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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일본인과 한국인의 마산상권 판도>

『마산상공회의소 백년사』에는 1939년 현재 마산에서 활동한 개인 영업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제조업과 운수업 등은 제외한 통계입니다.

이들 개인영업자 중 한국인 상인들은 주로 원마산 중심상가와 부림동 시장 및 남성동 해안 일대에서 곡물, 면사포 등의 포목류, 해산물, 식료품, 고무신 등 생활필수품을 많이 취급했고 대금업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상인들은 주로 건축자재, 철물, 과장, 서적과 문방구, 가구, 의복, 술과 고기, 연료, 선구(船具) 등을 판매했고 대금업도 10여명 정도 되었고 토건청부업도 있었습니다.

자료에 나타난 개인영업자의 숫자는 232명이며 영업장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이용해 232개의 영업장을 원마산․신마산․중앙마산으로 나누고 다시 각 동별로 나누어 표시해보았습니다.

다음 그림입니다.

 

전체 영업자 232명 중 한국인은 202명, 일본인은 130명 이었는데, 한국인 202명 중에서 94.5%인 191명이 원마산에서 영업했으며 중앙마산에는 2명, 신마산에는 9명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일본인은 130명 중 원마산에 37.7%인 49명, 중앙마산에 26.9%인 35명, 신마산에 35.4%인 46명이 각각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료가 말하는 것은 한국인의 신마산 진출에 비해 일본인의 원마산 진출이 월등히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인들이 신마산에 진출하지 못한 까닭은 신마산에 비해 원마산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 보다 신마산 일본인들의 배타적 성향이 더 큰 이유였을 겁니다.

나아가 일본인들은 풍부한 돈줄과 막강한 배후세력으로 중앙마산을 포함 도시 전역에 광범위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중앙마산으로 설정한 지역은 중앙동․장군동․자산동․완월동을 비롯해 매립으로 조성된 월포동․신포동 등입니다.

다음 사진은 1930년대의 두월동, 즉 신마산 일본인 상권의 중심지 입니다. 지금은 통술거리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쿄마치(京町)라 불렀던 신마산 최고의 번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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