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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상공회의소8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써 스토리텔링 발굴을 위한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지역에 주소를 두었던 기업체와 공장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았다. 목록은 마산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한 마산상공연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를 기초로 하여 기타 여러 자료에서 발췌하는 방식으로 작성하였다. 여러 업종의 제조업체를 기본으로 하되 단순 판매업, 서비스업종 등은 생략하였다. 지역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흐름을 중심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목록은 회사 명칭.. 2020. 11. 9.
김형윤의 <마산야화> - 56, 의료기관 56. 의료기관 마산에 최초로 병원을 설치한 것은 1908, 9년 경 구마산 박석고개(남성동) 전 동인(同仁)병원 왼편에 일본인 판전(坂田)이란 사람이다. 원장은 그 때로 상당히 연로하였다. 다음으로 구마산 시장 입구 현재 산업경제신문 지국 아래층 자리에 홍생(弘生)병원이 개업되었다. 1909년 경에 현재 마산상공회의소 건너편 협신중화공사(協信重貨公司) 사무소에서 농업협동조합까지 광역(廣域)에 걸쳐 종합병원-마산병원이 개원되었는데 원장에 구주제대(九州帝大) 출신 덕영오일(德永吾一)이며 산과(産科), 안과, 외과, 내과, 소아과 등 그 당시에도 병원 구실을 하였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전 제길윤(諸吉允) 내과의원 이전에 일인 대강(大岡)병원 그리고 대강(大岡)이 사망 후 수상(水上)이라는 사람이 경영하였다... 2015. 11.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마산상공회의소 백년사』에는 1939년 현재 마산에서 활동한 개인 영업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제조업과 운수업 등은 제외한 통계입니다. 이들 개인영업자 중 한국인 상인들은 주로 원마산 중심상가와 부림동 시장 및 남성동 해안 일대에서 곡물, 면사포 등의 포목류, 해산물, 식료품, 고무신 등 생활필수품을 많이 취급했고 대금업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상인들은 주로 건축자재, 철물, 과장, 서적과 문방구, 가구, 의복, 술과 고기, 연료, 선구(船具) 등을 판매했고 대금업도 10여명 정도 되었고 토건청부업도 있었습니다. 자료에 나타난 개인영업자의 숫자는 232명이며 영업장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이용해 232개의 영업장을 원마산․신마산․중앙마산으로 나누고 다시 각 동별로 나.. 2012. 9. 2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1920년 조선회사령이 철폐 후 마산에 들어오기 시작한 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분야는 섬유산업이었습니다. 1923년에 설립된 마산조면공장과 1927년에 설립된 태전마산공장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섬유산업의 발전가능성을 간파한 마산상공회의소는 1930년대들어 적극적으로 섬유산업 유치운동을 펼쳤는데 그 결과 조선물산주식회사, 조선신흥방직주식회사 등 대형 섬유공장이 마산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주류양조산업과 섬유산업의 두 축이 마산의 대표산업으로 자리를 잡게된 것입니다. 1930년대 이후 마산에 들어 온 대표적인 두 섬유회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1939년 설립된 조선물산주식회사입니다. 오동동 2,200평 부지를 매입하여 건평 1,000평의 공장을 건설한 이 회사는 「낙낙직(樂樂織)」이라고 부른 특수.. 2012. 9. 17.
마산만 매립해서 땅 장사하려는 기업들 성동산업 마산조선소가 취득한 마산 앞바다 공유수면 16,000평 매립권을 두고 장사꾼들의 농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작은 수년 전부터였습니다. 마산만 내만에 자리를 잡은 성동조선이 "사업을 일으키려면 바다에 접한 땅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오염총량제 실시 이후 마산만의 매립은 더 이상 없을 것이었지만 성동조선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당시 마산에는 내놓을만한 기업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동조선이 사업을 일으키면 고용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매립을 해서라도 지역경제를 살려보라고 여기저기서 지원했습니다. 마산지역의 상공계를 대표하는 마산상공회의소가 직접나서서 “공유수면매립이 완료되면 연 매출액 1조원에 2천명의 고용이 발생할 것”이라면서 “기업이 .. 2012. 4. 1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공인 모임이 있긴 했지만 두드러진 활동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6년 7월 22일 마산공립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에서 개최된 마구(馬邱/마산대구)철도촉진기성회를 조직하기 위한 부민대회에서 지역의 상공인 모임이 필요하다고 제안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들이 1929년 4월 24일「마산상공회」가 창립되었고, 이후 마산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1938년「조선상공회의소령」에 의한 마산상공회의소의 설립인가가 나던 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최근 마산상공회의소가 펴.. 2012. 1.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마산의 대표적인 시장(市場)에 대해서 조선총독부서무부조사과에서 간행한『朝鮮の市場』의 내용과『마산상공회의소백년사』의 내용을 복합하여 인용해 보겠습니다. ① 우선 1924년에 개설된 부정공설시장(현 부림시장)이 가장 큰 시장으로서 제일 붐볐습니다. 특히 마산장날인 매 5일과 10일에는 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건물은 연와조(煉瓦造)의 장가(長家) 점포 3채였고 그 밖에 아연지붕의 바라크식 건물 여러 동이 있었는데 수많은 노점 상인들이 어울려서 저녁 시장 시간이면 더 크게 붐볐다고 합니다. 『朝鮮の市場』에 나타나는 「구마산 시장」은 부림동․수성동․남성동․동성동 창동의 도로(등외도로)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면적과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도로연장으로 200칸(360m)내외라고 했습니다. .. 2011. 12. 2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개항 이후 하루가 다르게 밀려오는 외국자본의 경제 침식에 맞서 지역 상권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전국개항장의 객주와 여각 등 상인들이 자위적으로 상인 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조선 정부는 갑오개혁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이러한 조직체를 통괄하여 외세로부터 민족 상권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895년 11월 10일「상무회의소 규례」를 제정하였습니다. 이 규례가 우리나라에서 제정된 근대적 상공회의소에 관한 최초의 법령입니다. 대한제국기인 1899년 5월 12일에는 칙령 제19호로 전 조항을 개정했는데 이로써 근대적 면모를 갖춘 상무회의소가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을 기념해 정부에서는 1962년부터 이 개정규례가 발포된 5월 12일을「상공의 날」로 정해 지금까지 기념하고 있습니다... 2010.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