억되는 것은 이렇게 복습을 하는 생도 속에도 고질 게으름뱅이가 두어 사람 있어서 학교에는 가지 않고 일찌감치 복습소로 나와서는 일본 집 울타리 판자를 뜯어서 군불을 지피고는 낮잠을 자곤 하다가 드디어 2, 3차 낙제국을 먹게 되면 이웃이 부끄러워 스스로 퇴학하고 마는데 이런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 낙제꾼들과 접촉하다가 결국 타락하고 만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여기에 적중된다고나 하여둘까?

 

당시 마산보통학교 관하(管下)에 손꼽을 수 있는 복습소는 서성동에 서림숙(西林塾)’, 김제성 집의 복습소, 중성동 나인한 집의 시선숙(示善塾)’, 오동동의 오산복습소등이었다.

 

 

<마산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 본관>

 

 

 

 

114. 간수의 인권 유린

 

너무 오래 되어 기억은 잘 나지 않으나 수십 년 전 일정(日政) 때 일이다.

 

마산 형무소 기결감(旣決監)에 농촌의 우부(愚夫) 한 사람이 전매법 위반이던가 상해죄이던가는 똑똑히 모르겠으나 벌금형이었던 것을 돈이 없어 치르지 못하고 하루 평균 일원씩을 환산하여 입감 노역을 하고 있었다.

 

입감 수일 후에 그의 가족이 벌금을 마련하여 부랴부랴 그 지방의 경찰서에 보상을 하여서 경찰 측은 마산형무소에 공문 전보로 석방을 통지하였다.

 

그리하여 입감자의 친구들은 석방될 그를 영접키 위하여 형무소 문전에서 학수고대하였으나 종무소식으로 장본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뒤에야 그 경위를 규명해 보았더니 숙직 간수라는 자가 전문을 주머니에 집어 놓고 상부에 보고할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이틀 후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소내(所內) 간수장급들은 그제야 당황하여 사건을 비밀에 붙이고 본인을 석방시키려 하였던 것이나, 일본 신문기자 한 사람이 재빠르게 이 소오스를 취재하여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말았다.

 

이 결과로 전문을 받았던 간수 주임은 즉각 파면이 되고, 소속 간수장은 시말서 제출의 소동까지 벌였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마산형무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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